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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일기3 : 탐라국여행3

9월 2일, 다섯쨋날.

 

*다방 아침이 밝았다.

다방 철문을 위로 차르륵 올리고 나오면 바로 시장 한 가운데.

오이와 계란을 사고 밥을 해 먹었다.

우리, 이제, 어떡하지.

 

동쪽 여행에서 해안도로 라이딩은 물건너 가셨다.

다리의 붓기는 전혀 빠지지 않았고, 온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결국,

딱 한 군데, 다녀오기로 했다.

신혼여행, 수학여행 등 관광명소인 '산굼부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선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서 97번 도로를 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오기까지 30분. 그때 디카에 메모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사진을 지워야 하나? 어떡하지? 이러다가 그에게

"사진 좀 전송하고 오는 게 어떨까?" 한 마디가 큰 화를 불러왔다.

앞서 말한 그 사건. 사진 100장이 통으로 사라져버렸다.

pc방을 찾아 뛰어가긴 했지만, 사진을 다 전송하기엔  버스 시간이 너무 급했던 것이다.

쫒기듯 급하게 다시 재전송 하긴 했는데

뭔가 문제가 생겼다. 어느 부분의 사진이 얼마만큼 날아간지도 모르고

우리 둘은 그렇게 둘다 기분이 심난하고 뾰족해져 있었다.

 

슬프고 우울하게 산굼부리행 버스가 산을 올랐다.

안그래도 피곤한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너는 제주도 가서 엄마한테 전화도 안하냐고.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 나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구요...

 

서귀포에서부터 1시간 40분 여가 지나,

드디어 산굼부리 입장.

인생은 외롭고 억울하나, 그래도 뭔가 새로운 볼거리가 있을 것이야!

 

 

분화구란다.

둘레가 2km가 넘고 내부둘래가 753m. 사진을 찍어도 그저 밋밋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

날이 흐려 명암도 잘 안나오겠고... 그래도 찍어봤다.

얼마나 밋밋한가.

 

 

맨 위 능선에서 아래 잔디밭처럼 보이는 부분까지 높이만 132m.

저건 잔디밭이 아닐 거다.

저 오종종한 브로콜리같은 것들이 다 겁나 큰 나무들일 거니까.

 

난 사실 저런 거대한 뭔가에 그리 감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작고 오종종한 것들이 더 감동스럽고 예쁘지만

그래도 언덕을 오르면서 이게 산굼부린가... 주변에 억새밭이라 멋지다고 한건가... 하다가 저걸 보니

소름이 쫘악 오시는 것이... ㅋ ㅋㅋ크크크킄ㅋ크크크으으 다아아아아아-

 

 

 

 

제주여행에서 만끽할 네 가지.

1)해안 2)오름 3) 올레 4)제주음식

 

지난 4일간 1과 3을 즐겼다면, 남은 날들은 2와 4로 채우겠노라!!

다시 에너지 충전.

 

서귀포로 돌아왔다.

자전거를 못타니, 이동에 참으로 무리가 많았다. 돈도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그러나 서귀포,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게짬뽕!

슈아에게 전화해서, 그때 말했던 게짬뽕집을 찾아갔다.

으흐흐- 6천원에 게가 잔뜩 들어간 짬뽕. 국물맛이 끝내줘요.

이집은 배달도 안 한다고 했다. 그만큼 맛있다.

볶음밥도 시켰는데, m왈,

"이 집도,밥 볶을 줄 아네."

이중섭미술관 근처에서 물어보면 누구나 안다.

우리는 이중섭미술관 바로 옆 찻집 아저씨에게 물어 갔다.

다음날 다시 만날 그 분에게.ㅎㅎ

 

 

미안.

다 먹은 다음에야 사진을 찍었다.

이건 드셔봐야 아는 거지, 사실 비주얼은 일반 짬뽕과 별 다르지 않으니까..ㅎㅎㅎ

 

맛있는 걸 먹고 나니 힘이 솟았다.

지도를 펼치고 계획을 세웠다.

버스로 이리 댕기기는 너무 힘들다.

pc방에 가서 여행 자료를 좀더 모으기로 했다.

그러다가, 번뜩 스쿠터가 생각났다.

스쿠터를 렌트하면 더 많이 맘대로 돌아댕길 수 있지 않겠는가!!

 

<다섯쨋날> 라이딩 0km, 버스타고 산굼부리 다녀옴

지출 41,900원

(오이, 계란 3700+담배2500+복숭아2000+다이제스티브1200+pc방1000/교통비14000/산굼부리 입장 6000/게짬뽕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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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일기2-탐라국 여행 2

8월 마지막 날,

여행 3일차, 눈을 뜨니 남쪽 바닷가가  비에 촉촉히 젖어 있었다.

지난 밤, 잠자리가 사나워 기분도 꿀꿀하고.

해수욕장 관리하는 아줌마가 등장, 잠시 긴장했었지만, 어차피 손님은 우리 하나.

해수욕장 관리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했다.

그가 열심히 밥을 하는 동안 지도를 펼치고 여기 저기 살펴봤다.

오늘도 미역국에 청량고추볶음, 깻잎짠지로 맛있게 먹었다.

비가 와도

자전거는 달린다.

길이 자꾸 헷갈려 원하던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었으나

어쨌거나 마을길을 돌고 돌아 본격적으로 남쪽 바다를 달리기로 했다.

 

 

up hill, up hill~그리고,

down hill~~~~

 

 

 

전날, 산허리를 넘을 때 내리막에서 최고 75km/h까지 속도가 났을 때도 짜릿했지만

가장 짜릿했던 다운힐은 단연 여기.

언덕을 올라가서 그 끝에서 내려오는데 딱 바다와 초원이 펼쳐졌다.

저 멀리 삼방산은 신비로운 뽀스를 어깨에 걸치고 계시고...

 

조랑말들. 왠지 소가 있어야 할 것 같은 곳에 언제나 말이 있다.

 

그렇게 마라도잠수함 타는 곳 앞에 갔다가, 삼방산쪽 길 따라 들어갔다가,

하멜상선기념비 있는 곳에 갔지만,

보고싶은 용머리해안은 출입금지고, 슬슬 다리가 땡겨왔다.

남쪽에선 해안도로를 잘 타지 못했다. 계속 해안길-내륙산간길-해안길-산간길..

지도가 왜 이 모냥이야! 하면서 더 큰 지도를 펼치기도 했지만,

남서쪽 1132도로는 유난히 산길이었다.

우리는 어쨌거나 중문을 거쳐 서귀포로 들어가기로 했다.

전날 무리를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피로가 슬슬 오고 계셨다.

 

 

건강과성박물관 앞을 휙 지나 인덕계곡 입구를 획 지나 중문골프클럽 따위를 휙 지나

슝슝슝 지나가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또 길을 잘못들어 중문관광단지에 들어섰다.

왠 호텔들이 이리 즐비하냐-  =-= 기분 바빠서 얼른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해안가 쪽엔 길이 없다는

어떤 자전거족의 '잘못된' 정보 때문에

다시 내륙쪽으로 업힐하여 아프리카박물관쪽으로 갔다.

 

 

난 계속 자전거 뒤에서 사진 찍고...

 

다리가 아팠다.

힘줄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의 하이라이트, '주상절리대'를 보긴 해야할 거 아닌가.

이렇게 도로 주행만 할 수는 없다! 라면서 여기 저기 쑤시며 돌고 있었다.

그런데,

주상절리대 근처로 가까스로 찾아가보니,

아까 중문에서 이쪽으로 오는, 평탄한 해안길이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쉐엣!

 

하지만, 헤맨 보람이 없지 않았다.

관람료 2000원씩 내야했지만, 들어갔다.

 

<잠깐, 공부>
제주중문 ·대포해안주상절리대는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 ·대포동 해안을 따라 분포되어 있다. 약 3.5km에 이르며, 용암의 표면에는 크링커가 형성되어 거친 표면을 보이나, 파도에 의해 침식당해 나타나 있는 용암단위(熔岩單位)의 중간부분을 나타내는 그 단면에서는 벽화와 같은 아름다운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다.

주상절리의 크기는 키가 큰 것은 20m 내외로 발달하며 상부에서 하부에 이르기까지 깨끗하고 다양한 형태의 석주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식애를 따라 발달한 주상절리는 주로 수직이나 수평인 곳도 있으며 주상체의 상부단면은 4-6각형이다. 해식작용으로 외형이 잘 관찰되고 서로 인접하여 밀접하게 붙어서 마치 조각 작품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제주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현무암 용암이 굳어질 때 일어나는 지질현상과 그 후의 해식작용에 의한 해안지형 발달과정을 연구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지질 자원으로서 학술적 가치와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캬- 물빛 봐라-

한 친구가 저 색을 좌변기 청정제 풀어놓은 색이라 했지만

직접 보고 있으면 저 퍼런색이 눈구멍부터 시작해서  몸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서귀포로 찾아드는 길.

지난 밤, 잠을 잘 못 잔데다가

서귀포 시내에 들어서서 숙박업소를 잡기로 했다.

인근 시장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사서 밥을 해먹고

오랜만에 뜨시게 샤워를 쌰악 한 후

넓은 침대에 누워 캔맥주를 따며 텔레비전을 봤다.

그때까진, 그래도 좋았다.

 

<셋째날> 라이딩 : ?? 한 4-50km

지출 : 여관25000/김치1500+달걀1700+양파300+빵3000+담배4600+컵라면1800+망고하드2000/주상절리대4000

 

 

넷째날,

9월의 첫 날.

여행에 불운한 기운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 여행, 어딜 어떻게 가겠다는 준비없이 떠난 여행이었으니 코스 짜는 것부터

밥 지어먹는 것부터 시간이 빡빡했다.

이래서 한 바퀴 다 돌 수 있겠나...

이런 조급증이 들기 시작하면서 일이 더 커졌다.

마침 서귀포에 m군의 지인이 머물고 있다고 해서 숙소를 그쪽으로 알아보려 찾아갔다.

월평리.

전날 강정마을을 지나며 봤던 마을.

 

 그분은 제주 토박이면서 예술가시다.

문화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데, 우리도 내려와 살라고 자꾸 꼬시는... 흣.

하여간 월평에서 숙소를 잡을 수 있을까 했는데, 서귀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냥 다시 서귀포로 돌아가면 뭐하나.

이때 마음에 갈등이 때렸다.

'다리도 아픈데 쉴까? 아님 코스 하나라도 더 돌까?'

'이래가지구 동쪽을 마저 돌 수 있간? 그냥 숙소가 불안해도, 지인의 호의 무시하고  쭉 달려줄까?'

'비바람치는 해수욕장에서 잠 자도 안 무서워할 수 있나? 안 피곤하나?'

 

하여간에, 우린

바로 앞에 올레길7코스가 시작된다는 말에 별 선택의 여지없이 발길을 향했다.

짐을 그분 차에 실어 서귀포로 보내고,

나와 m은 월평포구에서 외돌개까지 7코스를 거꾸로 걸어가기로 했다.

 

...

...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다.

....

...

 

그러나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왜?

어쩌다가!!!!

슬프게도, 그 다음날에도 뭔가 일을 서두르다가 카메라 메모리에 있던 사진 중 100장이 날아가버렸다.

가장 아름다운 절경따라 걸으면서 여유롭게 찍어댄 그 100장.

월평포구-알강정-강정포구-풍림리조트-서건도-일강정길-법환포구-수봉로-속골-서귀포여고-돔베낭길-외돌개

총 15.1km의 5시간 코스.

이제 이름만 기억해야하나. 흙.

 

m의 필카에 몇 장의 사진이 담겨 있을거라 위로하지만,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냥 너무나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밖에.

그리고 남은 일정을 완전히 뒤흔든 하나의 비극.

 

내 다리가 고장났다.

서귀포여고에서 바로 버스 타고 돌아왔어야 했다.

오른쪽 무릎 안쪽 근육이 파열된 것 같았다.

무릎 안쪽이 무릎 앞쪽처럼 부어서 튀어올라왔다.

벌겋게 부은 다리는 이미 페달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m은 월평으로 돌아가 자전거를 몰고 서귀포로 오기로 했고,

난 절뚝이면서 외돌개에서 버스를 탔다.

 

다리를 다쳐서 더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밤에 서귀포에 있는 지인의 숙소는,

전날 우리가 묵었던 여관 근처 시장 안에 있었다.

*다방.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다방을 빌려 작업실로 쓰고 있었다.

지인과 함께 저녁을 먹으려 기다리는데, 이분 연락이 안되었다.

기다리다가 천지연에 다녀왔었다. 칠성사이다 배경사진으로 나올법한 그런 폭포였다.

지인은 연락이 안되고, 그냥 근처 밥집에 들어갔다.

'창훈이네'.

서귀포항 한쪽 끝에 있는 밥집인데, 5천원짜리 정식을 시키면 제육볶음과 쌈, 생선구이가 나온다. ㅎㅎ

우리는 순두부와 옥돔구이를 시켰었나?

그집의 자리젓을 잊을 수 없다.

밤이 되어 지인과 연락이 되었다.  서귀포항에서 술을 먹었다.

술을 계속 먹었다.

노래를 불렀다. 내가 술먹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면, 얼른 재우는 게 좋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새벽 3시가 되었다.

나중에 계산해보니 맥주 큐팩 산 돈만, 그것도 기억나는 것만  4만원을 썼더라. ㅜ,.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여행 이야기도 풀다보니 낭창한 밤이 되고 말았다.

이제와 생각이지만ㅡ 여행도 하나의 호흡이 있을터인데

 7박 8일간 여행의 중턱에서 완전히 페이스를 잃었다.

슬프고 괴로운 아침이 기다리고 있었다.

 

넷째날 : 걷기 15.1km와 약간의 라이딩.

지출 :  76,100원

천지연입장4000/떡갈비1500+차비2000+커피2300+담배4600+샌드위치3300+요구르트1400+저녁식사16000+맥주 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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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일기1- 탐라국여행

by Mallya  2009.08.30

 

 

8말 9초.

그 시간이 오긴 오더라.

지구가 반쪽이 나도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서른살 제주 여행.

실로 여행가기 직전 한 달간은 좀 과장해서, 지구 한 귀퉁이가 잘려나가기라도 한듯한 

여파 속을 헤매고 있었다.

아- 나는 갈거야, 떠날거야, 룰룰루-

 

8월 29일 토요일.

그렇게 떠났다. 2인용 자전거를 타고.

해방촌-고속터미널 구간을 페달을 밟고, 목포까지 버스에 자전거를 실어 간 후, 제주까지 승선.

새벽 6시에 출발해 저녁 8시에 제주항에 도착했다. 우웍. 빌어묵을 멀미를 참아가며. ㅎㅎ

항구 근처는 서울 번화가와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어둑한 가운데에도 호텔 주변 야자나무와 현무암 바닥재 등이 눈에 들어왔다. 오호, 제주.  

제주의 가로수와 보도블럭.

근처에서 순대국밥을 먹고 야영을 위해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을 물어물어 간 게 이호테우 해수욕장이었다.

이호동에 있으니 '이호'는 그렇다치고, '테우'는 뭐냐? '태우'도 아니고... (이건 나중에 밝혀진다)

하여간 이호테우  해수욕장의 소나무숲 야영장엔 두어팀 정도만 텐트를 쳤을 뿐 한가했다.

역시 여행은 성수기 근처의 비수기를 노려야한다. 그래야

부대시설들이 철거되지 않았으나 한가로이 이용할 수 있으니까. 물론 정취 역시 최고다.

여름의 끝자락. 파도는 아직 더운 바람과 함께 모래를 쓸고 갔다.

욕하며 싸우는 야영객 아저씨와 아줌마만 없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첫날> 라이딩 :12KM

지출 : 143,800원

(버스 37400/김밥 2500+음료 1500+샌드위치4500+담배2100/목포점심12000+목포과일막대3000/배 51600+3000/김밥3000+맥주3000+짱다리1200/제주 저녁9000/쌀9000+초장1000)

 

 

 

둘째날. 새벽같이 일어나 밥부터 짓다.

 

아직 그는 깨어나지 않은 새벽 6시.

난 뭔 지랄로 일찍 깨서 쌀씻고 국끓이고 방파제 구경하고 그러고 있었다.

저 뒤, 벌써 날밝은 바닷가.

 

이런 사진 흔하다고 지우라는 M을 뒤로하고

기어이 올리고 만다.

왜?

내가 얼마나 꿈꾸던 캠핑인데!!!!! 

스물 둘이었나 셋이었나, 혼자 4박 5일 여행한 것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런 짓거리.

 

하여간 밥먹고 해수욕장 한 바퀴 돌아본 후 바로 빡센 페달질에 돌입했다.

이호테우 해수욕장-곽지해수욕장-협재해수욕장-금능해수욕장...

이 북쪽 해안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자전거로 달릴 때, 맨 위에 올린 그 사진을 찍었다.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달리는 내내,

느므느므 행복했다.

말이 필요 없이, 속이 씨언해지는- 것도 있고. 

자전거 타고 달리면서 보면 5분 간격으로 해안의 모습이 싹싹 바뀌어 자주 서게 되었다.

어디는 해안이 모래사장인데, 좀 지나면 바위고, 좀 지나면 현무암이고, 좀 지나면 판암이고,

주상절리 깎인 육각모양 무늬들이 바닥을 이룬 해안가도 절경이고, 좀 가면 방파제 나오고,

코너 돌면 또 느낌이 달라지고.

오전 내내 비가 오다 말다 했고, 안개비를 등짝에 맞으며 가다 서다 했지만

해안가 풀밭의 묘하게 포근한 느낌,

그리고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들에서 풍기는 짠내가 우리를 인도하였다.

 

좀 남사스럽지만, 그 정취를 담은 사진 올려본다.

허수아비와 에꾸눈, 제주에 가다!

 

(주의!)인물에 집중 말고, 정취를 즐기시라.

 

 

 

 

 

 

 

 

 

 

 

 

 

 

ㅎㅎ. 정취만 느끼기는 좀 어려울 듯.

 

그렇게 서쪽으로 돌아 제주 유명 관광지가 모여있는 산 중턱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산쪽으로 들어서니, 식물들의 식생이 눈에 띄는데,

나무들이- 한 10미터 넘는 나무들이 잎사구를 팔랑거리면서 높고 치렁치렁하게 자라있고

검은 청록색 땡땡한 감귤이 징그럽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나 그나 약간은 충격이었다.

감귤이 저래 퍼래도 되는 것이냐-

어느 파충류 혹은 설치류 동물을 본듯 잠깐 얼었다 풀려났다.

 

그리고 관광지들을 쉭쉭 지나쳤다. 방립원, 생각하는정원 따위를 지나쳐

무인카페인 '오월의 꽃'에 갔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다가, 커피포트 여섯 개에 커피가루 다 넣어주고 물 넣어주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사업구상을 했다. 무인카페인데, 사람도 많고 장사도 잘 되는 듯.

이쁘게 만들기도 했거니와 편리하기도 하고,

발길 닿기 좋은 곳에 편안한 메뉴로 되어 있어 누구나 쉬어가기 좋은 곳.

여기 사진도 있으나 더더욱 남사스러워 올리지 않겠다.

 

가마오름까지 갔다가 입장료가 몇 천원 든다기에 자전거를 돌려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들렀으면 좋았을만한 곳이었다. 힉.

하여간 괜히 길만 잃고 뱅뱅 돌다가 다시 오월의 꽃 앞을 지나 '오 설록'에 갔다.

 

오, 설록이니, 녹차라떼와 녹차케익 한 조각 먹어줘야 하지 않은가.

배도 고팠거니와, 맛도 워낙 좋았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돈이... 아까웠다.

뭐, 우리와 같은 버렁뱅이들이 노니기엔 너무도 사치스럽고 잘 꾸며진 공간이랄까.

녹차의 맛에 취하기 보다는, 저 쟁반이 놓인 야외 테이블의 훌륭한 짜임을 뜯어보다가

"말*, 나 이거 만들어줘."

"... 어려워."

"이뿐데? 이거 만들기 어렵나?"

"씨*, 이거,.. 아후... 이거, 졸라... 어려워. 몬 만들어."

"그래. 얘네는 이런 거 밖에 두고 걍 테이블로 막 쓰네."

그러면서 씨불씨불 거리며 나와 다시 라이딩에 매진했다.

 

그렇게 산을 넘었다. 이젠 저녁먹고 텐트칠 시간.

그러나 우리의 야영지는 어디이며, 일용할 양식을 사먹을만한 곳은 또 어디뇨.

지도가 벌써 너덜너덜해졌지만, 대정읍 어딘가를 지나 큰 도로, 작은 도로, 몇 개의 3거리 4거리를 지나

길 끝, 서남쪽 해안가의 작은 마을로 진입, 정말로 길 끝에 위치한  '해녀회관'에 들어갔다.

그때 먹은 오분작뚝배기와 갈치국이

우리가 제주에서 먹은 최고의 음식이었다고 자부한다.

아침부터 저녁이 다 되도록 풀코스로 아름다웠던 풍광에 대박 뽀너스였다.

 

밥먹고 근처 하모해수욕장에 갔다.

하모해수욕장엔 아무도,

아, 무, 도

없었다. 우리만, 비바람 몰아치는 제주 서남쪽 해안의 해수욕장 화장실 앞에

텐트를 얹어놓고 히히히- 웃으며 맥주를 마셨드랬다.

 

 

 

그밤, 비바람 몰아치는데

자전거 젖지 말라고 쳐둔 판초우의가 펄럭이는 소리가 어찌나 무섭던지.

누군가 자꾸 우리 텐트를 '스윽' 만지고, 툭 치고 지나가는 것 같아서

나는 한 손에 랜턴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벌벌벌 떨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칼을 쥔 손아귀가 아프고, 힘이 빠지고, 지쳐서 잠들려 하던 찰라,

누군가 갑자기 텐트를 '팍' 쳤다. 

'누구야!'

그였다. 그가 모기를 잡으려 팔을 뻗은 것이었다.

 

조금 울고, 잤다.

 

<둘쩃날> 라이딩 : 66KM

지출 : 50,340원

(팔토시 4000+칫솔2700+참치캔2800+아이스크림2200/오월의꽃4000+담배2갑 4600+오설록11000+해녀회관16000/사과2800+구운김1050+맥주2360+두부1800+연양갱400+조미유부2100+초코다이제1080+칼450+참치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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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7박 8일간, 제주도 여행 다녀왔다.

 

어제 오후  목포항에 도착해 도시락을 까먹는데 

아흑, 이 정겨운 매연냄새-

M군이 버스 터미널에서 한겨례 21을 사왔는데

간만에 보는 세상 이야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역시 육지 것들은 육지에 살아야 혀--- "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

어쩌다보니, 일찍부터 계획했던 여행이 피난처럼 되어버렸지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달군의 명언처럼

그야말로 빡센 일정이었다.

 

그래도, 제주도의 티끌 한자락 만지작거리다 온 기분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텐트, 침낭, 옷가지를 빨래하고

버너 코펠을 정리했다.

이런 저런 짐정리를 하다보니, 정말로 집에 돌아온 기분.

아직까지 붕 뜬 마음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하룻밤 더 자고 나면 내 하루가 또렷해질 것이다.

 

떠나고 나면

머릿속에 우글거리던 것들이 차곡차곡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될 줄 알았는데

하루 하루 아름답고 놀라운 풍광 따라 몸이 초주검이 되도록 돌아다녔더니

몇 가지 명제들이 남고

낯선 이로부터 받은 갑작스런 질문들이 남고.

또 이호테우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마지막 일몰 광경이 남는다.

다랑쉬오름을 글으며 움푹 패인 오름의 안쪽을 들여다볼 때의 아찔함,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달릴 때, 우리를 멈추게 한 해안의 여러 무늬들,

티격태격 싸운 것이나 오른쪽 무릎 안쪽 근육이 찢어질 듯 땡기던 것이나

길 잘못들어 여러 차례 오르막을 오를 때 났던 신경질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얼마나 약해져있는지, 또 얼마만큼은 지혜로워졌는지 순간 새로 깨닫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갈급해하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또 물었지만

남는 건 제주도 날씨만큼이나 불투명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다.

 

김영갑갤러리에서 본 사진들은

모든 사물들이 영원하지 않음으로써 찬란한 한 순간을 사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누군가 내게 질문한 그것,

지금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할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이 순간이라고 말할 수밖엔 없을 것 같다.

(그것이 가장 흔한 클리셰라 할 지라도.)

 

 

내 생일이었던 어제

동생이 아기를 낳았다.

마지막 일몰을 보다가 소식을 들었다.

오늘 저녁엔 제주에서 사온 한라봉차 한 병을 들고

우연이 만들어낸 새 인연을 보러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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