'내 생각의 길찾기'에 해당되는 글 99건

  1. 본 얼터메이텀 2007/09/27
  2. 부산 다녀오다. 2007/09/18
  3. 사기결혼의 가해자와 피해자 2007/09/11
  4. 화성보호소 방문조사 2007/09/08
  5. 탈레반의 인질석방 합의 2007/08/28
  6. 마힌다 건 해결됨 2007/08/15
  7. 미등록이주노동자 집중단속방침철회촉구 기자회견 2007/07/25
  8. 2007/07/21 2007/07/21
  9. 2007/07/19 2007/07/19
  10. 2007/07/14 2007/07/15

본 얼터메이텀

from 아무그리나 2007/09/27 22:42
오랜만에 감정이입이 되는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본 얼터메이텀(Bourn Ultimatum). 멧 데이먼이 나오는 스파이영화의 최신 씨리즈이다. 첫편인 본 아이덴티티(Bourn Identity)에 이어 속편인 본 슈프리머시(Bourn Supremacy)가 히트하였고, 이 씨리즈의 마지막 완결편이 바로 본 얼터메이텀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첩보영화 주인공들이 현실과는 거리가 먼 낭만적인 캐릭터였던데 비해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의 주인공을 출현시켰다. 대표적인 비현실적 캐릭터가 007 씨리즈의 제임스 본드이다.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에 대한 패러디에 가깝다. 주인공 이름도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제이슨 본이다. 하지만 제이슨 본은 007처럼 유머러스하지도, 각종 비밀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지도, 그리고 만나는 여성마다 유혹하지도 않는다. 더우기 제이슨 본은 악의 제국 소련이나 북한이 아닌 미국의 정보기관 CIA를 상대로 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과장된 거품을 빼고 매우 건조한 액션씬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제이슨 본은 브루스 윌리스나 제임스 본드처럼 유머감각도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구석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빠져든다. 잠깐의 휴식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히 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에 내가 감정이입이 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때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았던 거의 모든 사람이 느낄 만한 감정이다. 이름을 계속 바꿔야하고, 언제나 미행이 붙지 않았는지 뒤를 돌아보며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전화를 쓸 때 항상 직설적인 표현은 삼가하고, 다른 사람 명의의 전화기나 신분증을 사용하고...심지어 자동차를 타고 추격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는 120여분 내내 숨이 막힐 듯한 갑갑증을 느꼈다. 그리고 제이슨 본의 신세에 대해서 공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CCTV와 위성카메라로 추적이 가능한 현대국가에 맞서, 국가보다 더 정의로운 자들의 저항이 가능하기나 한 건지...제이슨 본처럼 살인병기로 길들여지지 않는 이상 꿈이나 꿔볼 수 있는 것인지 절망을 느끼게도 만드는 영화이다. 그러나 제이슨 본은 이 모든 것을 거의 혼자 힘으로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힘이라 한다면 또 한번 꿈꿔볼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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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7 22:42 2007/09/27 22:42

부산 다녀오다.

from 아무그리나 2007/09/18 23:50

93년 여름에 다녀온 이후 14년만에 부산에 갔다왔다. 이주인권연대 정책팀 회의를 '핑계'로 부산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주단체 중 독보적인 존재인 부산인권모임도 가 볼 수 있었다. 부산으로 이주한 국희샘도 만나보았다.

지난 주말을 강타한 태풍으로 인해 부산으로 가면서 불어난 강물과 물에 잠긴 농토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태풍은 물러갔지만 바다와 가까운 곳은 여전히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부산인권모임 민정씨의 안내로 다대포라는 곳을 가보았는데, 탁트인 바다는 좋았지만 해변을 따라 지어진 고층아파트들은 천편일률적인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정책팀회의에서는 보호소방문조사에 대한 추가적인 의견을 모아보았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쏟아져나왔지만, 보호소에만 문제를 집중해서는 제대로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되었다. 왜냐하면 보호소의 시설과 처우에 대한 문제제기만 하게 될 경우 법무부는 인원과 예산의 부족을 핑계될 것이고 결국 의도치않게 법무부의 인원과 예산만 늘려주는 결과를 낳게될 수도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제검거형태의 단속이 그대로 있는 이상 의미있는 진보는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그런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현재 제기할 수 있는 개선요구의 리스트들은 뽑아보기로 하였다.

 

회의 이후 부산모임의 활동가들과 뒷풀이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운동성의 문제는 항상 화두가 되는 주제이다. 단체의 대중성과 운동성을 함께 담보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에 대해서 공통된 고민들이 있었다. 자원활동가들의 요구와 단체의 지향이 맞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문제들도 이야기되었다.

 

해결의 단서들도 찾을 수 있었다. 초기의 현장중심활동을 강화하는 것과 자원활동가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을 대상화하기보다 진정한 친구로서 받아들일 마음자세도 필요하다. 과제만 강조하다보면 쉽게 잊어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이주활동가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때가 많다. 이렇게 순수한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는 이런 활동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내가 다른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영향은 어떤 것일지 걱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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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8 23:50 2007/09/18 23:50

낮에 노동부에 출석해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얼마전 비자문제로 상담했던 파키스탄에서 온 아딥(가명)씨였는데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더니 한국사람을 바꿨다. 그런데 아딥씨가 수화기를 바꿔 준 사람은 경찰이었다. 그는 아딥씨가  사기결혼 혐의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미 한국인 여성과 브로커는 범행을 자백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런데 아딥씨만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딥씨를 만나본 것은 상담을 위해 한 두 번정도 였으므로 그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났을때 받았던 느낌은 뭐랄까 그냥 평범하고 착실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인상이  판단의 전부는 될  수 없으므로 나는 일단  경찰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미리 잡혀있던 약속때문에 바로 아딥씨에게 가 보지는 못했고, 저녁 늦게가 되어서야 니아즈씨와 함께  갈  수 있었다. 니아즈씨 역시  아딥씨를 잘 알지는 못했으나 주말마다  금촌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만나 안면이 있었고 아친을 아딥씨에게 소개해 준 인연도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같이 가자고 부탁하자 고맙게도 선뜻  나서주었다.


밤9시까지 면회시간이 마감이라기에 외곽순환도로를 눈썹 휘날리게 달려갔지만 워낙 늦게  출발한 까닭에  도착하니 8시45분이었다. 가까스로 면회신청에 성공한  후 조금 기다리자 아딥씨가  나왔다. 아딥씨는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면회실로 들어왔다. 니아즈씨가 먼저 파키스탄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금 있다가 아딥씨가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더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면회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하는 대화라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아딥씨의 말을 저쪽에서도 알아듣기 힘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받아서  통화를 해보니  상대방은 아딥씨가 예전에 일했던 공장의 '사모님'(사업주 부인)이었다.


'사모님'은 경계가 느껴지는 말투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내가 이주인권단체에서 왔다는 것을 밝히자 조금은 안심하는 듯 했다. 그리고 아딥씨가 죄를 지을 사람이 아니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사모님'으로부터 들은 말에 따라 지금의 상황을 종합하면 대충 이렇다. 오랫동안 '사모님'의 공장에서 일해 온 아딥씨는 너무나 착실하고 일을 잘 해서 공장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공장도 잘 되고 아딥씨도 잘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많았고,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한 결혼정보업체를 알게 되었다. 그곳을 통해  한국여성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그 전까지 '불법체류'한 것에 대해 벌금을 내야했다. 벌금이 무려 700만원이나 나왔는데 회사와 친구들로부터 빌려서 겨우 낼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아딥씨는 결혼한 여성이 원하는 경제적 지원을 제대로 해 줄 수가 없었다. 결혼한 여성은 결혼정보업체에 강하게 항의를 했고, 결혼정보업체 역시 아딥씨를 안좋게 보게되었다. 그런 와중에 비자심사를 하던 출입국관리소에서 위장결혼이 의심된다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였고, 경찰서로 끌려온 여성과 결혼정보업체사장은 위장결혼이 맞다고 바로 자백을 한 것이다.


그래서 '사모님'은 경제적으로 도움을 많이 주지 못한 자기 탓이 크다며 나에게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겠냐고 계속 물었다. 하지만 정황을 듣고보니 위장결혼으로 판단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나 역시도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딥씨가 처음엔 비자취득을 목적으로 했었어도 이왕  결혼신고까지 한 이상 실제로 잘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모님'에 따르면 결혼생활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었던 것은 아딥씨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르바이트라도 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옮겨다녀야 했기 때문이었다.


면회를 마치고 담당 외사계 형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딥씨에게 적용되는 법은 '공증증서원본등부실기재죄'라고 하고,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한다. 아딥씨의 경우 배우자와의 나이차가 10년 이상이고 동거 등 실제결혼관계가 거의 유지되지 않았고, 배우자와 결혼중계업자가 이미 자백한 상태이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구치소에서 한 달 정도 있으면서 재판을 받고 1심 판결이 나오면 바로 외국인보호소로 보내져 강제출국된다고 한다.


나는 이번에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보지만 실제 이런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대부분 중국인들이 많은데 파키스탄 사람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참을 이야기하던 담당형사조차도 "위장결혼한 건 잘못이지만 우리사회에 필요한 이런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요즘 들어 TV등 언론에서 위장결혼 또는 사기 결혼한 외국인들이 적발되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보도하곤 한다. 그런 뉴스를 접하게 되면 그냥 '국제결혼이 문제가 많구나'하고 지나쳐버리기 쉽상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결혼할 의사도 없으면서 거짓으로 결혼하는 것일까? 물론 정답은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외국인들이 합법적으로 체류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일까? 물론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전문적인 능력이 있거나 한국에 많은 돈을 투자한 사람들로 제한되어 있다. 출입국법상 단순 기능 인력이라고 불리우는 일반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체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위장결혼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남성과 결혼해서 오는 외국여성 중에 발생하는 위장결혼 역시 경우는 다르지만 원인은 높은 이주규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글을 읽는 독자들께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돈 없고 별다른 전문기술도 없는 사람들은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들인가? 이런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혹시 한국인 중에도 돈 없고 전문기술도 없는 사람들은 다 내보내길 원하는 게 아닐까? 돈 없고 능력 없는 사람들을 국가가 보호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적 연대는 대한민국의 국경을 넘을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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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1 00:29 2007/09/11 00:29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 이후 국가인권위는 이주관련단체들과 함께 외국인보호소 방문조사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로 하는 것이다. 지난 6월 방문조사때는 보호외국인이 거의 없어 조사의 실효성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의 합동단속이 시작되고 있어 그때보다 훨씬 많은 보호외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화성외국인보호소 조사작업에 참여하였다. 화성보호소에는 현재 320여명의 외국인이 수용되어 있다. 두 번째 방문하는 것인지라 첫 방문 때와 같은 긴장감은 훨씬 덜했다. 하지만 첫 방문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조사해야하는 까닭에 육체적인 피로는 훨씬 높았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얼마전 서울 성수동에서 단속된 이주노조 조합원도 있었다. 철창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한 번에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이주집회 등에 열심히 참여한 열성 조합원이었다. 그는 이주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이곳에서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멸시를 받고 있다고 했다.

만19세의 우즈베키스탄 청년은 손가락을 다치는 산재를 입었으나 제대로 치료가 종료되지 않은채 단속되어 들어와있었다. 15살때  한국에 들어와 20살도 안된 나이에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굽히지 못하는 장애를 얻었다.

이 우즈베키스탄 청년을 비롯해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단속되어 들어온 사람들이 이번 조사에서는 많이 발견되었다. 합동단속이라는 이름하에 출입국직원 뿐 아니라 일반경찰들도 외모나 피부색이 달라보이면 무조건 검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를 다 마치고 자리를 정리하려는 나를 붙잡고 이야기한 베트남 노동자는 임신 중이던 부인이 통증을 호소하였음에도 2시간 가까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계속 단속을 진행했음을 이야기하며 다시 분노하였다. 그리고 자신도 뺨을 몇 차례 맞았다고 했다. 단지 수갑찬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려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3년 명동성당 농성에도 참여했던 한 네팔노동자의 사연은 더욱 기구했다. 공장동료가 길을 가다 단속이 되었고 그는 일하는 공장으로 앞장서라는 협박과 구타에 못이겨 그가 일하던 공장으로 출입국직원을 데리고 왔다. 그는 용케 옥상으로 도망쳤으나 출입국직원들이 사장을 협박하여 사장이 직접 그를 잡아서 출입국직원에게 인계하였다. 아마도 도망간 사람을 넘기지 않으면 벌금을 높게 부과하겠다고 협박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손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필사적으로 도망가려 했으나 사업주는 '미안하다'며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다음날 면회를 와서도 사업주는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무엇보다 마음이 안좋았던 것은 얼마전 나와 함께 노동부에 출석했던 라하만씨 부부를 만난 것이다. 라하만씨 부인은 한국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지만 남편과 함께  단속이 되어 곧  강제추방될 것이다. 라하만씨는 나의 손을 잡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왜 그가 나에게 미안해야 하는거지? 나는 할말이 별로 없어서 그저 잘가라는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돌아섰다.

오전9시반부터 시작한 오늘 방문조사는 저녁6시반이 넘어서야 끝날 수 있었다.

화성이라는 이름과 어울리게 화성보호소 주변은 황량한 개활지 뿐이다. 황량한 분위기에 날씨까지 구름이 잔뜩끼어 마음이 더욱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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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8 00:06 2007/09/08 00:06

방금 아프간 인질 석방에 합의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정말 다행이다. 지난번에 희생된 두 분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나머지 생명들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아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한국정부가 진작 사태의 심각성을 판단하고 움직였더라면 희생된 두 명의 목숨도 살릴 수 있었지 않았나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의 반전운동은 이렇다할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몇 번의 철군촉구 집회를 중동언론들이 관심있게 취재해가긴 했지만 그것이 어느정도의 역할을 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한국정부의 노력이 이번 사건에서는 두드러져 보인다. 이런 일이 있게 만든 원인제공자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합의조건을 보면 그동안 탈레반측이 계속 요구했던 수감자 석방 맞교환이 빠졌다. 한국군 연내철군과 선교중단이 주된 합의내용이다. 사실 한국정부가 연내철군을 합의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탈레반측과 직접협상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그동안 계속 훼방만 해 온 것이 분명해보인다. 미국은 협상기간 동안 계속해서 군사작전을 펼쳤다.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의 요구를 왜곡하거나 수감자석방은 절대 안된다는 입장만을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이 애초 입장을 철회하고 한국정부와 인질석방을 합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며칠전부터 언론에서는 사우디정부를 통한 탈레반 압박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었다. 이번 인질사태에  대해 서방언론과 정부는 대체로 무관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중동의 언론과 여론은 인질들에 대해서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이들이 한국인 인질들에 대해 우호적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인질들이 대부분 봉사단원이라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주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도라는 것, 어찌되었든 궁극적으로는 선교가 목적이었다는 것은 불리한 요인이다. 그러나 중동사람들에게 한국은 아직은 서방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80년대 한국에서 강력한 반미운동이 벌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비록 지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한  나라이지만, 그래서 어찌보면 교전상대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미국이나 영국처럼 바라보지는 않는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런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이 영국처럼 미국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친미국가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순간 지금까지의 우호적인 이미지는 순식간에 바뀌어버릴 것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이 그 갈림길에 와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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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8 23:39 2007/08/28 23:39

퇴직금 등의 건으로 사무실을 찾아왔던 스리랑카 노동자 마힌다씨가 결국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받았다. 사업주와 사무실에서 만나 합의를 보았다. 사업주는 끝까지 100% 지급을 하려하지 않았는데 액수보다는 감정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다.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온 마힌다씨가 비자만료를 앞두고 이탈하였기 때문에 사업체에서는 이탈한 노동자 수 만큼 1년간 연수생을 받을 수 없게된다. 연수생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고안한 고육지책인 것이다. 이를 이유로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마지막까지 사업주로서의 강제력을 행사하고 싶어했다. 당연히 줘야할 돈을 주면서 마치 선심쓰는 듯한 온갖 생색을 다 냈다. 마힌다씨가 100% 지급을 요구하자 사업주는 지급해주는 대신 출입국으로 데려가겠다는 협박까지 하였다.

나도 처음에는 사업주 입장도 어느정도는 이해를 했었는데 그런 협박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속내는 이번에 지급하게 되면 다른 지급받지 못한 노동자들도 지급을 요구할 것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정부는 연수생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사업체에게 벌칙을 부과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결국 그 댓가는 다시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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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5 00:12 2007/08/15 00:12

7월 25일(수) 오전11시 목동에 있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 노동권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이주공동행동)이 주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란색 조끼를 단체로 입고 있는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회원들이었다. 어림잡아도 50~60명은 되어보여 참석자 중 가장 많은 숫자가 참여하였다. 그리고 'resistance(저항)'라는 글자가 새겨진 예쁜 티셔츠를 입고 참여한 학생들도 여럿 보였다. 주최측이 파악한 바로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하였다. 그다지 많은 홍보가 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의 인원이 모인 것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민주노총이나 참여연대같은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이 조직하는 기자회견도 10명~20명이 참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날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것이다. 그래서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은 이주노조 마슘씨도 '큰 힘이 된다'며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기자회견의 규모가 상당하자 출입국과 경찰 측의 반응도 전보다 날카로왔다. 출입국직원들은 방송차의 위치에 딴지를 걸었고 경찰은 계속해서 '불법집회'라며 노골적으로 기자회견을 방해하였다. 경찰은 채증 후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협박까지 하였다.

이날 기자회견이 고무적이었던 것은 단지 규모만이 아니었다. 발언자들의 발언도 참여자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전형배 변호사는 단속의 인신구금 절차가 내국인과 달리 행정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지적하였다.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대표해 발언한 구속노동자후원회 김진석 활동가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되어 있는 한국인들에 대해 안타깝다'며 '이주노동자들을 억류하고 심지어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죽이기까지한 노무현 정부는 더 더욱 나쁘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마슘씨는 '얼마전 미국 한 대학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을때 대통령이 세 번이나 사과했다'며 '하지만 자기나라에서 아무 죄없는 외국인들을 10명이나 불태워죽인 것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단지 조금 못사는 나라, 조금 힘없는 나라에서 왔기때문이다'라고  폭로했다.

이주공동행동은 앞으로 8월 9일에 고용허가제실시 3주년에 따른 기자회견과 8월 19일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대규모 합동단속에 대비해 민변의 도움을 받아 법률지원변호인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또한 단속관련 인권침해를 신고하는 신고전화를 운영하고 보호소에 대한 주기적인 감시활동도 해나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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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5 23:57 2007/07/25 23:57

2007/07/21

from 아무그리나 2007/07/21 00:20

결국 이랜드에 공권력이 투입됐다.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너무 멀리있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이것은 어쩌면 나의 핑계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지도 않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움직이기도 싫은 나의 현재상태를 변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는 움직여야겠다. 마침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내일은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러나 '이주'라는 커다란 문제를 안고 씨름하느라 나는 조금 지쳤나보다. 내가봐도 움직임이 예전같지 않고 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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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1 00:20 2007/07/21 00:20

2007/07/19

from 아무그리나 2007/07/19 23:21

비가 내렸다. 오늘은 제법 내렸다. 오전엔 라헬씨의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사업장을 방문하였다.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라헬씨도 자기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표현에 서툴다. 그리고 자신의 정당성만을 주장하지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한다. 반면에 사업주는 유창한 말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라헬씨가 불량을 너무 많이 내서 오히려 손해를 더 보았다고 한다. 불쌍하다는 생각때문에 4개월 넘게 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러니 정말 억울하고 열받는다고 한다.

라헬씨가 받지 못한 돈은 마지막 달 열흘치 급여 40만원이다. 그리고 그 전달에는 불량 나온것에 대해 20만원을 공제했다고 한다. 그것은 라헬씨가 스스로 원한 것이기도 하다. 누구 말이 정확한 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다르게 이해하기 마련이니까. 특히 노자관계에서는 더더욱이 그렇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불량을 그렇게 많이 내는데도 4개월 넘게 라헬을 데리고 있었다는 것은 어쨌든 회사가 입은 손해가 그리 크지 않았고 오히려 이득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노동자가 낸 불량은 노동자만의 책임일까? 4개월 동안 계속 불량을 내었다면 그건 관리감독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지않나? 이런 이야기들을 더 해주지 못하고 돌아선 것이 조금 후회된다. 그리고 라헬을 조금이나마 의심하고 불신했던 것도 후회된다. 무조건적으로 노동자편을 든다는 거...그거 정말 힘든일이라는 걸 뼈져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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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9 23:21 2007/07/19 23:21

2007/07/14

from 아무그리나 2007/07/15 00:05

지영씨가 갑자기 연락이 안되어 걱정을 많이 하였다. 다행히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찾아가서 만날 수 있었는데 무슨 일이 생기긴 생긴 것 같았다. 원래 갑작스런 기복이 심한 것이 20대의 특징이긴 하나 무슨 큰일이 생긴건 아닌지 걱정된다.

 

오랜만에 집에서 쉴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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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5 00:05 2007/07/15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