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 이후 국가인권위는 이주관련단체들과 함께 외국인보호소 방문조사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로 하는 것이다. 지난 6월 방문조사때는 보호외국인이 거의 없어 조사의 실효성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의 합동단속이 시작되고 있어 그때보다 훨씬 많은 보호외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화성외국인보호소 조사작업에 참여하였다. 화성보호소에는 현재 320여명의 외국인이 수용되어 있다. 두 번째 방문하는 것인지라 첫 방문 때와 같은 긴장감은 훨씬 덜했다. 하지만 첫 방문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조사해야하는 까닭에 육체적인 피로는 훨씬 높았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얼마전 서울 성수동에서 단속된 이주노조 조합원도 있었다. 철창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한 번에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이주집회 등에 열심히 참여한 열성 조합원이었다. 그는 이주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이곳에서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멸시를 받고 있다고 했다.

만19세의 우즈베키스탄 청년은 손가락을 다치는 산재를 입었으나 제대로 치료가 종료되지 않은채 단속되어 들어와있었다. 15살때  한국에 들어와 20살도 안된 나이에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굽히지 못하는 장애를 얻었다.

이 우즈베키스탄 청년을 비롯해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단속되어 들어온 사람들이 이번 조사에서는 많이 발견되었다. 합동단속이라는 이름하에 출입국직원 뿐 아니라 일반경찰들도 외모나 피부색이 달라보이면 무조건 검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를 다 마치고 자리를 정리하려는 나를 붙잡고 이야기한 베트남 노동자는 임신 중이던 부인이 통증을 호소하였음에도 2시간 가까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계속 단속을 진행했음을 이야기하며 다시 분노하였다. 그리고 자신도 뺨을 몇 차례 맞았다고 했다. 단지 수갑찬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려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3년 명동성당 농성에도 참여했던 한 네팔노동자의 사연은 더욱 기구했다. 공장동료가 길을 가다 단속이 되었고 그는 일하는 공장으로 앞장서라는 협박과 구타에 못이겨 그가 일하던 공장으로 출입국직원을 데리고 왔다. 그는 용케 옥상으로 도망쳤으나 출입국직원들이 사장을 협박하여 사장이 직접 그를 잡아서 출입국직원에게 인계하였다. 아마도 도망간 사람을 넘기지 않으면 벌금을 높게 부과하겠다고 협박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손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필사적으로 도망가려 했으나 사업주는 '미안하다'며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다음날 면회를 와서도 사업주는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무엇보다 마음이 안좋았던 것은 얼마전 나와 함께 노동부에 출석했던 라하만씨 부부를 만난 것이다. 라하만씨 부인은 한국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지만 남편과 함께  단속이 되어 곧  강제추방될 것이다. 라하만씨는 나의 손을 잡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왜 그가 나에게 미안해야 하는거지? 나는 할말이 별로 없어서 그저 잘가라는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돌아섰다.

오전9시반부터 시작한 오늘 방문조사는 저녁6시반이 넘어서야 끝날 수 있었다.

화성이라는 이름과 어울리게 화성보호소 주변은 황량한 개활지 뿐이다. 황량한 분위기에 날씨까지 구름이 잔뜩끼어 마음이 더욱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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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8 00:06 2007/09/08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