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노동부에 출석해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얼마전 비자문제로 상담했던 파키스탄에서 온 아딥(가명)씨였는데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더니 한국사람을 바꿨다. 그런데 아딥씨가 수화기를 바꿔 준 사람은 경찰이었다. 그는 아딥씨가  사기결혼 혐의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미 한국인 여성과 브로커는 범행을 자백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런데 아딥씨만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딥씨를 만나본 것은 상담을 위해 한 두 번정도 였으므로 그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났을때 받았던 느낌은 뭐랄까 그냥 평범하고 착실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인상이  판단의 전부는 될  수 없으므로 나는 일단  경찰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미리 잡혀있던 약속때문에 바로 아딥씨에게 가 보지는 못했고, 저녁 늦게가 되어서야 니아즈씨와 함께  갈  수 있었다. 니아즈씨 역시  아딥씨를 잘 알지는 못했으나 주말마다  금촌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만나 안면이 있었고 아친을 아딥씨에게 소개해 준 인연도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같이 가자고 부탁하자 고맙게도 선뜻  나서주었다.


밤9시까지 면회시간이 마감이라기에 외곽순환도로를 눈썹 휘날리게 달려갔지만 워낙 늦게  출발한 까닭에  도착하니 8시45분이었다. 가까스로 면회신청에 성공한  후 조금 기다리자 아딥씨가  나왔다. 아딥씨는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면회실로 들어왔다. 니아즈씨가 먼저 파키스탄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금 있다가 아딥씨가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더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면회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하는 대화라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아딥씨의 말을 저쪽에서도 알아듣기 힘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받아서  통화를 해보니  상대방은 아딥씨가 예전에 일했던 공장의 '사모님'(사업주 부인)이었다.


'사모님'은 경계가 느껴지는 말투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내가 이주인권단체에서 왔다는 것을 밝히자 조금은 안심하는 듯 했다. 그리고 아딥씨가 죄를 지을 사람이 아니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사모님'으로부터 들은 말에 따라 지금의 상황을 종합하면 대충 이렇다. 오랫동안 '사모님'의 공장에서 일해 온 아딥씨는 너무나 착실하고 일을 잘 해서 공장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공장도 잘 되고 아딥씨도 잘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많았고,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한 결혼정보업체를 알게 되었다. 그곳을 통해  한국여성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그 전까지 '불법체류'한 것에 대해 벌금을 내야했다. 벌금이 무려 700만원이나 나왔는데 회사와 친구들로부터 빌려서 겨우 낼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아딥씨는 결혼한 여성이 원하는 경제적 지원을 제대로 해 줄 수가 없었다. 결혼한 여성은 결혼정보업체에 강하게 항의를 했고, 결혼정보업체 역시 아딥씨를 안좋게 보게되었다. 그런 와중에 비자심사를 하던 출입국관리소에서 위장결혼이 의심된다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였고, 경찰서로 끌려온 여성과 결혼정보업체사장은 위장결혼이 맞다고 바로 자백을 한 것이다.


그래서 '사모님'은 경제적으로 도움을 많이 주지 못한 자기 탓이 크다며 나에게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겠냐고 계속 물었다. 하지만 정황을 듣고보니 위장결혼으로 판단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나 역시도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딥씨가 처음엔 비자취득을 목적으로 했었어도 이왕  결혼신고까지 한 이상 실제로 잘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모님'에 따르면 결혼생활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었던 것은 아딥씨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르바이트라도 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옮겨다녀야 했기 때문이었다.


면회를 마치고 담당 외사계 형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딥씨에게 적용되는 법은 '공증증서원본등부실기재죄'라고 하고,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한다. 아딥씨의 경우 배우자와의 나이차가 10년 이상이고 동거 등 실제결혼관계가 거의 유지되지 않았고, 배우자와 결혼중계업자가 이미 자백한 상태이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구치소에서 한 달 정도 있으면서 재판을 받고 1심 판결이 나오면 바로 외국인보호소로 보내져 강제출국된다고 한다.


나는 이번에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보지만 실제 이런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대부분 중국인들이 많은데 파키스탄 사람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참을 이야기하던 담당형사조차도 "위장결혼한 건 잘못이지만 우리사회에 필요한 이런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요즘 들어 TV등 언론에서 위장결혼 또는 사기 결혼한 외국인들이 적발되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보도하곤 한다. 그런 뉴스를 접하게 되면 그냥 '국제결혼이 문제가 많구나'하고 지나쳐버리기 쉽상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결혼할 의사도 없으면서 거짓으로 결혼하는 것일까? 물론 정답은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외국인들이 합법적으로 체류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일까? 물론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전문적인 능력이 있거나 한국에 많은 돈을 투자한 사람들로 제한되어 있다. 출입국법상 단순 기능 인력이라고 불리우는 일반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체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위장결혼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남성과 결혼해서 오는 외국여성 중에 발생하는 위장결혼 역시 경우는 다르지만 원인은 높은 이주규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글을 읽는 독자들께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돈 없고 별다른 전문기술도 없는 사람들은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들인가? 이런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혹시 한국인 중에도 돈 없고 전문기술도 없는 사람들은 다 내보내길 원하는 게 아닐까? 돈 없고 능력 없는 사람들을 국가가 보호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적 연대는 대한민국의 국경을 넘을 수 없는 것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9/11 00:29 2007/09/11 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