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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와 함께 한 하루, 그리고

1.

어제 '미누와 함께 하는 하루'  문화제에 다녀왔다.

조촐했지만 꽉 찬 느낌의 기자회견과 문화제가 하루 종일 진행되었다.

발언으로, 노래로, 하루동안 미누-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미누 실제 크기만한 상반신 사진 옆에서 폴라로이드를 찍었다.

어떤 이는 어깨를 걸고, 어떤 이는 볼에 뽀뽀를 했다.

사람도 얼마 없는, 외국인보호소 직원들 몇 명 나와 구경하는 작은 판에서

정말 할 거 다 하고, 소리 지를만큼 질러가면서.

 

 

 

2.

출입국사무소도 화성외국인보호소도 이렇게 들락거리는 건 처음이다.

그간은  이주노동자들의 표적단속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씁쓸'한 심경인 채로 

적당히 포기하면서 모른척 소식들을 흘려보내곤 했었는데...

그런데 미누가 잡혀간 후로는 그게 잘 안되었다.

함께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며 밥을 먹었던 것,

특히 미누가 해줬던 카레 감자볶음의 향내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니..

방송국 일 하다가 자막 넣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던, 너무 친절해서 내가 더 미안했던 기억들,

그리고 어느 후원주점에선가 '손무덤'을 부르는 스탑크랙다운 밴드 앞에서 방방 뛰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렀던 게 생각났다. 

그 중에도

한 마을 사람으로서 미누 방에 들어가 물건을 챙기는데

마음이 점점 심난해지는 게,

수많은 옷들과 cd, dvd테잎들, 그리고 공부헸던 책들,

몇 개의 파일 속에서 나온 미누 기사 스크랩한 것들,

파란 가방에 모은 수십개의 500원짜리 동전들,

방바닥 구석에 있던, 꼬마 아이가 쓴 듯한 '미누 삼촌 귀여워요.' 색종이.

다문화 교육 자료집들, 다문화 사회에 관한 각종 워크샵 자료집들,

스탑크랙다운밴드 뮤직비디오 콘티 등등...

잡스러워 보이는 짐들이 하나같이 일관되고 성실하게 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흔적임이 드러날 때

나 자신이 심히 부끄러워졌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땀과 피와 눈물로 도배된 방을 두고

어떻게 그를 추방하는가 하는가.

그러니까, 이건 '고향'으로 돌려보내지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고향으로부터 뿌리뽑히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기억들, 선물받아서 꼭 챙기고 싶은 물건들,

수습해놓아야 할 일들까지 몽창 한꺼번에 삶에서 박탈해버리고

몸만 들어 '강제 추방'하는 것.

어느 사회의 누가 감히 함부러 그럴 수 있는가.

방금 전까지 이 방에 있던 사람.

자신의 기억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이주를 강요당하고 있는 실정은 다른 이주민들도 마찬가지겠지.

면회하러 갔을 때, 미누씨가 다급하게, 무엇보다 구두를 챙겨줄 것을 부탁했을 때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난 가슴 속에서 계속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불안하고 안달복달하게 된 것 같다.

간간히 보호소 안쪽으로 호송차량들이 들어오고 나가는데,

가슴이 철렁하고...

미누가 아닌 다른 이주자들도 비슷한 처지들일텐데, 그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도 했다,

우리 말고도, 보호소에서 면회를 마치고 눈물을 찍어가며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저께도 동대문 근처 이주민들 식당에 쳐들어가 바로 신원확인하고 사람들을 잡아갔다고 했다.

밥먹는 자리에서 그렇게 잡혀가버리고... 그 사람들도 좋아하는 옷가지 하나 챙기지 못했겠지...

 

3. 외국인보호소 소장님,

 3번 정도 마주친 것 같다. 그런 곳의 소장은 파워가 세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하여간 어쩌다보니 그 중 2번은 대화를 나눴다.

 

 <지난 주 금요일 새벽 6시 경>

소장 : 아니, 어디서 오신 분들이오? 왜 여기?

사람들 : 우리가 아는 사람이 어제 여기 잡혀들어왔다고 해서 놀라서 밤에 그냥 온 사람들이다.

소장 : 누구 만나러 왔는데요? 국적이 어디?

사람들 : ...그냥 저희는 그 사람 팬이에요. 가수거등요.

소장 : 아이고 이렇게 추운데... 내가 사람들한테 말할테니 안으로 들어가시든가요. 그래도 손님인데...

           다, 한국 분들인가? 한국 사람들만 있나요?

 

<이번주 화요일 오후 4시경>

소장 : 아, 내가 그분은 알아요. 면회오는 사람 많고...... 저번에 어느 날인가는, 새벽에 사람들이 요 앞에서 돗자리 깔고 달달 떨고 있는거야. 그래서 내가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면, 우리 손님인데, 이렇게 밤새 밖에다 뒀다니 안 될 일이다, 어서 안으로 모셔라 그랬어요.

나: (그냥 웃음)

소장 :(내 표정을 알아보고) 그 때 계셨..어요?

나 : 네. 그 때 팬클럽이라고 했었잖아요. 제가.

소장 : 아, 그래요.. 하여간, 뭐 손님들한테 우리가 잘 하고 싶지요. 그런데, 이 일이, 또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또 해야하는 일이고... 안타깝죠, 저희도, 뭐 사연들이 안타까운 사연이 많아요. 그래도, 그분은, 뭐 알아보니까 이전에 한 번 풀어줬는데 해야할 사항을 제대로 이행을 안하고 또 도주하고 그런 거라서 어떻게 봐 드릴 수가 없어요.

 

 

손님. 우리를 그렇게 불렀었다.

밤새 달달 떨면서 보호소 앞에 돗자리 깔고 자고 얼어붙은 우리들이 그래도

'인간적'으로 불쌍하기도 하고,

더욱이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니 '주인'의 입장에서 '손님'들을 환대할 의무가 있었겠지..

그건 우리가 다 '한국'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분의 일은 한국에 찾아온 손님을 내쫒기 위해 잠깐 수감하는 것이다. 

'보호'라고 이름붙인다고 해도 결코 도덕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을.

그 바로 옆이 교도소 건물이기도 하고, 보호소 건물도 약식 교도소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악의 평범성이라 하는 것이겠지.

처음 본 사람에게도 호의를 갖고 집안으로 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

성실히 자기 집을 지키고 자기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 반인권적인 국가폭력기관도.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양식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한가닥 도덕적 심성을 비웃을 수만은 없다.

오히려그런 심성을 가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문제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작은 꼬투리에도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다.

 

화성외국인보호소 내부 게시판이다. 다문화랜다.

 

외국인 불법고용, 인권침해의 시작?

 

...갸웃... 갸웃...

이거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하신 분, 리플 좀... ㅡ,.ㅡ;;

 

 

4.

오늘 아침에 홍성에 워크샵이 있어 기차를 탔는데, 입석이라서 자리를 얻어볼까 하고 카페칸으로 갔다.

자리는 없고, 창가에 테이블에 대충 기대서 한겨레 21과 경향신문을 봤다.

경향 1면과 3면에 미누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눈빠지게 읽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어떤 50대로 보이는 남성, 내가 펼쳐놓은 경향1면을 보다가 내가 오니깐 "요 기사만 잠깐 보고 드릴게." 했다.

미누 기사였다.

"네, 그러세요."

짐짓 모르는 척, 그러다 2초쯤 후에 말했다.

"그 사람... 제 친구에요."

"네? 요기, 요 사람? 요 사람을 안다고?"

"네, 친구에요."

조금 두근거려 하면서. 50대 남성, 왠지 보수적일 것 같지 않은가.

"아이고.. 면회는 가 봤어요?"

"네, 몇 번 다녀왔죠. 원래 가수인 친구라 이쪽에선 유명하기도 한 친구에요."

"아, 그래... (기사를 읽다가) 밴드도 했었네?"

"네, 가수에요. 노래 잘해요."

한참 읽다가 그 남성, 이런 사람은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높은 사람들한테는 맨날 예외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나 좀 그러면..."

 

반가웠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거 걍 보세요. 전 다 봤어요."

신문을 그냥 드렸다. 3면에도 미누 기사가 있지 않은가.

 

오늘은 손석희 시선집중에도 고병권샘 인터뷰가 나간 것 같던데..

낼은 mbc뉴스데스크에도 나온다고 한다.

미누를 몰랐던 사람도 미누의 친구가 되어 주기를 그야말로 간절히 바랄 뿐이다.

 

5. 세탁기가 고장났다.

우리집 말고, 넷빈집의 세탁기가.

네오에게 미누 옷 세탁을 좀더 부탁하려 전화했다 듣기론

미누의 옷가지를 세탁하던 중,

아예 멈추셨단다.

그래서 미누의 옷들이 젖은 채로 있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란다.

세탁기를 고치거나 새로 사야 할 판이다.

저번에 처음으로 미누 옷 세탁할 때는 뚜껑이 깨져 날아가더니

(그래도 세탁은 되었다. 그래서 보내달란 옷을 보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망가진 것이다. 아무리 미신같은 이야기지만,

'세탁기야, 너도 보내기 싫은 거냐.'

속으로 그랬다.

남은 옷들은 당분간 세탁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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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 면회.

오늘 면회를 다녀왔다.

어제 면화를 다녀온 사람들이 그가 원하는 것을 말해주었다.

"미누씨가 구두하고 셔츠, 바지, 그리고 화장품을 좀 달라세요. 얼굴 당긴다고..."

방에서 본 반짝이던 구두가 생각났다.

사실 난 그가 밖에서 구겨진 옷을 그냥 입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깨끗하고 말끔한 모습. 그리고 광나는 구두를 신었드랬다.

그런 그가 집앞에서 쓰레빠를 신고 잡혀들어갔으니...

 

오전 10시까지 가야하는데 늦어서 반월역에서 결국 택시를 탔다.

택시비를 2만 5천원 달라 하더라.

혹시 다음에 면회가실 분들은 참고하시라. 미터기로는 1만 8천원 정도 나왔다.

이러지 않으려면 서울역에서 2시간 반 잡고 가시는 게 좋다.

그리고 4호선보담 1호선이 10분이라도 빠른 듯.

 

발을 동동 구르며 탄 택시는

15분만에 갈 수 있다더니 길을 헤매고 결국 35분만에 도착했다.

속이 타 죽을뻔했다.

다행히 다른 면회신청자들이 다 늦으시는 바람에

제일 먼저 가서 면회서 쓰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오늘, 그의 특별면회.

오전 면회 직전에 변호사와의 면회가 있다더니, 오랜 시간 면회하는 것 같았다.

특별면회실 안이 복도에서 보여서, 철창 안쪽을 들여다보니

미누씨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하더라.

우리가 웃으면서 손 흔드니 미누씨도 반기는데 그 표정보고 돌아선 변호사의 얼굴은 심각했다.

그는 뭔가 결단을 내렸고, 변호사는 길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면회를 마치고 나온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미누씨가 아주 힘든, 싸움을 결심하셨다고 했다.

 

10시 50분, 드디어 미누를 만나러 들어갔다.

어색 어색. mwtv자원활동가를 하는 어린 친구는 말 하라고 건네 준 수화기에 대고 말을 못하고

우리 모두 그 상황이 어이가 없고 답답해서 어버버 거렸다.

택시 안에서부터 찍어내고 있던 마스카라가 자꾸 번져가고.

 

구두와 화장품, 셔츠랑 바지 가져왔어요. 속옷이랑 양말은 오늘 저녁에 바로 들어간대요.

어떤 구두? 무슨 색?

검정색이요. 까만색.

어, 갈색 구두 있는데... 난 그게 더 좋은데...

앗, 갈색!

 

옆에 있던 네오는 갈색 구두를 봤다고 했다.

바로 챙겨주기로 했다.

 

일요일에, 해피콜로 전화하셨었죠? 그거 제가 이상한 전화인 줄 알고 두 번이나 그냥 끊었는데... 미누씨 맞죠?

네.. 맞아요.

아, 내가 끊고 나서야 생각이 나서.. 얼마나 속상했는데요. 다음엔 꼭 받을게요.

 

(미누씨 왈) 이 친구는 이제 자원활동 막 시작했는데, 이런 거 보게 되네...

저, 너무 깜짝 놀랐어요. 미누씨 잡혀간 것 때문에 사람들 다 충격이에요. 정말, 다 말을 못하고 충격 받아해요.

 

같이 면회한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미누가 아직 젊고, 결국 고향 돌아가는 거니 너무 나쁘게 생각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도 했지만

미누씨는 그래도 꼭 묻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내가 여기서 18년을 살았잖아요. 다른 게 아니고, 내가 꼭 싸우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묻고 싶어요. 내가 살아온 것이 무언지. 정부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지... 난 이 전에도 고향에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고향이라니, 그런 생각하면 막 복잡해요. 고향? 고향이 뭐지? 난 왜 여기서 이렇게 살았지? 지금까지 노래하고 활동하고, 다문화 운동하고... 내가 왜 이런 식으로 '고향'에 돌아가야 하죠? 그걸 꼭 묻고 갈 거에요."

 

분명 그의 말에 누군가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에게 '고향'은 무엇이고 20살부터 18년 간 살아온 한국에서의 삶은 무엇인가.

2003년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살게 되었다곤 하지만

법은 그의 존재를 유령인듯, 비공식적인 존재로 취급하고 있지만

내가 만난 미누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공식적인 활동들을 하던 중이었다.

이주노동자방송국 활동을 하고 있고

성공회대 노동대학을 다니는 중이고

밴드 활동하고 콘서트하고,

다문화 교육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그의 방에서 옷가지들을 챙기며 본 수많은 '다문화~~' 리플렛들과 자료집들, 테잎들이

그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다문화 안에 자신이 포함되는지 의문스러워해야 하는 그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자신이 열어젖히고 있는 장에서 미리 소외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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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러 가다가

그가 잡혀갈 수 있을 거라곤 정말 생각 못했다. 사실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도 생각 못했다.

연구실 생활하면서 늘 같이 밥해먹던 친구이고.

한 마을 사람이고. 돌아오는 빈마을 운동회 때 오라고 꼬시려던 참이었는데,

미누씨가 잡혀갔다는 문자를 받고는

당황스럽고 허전한 마음에 곧장 라면 몇 개를 사들고 넷빈집에 갔드랬다.

실감도 안 나고, 너무 슬퍼하면 안 될 것 같아서(왜 안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친구들과 미누씨 방에서 라면을 먹었드랬다.

(일부러는 아니고, 그 집 구조가.. 몇 명이 밥 먹을 수 있을만한 공간이 거기 뿐이다. ㅡㅡ;;)

그렇게 우연히 미누씨 방 구경을 하는데, 한 쪽에, 광이 반짝반짝 살아있는 구두가 눈에 띄었다.

멋쟁이 미누씨.

세미정장에, 무스를 바른듯 잘 매만진 머리칼에 반짝이는 구두.

우리들의 영원한 보컬.

 

오늘

만나러 가다가 돌아왔다.

미누씨의 옷가지와 신발을 챙겨들고 온 네오와 함께

402번 버스를 타고 남대문 앞을 지날 쯤,

확인차 전화를 걸던 네오는 다른 분들이 먼저 면회를 해서 오늘 면회 횟수가 끝났다고 했다.

흑. 일정 조정해주시기로 한 분께서 우리가 가겠다고 했던 걸 잊으셨단다...

 광화문께 가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그냥 만나러 갈까도 싶었다.

금욜 새벽, 미누씨가 잡혀간 바로 다음날 아침에 강제출국 당할 수 있다는 말 듣고

바로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갔었는데, 그때는 분명

관리인들과 소장인지 과장인지 하는 사람이

면회 회수에 제한이 없다고, 언제든 볼 수 있다고 말했었는데.

그새 말을 바꾼 것인가? 아님, 이쪽 활동가들과 어떤 조율이 있었던 것인가.

감옥도 아닌데, 면회 회수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이 그들에게 있단 말인가?

 

여튼, 온종일 어찌할 바 모르고 있다.

일상이랄 것도 별로 없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모든 일들이 절뚝거린다. 밥을 먹다가, 책을 보다가, 토란대를 말리다가도

불쑥 미누씨 생각이 난다.

 

누군가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런 것인가 보다.

 

그가 살던 집이 넷빈집으로 전환되어 한마을 사람으로 묶이면서

가끔은 싫은 소리도 툴툴 내뱉고 했었는데...

가만히 그의 좋은 얼굴을 떠올리다가도

활동가로 언제나 밤 12시가 넘어야 겨우 들어오고, 아침에 또 나가는 그에게

밤 12시가 되었더라도 꼭 모여서 넷빈집 회의를 해달라고 협박스런 부탁을 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왜 그렇게밖에 말 못했나.(이놈의 말버릇. 아, 정말 내가 싫다.)

 

내일 아침 일찍 면회가겠다고 다시 일정을 알렸다.

내일은 특별면회가 있다고 하는데, 뭐라도 좀 진전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누가 만에 하나 우리 곁에 계속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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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일기 5: 탐라국 여행 5

9월 4일 일곱째날 - 내 생일ㅋㅋ

 

이제, 내일 아침 8시 배를 타야한다.

현 위치 서귀포 중앙.

다리 다친 나는 자전거를 못타는데, m은 혼자 텐덤 끌고 산을 넘을까 하고 있다.

짐은 내가 들고 버스타고 가서 기다리라능.

...

 

우울.

먼저 제주시 가서 기다리는 건 괜찮지만,

m은 산넘어 오려면 5-6시간 걸릴 거고, 나 혼자 그 시간동안 뭘 하며 있으라는 건가.

생일날인데. 흙

 

그렇게 툴툴거리다가 방책 하나를 찾았으니

바로 '리무진 버스'다!

 

리무진버스 회사에 연락해서 물어보니

아저씨가 제주도 말로 뭐랑 뭐랑 하는데- 대충 들은 바로는

짐칸 가운데가 막혀있어 못 싣는다는 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마지막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려면 밀어붙이는 수밖에.

 

서귀포항 정류장.

서귀포에 온 둘째날 밥먹었던 '창훈이네' 식당 바로 앞에 리무진이 섰던 게 기억났다.

 

 

짐 빼고, 바퀴 두개 빼고 중간 핸들 다 분리하고 버스 기다리는 중.

못 실을까봐 긴장했는데 실로 앞바퀴만 뺐다가 그냥 보내고

뒷바퀴까지 빼도 안 들어가서

세 번째 온 버스에 태웠다. 휴-

버스기사 아저씨한테 욕먹고, 중문 관광단지에서 사람들이 여행가방 실을 때마다 긴장해가며

편치않은 승차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덕분에 대낮에 우리 둘은 이호테우 해수욕장에 다시 올 수 있었던 거다.

 

 

여유낙낙하게 밥도 먹고.

장조림을 넣은 오니기리(ㅡㅡ);;

 

처음으로 바다 속으로 들어가 개헤엄 흉내도 내고(어쩜 둘 다 수영을 몬한다. 흑)

 

 

이호테우 해수욕장의 심볼. 트로이 목마 같이 생긴 쌍 등대.

엄청난 규모의 방파제길과 공터가 있었다.

일주일만 먼저 왔어도 피서객들의 가득 메웠을지도.

 

참, 테우는 뗏목이다. 통나무를 몇 개 연결하고 그 위에 평상같은 걸 만들어 놓은

제주도 뗏목. '태우'가 아니라 '테우'다.

 

그걸 제주 온 지 일주일 다 되어 알았다.

 

 

해지는 제주 북쪽 바다를 바라보다가

문득, 동생 생각이 났다. 이것은 아직도 난산 중인가.

8월 말이 예정일이었는데, 몇일이나 지난 건가.

전화를 걸어보려 핸펀을 드는데, 지이이잉-

왔다.

나왔다. 나와 생일이 같은 동생 딸래미.

애 낳느라 고생했을텐데- 철없는 언늬는 제주로 놀러나 가 있고...

미안하고, 보고싶고, 기뻤다.

 

 

그렇게 제주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굿 바아아아이-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는

여행가면 뭔가 정리되고 결심도 하게 되고 깨달음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거 개뿔 쥐뿔 없고 마음은 심난.

서울 가면, 다시 뭘 하고 살 수 있을까---

얻은 거라면, 그렇게 떠난대도 개뿔 쥐뿔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 정도.

잠이나 자고, 꿈이나 꾸고,

새 하루를 그렇게 맞이하는 일 말고 다른 건 없는 듯.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났지만, 잘못하면 배 놓칠 뻔 했다. 아찔...

그래도 제주항 직원들이 차로 배까지 태워주어 승선-

7박 8일 제주 여행이 이렇게 마감되셨다.

 

 

<일곱째날> 지출 24220

(라면3개 1950+장조림2300+pc방 이용 1300+리무진버스10000+장8670)

 

 <여덟째날> 지출 112,000

(배 51600+3000+무화과10000+버스37400+간식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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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일기4 : 탐라국 여행4

 

9월 3일, 여섯째날.

아침 일찍 지도와 카메라 등을 챙기고, 계란을 삶고 주먹밥을 만들어 출발했다.

어디로? 스쿠터 빌리는 데로.

동문사거리쪽이었나... 제주시에는 스쿠터 빌리는 곳이 몇 곳 있지만

서귀포시에는 단 한 곳.

그쪽 사장인지 직원인지 하는 사람은 어떻게 찾으셨냐며 놀라했다.

혹여나, 서귀포에서 스쿠터 렌트하실 분은 여기로 전화해보라. 064)762-5296

 

하여간 그래서 출발했다. 간지나게-

부왕~~~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8:30 대여

9:00 출발

9:10 쇠소깍 도착

9:30 김영갑 갤러리로 출발

10:00 김영갑 갤러리 도착/점심식사

12:00 성산일출봉으로 출발

12:30 성산일출봉

1:00 우도 배타고 들어가 놀기

2:00 우도 나오는 배타기

3:00 다랑쉬오름 도착

4:30 올레로 1코스쪽으로  출발

5:30 올레 1코스 시발점인 시흥초교.

 

 

우리의 계획표를 본 현지인 x는, 콧방귀를 뀌며

"김영갑 갤러리에서 분명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성산일출봉과 우도는 포기하라고.. 올레도 무리 아니냐고.

이에 쫄은 우리는 쇠소깍은 일단 제끼기로 하고 김영갑 갤러리부터 갔다.

 

아,

오길 잘했다.

폐교된 학교를 인수해서, 죽기 직전까지 돌 나르고 해서 만든 갤러리다.

 

 

우린 안에 들어서서는  당분간 말을 몬했다.

 

 

 

 

 

 

 

 

김영갑, 20년간 제주도 사진2만장을 찍고 간 사람.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오름의 아름다움, 중산간 마을 사람들의 고단함,

제주의 바람을 담기 위해 아무 것도 안하고 고독 속에서 작업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아, 이렇게 봐서는.. 훅 가질 않지만.. 그래도

http://blog.naver.com/luzia57/130048730883

사진은 요기 가서 보도록. 안에서 작품을 찍을 수 없었당. ㅜ,.ㅠ

사진에 압도되어 셔터를 누를 힘도 없었달까.

특히 왼쪽 홀 가장 안쪽에 한쪽 벽면을 다 채운 왕 큰 사진,

돌담과 밀밭, 언덕 그 사진은 숑간 사진이었는데...

 

다 보고 나와 뒤뜰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기력을 회복하는데

풀꽃, 나무, 돌... 이런 게 아기자기하고 아주 이뿌게 모여있었다. 한쪽에 찻집도 있었는데

들어가서 주문하고 보니

현금이 없어서 못 사먹었다. 힝.

 

다시 밖으로 나와 한 쪽에 앉아 먹거리를 꺼내고

입장할 때 받은 사진 엽서도 다시 봤다.

 

 

계란 먹고, 담배 피우고,

사진을 좋아라 하는 m군은 오늘따라 말씀이 없으시더만

 

"우리는 이래 살 수 있을까?

정말 인간이 이래 살아야 먼가를 이루는데 말이야-  "

이런 비슷한 말을 하다 결론을 내린다.

 

 

"그냥 대충 살란다~"

 

 

다음 코스는. 다랑쉬 오름.

이때부턴 슬슬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포기가 되고 있었다.

그까이꺼, 다랑쉬오름 올라가면 다 보인다카드라.

 

 

 

 

스쿠터 속력을 높였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다랑쉬 오름.

맑은 날 정상에 오르면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 다 보이고 백록담도 보인다고.

 

 

 

 도착. 이미 12시가 넘은 시간. 20여 분 등산을 하면 정상이다.

올라간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올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살짝 개고 그러다 다시 흐려졌다.

 

 

계속 올랐다.

다리가 아팠다.

오른쪽 무릎 안쪽, 거기가 땡겼다.

 

 

 

점심.

 

 

백록담은 보이지 않았다.

성산일출봉은 사라졌다 희미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각기 다른 작물을 심은 밭이 다른 색깔로 구획되었다.

 

 

수평선에 나타난 성산일출봉.

 

 

폼은 프로 사진작가.

 

하산.

 

날씨만 맑았으면 최고였을 거다.

 

 

 

 

 

다음엔 어딜 갈까,

올레?

 

음메----

 

거긴 넘 멀어유- 걍 좀 쉬시죠?

 

 

우린 다시

김영갑 갤러리에 갔다.

현금을 뽑아서.

뒷뜰에 있던 찻집에서 캡슐커피와 코코아를 먹었다.

 

재입장 시 티켓과 엽서를 흔드니 그냥 들어가랜다.ㅎㅎ

 

 

해가 떨어지고, 배는 고프고...

성읍민속마을을 얼른 들렀다 가기로 했다.

민속마을, 마을체험이라 써붙은 여러 곳을 지나쳐 대충 아무대나 들어갔는데

가짜집들이 여러 채 있는 가운데

헐, 진짜 살림하는 집이 끼어있는 게 아닌가.

집 안에 테레비 보시는 거도 다 보이고.

작은 마을을 재현해둔 듯한 그 곳엔 실로 사람이 살고 있기도 했고,

마당 한 켠 한라봉 나무에는 한라봉이 빽빽히 열려있었다.

죄송하게도 몰래 한 개 따왔다.ㅎ

 

올레길과 마을체험장.

관광지이긴 해도 낯선 관광지였다.

중문같이 광객만을 위한 상업적인 공간이 아니라서-

사람이 직접 살고  있다는 것을 계속 의식하게 하는 이 관광지들은 낯설고 떨리고 따뜻했다.

 

마음에 안 들었던 것 딱 한 가지는,

3코스 올레길 중 '우물안개구리레스토랑'이 끼어있어서 맛집인줄 알고 일부러 갔는데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었다는. 그렇다고 운치도 없고... 좀만 더 가서 표선 근처 해녀의집을 갈 것을.

 

스쿠터를 버리지 못하니 그걸 끌고 올레 코스를 따라가 들어가보다가 민망해서 돌아나왔다.

올레는 좁고 구불거리는 마을길.

무엇보다 스쿠터 소리가 민망하더라.

아무 정취를 느낄 수 없었으니...

그러나 아쉬울 것 없다.

다음에 다시 오면 되지 않겠나.

다음엔 제주 동쪽 해안을 따라 성산과 우도, 올레 1-2코스를 천천히 돌아봐야지.

 

 

돌아오는 길에, 빈마을 사람들에게 줄 한라봉/선인장꿀차를 샀다.

집마다 하나씩 돌리고 동생이랑 엄마도 줄라고 돈을 많이 썼다.

 

<여섯째날> 스쿠터 라이딩 150km 이상

               지출 : 135000원 (스쿠터 렌트 25000+기름값 5000+김영갑갤 입장 6000+차 5000+밥 19000+차선물 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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