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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에 가서 4

11/9일 일기

그저께 밤, 오랜만에 노들에 갔다. 그래봐야 2주만인데 꽤 오랜만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주에 한 번씩, 원래의 계획대로 오고 있는데 한 주 빼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어떻게 뭘 하고 지내고 계실까.


노들은 바쁘다.

밤낮으로 공부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고

교실과 복도와 휴게실에 사람들이 가득이다.

어떤 때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줄 서다가 그냥 참았다.


활동가/교사(이 분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야학 교사니까 교사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상근 활동가도 또 있으니까.)들은 이일 저일에 뛰어다닌다.

교사들은 다 내 나이 또래인 것 같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사람들.

이 사람들은 내가 보기엔 전천후 인간들의 집합소 같은 인상을 준다.

장애인들과 저렇게 소통하고 활동을 보조하는 것을 보면 걸림이 없어 보인다.

수업 준비를 하시는 것만 보더라도,

휠체어 들어가는 공간을 확보하고, 접이식 의자를 어떻게 놓을지 보고,

수업을 들으러 온 학생이 청각 장애인이면 노트북을 들고 들어와

강의 내용을 치고, 어떨 땐 모니터에 점자판이 뜨기도 한다. 와- 처음 봤다.

누워있는 분들이 칠판을 보기 편하도록 이동침대(?)의 높이를 조정해주기도 하고.

묻고, 듣고.


그에 비해 나는 무한한 걸림들을 겪는 중이다.

무엇보다, 성미가 급해 사람들의 말을 잘라먹는다.

친절이나 배려같은 건 개나 줘버려야 할... 아니 개한테도 쓸모없을 것이다.


강의실 문 앞에,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서/앉아 있다. 

이 분은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고 문 앞에 계시다.

지나가는 나로서는 장벽이다.

저기요, 저 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휠체어를 후진시키신다.

나는 쉭 빠져나간다.

그리고는 뒤가 찜찜하다. 물어볼까?

들어가시거나 나가시거나 하시지 왜 거기에 계세요?

출입하려는 사람 입장에서 그분은 문을 막고 계시는 건데

근데 사실 물어보고 싶은 건 저건데, 못 물어보겠다.

어떤 말로 물어야 할지 모든 게 조심스럽다.

나는 빠져나오면서, 웃음을 띠며(정말 웃는 얼굴을 만들어서) “들어가세요~(강의에~)”

라고 했지만, 더 길게 무슨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느린 걸 참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 온 것일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머리가 그런 걸 계산하기도 전에 몸이 이미 빠져나가고 귀가 닫히기 때문에

이렇게 한참 만에 돌아와서 생각하는 것이다.


차근히 따져본다.

느리다. 나보다 느리다. 내가 빠르다.

어떤 분들보다 내가 빠르게 말하고 빠르게 듣고 정리해버린다.

노들에는 교사도 있고 활동가도 있고 활동보조인도 있고 학생도 있는데

그러나 나에게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분절된다. 그것은 곧

활동가, 교사, 활동보조인/ 학생

의 이분화와 겹친다.

사실 비장애인과 내가 대화를 할 수 없지는 않다.

중요한 건 대화를 하려면 서로의 속도가 맞아야 한다는 것인데

장애와 비장애에서 내가 당장 넘지 못하는 것은 속도의 교차점이다.


배려가 아니라 개입을 하려 한다. 그게 무슨 말이든 상관없다.

혹자는 ‘친해지기’라고 하고 혹자는 ‘알기’라고도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어쨌든

좀 편하게 소통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그건 언제나 내가 능숙해져서 몸에 베지 않는 이상

힘을 이끌어올리고 뭔가 하려고 덤비는 일이다.


지난 시간에는 경미언니가 ‘시경’ 수업을 하셨다.

ppt 자료를 미리 뽑아온 학생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한 학생이 수업 중에, 자료를 넘기다가 의자 밑으로 자료를 떨어뜨린다.

발로 그걸 꺼내 올리려 하는 것 같은데, 잘 되지 않자 그냥 계신다.

나는, ‘저거 꺼내드리는 게 편하실까?’ 생각한다.

옆으로 가서 슬쩍 묻는다.

“자료 올려드릴까요?”

“아-니-여.”


한 박자 느린 템포로 ‘아’ 소리가 나고, 천천히 그 다음 음절이 들린다.

아니란다. 그래서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나는 속삭이듯 말하고, 그분은 속삭이시되 성량이 크시다.

살짝 뻘줌하다.

내가 불필요하게 간섭한 건가?

자료를 들어올리려고 하신 것 같은데 내가 불편해서 싫다 하신 건가?

하여간, 이런 생각은 다 쓸데없다.

아니라시니 아닌대로 두면 된다고 생각하고 강의를 계속 듣는다.


굳이 자연스러워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어색하면 어색한대로 그냥 흘려보내고

다시 또 말하고 듣고 한다.

대신,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고, 말하기 전에 좀더 적극적으로 듣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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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 투 브루(Brew) 비어!

그간,

혼자 두 번, 빈집 친구들과 여덟 번

맥주를 만들었다.

 

 

날이 갈수록 맥주는 맛있게 익고

허리는 휜다.

 

 

진보넷 10살 생일날 파티에

하우스 맥주 담가 팔 거라 했었는데

호프집 잡은 거 보니까 어떻게 알았는지 포기한 듯 하다.

맥주 담는 거

실은 겁나 빡세다.

 



 

맥주 마실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찍고 편집한 놈.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3주후에 걍 따라마시면 될 것 같지만,

험난한 코스가 남아있다.

바로, 병입.

 

 

위의 '카푸치노'를

일주일에서 열흘 간 상온에서 발효시킨 후, 병에 담아야 한다.

 

 

 

 

 

카페 홈에 올리기 위해 정성껏 편집한 놈.

병뚜껑 닫는 걸 하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서 만들었다.

 

그런데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온다.

빈병 확보를 위해 술을 열심히 마시는 빈집 사람들의 위장이 때로 안쓰럽기도 했지만

슬프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기력이 쇠한 걸까.

 

더욱이 자꾸 자꾸

줄어드는 맥주.

 

 

 

노가다꾼들의 허리 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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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에 가서 3

예수님도 좋아하셨다는 뒷풀이...

 

 

그날의 뒷풀이는 훌륭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웠다.
교장선생님과 강모 활동가와 홍모 활동가와 김모 학생과 여러 사람들,
그리고 연구실 사람들 넷이 대학로 거리를 거닐었다.
그러다 들어간 곳, 휠체어가 출입할 수 있는 소금구이집.

교장선생님이 쏘신다 했지만, 눈치를 살피다 젤 싼 삼겹살로 낙찰. ㅎㅎ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자리에서 마다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혼란스런 감정 때문에 채식을 접었던 것이 살짝쿵 떠올랐고,
미친듯이 먹었다.
나 채식 했던 사람 맞아? ㅡ,.ㅡ;;

 

하여간 먹으면서 옆에 있던 전** 활동가와 홍**활동가와 즐거운 대화.
어색한 자리에서 오가는 질문. 몇 살이심? 하시기에 맞춰 보셈~ 하면서
나이 맞추기 게임을 은근스레 즐기고 나서
본격적으로 현장-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집요하게 낱낱이 캐묻기 돌입!
내가 여기 온 것은 이런 날것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

 

어떠심?
너무너무 좋아요.
강의 들으며 불만 없으셨음?
아휴 좋죠.

 

이런 분위기는 곧 깨졌다.

실은, 나는 동의 안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활동가분들이나 학생분들은 괜찮으셨음?
스윽 들이밀었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 끄덕 하신다.
이러저러해서 좀 이해가... 근데 그 부분은...
강사들 앞에서 못했던 이야기도 슬쩍 내비치신다.
사실 이거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듣고도 싶었다. 그리고 전해줘야 할 것 같았다.
강사들도 뭔가 찜찜하면 이야기를 하고 듣고 해야 배울 수 있다면서 내가 밀어붙여버렸다. 틀린 이야기 아니니까. 그리고 강사인 분들은 나의 동료이기도 하니까.
이야기를 직접 서로 나눌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함부로 말 잘못 전하면 그게 왠 실례인가.
앞서 1탄의 댓글에서 그런 이야기 있었다.
“당신 지금 좀 실수 했어여”라고 센스 있게 말하는 것의 중대함.
나는? 과연? 센스가 있는가?

 

하여간 그런 이야기만 하자니 입도 근질거리고,
점점 술도 오르고 해서
박경석 교장샘도 있겠다- 활동가와 학생도 있겠다, 평상시 노들에 궁금했던 것들도
물어보았다.



먼저 제가 연구실에도 있지만, 실은 피자맵니다- 하고 신분을 밝히구선.
사람들이 피자매를 알았다. 신기했다. ㅎㅎ

 

노들이랑 장애여성 공감이랑 친하신가요?
대강 이런 내용이다. 그랬는데, 아뿔사- 교장샘이랑 공감대표님이랑 한 집에 사신단다. 헐.

 

노들은 몇 년동안 격렬하고 완고한 투쟁법으로 이름나있는 곳이고
장애여성 공감은 흔한 말로 ‘여성주의 감수성’을 기반으로 운동하는 곳이다.
세세히 깊히 알지는 못한 채 던진 질문이었지만 실은 계속 궁금했던 것이다.
두 쟁쟁한 장애인운동단체. 둘은 어떤 관계일까.

교장샘은 그 특유의 솔직하고 소탈한 방식으로 핵심적인 고민 지점을 짚어주셨다.

“아니, 노들에서 하는 운동 방식이 남성중심주의적이다, 감수성이 안맞다 자꾸 그러는데,
사실 정말 그렇다고 봐야하나, 난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자꾸,
우리가 몸을 쇠사슬로 묶고 버스 막아서고 이런 활동들 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비판한다고.
여성들도 쇠사슬 묶고 하는 거 같이 했었거든. 난 그걸 남성중심주의적이라고 하는 데 동의할 수 없어요.”

주저함이 없으시다. 옆에서는 활동가 분들은 웃으시면서 두 분 사이만 안좋다, 노들이랑 공감이랑은 사이 좋은데- 하셨다.

 

맞습니다. 저도 그런 고민이 있는데-
그래도 저는 여성들이 뭔가 다른 방식으로 느낀다고 하는 말도 진심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진짜 그 부분이 고민스런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주의/남성중심주의 이런 구도로 가서 문제가 진짜 짠 하고
잘 해결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 보이는 게 문제일 수는 있지만(살짝 흐려주는 멘트?)
여성들이 그 활동을 같이 한다고 해서 남성중심주의적 활동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그런 ‘감수성’의 문제는 현장에서 직접 이루어지는 활동,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 분위기,
사람들간의 관계 변화 등등 진짜 그곳에 직접 있지 않으면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같고요.
물론 그 안에 있더라도 다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이런 이야기도 나누고.

 

근데 참, 저분 대단하다 느껴지는 건- 그런 첨예한 지점에서 부딪칠 사람과 같이 산다는 거다.
대단들 하시다. 두 분 다.

피자매 활동하면서 여기 저기 연대하고 모든 여성들에게 쉽게, 누구나!
뭐 이런 걸 생각하게 되는데,
장애인분들 이동권 이야기할 때 문턱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대안생리대 운동 하면서도 문턱이 있거든요. 장애여성의 생리대는 어때야할까 하는 거에요.
솔직히 그래요. 예전에 장애여성 공감에 가서 워크샵을 한 적이 있는데, 저는 못가고 다른 활동가가 갔었거든요.
근데 그 친구 그만두었고, 그 때 워크샵 내용을 잘 전달받지 못해서 더 궁금하긴 한데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이건 일단, 장애여성들이 어떻게 생리를 하는지도 모르고요,
그게 젤 문제죠. 일단 몰라요, 전혀. 그리고 분명히 다를텐데-
바느질, 빨래- 이런 노동들에 대해 뭐라 말할 수도 없고, 그건 비장애여성에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래도 시간 내서 해보면 좋다,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말을 하고 나니, 좌중이 조용했다.
하지만 나를 미워하는 것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 열심히 눈으로 살피고....

 

이런 이야기까지는 안 했지만, 머릿 속에서는
비장애여성들과 하는 워크샵에서
이렇게 만들면 대충 ‘평균적’으로 쓸만하다- 하면서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데
장애 여성의 생리대는? 하는 고민이 맴돌고 있었다. 자꾸만 머릿속에서만 뱅뱅도는 질문들.
우리 생리가 다 천차만별이라서 각자 몸에 맞게 만들어 쓰시라 하지만
장애여성들에게도? 내 스스로 먼저 가능성을 묻게 되고 검열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중증지체장애여성일 경우, 빨래를 직접 하시기 힘들 것 같고 그럼 활동보조인이?

고백하는 수밖에. 사실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아직 만나지 못했어요. 라고.
그리고 공부해야하는데 뭘로 할지 모르겠다, 도와달라 했다.

뭘 보내주시겠다고 했는데- 다음날 바로 받았다. 엄청난 용량의 파일2개. ^^;;


그렇게 1차 뒷풀이가 끝나고
분위기가 좋아 2차를 갔다. 나는 1차에서 소주를 1병 쯤 마신 것 같은데-
에헤헤 기분 좋은 것이 그 정도였지 싶다.

2차 뒷풀이에서는 생맥주를 마셨다.
2차 이야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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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에 가서 2

반응이 바로 오셔서 간만에 곧바로 글을 올려본다. ㅎ

 

 

지금까지 세 번의 강의를 들었다.

공부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청년 예수

사실, 제목만 보면 뻔할 것 같은 주제와 소재들이다.

강사 자신에게도 익숙한 주제일 터이고

날마다 연구실에서 만나서 밥도 같이 먹고 세미나나 강의를 같이 하기도 하는 사람들의 강의.

그런데 노들에서는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다르다.

내가 1년을 연구실에 있으면서 한 번도 강의를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이어서.

강의를 들었더라도 전혀 다른 주제여서.

현장에서 낯선 신체의 사람들과 강의를 같이 들어서.

 

강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의 내용에 대해서야 너무 익숙할 수도 있겠지만,

마주치는 사람들의 자세와 표정이. 시선이 마주치지 않아서 반응을 알 수 없어 강사들은 당황하기도 하고.

칠판지우개가 물지우개라서 판서도 익숙치 않게 되고,

강의안을 죽 나눠주고 하는 게 아니라서 강의안을 그냥 읽는 형태가 아니라 말로 계속 풀어야 하고,

장애인이라는 표현, 신체활동에 대한 유비 등에 대한 설명들이 민감한 주제가 되고.

 

글로는 옮길 수도 전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사람들이 강의를 할 때의 표정과 에너지들,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사이에 오가는 교감을

어떻게 다 말하겠나. 모든 강의에서 그렇지 않은데, 노들에 가면 하여튼

좀 특별하게 그런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말하자면

아주 내 취향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가 정말 알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닌데

어떨 때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뻘게지면서

가슴이 뻑 아프고 눈물이 찡하게 온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황스럽다.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질문 시간.

 

"그런데요, 장애인도 죄인이라고 했는데요.

 예수는 그 사람들을 고쳐주고 성전에 가서 꼭 승인을 받게 했다면서요. 그런데,

사실 죄가 아니라고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죄인이 아님을 승인받게 하는 것보다..."

   -> 그래서 예수가 성전을 뒤집어 엎습니다....등등.

 

"자기를 넘어서라고 하는 종교인들도요, 여의도 무슨 교횐가? 거기 가면 목사들이 살쪘어요.

자기 먹을 것만 먹고, 남과 하나가 되려고 안 하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사실,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기독교가 요즘 '개독교'가 되어가고 있는데... 등등.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야 하나요, 집회를 가야 하나요?"

 -> ㅡ,.ㅡ;;  뭐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을 가겠지요.  ㅡ,.ㅡ;;;; 교회도 가고 집회도 가면 좋겠지만... 등등.

 

그렇게 된다. 노들야학 선생이자 활동가분들,  야학학생들, 활동보조인들 모두

끌끌 웃고, 살짝 긴장도 되고. 그리고 나도 뭔가 배웠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은 거리감이 있게 느껴졌던 사람들이 한 꺼풀 벗고 온다.

왜 사나, 왜 이렇게 찌질하게 사나, 그런 것들에 대해 자신을 학대하던 나에게도

작은 평온같은 것이 잠시 감돈다.

강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차거운 밤바람에서 부황 뜬 것 같은 시원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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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에 가서 1

지난 목요일, 노들야학에 갔다.
요즘 연구실에서 '현장인문학 프로젝트' 를 하고 있어
목요일마다 격주로 계속 쫒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노들야학이 보여줬던 전투성이 어디서 나오나도 궁금했고
최근 연구실 공부가 늘지 않는데 내가 공부로 뭘 해보겠다고 한다면
이곳만큼 좋을 곳이 없어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몇 번 노들을 다녀와서는, 그 이상이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주에는 '청년 예수-꼬뮨적 삶'을 주제로 한 연구원이 강의를 했다.
다른 연구원들의 강의를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게다가 예수라니, 알면서도 전혀 모르는
그런 인물이었기에 더 궁금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인문학강의 시리즈는 다른 곳의 강의보다 재미있다.
야학 분들은 현실정치적 맥락에서 이런 인문학적(신학적인 뉘앙스라기 보다) 주제들을
숭숭 구멍내고 질문들을 쏟아놓기 때문이다.
그 진지함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처음 노들에 갔을 때는,
 대학 초년에 장애인분들이 이동권투쟁하면서 점거했던 국가인권위 건물 9층인가를 방문했던 기억이 났다.
낯설기만 했던 중증지체장애인분들의 외모와 목소리와
바닥에 청테이프로 표시해둔 휠체어 통행선이라든가 하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
그 모든 걸 받아들여 이해하고 되도록 실수하지 말자, 하는 살짝 긴장된 태도로 방문했었던.
사람들이랑 몰려다니다가, 질문을 건네고 받는 중에도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소심한 방문을 마쳤다.
그리고는 1층으로 내려오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 중증장애인 한 분과 활동보조인분이 타고 계셨다.
내가 너무 경직되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9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시간도 어색하고 해서
그 중증장애인분에게 말을 걸어본다는게, 마침 휠체어 뒤에 수십개의 색색이 빨대가 꽂혀있는 것을 봤다.
"빨대가 참 많네요. 색색이..."
분위기가 이상했다. 왜 그러지?
"이 빨대 다 쓰시는 거에요?"
"..."
옆에 계시던 활동보조인께서 장애인분을 대신해 대답해주셨다. 이걸로 식사를 하신다고.

뭔지 모르게 무척 뻘쭘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은 별 거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별 일일 수도 있고.
문제는 내가 그 후로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해 조용히 입을 다물고
눈으로 현장을 마구 살피고 사람들에게 뒤에서 조용히 묻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게 나쁠 것까진 없지만, 이른바 '현장'이란 곳, 특히 장애라는 낯선 신체들을 만날 때 긴장도 하고 동시에 약간 두려움 같은 것도 따라다니는 걸 의식하게 되었다.

사실, '배려'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것도 그런 맥락이 있다.
상대를 모르는데 어떻게 배려가 걍 된단 말인가.
차라리 실수를 하더라도 직면해서 대화하고 친해지고 그러면서 혼나고 고치고 하는 게 필수다.
어쨌거나 이번 노들에 갈 때,
나는 그간 내가 했던 숱한 실수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실수 안 할 수 없는 거니 있는 그대로 만나자.'라는 마음을 갖고 갔다.
이 역시 긴장과 두려움의 표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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