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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카드의 '능력'을 보여주다?

삼성카드의 ‘능력’을 보여주다?

에버랜드 주식 초과 보유하고도 ‘배짱’…금감위는 “처벌조항 없다” 면죄부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법을 어긴 지 무려 7년에 가깝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면 그 법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더욱이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할 쪽에서 처벌을 통한 규율의 확립은 고사하고 잣대 자체를 바꿈으로써 면죄부를 주려는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요지경 속 두 주인공은 금융감독의 최일선에 서 있는 금융감독위원회와 재계 순위 1위인 삼성그룹 계열의 삼성카드다.

 

 배경엔 이재용 변칙 상속 논란이


△ 감독 당군인 금융감독위원회는 삼성카드의 불법 행위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답변 중인 윤증현 금감 위원장.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삼성카드는 현재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현행법 위반이다. 현행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제24조는 재벌(기업집단) 계열 금융회사가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 20% 이상을 확보하거나, 5% 이상을 가지면서 다른 계열사 지분을 합쳐 해당 회사를 지배할 경우 금감위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지분을 규정보다 초과해 보유하는 과정에서 금감위 승인을 거치지 않았다.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주식을 초과 보유하게 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2월 중앙일보사가 삼성그룹에서 떨어져나올 때였다.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은 중앙일보사 보유 에버랜드 주식 34만1123만주를 사들인 데 이어 이듬해 에버랜드 실권주 30만주를 추가로 인수했다. 뒤이어 지난해 2월 삼성캐피탈이 삼성카드에 합병됨에 따라 삼성카드 보유 에버랜드 주식이 64만1123만주(25.6%)로 늘어났다.

금감위는 지난해 5월 삼성카드의 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초과 지분 해소 방안을 제출하라는 통보까지 보냈지만, 삼성카드는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지금껏 버티고 있다. 삼성카드의 이런 행태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비난을 불러일으키는 단골 메뉴였으며 급기야 국회에서까지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4월18일 국회 재정경제위 전체회의에서 “삼성카드가 금감위 승인 없이 에버랜드 지분을 초과해 취득한 것을 처분해야 함에도 삼성쪽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며 “(정부가) 특정 재벌의 희망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고 정부와 삼성을 싸잡아 공박했다. 정부·여당쪽에서 삼성그룹에 정면으로 화살을 날리는 것을 구경하기란 드문 일이다.

삼성카드가 이처럼 온갖 비난을 무릅쓰며 에버랜드 지분을 그대로 갖고 있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버랜드가 그룹 지주회사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그룹 지배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뜻이라는 풀이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에버랜드 지분 구조를 보면, 이재용 상무(25.1%), 이 상무의 오누이들인 이부진(8.4%)·이서현(8.4%) 등 이건희 회장(3.7%) 일가 몫만 해도 40%인데다 그 밖의 특수관계인들 지분을 합치면 95%에 이른다. 삼성카드 지분을 모두 털어내더라도 70% 수준으로 확고한 지배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같은 위반인데도 다른 회사는 처벌받고


결국 실마리는 이재용 상무의 불법·변칙 상속 논란과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알려져 있듯 에버랜드는 1996년 10월 이재용 상무와 그 오누이들에게 99억원어치의 전환사채(CB)를 주당 전환가액 7700원에 매각했다.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주식을 사들일 때의 값이 10만원 안팎이었던 것과 견줄 때 엄청난 헐값이다. 이 상무가 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삼성그룹의 지배력을 장악했다는 비난은 주로 여기에서 비롯됐다. 에버랜드 CB 헐값 매각 논란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당시 에버랜드 경영진은 배임 혐의로 고발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선 이 상무 등이 쥐고 있는 에버랜드 주식의 향방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 따라서 삼성카드가 쥐고 있는 에버랜드 지분은 만일의 경우 그룹 지배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지렛대인 셈이다. 법을 어기고 욕을 먹더라도 꼭 거머쥐고 있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

또 하나, 지분을 털어내는 게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있다. 에버랜드가 비상장회사여서 객관적인 값을 매기는 게 어렵다. 만약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지분을 시세에 맞게 수십만원에 판다면, 에버랜드가 이재용 상무 등에게 CB를 헐값에 넘긴 과정의 불법 변칙성을 자인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삼성카드가 턱없이 낮은 값에 팔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삼성쪽에는 나름대로 버틸 만한 속사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딱한 것은 금융감독 당국이다. 법을 어기는 것을 뻔히 보면서 아무런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속수무책이다. 이는 금산법의 허점에서 비롯된다. 금산법에 지분 제한 규정만 있을 뿐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내려지는 처벌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는 금감위나 삼성에 있는 게 아니라 허술한 법을 만든 국회에 있는 것일까?

금감위 산하 금감원은 2003년 7월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에 대해 전년 7월에 인수한 계열사인 아남반도체 주식(9.68%) 가운데 5% 초과분을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또 두 회사에 대해선 기관 문책경고, 대표이사에게는 주의적 경고라는 징계 조처를 내렸다. 이같은 처벌을 받은 것은 금산법 24조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초과 보유와 하등 다를 게 없는 사안이다.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 동부는 1년 만에 된통 당하고 삼성은 7년 가깝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윤용로 금감위 감독정책2국장은 “삼성과 동부건은 다른 사안”이라고 말했다. 동부생명과 동부화재건은 당시 보험업법에 따라 제재할 근거가 있었던 반면, 삼성카드를 규제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에는 제재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윤 국장은 “초과 보유분에 대해 처분을 명령할 근거가 없는데, 어떻게 해소하라 말라 할 수 있느냐”며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은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 삼성카드가 온갖 비난에도 에버랜드 지분을 불법으로 초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왼쪽)의 그룹 지배력과 연결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진/ 연합)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또 하나 문제가 남는다. 삼성카드와 마찬가지로 여전법 적용을 받는 현대캐피탈은 삼성카드와 다른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8월 기아자동차 지분 10.06% 가운데 5% 초과분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서를 냈다. 물론 금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으며 금감위 통보에 따른 조처였다. 이에 대한 금감위쪽의 답변이 걸작이다. “초과분 해소 방안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는데, 현대는 팔겠다고 처분 계획을 냈고 삼성은 그런 것을 안 냈다.” 그걸로 끝이다. 시쳇말로 ‘(처분 계획을) 내면 좋고, 안 내면 할 수 없다’는 식이다. 현대캐피탈로선 애초의 매각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될 훌륭한 명분을 갖게 된 셈이다.

금산법 개정안, 기존 잘못은 교정 못해

재정경제부는 허점을 드러낸 금산법을 바꾼다는 방침에 따라 지난해 11월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현재 법제처 심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는 금감위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개정안은 금감위 승인을 받지 않은 초과 지분에 대해 매각을 명령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교정할 수 없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삼성카드가 기왕 저지른 것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 남들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삼성쪽에서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삼성카드건은 법이 힘있는 쪽의 편일 뿐 아니라 힘있는 이는 법까지 입맛대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선례로 남을 것 같다. 금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지켜볼 일이다.

 

한겨레 21 2005년05월04일 제5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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