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얼터메이텀

from 아무그리나 2007/09/27 22:42
오랜만에 감정이입이 되는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본 얼터메이텀(Bourn Ultimatum). 멧 데이먼이 나오는 스파이영화의 최신 씨리즈이다. 첫편인 본 아이덴티티(Bourn Identity)에 이어 속편인 본 슈프리머시(Bourn Supremacy)가 히트하였고, 이 씨리즈의 마지막 완결편이 바로 본 얼터메이텀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첩보영화 주인공들이 현실과는 거리가 먼 낭만적인 캐릭터였던데 비해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의 주인공을 출현시켰다. 대표적인 비현실적 캐릭터가 007 씨리즈의 제임스 본드이다.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에 대한 패러디에 가깝다. 주인공 이름도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제이슨 본이다. 하지만 제이슨 본은 007처럼 유머러스하지도, 각종 비밀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지도, 그리고 만나는 여성마다 유혹하지도 않는다. 더우기 제이슨 본은 악의 제국 소련이나 북한이 아닌 미국의 정보기관 CIA를 상대로 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과장된 거품을 빼고 매우 건조한 액션씬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제이슨 본은 브루스 윌리스나 제임스 본드처럼 유머감각도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구석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빠져든다. 잠깐의 휴식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히 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에 내가 감정이입이 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때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았던 거의 모든 사람이 느낄 만한 감정이다. 이름을 계속 바꿔야하고, 언제나 미행이 붙지 않았는지 뒤를 돌아보며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전화를 쓸 때 항상 직설적인 표현은 삼가하고, 다른 사람 명의의 전화기나 신분증을 사용하고...심지어 자동차를 타고 추격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는 120여분 내내 숨이 막힐 듯한 갑갑증을 느꼈다. 그리고 제이슨 본의 신세에 대해서 공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CCTV와 위성카메라로 추적이 가능한 현대국가에 맞서, 국가보다 더 정의로운 자들의 저항이 가능하기나 한 건지...제이슨 본처럼 살인병기로 길들여지지 않는 이상 꿈이나 꿔볼 수 있는 것인지 절망을 느끼게도 만드는 영화이다. 그러나 제이슨 본은 이 모든 것을 거의 혼자 힘으로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힘이라 한다면 또 한번 꿈꿔볼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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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7 22:42 2007/09/27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