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째 주 파주에서 보내는 편지
어느덧 2008년도 두 달 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그리고 앞으로 지나게 될 많은 시간들 속에 2008년도 그 어디쯤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소중한 시간들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나와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나,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거창하게 편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지난 일요일 낮에 함께 보았던 ‘전태일’ 영상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우리를 ‘또 다른 나’라고 표현한 것도 사실 전태일의 것입니다. 전태일은 중학교를 중퇴한 짧은 학력이었지만, 그가 남긴 일기와 글들을 보면 그의 고민과 사색의 수준은 왠 만한 실존주의 철학자 이상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문제를 깊이 고민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진리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나 봅니다. 물론 38년 전 전태일이 빠져들었던 주제는 평화시장의 나이 어린 시다 들을 돕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 문제에 골몰하다가 그는 우리가 개별적인 개인들이지만 또한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나’라는, 그래서 시다 들을 돕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나를 돕는 것이라는 인식에까지 이르렀던 건 아닐까요?
오는 11월13일 전태일 분신항거 38주기를 맞아 지난 일요일 한국어교실 2부 수업에서는 전태일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노동운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삶을 소개하면서 지금 한국 노동자들에게 보장된 권리들이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노동자들의 권리가 잘 지켜지는 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는 친구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내용을 100%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70년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많은 친구들이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평화시장 노동자들과 똑 같지는 않지만, 밤에도 일하고, 토요일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해도 손에 쥐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게다가 외국인이라는 차별까지 받는 우리 친구들의 처지가 개선되기까지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번 주 한국어교실에는 그 동안 뜸했던 태국 친구들이 오랜만에 나왔습니다. 요즘 들어 단속이 너무 심해 밖에 나가는 것을 자제하고 있어서 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학기 모범생이었던 버니 씨도 거의 두 달 만에 다시 나오셨습니다. 일이 너무 많았고 지난주에는 서울을 다녀오셨다는 군요. 최근 자주 나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던 스리랑카 친구들도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검정고시 준비로 나오지 못했던 이진호 학생도 정말 오랜만에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도 선생님 한 분이 더 늘어났다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새로 오신 윤정실 선생님이 회사동료인 이원휴 씨를 모시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집이 분당이라고 하시네요. 너무 멀리서 오는 것이어서 걱정했더니 앞으로 사모님도 모시고 오시겠다고 한 술 더 뜨셨답니다.^^ 어쨌든 우리 주변에는 정말 좋으신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황금 같은 주말을 언제나 반납하고 일요일마다 나오시는 우리 선생님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전태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주말에는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여 전태일의 정신을 기리고 노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결의하는 커다란 행사가 있습니다. 전국노동자대회라고 불리우는 이 행사는 1987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치뤄져왔습니다. 아친에서도 토요일 전야제(서울역)와 일요일 본행사(대학로)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토요일 전야제에서는 특히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후원하기 위한 후원주점행사도 열립니다. 전태일이 죽은 지 38년이 지나 많은 것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 등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번 주말은 이들의 목소리에 한 번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혹시 서울로 오실 분은 저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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