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타살 아니라 종양 터져 죽은 거요"

“타살아니라 종양터져 죽은거요”


△ 14일 오전 인천 공항에 도착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검찰 수사관들과 공항 경찰에 둘러싸인 채 출국장을 나서고 있다. 인천공항/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관련기사

  • 검찰 김우중씨 로비의혹 추궁 자료 확보
  • 부실공화국서 싹튼 반칙경영
  • “김우중씨 숨긴 재산 끝까지 추적”
  • 주치의 “김우중씨 장폐색증 등 심각”
  • 김우중씨 입국 안팎
  • 수사 불똥 튈까 불안속 “정당한 평가를” 동정론
  • 네티즌 다수 “사법처리해야”
  • [특집화보] 김우중 입국하던 날



  • 대우 주역들이 증언하는 ‘김우중식 경영’

    김우중씨와 함께 대우를 일으킨 신화의 주역이자 몰락의 책임자이기도 한 옛 주요 대우 계열사의 핵심 임원들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한 심정”으로 김씨의 귀국을 맞고 있다. 긴박했던 대우 사태를 함께 겪어 속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들은 “아무말도 하기 싫다”며 고개를 내저어면서도, 억하심정을 털어놓으면서 의외로 동정론보다는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주문하고 나섰다.

    “직접 장부조작…철저수사 필요”

    “대우 사태의 배경과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김 전 회장뿐입니다. 지금까지 사법처리된 사람들은 사실 김 전 회장의 잘못을 대신 갚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분명히 실정법을 어기고 했으니까 사법처리되는 것은 당연하지요.” 대우그룹 운영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말한다. 그는 김 전 회장에게 억울한 측면은 없느냐고 묻자 ‘개인적 동정론’을 전제로 “김 전 회장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대우 몰락은 외부환경 때문이 아니라 내부종양이 곪아 터진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부실 심각한데 고금리 어음발행”

    자금 부서에 있었던 한 임원은 대우 사태가 불거졌던 1998년 하반기부터 99년 말까지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98년 10월께부터 돈이 제대로 돌지 않아 주거래 은행에서 계속 점검했다. 99년 들어서는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대우 전 계열사들의 일일 자금흐름을 점검하며 은행들에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나 어음의 만기연장을 직접 요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대우는 10개월여 정부 도움으로 연명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99년 8월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김 전 회장과 일부 측근들이 주장하는 ‘대우 타살론’과는 사뭇 다른 증언이다.

    “독재국가에 뇌물주는 세계경영”


    △  14일 오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5년8개월 동안의 국외 도피 생활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체포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그는 “당시 정권 주요 실세들의 표적이 되어서 대우가 망했다는 얘기는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라며 대우 몰락을 ‘자연사’로 규정했다. 환란 이후 구조조정 작업 실무를 맡았던 전 대우 임원도 “부실이 급속도로 누적된 97~98년에 연리 30%짜리로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해 15조원을 끌어모았다”며 “당시 이런 고금리 어음발행은 누가 보더라도 사기였는데,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들은 아무도 회장 방침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고 전했다.

    어떻게 대우 경영진들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느냐는 반문이 든다. 이에 대해 회장 주재 그룹운영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당시 대우는 밖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내부 파벌이 심각했다. 특정학교 인맥과 혈연 등으로 서로 묶여 있다보니까 전부 선후배, 친구 사이여서 서로 싫은 소리를 못하고 도저히 합리적인 토론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김 회장 스스로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자금경색이 서서히 다가오던 시기였던 96년 이후에는 김 전 회장이 직접 주요 계열사의 연말결산 보고를 받고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각 계열사 사장들이 회장에게 가결산 자료를 보고하면 매출액이나 순이익 등을 김 전 회장이 직접 주물렀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행태는 대우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과 법원 판결문에도 그대로 나와 있다.

    김우중 전 회장의 세계경영 전략도 당시 대우 경영진들에겐 ‘위험한 줄타기’로 보였다고 한다. 기획담당이었던 한 임원은 세계경영 전략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김 회장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이제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김 회장이 세계경영을 얘기하면서 그룹 내부 경영진들에게는 공공연하게 이런 얘기를 자주 했다. ‘세계에서 제일 장사하기 쉬운 곳은 독재국가’라고. 한 사람만 뇌물 먹여서 구워 삶으면 된다는 식이다. 이게 80년대까지는 통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서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다가 결국 사고 친 것이다.”

    김 전 회장이 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옛 대우 임원들은 대부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김 전 회장 가족들이 가진 재산은 현재 남아 있는 대우 계열사에 견주면 구멍가게 수준에 불과한데다 그를 돕고 있는 이른바 측근들은 경영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현직 대우임원들의 모임 ‘우인회’의 한 회원은 “지금 김 전 회장을 돕고 있는 사람들은 몇명 되지도 않고 대우맨들을 결속시킬 만한 능력도 없다. 경기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들은 가만히 있는데 주전자 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자기과시를 하는 꼴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한겨레 2005. 6. 1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