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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 강제출국되었습니다...

오늘은 전화가 안 오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09.10.23 21:35 http://cafe.daum.net/free-minu/FwvK/12 

 

미누가 결국 강제출국 되었습니다

함께 수감되어 있던 이주민 동료 말로 5시 경부터 안보이기 시작했다고 증언을 했고

이주노동자의방송 등 다른 동료와 4시반경 이후로 전화연락이 없었습니다

 

기자나 변호사 쪽 통해서 알아본 결과

출국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추후 대응일정을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는구나.

 

26일 오전11시, 규탄집회가 있다고 한다.

 

그 전에

미누의 일기글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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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의 편지  

 

여기는 매일 매일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이 나갔다 들어온다.

그 사이 짧은 만남이지만 정든 친구들도 있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나라도 다르지만 여기서는 우리모도가 잡혀온 외국인으로 통하는 것, 서로 형제와 다름이 없다.

하루 종일 밥 먹고 자는 일 밖에 없다.

나는 키가 작다. 내가 나무라면.....

그래서 여기 안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나와 같이 운동을 좋아하는 몽골 동생도 있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 개구쟁이 친구도 있다.

어딜 나 꼭 이런 사람은 있기 마련. 태국,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이란 친구까지..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좋은 만남이다.

각자 어떻게 여기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부터 각 나라 상황의 이야기 까지 토론 제목도 가지가지다.

무거운 마음을 달래주는 우리의 대화는 밤늦게 까지 계속 된다.

감시실 반장이 잠을 자라고 경고 할 때 까지 계속 된다.

아 ....  여기는 말로만 듣던 군대와 같다..  친구들도 괴로워한다.

잡혀 들어오는 것도 억울한데 말도 못하고 답답해한다.

이런 우리의 심정을 그들이 알길 없다.

자자. 수위자우.. 굿나잇.....

지금 시각 12:30 PM.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가위 눌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잡혀온 베트남 친구였다.

아직 말을 못 나눠 봤지만 그의 얼굴이 너무나 어두워 보인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지만 그래도 이 친구는 더 힘들어 보인다.

아마 꿈에서도 도망치고,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맘이 무겁다.

오늘 아침에 변호사랑 이야기 하고 나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밤새 고민 고민 하다 내린 결정이다.

나는 내 문제를 가지고 싸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속의 겁에 질려 돌아간 영혼들이 나를 통해 대답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나는 2003년 농성장에 걸려있는 사진 속 그들이 눈빛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잘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 그래 참 잘했다 미누야” 나 혼자 말을 해본다.

나에게 힘을 주는 선배, 후배, 친구, 동료들이 있기에 나는 영적,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힘을 얻는다.

“힘내라 미누야  힘내자!”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3 

 

 

오늘 아침에도 면회가 시작되었다.

예전에 수유너머에 있었다가 지금 다른 곳에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동생들이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오늘 기자회견이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동생들을 만나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다. 면회 끝나고 나는 기자회견 분위기가 궁금해 졌다.

누가 오고 어디서 오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전화를 걸었다.

많은 분들이 와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지자들도, 단체들도.. 동료들도...

안에서 듣기만 한 나는 와주신 분들 뿐 아니라  시간과 여려 이유로 함께 하지 못했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가운데 여기 안에서 나는 여권 신청하라고 독촉을 받고 있다.

나는 ‘새로 발급 받은 여권이 있다’고 말을 했다.

그럼 언제 가지고 올 건지 확답을 바라는 출입국 여직원......

‘변호사와 상의 해 결정하면 된다’고 했더니 

여직원은 어디론가 불쾌한 얼굴로 전화를 건다.

한참 후 내 담당자 김호준 실장이 ‘출입국규정상 여권이 여기 있어야 한다’고 하며 빨리

가져 올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출입국) 신청 할 거다’라고 말을 했다.

‘아저씨는 다른 분들과 경우가 다르니까 강제로 보내지 않을 거다‘ 말을 하면서

큰 죄를 지은  죄인 같은 기분 이었다.

오늘 있었던 기자회견 이야기, 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전화로 들었던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금 나는 감격과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6 오후 1:00  

14일 출입국 관리소 앞 기자회견 후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가 되는 것 같다.

경향신문 1면에 나오고 다른 신문에서도 나와 관련된 기사를 보도해 주었다.

다음 메인에도 뜨고 .. 잘(많이) 보도 되어서 많이들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면회를 오셨다.

수유너머 식구들이 큰 박스에 가득 채워 보내주신 과자, 음료수, 김, 차, 초콜릿 등등 ...

덕분에 보호소 안에 친구들 하고 작은 과자파티를 열었다.

우리 방에 있는 18명, 옆방에 있는 친구들 까지 나누워 먹었다.

기분이 좋다. 잠시나마 여기에서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더 감동 받은 것은 토마토 주스다. 

내가 3년째 아침마다 토마토를 먹고 있다.

보호소 에서는 일주일째 먹지 못했는데 과자 박스 안에 토마토도 들어있었다.

나는 원래 생 토마토를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그 어떤 토마토보다도 아주 귀한

토마토 주스이다. 다른 주스와 과자 등은 모두 나누워 주었지만 3통의 토마토 주스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나는 토마토에 욕심이 많다. 왜 그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수유너머 식구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답답했던 속이 뚫린 기분이다.

두 통이 남아 있는데 실은 혼자 먹을 수가 없다

내일 같이 나눠 먹어야지 ^^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4

 

 

벌써 일주일이 넘우 9일째이다.

오늘은 16일. ... 내가 같혀 있는 화성 보호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기자회견과 문화공연이 1.2부로 나눠 열렸다.

서울에서 화성까지 정말 먼 길인데....

‘아침 일찍 서둘러 여기까지 오느라 다들 많이 고생했겠구나’ 생각하며

오신 모든 분들에게 어떤 말로 감사해야 할지......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머물러 있는 방까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화장실 창문에 귀 기울이면 간신히 들리는데 안에서는 보고 있는 TV소리, 사람들의

대화소리 때문에 아쉽게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난 해결이 되었다. 전화기로 듣는것이었다.

동료들은 진행 상황을 모두 핸드폰으로 들려줬다.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눈을 감고 구호를 마음으로 외쳤다.

 

“석방하라 석방하라” “(특별체류허가증명서) 발부하라 발부하라” “ 합법화하라 합법화하라”

 

행사 1부가 끝나고 권영국 변호사와 특별면회가 이루어 졌다.

면회 하는 중 우리노래가 계속 흘러나온다. 여기서는 잘 들린다.

면회 중 에 권변호사님이 여제와 오늘 경향신문 1면에 나온 신문 2개를 펼쳐 주시면서

기사를 보여주셨다.

나는 그 신문은 가져가 안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다들 놀라운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오늘 (보호소)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사진을 보고 나를 보고 “신문에 있는 사진 네 사진이야?” 라면서 나에게 물었다.

내가 들어올 때 친구들이 “공장에서 잡혔어?” 사장 돈 다 주었어? 라고 물었을 때도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구들은 ‘언제 여기서 석방 되냐?’ 그 후 계속 묻는다.

나의 싸움이 힘든 싸움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나도 몰라요.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그리고 잘 될지 안 될지 그것도 몰라요.’라고 말을 했지만 친구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고 속이 상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오후 5시쯤 기자회견 풍경이 있는 사진과 큰 용지에 적혀있는 동료들의 사랑과 용기의 편지를 받고 나는 또 다시 큰 감동을 받았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쓰여 있던 글들... 내 사진 배경으로 사직 찍었던 동료들 사진들... 나는 보고 읽고, 또 보고 읽고, 도 보고 읽었다.

사진 속에 있는 동료들의 표정 하나 하나가 그렇게도 사랑스럽고 나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마워요.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보호소에 같이 있는 친구들도 보았다.

친구들이 ‘다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에게 애정을 가진 한국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놀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복 많은 놈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확신한다.

나는 정말 복 많은 놈이라는 것을...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시바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신들이여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라고 나는 작은 기도를 올린다.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6

 

 

내가 묵고 있는 방 번호는 93번이다.

다른 방 보다 조금 큰 편이다. 방 평균 17명이 생활한다.

일 이 아직 해결이 안 돼서 길게는 3-4개월 째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다. 보호소 선배들이다. 새로 들어온 친구들에게 친절하게도 자리를 배치해 주고, 필요한 것을 알려주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내가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호소 처음으로 들어오는 친구들은 많이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뭇 충격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선배들은 챙겨주고, 가족처럼 대해주어 내가 그랬듯이 처음 온 친구들도 많이 위안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선배는 이란 선배이고 한 선배는 파키스탄 선배이다. 두 분 다 항상 웃고, 사람을 재미있게 해준다.

이란 선배는 독특하기도하지만, 말을 재미있게 하여 대화하기가 편하다.

이란 선배는 일을 하다 손가락 하나가 없다. 엄지 다음 손가락이다.

선배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선배가 어느 한 가게에 갔는데 구입할 물건을 가리키며 가격을 물었는데, 가게 주인은 갑자기 화를 내면서 ‘다시 해 봐!’ 그러는 것이었다.

이유는 선배가 물건을 가리킬 때 가운데 손가락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선배는 엄지손가락 다음 손가락이 없어서(검지손가락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을 해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웃으며 말을 했다. 다들 깔깔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하나도 재미없었다. 나는 선배 손을 잡고, 손가락을 잡고, 만지고 또 한참을 만졌다.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7

 

 

오늘은 일요일 면회가 없는 날이다.

오늘 아침부터 몸도 마음도 이상하게 무겁다.

기분을 풀기위해 카드놀이로 운을 보기로 했다.

몇 번 카드를 펼쳤지만 잘 풀리지가 않았다. 기분이 두 배로 무거워졌다.

유치하다. 믿을 걸 믿어야지. 언제부터 이런 것을 믿었다고.

어디 기댈 데가 없어서 카드한테... 실은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그간 아침, 점심 계속 면회 오신 분들이 있어서 하루 일과가 짧게 느껴졌는데, 그래서 심심풀이 감으로 한 것인데, 아침 시간만 몽땅 지나가 버렸다.

점심 먹고 동료들에게 전화를 건 다음 네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포카라에 있는 작은 누나와 카트만두에 있는 큰 누나에게 내가 이런 상황에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한테는 아직 연락을 못하고 있다고 누나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버지는 연세가 있으시니까 충격 받으실까봐 쉬쉬 했다는 것이다.

실은 누나들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내가 전화로 걱정 말라고 해도 한국에 있는 아는 동생한테 전화를 걸어 ‘혹시 미누를 때리지는 않냐? 먹을 것은 주는지’ 등등 묻는다는 것이었다.

큰 누나보다 작은 누나는 마음이 약한 편이다. 통화하는 내내 우셨다.

내가 체포된 그 날은 네팔 최대 명절인 더사이 명절 기간이었다.

즐거운 소식을 주고받는 대신 이런 내 처지에 대한 연락을 하게 되어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내 상황이 지금 이렇지만 많은 동료들이 함께 있어서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 드렸다. 그때서야 누나들이 알았다고 하면서 통화를 끊었다.

오늘 MBC 9시 뉴스데스크에서 나와 관련된 집중취재 뉴스가 보도된다는 것을 여기 안에 있는 친구들에게 알려주었다.

평소에는 다들 자기 보고 싶은 프로를 보는데 내가 뉴스에 나온다고 하니까 다들 뉴스 시작하기 5분전부터 TV앞에 모여 뉴스를 기다렸다.

한국말이 안 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들 ‘언제 나와? 언제 나와?’ 계속 뉴스를 보면서 물었다.

나도 뉴스에 나온다고만 들었지 확실히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확답할 수 없었다.

예전에 이주노동자 관련 뉴스 촬영해서 가지고 가지만, 보도 안 되는 사례들도 꽤나 많아서...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기다려.’하면서 진정 시켰지만 ‘보도 안 되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갔는데, 그 때 화면에서 노래하는 내 사진이 보였다.

그때서야 ‘이거야!’라고 알려주었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한국말, 글도 모르는데 지금 보호소 추리닝 입은 모습과 TV속 내 모습이 전혀 달라서 다들 멍하고 있었던 것이다.

MBC가 집중취재를 해주었다. 다행이다. 우리 말고도 옆방 친구들도 뉴스를 보았다.

한 조선족 아저씨는 ‘이런 사람을 왜 여기에 있게 하는 거냐? 빨리 밖으로 보내줘.’하면서 방 밖에서 TV를 보던 출입국 직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직원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도 아저씨는 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셨다.

벌써 일주일 넘게 함께 생활하고 있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냥 지나간 인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과 여기서의 만남은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언젠가 어디에서 어떤 일로 만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요한 존재로 여기면서 이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힘든 순간들도 있겠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참 행복한 순간이다. 여기에서도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진 친구들이 생기다니 감사하다.

‘지금 여기에서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더 힘차게, 행복하게 남은 삶을 꼭 사세요.’라고 속으로 나는 밤에 친구들이 자는 모습을 보면서 말한다.

여기는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지만 일단 들어온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다.

걱정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해서 내 자신을 작아지게 하는 것은 안하려고 노력한다.

또 걱정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니까.

이런 내 삶 또한 나를 가꾸고 더 열심히 잘 살아가는데 좋은 지도가 되는 순간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한다.

안 된다는 생각보다 된다는 상상을 많이 한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의 방식이기도 하니까.

 

미누 

화성 보호소

2009-10-18

 

 

무슨 심판 받는 느낌이다.

18년간 세월동안 살아왔던 한국은 이제 살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심판...

누군가를 해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늘은 이 기분이 몹시나 깊게 느껴진다.

실은 오늘 상담하다가 담당자인 김호준 실장이“미누씨는 여기 짧게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뒤에 “대사관(네팔)쪽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압력 받고 있으니 상황이 좀 그렇다”

도전 메시지 같았다.

역시 약한 나라일수록 자별과 무시가 밥 먹듯이 반복 또 반곡 하더군.

완전 무식한 행동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던, 죽던 내 삶의 걸리는 문제인데...

나에게 아무런 배려 동의 없이 이런식의 행동의 반복은 다시한번 생각해야 한다.

18년동안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왔는데 당신들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런 인간 이하의 행동 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한국을 비하하는 거다.

욕하는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행동이다.

한국이 걱정된다.

어쩌면 사랑 받지 못하는 나라가 되면 어쩌지?.....

차별, 무시 아픔을 담고 돌아간 많은 이들의 상처를 어떻게 치료 할 건가?

그냥 깡그리 무시해 버릴려는 건가?

아님 모른 척 할 것 인가?

그렇게 그냥 세월 속에 묻어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천만에 말씀!

반드시 책임질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믿는다.

이주민들의 역사를 이런 사건들만으로 치부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간 힘들게 살아왔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했던 것들이 한국을 돕는 일이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이것이 여기서의 마지막 편지 일지도 모른다.

http://cafe.daum.net/free-minu/FpyV/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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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 지금 상황

메일함을 여니 다음과 같은 상황이...

좀더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오늘 강산에 콘서트 잘 되길...

 

- 네팔대사관에서 내일 (10월23일) 오전에 미누씨 여행자증명서류를 출입국에 보낼 예정입니다. 출입국에서 서류를 받으면 당장 강제송환을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 이의신청이 기각되면 바로 강제퇴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오늘 (10월22일) 강제퇴거 무효소송을 접수하기로 했습니다.

이주노조의 경우 소송 제기 후에도 강제송환을 시켰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할 수 없지만 법무부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진행은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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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의 편지

cafe.daum.net/free-minu

 

에서 가져옴.

 

두 번째 면회갔던 날, 우리에게 준 편지...

외부에서 온 자가 우리에게 그 '우리'가 무언지 던지는 진지한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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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저마다의 삶의 이야기 꽃이 피는, 그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현장,

여기는 화성 외국인 보호소다. 어떤 이는 일하다 체포돼 들어오고,

어떤 이는 퇴직금 요구하다 사장의 신고로 들어오고, 어떤 이는 이삿짐센터에서 일을 했는데

이삿짐 고객이 본인 가방을 깜박하고 관리실에 두었다가 잃어버린 줄 알고

이삿짐 직원인 몽골 노동자가 의심을 받고 경찰에 신고가 들어와 억울하게 오게 되고,

또 어떤 이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 산재를 당해 오른쪽 팔에 박혀있는 핀을 빼지도 못한 채,

미등록자라는 이유로 산재 보험도 받지 못하고 수감 되어있는 외국인도 있었다.

그 어떤 현장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오로지 여기에서만. 언어가 안 되는데

다들 몸짓, 말짓 해가면서 말이다. 현재 10여국에서 온 17명의 사람들이 이 방에서 함께 수감되어 있다.

나란히 잠을 자는 모습들은 별로 평화스럽지가 않아 보인다.

참 가슴이 아프다.

씻고 편안하게, 내 집에서 자야하는 이들, 여기에 모이는 이유는 단지

그동안의 체류기간이 초과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범죄 행위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단지 시간 초과.

필자 역시도 시간이 초과되어 수감되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외국인 활동가라는 것이 분명하다.

 ‘표적’이었다. 출근길 사무실 앞(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에 세워져 있는 검정 승용차,

1~2미터도 안 되는 그 시점에서 3명의 출입국 직원들이 차에서 내려 나를 체포한 것이다.

세 명 중 한명은 내가 일하는 사무실 건물 안에서 본적 있다. ‘

미리 소환하고 현장 조사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순간 나는 “어디서 본 적 있죠?”라고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남자는 내 눈을 똑바로 보지 않은 채 버벅거리는 말투로 “아니요.”하고 대답을 했다.

 “표적이죠?”라고 묻자 같은 대답, 같은 방식으로 “아니에요.”라고 했다.

나는 짧은 질문을 계속 던졌다. “기분이 좋으십니까? 속이 시원합니까?”라고.

이후부터 출입국 도착 할 때까지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체포 당일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반대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구호와 연설을 목동 출입국 사무실 안에서 체포된 상황에서 듣고 있어야만 했다.

“나 역시 안에 잡혀 있어요.”라고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지만…….

잠에서 가위 눌린 것 같았다. 밖에서 구호는 계속된다. “강제단속 중단하라.”

화성보호소

1009-10-9

미누(MINOD MOKTAN)

 

 

“당신의 꿈이 무엇입니까? 앞으로의 계획은요? 개인적인 거요...”

 어떤 신문기자가 나를 향해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참 나는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나의 개인적인 삶과 관련된 계획을 세우면서 살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분명히 확신하게 되었다.

그동안 어떻게 보면 핑계일 수도 있지만, 그럴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이 그때 그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참 어이없다. 나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길을 잃은 어린양과 같은 기분이다. ‘어차피 돌아가도 내 고향 갈 건데 뭐?’라는 생각을 할수록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고향? 이 두 글자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왜 이제야 고향에 가야하는가?

그간 수많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웃음과 추억들 함께 하지 못했던 고향은 정말로 어떤 의미일까?

 아무도 없고, 갈 수 없는 곳도 아닌데 왜 나는 그간 고향에 가지 않았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일거다. 갈 수 있는데도, 볼 수 있는데도,

나는 왜 그랬던 것일까? 참 아프다. 너무 늦어버렸다.

시간 흘러갈수록 모든 것이 희미해져버렸다.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여기 한국에서의 웃음, 울음, 추억들도 처음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머릿속이 더 복잡하다. 지우개로 지울 수만 있다면 하는 유치한 생각도 해 본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래! 계획을 세우자.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모두 몽땅 버려야하나? 아님 같이? 어떻게? 무엇을?

생각할수록 더 복잡하다.

흑… 오늘로서 수감된 지 4일째 되는 날이다. 시간은 지금 밤 11시30분.

여기서는 10시가 되면 모두 자야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정확히 1992년 2월 22일 입국 해 오늘 2009년 10월 12일 까지 한번도 10시에 잠을 잔 적이 없는 걸로 기억한다.

나는 여기서 휴식을 취하고, 그간 마음은 원이었으나 못썼던 글도 써본다. 감동이다.

휴일 빼고 4일 동안 나를 만나러 온 사람들 지금까지 모두 40여명.

내 소식을 듣고 그간 연락두절 되었던 선배, 후배, 동료들 모두 나를 만나로 온 것이다.

참 나로서는 기쁨, 감사 그 이상이다. 어떤 이는 눈물부터 쏟아내고,

어떤 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어떤 이는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다 하나 같이 똑같은 질문을 한다. “밤에 춥지 않아요?”, “밥은 잘 나와요?”,

 “이불은 있어요?”, “밥은 꼭 챙겨 먹어요.” 등... 선배, 후배, 동료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 소리가 귀까지, 머리까지 울린다.

그 끝에서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매운 향기가 머문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돌발 상황이 마음 한 가운데에서 요동친다. 뭐라 말 할 수 없다.

나도 같이 속고 만다. 선배, 후배, 동료들에게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내가 지금 선택해야 할 일 2가지다.

내 문제를 갖고 싸우는 것.

17-18년 동안 쭉 같은 한국 하늘 아래에서 살아온 숨쉬어온

미누라는 한 인간에 대한 사회의 책임감을 묻는 거다.

그간 나는 이주민과 한국인 사이에서 소통을 이야기하고 한국사회 개선에 온몸을 바쳐왔다.

그런 나에게 강제 추방이라는 독한 열매를 ‘선물’한 것에 대해 어떻게 행동 할 것인가? 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조용히 가는 것. 그간 표적 대상이었던 동료들의 결과를 보고,

지금 내가 싸우자 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좋은 결과가 없을 확률 높다는 것.

 “17~18년이 지난 후에서야 가는 고향 길. 좀 더 준비해서 적어도 마음만은 더 이상 다치면 안된다.

그래서 모든 어깨의 짐을 털고 나머지 할 일은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몫이니 그렇게 맘에 쓰지 말아요.”라며

동료들이 했던 말이다.

하지만 운동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밤새 고민에 빠졌다. 오늘은 변호사와 만남이 있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행동에 대해 결정의 순간이 될 것이다.

그간 공연 하면서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한 우리 2집 앨범에 있는 “자유”라는 노래,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불러본다.


이 편지는 어제와 오늘 이어서 쓰고 있다.

 

화성 보호소

1009-10-12,12

미누(MINOD MOK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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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마요네즈 완성!

미누 일 말고는

내동 쉬고 있으므로,

이 쉼을 쉼답게 보내려면 뭔가 새로운 것을 해봄이 좋을 듯하다-고

내내 생각해왔지만, 백수로 지내면서 하는 일이라곤

어듸메에 돈 나올 구녕이 있는지를 살피며

벼룩시장, 교차로, 가로수 등 정보지를 펄럭이는 것과

하루 종일 알바천당이나 과외튕 따위의 사이트들을 전전하는 것뿐이었던 내가,

 

오늘은 갑자기,

요즘 특히 헛헛해하는 채식 동거인들의 마른 혓바닥과 굽은 허리가 신경쓰여

3일째 감지 않은 머리칼을 대충 비틀어 묶고

눈빛을 빛내며 남대문시장에 가,

 

눈에 닥치는 대로 사고싶은 것 뿐이나

아직 취직하려면 멀었으니 모자도, 가방도, 신발도 슥슥 지나치고

결국에 지하상가로 들어서서 들입다 아줌마에게 물어본 말이,

"캐슈넛 얼마에요?"

 

이렇게 시작하여 쇼핑을 한 것이,

달군이 새로사온 유기농분쇄커피를 내려먹기 위해 칼리타와 종이필터를 사고

캐슈넛 1kg와 아몬드 1kg를 사고

이미 사치 지름신이 내리신 것을 알고 있었으나 멈추지 못하고 다 떨어져가는

케찹과 올리브유를 사고 보니, 샌드위치에 깜장 올리브 슬라이스를 넣어먹을 때의 행복해하던

동거인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바람에 올리브까지 사고

그밖에도, 뭐 한 가지를 더 샀으니,

그 뭐 한 가지는 이후 만들어 볼 실험 메뉴가 공개될 가능성을 참작해 여기서 밝히지 않기로 하고

 

집에 오는 길에 빵*터에 들러 우유와 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식빵이 보이지 않기에

바게뜨 한 개를 잘라 와서는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캐슈넛 마요네즈 만들기를 시작하였으니

 

먼저, 재료는

 

 

캐슈넛 반컵, 두유 1컵, 레몬즙 2큰술, 소금 1/2작은술

 

1. 두유와 캐슈넛을 믹서기에 넣고 간다.

2. 냄비에 1을 붓고, 약한 불에서 뎁힌다.

 3. 레몬즙과 소금을 넣으면서 젓는다.

 

뭉글거리기 시작하더니, 부풀어오르드만.

 

완성!

 

 

 

바게뜨에 찍어 먹어보니, 환상적이다, 하하하하하

 

아직 퇴근하지 못한 불쌍한 동거인들에게 문자질하고 약올린 후

혼자 몇 개 먹음.

그리고

 

 

230그램짜리 용기에 담았다.

으걀걀 으걀걀.

 

헛헛한 몸과 마음엔 캐슈넛 마요네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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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에, 미누를 위한 콘서트

금요일 밤, 일정 확인해보세요 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강산에, 친구 ‘미누’를 구하기 위해 노래한다.

강산에 콘서트 ‘Human’ - 10월 23일(금) 오후 8시, 홍대 브이홀

 

 

관객과 가수가 생각을 나누고, 호흡을 주고 받는 강산에의 인권 콘서트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을 꿈

 

꾸는 인권콘서트 프로젝트 ‘Human’의 두 번째 공연, 강산에 콘서트 ‘내 인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10월 23일 열린다.

‘Human’은 ‘강산에’와 ‘뜨거운 감자’의 공연 프로젝트로, 두 팀은 오는 9월부터 1년간 매월 1회 ‘인권’에 관련된 이야기로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 난 9월 20일 열린 ‘뜨거운 감자’의 첫 번째 콘서트를 통해 인권과 관련한 이야기와 함께 편안하고 즐거운 공연을 열어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콘서트 ‘Human'은 그 어떤 콘서트 보다 따뜻하고, 유쾌하게 관객과 가수가 생각을 나누고, 호흡을 주고받는 공연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강산에, 네팔인 이주노동자 친구 ‘미누’를 구하기 위해 노래한다.


강산에는 이번 콘서트에서 특별한 친구를 위해 노래한다.

네팔에서 온 미누(미노드 목탄, 38세)가 바로 그 주인공.

미누는 미디어 운동, 노동 운동 등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로 지난 10월 8일 이주노동자 집중단속으로 인해 강제 연행되어 현재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되어 강제출국의 위기에 놓여있다.

 

지 난 1988년 한국에서 열린 ‘88올림픽’의 사진을 본 후, 한국이 좋았던 미누는 1992년 한국에 입국해 17년간 방송, 음악,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과 다문화에 관련된 활동을 하며 차별없는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1999년에는 외국인 예능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문화부장관 감사패를 받는 등 음악인이자 열정적인 활동가, 다문화적 아이콘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평소 다문화와 그들의 자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강산에는 지난 6월 이주노동자영화제 기금마련 콘서트에도 출연하며, 이전부터 미누를 비롯한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공연으로 이들과 인연을 이어 왔다.

강 산에는 “국가와 민족을 떠나 우리 모두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존재이고 친구이다. 하지만 국적에 따른 경계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보이지 않는 ‘의식의 선’으로 인해 내 친구가 곤경에 빠졌다면, 누구라도 그를 위해 노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미누 구하기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미누가 없는 미누의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특별한 오프닝 무대

 

이번 강산에의 콘서트에는 특별한 게스트도 무대에 오른다.

바로 미누가 몸담고 있는 이주노동자 다국적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crackdown)’이 오프닝 무대를 꾸민다.

2003 년 결성되어 각종 인권 관련 공연과 음반 활동을 하고 있는 ‘스탑크랙다운’은 보컬인 미누가 수감됨에 따라 현재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강산에의 공연을 위해 특별히 오프닝 무대에 올라 악기 연주를 맡고 있는 멤버들이 서로 미누의 빈자리를 채워 한국 사회가 외국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따뜻한 다문화 사회가 되길 노래한다.

또한 강산에의 공연장에서는 미누를 위한 영상 상영과 미누 석방을 촉구하는 관객들의 서명 등지금의 상황을 알려, 우리 사회의 두꺼운 편견의 벽을 깨고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자리를 마련한다.     


관객과 가수의 훈훈한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미누’를 위한 따뜻한 친구들이 가득한 강산에의 콘서트 ‘Human’ 그 두 번째 이야기는 10월 23일 홍대 브이홀에서 열린다.

(예매 : 인터파크 interpark.com,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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