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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애매한 답글쓰기

http://blog.jinbo.net/449project/?pid=13

 

에 있는 글을 읽고 트랙백을 하려니 그 기능이 활성화되어있지 않은 듯 하여..

 

내 주변에도 독립영화 찍는 사람들 좀 있고

나도 독립영화 좋아하는데

돈 안내고 그냥 보는 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영화를 보는 장이 무척 자본화되어있다는 생각.

 

상영공간을 얻기 힘든 독립영화 입장에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작품을 만들어내고도

먹고 살기 힘든 실정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영화 관객을 만나기도 힘든 상황이니까.

워낭소리야 워낙 떠서, 그만큼 한 편 한 편 돈이 되고 명예가 되는 것이니

인터넷에서 무료 다운 받는 사람들을 더 뭐라 하는거지만

다른 독립영화들이야 누가 좀 봐줬으면 하는 것도 같이 있지 않나 싶다.

 

공동체 상영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얼마간 돈을 받고 독립영화 테입을 빌려주고, 감독과의 대화도 마련하고.

그런 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좀더 친구관계가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독립영화라는게- '소자본영화' 라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지배적 가치에 도전하는 형식을 갖는다면

그 배급, 유통에 대해서도 뭔가 더 새로운 방식이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

영화가 감독이나 배급사나 관객들 모두에게 선물이 될 수 있는 어떤 가능성...

자본주의에서는 쿨-하게, 돈 받고 서로 교환하면 그것으로 일단 서로의 지위가 정당화되고 합법적인 게 되지만,

자본주의적 방식이 아닌, 대안적인 방식의 관계를 단순히 돈으로 환원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

독립영화가 돈을 벌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결단코 아니지만 말이다.

나 역시 딱히 대안이 있는 건 아닌데-

문예진흥기금이 독립영화에 돈 주길 기다리는 것보다야

어떻게 영화인들과 관객이, 그리고 영화인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환경들이

동맹관계를 맺을 수 있나 이 방향으로 좀 봤으면...

중앙시네마에 갔다가, 인디스페이수? 암튼 거기서 회원제 하는 걸 봤는데-

그런 걸 좀 잘 해보면 좋지 않을까.

 

뭐, 그것만으론 독립영화를 찍고 배급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배고플 것 같기는 하지만.

'디지털 악마'라니. 불법이라는 말도 싫지만, 악마는 좀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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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의 생리 1

.

다음주면 노들 인문학 강좌 시즌 1이 종강을 맞는다.

넉달에 걸친 18강의 강의. 달려오다보니 결승점이.

그래, 결승점이라고 말해야할 것 같다.

연구실에서 사람들과 함께 일을 꾸미니

혼자 할 때보다 그 사건을 정리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을 잘 챙길 수가 있다....

내가 성실하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얻을 것이 많다.

서로의 빵꾸를 메워줄 수도 있었고.

피자매를 통해 나 혼자 밀고가는 일들은 그렇지 않다.

혼자 일을 꾸미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가끔 지독히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좌초하는 것에 직면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지만...

어쨌든 또 일을 꾸몄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두근두근한다.


..

며칠 전 장애여성공감1)(http://www.wde.or.kr/)에 다녀왔다. (글제목 성의없다..)

여성주의적, 성인지적 관점에서 장애여성 운동을 펼치는 공간이다.

장애여성 활동가 교육도 하고, 영상 교육도 하고, 연극을 직접 하시기도 하고

장애여성의 독립을 지원하기도 하고, 베이커리 운영도 하시고

성폭력 상담소를 운영하며 성인지적 관점에서 활동보조하기 매뉴얼도 만들고

정말이지, 그간의 활동 내역들을 보면 꼭 필요한 내용들에 대해 창의적이면서도 왕성한 작업을 해왔던 것 같았다.

얼마 전에 10주년 기념행사에 다녀왔지만, 그 역사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노들에 다니면서 비로소 늦게나마 용기가 좀더 자라난 것일지도 모른다.

감사한 일이다.


1) 장애여성공감의 브로셔에서

     "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는 또 다른 삶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여성에게 장애인으로서의 차별과 여성으로서의 차별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이 바로 장애여성의 문제가 됩니다. 사회에서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당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됩니다. 또한 장애여성에게는 교육의 기회, 노동할 권리, 이동할 권리, 문화정보 접근권 등이 보장되어야 하고 성적자기결정권 및 재생산권이 통제되거나 강요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환경이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장애여성의 선택과 결정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1998년 창립한 단체입니다. 앞으로도 장애여성공감은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해 나갈 것이며,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을 믿을 것이며 행복하고 기쁘게 활동해 나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지하철 5호선>

지하철 5호선, 고덕역.

지하철 5호선이라는 것만으로도 어떤 느낌을 준다.

서울 시내 중심부를 관통하는 여러 노선 중에 그나마(내 느낌일 뿐일지 모르겠지만)

전동 휠체어로 이동하기에 다른 노선보다 나을 것 같은 노선이랄까.

비장애인으로서 휠체어의 공간, 동선에 대한 감각을 모른다 해도

장애인이동권투쟁의 역사에서 리프트 추락 사고가 있었던 발산역,

천막투쟁이나 이동권투쟁일일호프가 이루어졌던 여의도, 그리고 광화문이

하나의 계열로 떠오르는 느낌.


<엘리베이터 앞에서>

하여간 5호선 고덕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지체장애남성분을 보았다.

그리고 뭐라고 항의하는 것 같은 목소리와 몸짓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발빠른 시민 ‘노인’분들이 이미 자리를 다 잡고 있었다.

그 앞에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분은 항의하고 계셨다.

‘노인’분들은 별 말없이 엘리베이터 안을 고수했고,

나는 지켜보기도, 같이 항의하기도 거시기해서

그 옆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나와 함께 계단을 올라오던 사람들은

“저런, 예의 없는 사람들...”

“저러니까(엘리베이터 자리 양보하지 않으니까) 저런(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해도 돼.”

계단을 올라와 개찰구에서 카드찍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노인’분들이 내리셨다. 그리곤

빠른 걸음으로 내 앞을 지나갔다.


<장애여성공감의 공간>

장애여성공감 사무실은 6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610호 문을 두드리니

예전에 10주년 행사 때 뵈었던 A님께서 나를 맞았다.

책상이 몇 개 였더라... 7개?

피자매에 비하면 넓은 사무공간과 깨끗한 정리가 인상적이었다.

“와- 좋다. 넓고.”

“곧 이사하려고 짐 싸둬서 그래요. 그리고 휠체어 들어오면 자리가 너무 없어요.”

헐헐헐---이런 식이다.

노들에서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이 센스없음!

공간에 대한 감각이 또 한 번 출렁거린다.

“하하- 긁적긁적. 그렇겠네요.”

그제서야 다시 사무실 안을 쭉 훑어봤다.

쪽팔렸지만, 어쩌랴. 이사는 그 근처 좀더 넓은 공간으로 하신다고 한다.


차를 주신다고 했다. 커피요- 그러니 믹스가 아니라 티백을 넣어주신다.

차를 내시는 손길이 조심스러워보였다. 이리 귀한 손님 대접 받아도 되나. 황송하게...


<그녀의 첫 월경>

그렇게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분들과 만났다.

비 장애인활동가분 한 분, 지체장애활동가 한 분(이후 B님. 개인적 경험에 대한 발언이 많아 성함은 비공개로..),

그리고 좀 늦게 오신 또 다른 지체장애활동가 C님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만나자마다 다짜고짜

 장애여성, 특히 중증지체장애여성은 어떤 생리대를 쓰나요?

 장애여성분들은 생리 때 어떻게 지내시나요?

라고 묻기도 뭐하고... 다행히 공감에서 만드신 영화를 봤었기에 그 이야기부터 했다.


‘그녀의 첫 월경’이란 제목의 10분 미만의 단편영화.

피자매 세미나 1탄 때, 생리를 중심소재로 삼은 최근 영화 3편을 봤는데

그 중에 이 영화가 있었다.

영화 3편에 대한 글은 미완인 채 비공개로 포스팅으로 남아있다.

하여간 ‘그녀의 첫 월경’을 보는 내내 나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일단, 영화의 주인공인 ‘지원’이 지체장애여성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이 정면으로 잡힌 컷들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 속 그녀의 언니와 엄마의 일상적이고 가차없이 쏟아내는 말들 때문에

극영화임에도 배우들의 배우같지 않은(어색하고 사실적인) 연기 때문에

내가 상상했던 장애여성의 생리 ‘문제’가 노골적으로 보여졌기 때문에

내가 가진 편견이 지원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과 공명할 때

얼굴이 화끈거렸다. 충격이기도 하고.


영화의 내용들이 모든 장애여성들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보편적인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스포일러성 글은 쓰지 않겠다.

보고 싶은 분들은 장애여성공감에 문의하면 대여료를 내고 빌려 볼 수 있다.


<장애여성의 생리, 그리고 자기결정권>

피자매 세미나 때에는, 가족들이 지원의 생리에 대해,

그녀의 성에 대해 폭력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일정정도의 비판과 공감이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그리고 장애여성의 생리는 이중의 장애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다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떤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이야기를 들으시던 활동가들의 표정을 보고.

"아~ 장애의 부정적 의미로서?"

"앗, 네에- 장애에 대한 용법은 물론 이곳에서 쓰시는 것과 다르겠지만,

오랜 기간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질병과 같이 다뤄진다는 의미에서요... (어물 어물)"

용법이 다른 게 아니라,

장애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그대로 드러낸 발언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아--악----- 쪽팔려. (저의 개념없음을 용서바랍니다.)

그래서 더 말을 못하고, 그분들의 말씀을 들었다.


B님께서 생리대를 교체할 때, 활동보조인들이 얼굴을 찡그렸었다고,

자주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일회용 생리대의 끕끕함을 장시간 견뎌야 하는데 힘드시다고.


영화에서는, 맨 마지막에 지원이 거울을 보며

“나는 오늘 생리를 했다. 이제 나도 여자가 된 거다.”

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결국 스포일러가 되는군. 그래도 영상이 주는 어펙션은 다르다)

이 부분에서 피자매 세미나에서 논쟁이 있었다는 말을 하니, 공감 안에서도 논쟁이 있었다고 하시며 웃으셨다.

생리를 해야 여성이 ‘된’ 건가? 라는 문제가 나왔고,

나는 거기에도 나름의 맥락이 있다고 반론했었다.

장애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 사회적으로 부정당하는 극의 맥락이 있지 않은가.

비장애여성들과는 다른 역사도 있다. 강제 자궁적출수술을 당해온.


B님은,

생리나 임신, 자궁이 곧바로 여성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장애여성에게 더 차별적인 지점이 있다고 지적하셨다.

더욱이 생리나 임신, 자궁이 정상성의 기준이 될 때는(‘정상 여성’)

그것을 할 수 없거나(신체적으로/사회적으로/기타 맥락 속에서),

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더없이 억압적일 수 있다. 성소수자를 포함해서.

장애여성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생리나 임신 때문에 자궁적출수술을 하도록 유도되는 분위기 속에서,

혹은 수술이 강제되는 경우 그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당하지 않을 권리,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A님은 실로 지적장애일 경우에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또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수술에 대해- 영화에서도 가족들은 지원이 들리는 사정거리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했었다.

“엄마 알아서 해. 그러니까 그 때 수술을 하지 그랬어~” 라고.



<장애여성의 생리대, 빨래>

그렇다면, 지금 장애여성들은?

많이들 일회용 생리대를 쓰시는 듯 했다.

몇 년 전에 대안생리대 바람이 불기도 했었다고 하는데,

빨래와 새는 문제 때문에 결국 포기하셨다는 분도 계시고.

그런데 나는 일회용 생리대가 몸에 안 맞고 장시간 앉아계셔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대부분 수건을 쓰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

생리는 역시 다른 분비물들과는 좀 다르다.


최근 어떤 면생리대 기업에서 소비자들의 생리대를 수거해

빨래를 해주는 곳이 있다는 인터뷰를 봤었다. 고객관리 차원에서, 그리고

생리대 계발을 위한 아이디어 창출 차원에서.

도대체 어떻게? 전동 세탁기를 쓴다.

소비자들이 처음엔 의심하다가 나중엔 대체로 만족한다는 기사를 보고,

이거면, 어떻게 빨래문제를 해결해볼 실마리로 삼을 수 있지 않나 하고 가슴이 뛰었었다.

그 전동 세탁기 구경하러 갈 생각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니

나는 몰랐는데, 2002년(연도를 정확히 못 들었지만..)에 ‘마녀권리선언’이란 게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서 면생리대 전용 세탁기를 개발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고!

B님은태양열로~!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도 무릎을 탁 치며 경쾌하게 “태양열로~!”라고 외쳤다.

빨래만 잘, 편하게 할 수 있으면 면생리대 사용이 좀더 편해질까?

이불에 생리가 묻었을 때, 활동보조인들은 그냥 세탁기에 돌린다고 했다.

잘 세탁되지 않아 얼룩이 남아있는 이불...

그래서 피자매에서 생리대 빨래하는 노하우를 전달해드리는데,

그 와중에 고개를 쳐드는 의구심.

아직 활동보조도 성인지적 관점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인데

생리대까지 장애여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세탁할 것을 요구할 수 있을까?




<성인지적 활동보조>

나는 빨래 편리하게 하기를 붙들고 장애여성의 생리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당장 현실적으로 장애여성의 생리에 있어서 고민은

활동보조인과의 관계인 듯 보였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장애인운동이 쟁취한 사회서비스인만큼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일단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한 달에 180시간으로 제한되어 있고

그러니까 하루 6시간.  어떤 활동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것 외에 아는 바가 많지 않다.

논점으로 돌아와,

생리대를 교체하고, 쾌적하게 생리할 수 있도록 활동보조를 하는 일은

장애여성 본인에게도,

활동보조인(그 역할을 하는 가족을 포함해)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일 것 같다.

머리가 맹맹해지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공감 활동가분은 여기서 장애여성의 문제,

성인지적 접근이 필요한 문제가 남는다고 말씀하셨다.


장애여성들도 활동보조인이 빨래할 것을 귀찮아 할

-이건 귀찮다기 보다는,,, 어떤 말이 어울릴지.

 남의 생리대 빨래하는 일이 어떨지 나는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제부는 아주 귀찮고 힘들었다고 하던데... 

 참고로 제부는 내 동생 면생리대를 몇 달간 손빨래했었다- 것을 알기에, 무엇보다

지금도 장애여성들은 활동보조인들에게 자신의 생리를 보여줘야만 하는 배치 속에서

겪는 불편함, 미묘한 문제들이 있기에, 활동보조인 역시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에

빨래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비장애여성들은 빨래가 해결되면 대부분 쾌재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서 우선, ‘장애여성의 월경권’이라고 말부터 붙여보았다.

 ‘장애인이동권’이라는 말이 힘을 가졌던 것처럼, 이 말도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면...

아, 너무 멀리 나갔다. 동시에 밀려드는 부담감. ㅡ,.ㅡ;;;


<장애와 생태주의적 실천>

공감 분들은, 피자매연대가 생태주의적 감수성을 가진

집단일 것으로 추정하시고, 빨대도 1회용, 컵도 1회용 써야 하는 경우에 대해서

이리 저리 머리를 짜냈던 이야기도 해주셨다.

빨대에 대한 트라우마가 떠오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공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였을지 모르겠다.

예상되듯이 대체할만한 물품들은 엄청 비싸고, 이런 과정에서 대체 물품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써야만 한다고 캠페인하는 것은 많이 우습다고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렇구나.

1시간 반 정도의 미팅인데. 세상이 울렁울렁 거리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5호선 전철 안에서 공감에서 주신, 그리고 구입한 책자들을 펼쳐보며 읽어보니

공부할 것 천지다. 2003년도 자료에 벌써 장애여성의 월경권 관련 인터뷰도 실려있고.

정말 짱!인 자료들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기를 약속했지만, 그 전에 이 소중한 자료들을 잘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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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노들에 가서

그 사이 몇 차례의 만남 속에서 얻은 이야기들은 일단은 제쳐두기로 하고...

지난주에, 간만에 노들에 다녀왔다.
크리스마스 휴일에 신정 휴일까지 겹쳐 3주만이던가.
현장-인문학 프로그램을 어떻게 더 강렬하게 만들지 회의도 하고.
그간 진행한 강의들에 대해 구체적이고 좀더 직접적인 리액션이 있고 나서
두 번째 강의.

내 강의야, 그 리액션을 어떻게 반영할 수도, 반영하지도 못한 강의였지만
이번은 ...
마음은 앞서고, 뭘 할지 망상만 가득한 채.

신년이라고 쿠키를 만들어가자 해놓고는,
나는 바빠서 빠지고 안티고*가 바쁘게 품팔았다.
하여간 나도 쩜 정신을 다시 가다듬어야지.
그리고는 저번 학술제 때 노들에서 가져오셨던 물품들을 챙겨갔는데
이젤이며 작품들이며 모금함이며 옴팡 빠뜨리고 가서 민망하기 그지 없다.
하여간 나도 쩜 제발 정신을 다시 가다듬어야겠다.

어쨌거나...



S언니가 있다.
나보다 나이가 15살이나 많지만, 언니 말고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이분은 주로 누워계신다.
휠체어라고 하기에는 뭔가-
일반 병동에서 쓰는 침대처럼 상체를 받쳐주도록 고정도 되지만
주로 누워계신다.
저번에 '세계장애인의 날' 투쟁에서 우연찮게 활동보조를 하게 되어 친해졌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휠체어 밀어드리고, 행진을 같이 하고, 전철도 타고, 식사도 입에 넣어드리고, 커피도 타드리고, 몸도 주물러드리고, 여섯 시간 정도? 함께 있었다.
그날 이야기를 길게 해야하는데-


암튼, 교실에 들어가니 언제나처럼 젤 먼저 오신(이 표현 참...) S언니에게 간만에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마주하니 역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
잠시 뚫리는 듯한 귀가 다시 무뎌졌다고 밖에. 그래도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계속, 들릴 때까지, 언니가 말을 하기 싫어질 때까지는 다시 묻는다.
쿠키를 가져와 입에 넣어드리고, 귤 드실래요? 물으니 싫다 하신다.

그간 뭐 하셨어요? 크리스마스랑, 신정에는?

이런 거 묻는 거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다만- 왜냐하면 이분들은 특별한 일 없이
집에서 심심히 보내셨을수도 있고, 남들 축제처럼 놀 때 더 할 일이 없으시다는 얘길 들어서.
그래도 궁금했다. 뭐 하셨어요?

그냥 테레비 봤어.

테레비만 보셨어요?

응. 활동 보조인보고 틀어놓고 가라고 하면 틀어줘. 그런데 재미 없어.

... 그러시겠다. 저는 집에 테레비 없어서 보면 환장하는데. ㅋ

지나가던 죠*가 테레비 없다가 어디서 테레비 보게 되면 거기에 빠져든다는 이야길 하고 지나간다.
사실 나도 그렇다. 명절 때 집에 가면 테레비의 휘황찬란한 영상과 소리에 빠져들어가기 일수.
그러나 명절 때 내가 테레비 보는 것과 S언니가 테레비 보는 건 영 다를 것이다.
좀더 생각하자니 마음이 짓눌려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강의 시간에 졸지 마세요~
라고.
답변은,
왜 아아안 오와아아-

S언니는 왜 집에 안오냐고 묻는다.
저번에 활동보조할 때, 몇 시간이나 붙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헤어질 무렵 나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더랬다.
김치전과 소주를 하자며.
아까보다 더 심히 마음이 짓눌린다.
이건 답변을 피할 수도, 속일 수도 없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표정이며 입모양을 읽는 대화에서는.
필연적으로 눈을 마주치게 되어 있다.

그거---- 위험하다는데요?

뭐가?

제가 언니 집에 가면, 뭐해요?

테레 비 보와. 우리 집에 테레비 있어.

음- 안돼요.

왜?

저 언니 집에 가면 못 나오는 거 아니에요?

흐흐흐. 어떻게 알았어! 못 가- 못 가아-

언니가 웃어서 다행이었다.
언니 집에 초대되었을 때부터, 나는 은근 거절의 말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번에 만났을 때는, 꼭 갈게요. 근데 지금은 너무 바빠요- 라고 했었는데.
그건 너무 갑작스럽고 하여간 한 번 정말 가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가면 엄청 피곤할 것 같은 기분이,
아니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피곤이 몰려왔다.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언니가 과자를 달라는 눈짓을 하면 입에 넣어드리면서 강의를 들었다.
강의 끝날 때 쯤. 언니가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 했다.

네? 네?

저어-----거----- 좀------$%^!@...

여러 번 들어본 단어가 아니면, 시간이 걸린다.
한 다섯 번쯤 들었을 때 알아들었는데,
저거 좀 꺼주세요-
였다.
온풍기가 직사광선처럼 언니 얼굴 쪽으로 열을 뿜고 있었다.
그걸 꺼드리고는.

집에 가기 전에도 몇 마디를 나눈다.

다음에 뵈어요. 저는 먼저 일어날게요.

그래, 잘 가.

그런데요, 왜 저한테 존대말 섞어 쓰세요?

엉?

아까 저거 꺼달라고 할 때 존대말 쓰셨잖아요.

흐억.

그냥 반말 쓰세요. 그게 제가 편해요.

그럴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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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오전 나절 방바닥에 딱 붙어 자고 있는데 문자가 띠리릭 왔다.

발신자는 제부.

"이제 ** 이모소리 듣겠네"

 

이모라늬?

얼떨결에 받은 메세지에 그 의미를 몰라 갸우뚱 하다가

헉!하고 벌떡 일어났다.

동생이 아이를 가진 것이로고나...

 

그 후에도 망치가 세 번 정도 더 머리를 때린 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동생이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심한 충격을 느꼈다.

결혼한다고 했을 때에도 별 충격이 아니었는데.

아마도 '이제 나도 이모 소리를 들을 때가 되었다.'라는 생각 때문이겠지.

세월의 흐름 같은 거 말이다. 

 

쩝.

 

묘한 기분이다.

답장을 어리버리 써 보내고 다시 누우니

옆에서 자고 있던 M이 깨서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 이모 된다."

하니, M이 갑자기 애기목소리로

"이모- 이모-" 한다.

 

욱- 몸이 떨리고 간지러웠다.

내가 임신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심장이 떨리는지.

신기하다.

동생 자궁 안에 작은 혹 같은 게 생겨 점점점 자라날 것을 상상하다가

다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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