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느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누구나 전쟁을 반대한다. 하지만 인류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수많은 전쟁이 있어왔고, 독재자나 소수지배자들의 의지로 일어난 전쟁들도 있지만 백성, 국민, 시민, 민중...무엇으로 불리던 다수 대중들의 지지 속에 벌어진 전쟁도 적지 않다. 특히 가장 최근에 인류가 치룬 두 차례의 세계대전 경험은 가장 비극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전쟁의 역사에서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항상 정해져있었다. 권력이나 부를 소유한 소수만이 수혜자였다. 반면 권력과 부에서 소외되어 있는 다수대중들은 전쟁을 통해서 자신들도 이득을 얻을거라고 믿었지만 그런 믿음은 언제나 배신당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대중들이 깨달을 즈음에야 전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깨달음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깨닫지 못함에 대한 댓가는 가혹하리만치 커져버린 이후이곤 했다. 

2004년에 '국익'이라는 이름하에 이라크로 파병된 자이툰부대는 여전히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다. 시민사회진영의 끈질긴 반대투쟁이 있었지만 국회와 대다수 국민은 '전쟁참여'를 선택하였다. 그 후 고 김선일씨와 윤장호하사의 죽음이 있었고 지난해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기독교인들이 희생되었지만 아직도 다수의 국민들은 참전을 통해 자신들이 모종의 이득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정부와 조중동이 선전하는 '대규모 건설사업 수주'운운하는 기사를 보며 '거봐 전쟁하기 잘 했지'라며 뿌듯해하는 국민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미국의 평범한 국민들을 보더라도 전쟁이 평범한 대중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더 위험해진 세상과 더 어려워진 살림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시는 이라크를 점령한 후에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었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미국은 '신자유주의'가 가져다 준 경제위기에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이 가지고 왔다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자본을 위한 것이지 평범한 사람들의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상영하는 '하디타 전투'는 이라크에서 일어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학살자로 등장하는 미군들은 단지 가해자가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한 미군병사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를 이곳으로 보낸 장군들과 정치인들이 죽이고 싶도록 원망스럽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20살 전후의 젊은이들... 그들은 전쟁의 비극적인 상황을 견뎌내기에는 너무나 어린나이들이었다.  

미국은 이미 전쟁이 아니고서는 제국을 유지조차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들이 세계를 향해 윽박지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경제력도, 문화적인 힘도 아니고 B-29 스텔스전폭기와 해병대에 달려있다. 그런데 미국을 추종하며 따라 배워온 한국도 요즘은 방위산업청을 만들고 무기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국군을 파병해 제국을 흉내내기 한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내 재산을 부풀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지난 대선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확인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른나라와 전쟁을 벌이는데 다수 국민이 찬성표를 던지는 날이 오지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결국 평화를 원한다면 극단적인 경쟁으로 모든 사람들을 몰아가는 경제구조와 교육제도를 바꾸는 방법 밖에는 없다. 군사전략가 클라우츠제비츠의 유명한 말 -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틀렸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

* 이 글은 금정굴인권평화영화상영회 자료집에 싣기 위해 기고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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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2 00:16 2008/10/02 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