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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아 글로벌 톱 5 되려면---"

“현대·기아 글로벌 톱5 되려면…”
이경섭 독일 아우라스포츠바겐 전 기술이사 인터뷰
“양적인 성장보다 질적인 성장에 나서야”
미디어다음 / 권용주 프리랜서 기자

 

현대·기아도 언제든지 망할 수 있습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기술 분야에서 현대·기아가 한참 뒤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디젤 엔진 관련 기술이 그렇습니다. 기술 트렌드를 이끌지 못하면 언제든지 망할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고 봐야 합니다.”

독일 자동차 업계의 최전선에서 20년 동안 실무와 학업을 병행하며 자동차 기술 분야의 ‘숨은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는 이경섭(45) 전 아우라스포츠바겐 기술이사의 말이다. 아우라스포츠바겐은 독일 내 슈퍼차저(출력을 높이기 위해 공기를 실린더에 밀어 넣는 장치) 제조업체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다.

이 전 이사는 지난주 독일 현지에서 미디어다음 기자와 만나 현대·기아의 국내 시장 독주체제를 우려하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현대·기아가 과거처럼 선발업체의 기술을 모방하기만 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는다면 향후 분명히 한계를 맞는다는 것.

그는 “현대·기아가 글로벌 톱5에 진입하기 위해선 이 같은 사고방식을 이제 버려야 한다”며 도요타가 독일·미국 등의 자동차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렉서스가 벤츠·BMW의 차보다 낮은 등급으로 인식되는 것은 도요타의 기술 개발이 기존 기술을 융합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자동차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양적인 성장에 매달리기보다 질적인 성장에 나서야 한다”며 “현대·기아가 브랜드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브랜드를 알려도 제품기술이 앞서 있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 전 이사는 현재 독일 베를린공과대학에서 자동차 기술 관련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한때 거대 부품 제조업체였던 한국 서진산업의 독일 파트너로 일하기도 했다. 또 국내에서 이슈가 됐던 준중형차 3차종의 독일 연방정부 시험기관인 데크라(DEKRA) 현지 충돌시험을 이끌었고, 독일 폴크스바겐과 미래형 자동차개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금은 독일에서 독일 내 자동차 관련업체의 아시아 진출에 관여하는 컨설턴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 내에선 동아닷컴에 ‘이경섭의 자동차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특히 그는 자동차를 넘어 자기부상열차에 관한 연구를 하기도 해 독일 연방정부의 자기부상열차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 전 이사와 한 일문일답.

 

 

- 현대·기아는 국내 최대 자동차업체다. 흔들릴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현대·기아가 국내 최대 업체지만 세계 최대 업체는 아니지 않은가. 최근 급성장하며 주목받고 있지만 기술 분야에서는 한참 뒤떨어져 있다. 특히 디젤엔진 관련 기술은 상당히 뒤처진 상태다. 디젤엔진 기술은 단연 독일이 앞서 있다. 물론 판매량에서 독일이 세계 최고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독일은 자동차의 트렌드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기아도 자칫 망할 수 있다는 얘기다.

- 현대·기아의 경쟁력이 어느 수준에 있다고 보는가.

미국은 휘발유 엔진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하지만 유럽은 디젤엔진 중심이다. 디젤엔진으로의 이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디젤엔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배출가스저감은 물론 높은 연료효율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아우디 A4 2,000cc급 디젤엔진이 최대 시속 200km를 간단히 넘기고 있다. 그럼에도 연료는 휘발유에 비해 적게 소모된다.

하지만 현대·기아는 이를 대비하지 못했다. 몇 년 전 독일에 현대·기아자동차 연구소가 설립됐을 당시 디젤엔진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대·기아는 이를 흘려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뒤늦게 디젤엔진이 우수하다며 국내 시장을 개방하고 있다.

이는 현대·기아도 디젤엔진 모델 개발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 내 우수한 디젤엔진 모델이 현대·기아의 내수시장을 위협할 것에 대비, 디젤엔진 모델의 판매를 막아 왔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필요해져 디젤엔진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국내에선 어떨지 몰라도 유럽에선 이미 늦었다고 생각된다.

- 현대·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큰 성장을 하고 있다. 미국 시장의 규모로 볼 때 지금 상태라면 글로벌 톱5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자동차는 규모의 경제도 필요하지만 이는 자동차 시장이 급성장할 때나 써먹던 이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500만대 생산을 넘긴다 해도 기술 트렌드를 이끌지 못하면 언제든지 망할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양적으로 글로벌 톱5에 진입할 수는 있어도 질적인 측면에서 진입은 어렵다고 본다.

- 생산량도 상당히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다. 하지만 생산량은 GM처럼 필요한 업체를 인수해서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은 그렇지 못하다. 일례로 현대·기아만의 독자적인 기술이 있는가를 반대로 묻고 싶다. 예를 들어 도요타, 혼다라 하면 ‘하이브리드’가 떠오르고, 아우디는 콰트로시스템, 벤츠와 BMW는 수소연료전지와 각종 첨단 기술의 경쟁적 등장이 떠오른다. 하지만 현대·기아를 떠올렸을 때는 특정한 기술이 생각나지 않는다. 국내에 소개되는 VGT나 기타 새로운 시스템은 이미 선진업체들이 한참 앞서 적용한 기술이다.

- 한국의 자동차는 후발업체다. 후발업체는 위험을 줄이고 선발업체를 쫓아가는 게 나은 것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글로벌 톱5에 진입하기 위해선 그와 같은 사고방식을 이제 버려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쫓아만 가지는 않을 것 아닌가. 도요타가 독일과 미국의 고급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나. 하지만 결국 렉서스는 여전히 벤츠, BMW보다 낮은 등급의 자동차로 인식돼 있다. 이유는 독창적인 기술이 적용됐다기보다 기술의 융합을 잘 이뤄낸 뒤 가격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 현대와 기아의 관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현대가 기아를 인수했다. 하지만 언제든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대가 기아를 인수한 후 두 회사의 통합작업으로 양적인 크기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다고 본다. BMW는 랜드로버 인수로 별 재미를 못 보자 과감히 버렸다. 기업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 현대·기아가 망하면 한국경제가 휘청거릴 것이라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현대·기아가 망한다 해도 한국경제가 송두리째 뽑힐 만큼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동차산업은 장치산업이다. 공장과 자본, 노동력이 시스템화 돼 있다. 현대·기아가 망한다는 것은 경영진의 교체를 의미한다. 공장과 노동력, 제반 인프라는 그대로 유지되기 마련이다.

- 끝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제는 양적인 성장에 매달리기보다 질적인 성장에 나서야 한다. 남들이 하는 것만 재빠르게 쫓아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한계가 있다. 최근 현대·기아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하며 브랜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브랜드를 알려도 제품기술력이 앞서 있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현대·기아의 독창적인 신기술 가운데 한 가지라도 세계 자동차산업의 표준이 돼야만 글로벌 톱5 진입이 가능할 것이다.

미디어다음 200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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