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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일기 - 2MB와 광화문의 괴생명체

1신.

 

저녁 8시. 여느 때처럼, 연구실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사람들이 2MB 탄핵서명에 대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공부한답시고, 세상사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쇠고기 수입 협상 때문에 사람들이 탄핵 서명을 50만이 넘게 했다고.

다음주 세미나할 책을 펼쳐놓고 몇 장 읽다가

슬렁슬렁 구경차 아고라에 들어가보니

벌써 63만. 로긴을 하고 서명을 하고나서 관련 기사들을 띄워보다가

사진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덕거렸다.

어린 얼굴들이었다.

오마이뉴스 사진에는 청계광장을 불빛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좀 있으면 강좌 뒷풀이가 있고, 카페 일을 보긴 해야할텐데 하다가

짐도 안 챙기고 가방만 둘러매고 나갔다.

 

 

2신.

 

버스 안에서는 9시 뉴스가 흘러나왔다.

작게 들리는 라디오 소리에서도 쇠고기 협상에 대한 비판과

국민들의 반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나가던 버스는 시청 앞에서부터 멈췄다.

전경차가 일렬로 꼬리를 물고 있었고,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곡예운전 끝에 서울신문사 앞에 당도한 버스의 문이 열리자,

함성 소리와 구호 소리가 버스 안으로 쏟아져들어왔다.

 



 

전경차의 장벽을 넘어서

어머나, 많이 모였네... 하는 순간

아주 작은 스피커를 머리에 인 사람이 보였고

강기갑씨가 있었다.

그는 아까 와서 발언했던 것으로 인터넷에서 봤는데

여적 자리를 뜨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스피커 소리는 정말 코딱지만해, 10미터만 벗어나도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소리가 들리면 들리는 대로, 안들리면 안들리는 대로

함성을 지르고 구호를 외치고 2MB에 대한 분노와 조롱의 목소리들을

제각각 하고 있었다.

낯선 얼굴들. 깃발도 피켓도 안보이는 와중에 대학 초년생이나 됐을까 싶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한참을 깔깔거리며 듣고 보다가

사진을 찍으려 옆으로 빠지는데

왼쪽으로 또 작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역시나 작은 연단을 만들어놓고 자유발언 중이셨다.

이들이 다음카페 안티2MB로 추정되어 보였다.

서툴고 버벅이는 진행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

 

그런데 그 너머로 엄청난, 거대한 평면이 펼쳐져 있었다.

 

 

4신.

 

동아일보사 앞길을 가득 매운 촛불이 빼곡했다.

한쪽에는 다함께에서 작은 가판을 진행중이었고

그 한 구석에는 황우석을 지켜달라는 판넬을 세운 여성이 촛불 하나를 들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그야말로 어.마.어.마 했다.

 

당장 마주치는 사람들은

중고등학생들이 태반이었던 것 같고,

지나던 시민들, 퇴근하던 직장인들이 가세한 듯 보였다.

가만히 들어보니

소리들은 굽이굽이 제각각이었다.

큰 무더기 소리, 작은 무더기 소리, 혼자 하는 소리, 대여섯이 외치는 소리 등.

도대체 주최는 어디인가 싶어

청계광장 뿔이 있는 좀 높은 곳에 올라가 보았는데

이 무리 저 무리에서 함성과 구호가 시시 때때로 변하며 퍼져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구호는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는데,

한 사람이 말하면 그게 그 바깥으로 퍼져나가 커지고 작아지고

그런 식이었다. 무대를 찾는데

그런 게 안 보였다. 마이크 소리도, 들리지 않고 높이 솟은 곳 없이

지형지물에 올라가 초를 든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땅의 모양이 드러나는 형국이었다.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괴생명체의 출현.

 

아는 사람을 만났다.

지킴이였던 그도 지나다가 사람 많이 모인 것 같아 들렀다고 하는데,

이 집회 재밌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연단이 어디냐 물었더니 그게 없다고 했다.

동아일보사 저쪽 끝에서부터 오며 보는데 무대가 없다고.

 

 

"너나 먹어 소고기!"

"이명박, 잠이 오냐?"

"이명박, 꺼져버려!"

"조중동은 물러가라!"

"제가 한나라당 당원입니다... 쪽팔려 죽겠어요!... 제가 왜 그 책(이명박이 쓴)을 돈주고 샀는지..." 

 

휴대폰과 디카를 꺼내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려는데,

화질 좋고 밤에 잘 찍히는 카메라가 없는 게 그토록 아쉬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재밌었던 것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할지 알 수 없었던 것.

소리가 시작되는 지점을 잡을 수 없고 눈에 탁 띄는 것이 없으니

동영상 모드로 쭉 훑을 수밖에 없었다.

풍경을 담으려 해도 어느덧 소리들과 사람들에 둘러싸여있어 당황스러웠다고나 할까.

 

9시 50분경,

사람들의 목소리가 차츰 하나로 모였는데

그것은 "될 때까지 모입시다! 될 때까지 모입시다!" 였다.

"안전띠 같은 것을 두른 젊은 친구들이 10시 이후엔 불법됩니다. 제발 해산해주세요. 내일 7시에 다시 모여주세요."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사람들은 행진하듯 광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면서도 군데 군데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작은 모임을 이뤄 노래를 불렀다.

아침 이슬, 그리고 애국가.

 

 

5신.

 

돌아오는 길, 전경버스들이 차츰 움직이고 역시나 서울신문사 앞에서는 버스를 탈 수가 없을 듯했다.

시청 쪽으로 걸어올라가 삼성본관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뒤에 한 40대 회사원으로 추정되는 남성과 약간 어려보이는 여성이 모여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휴대폰에서는 "이명박은 물러가라!" 소리가 연발했다.

기다린지 한참만에 버스를 탔는데

앞에 앉은 두 아가씨들은 "어우, 내 얼굴도 찍혔을텐데."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서울역 앞을 지나자 "난 이제 롯데마트도 안 갈거야."라고 다짐하듯 말하다가

롯데마트 할인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하면서 계속 수다를 떨었다.

나는 그 아가씨들 얼굴은 못쳐다보고, 화려한 발가락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샌들 밖으로 나온 발톱에는 자주색 메니큐어가 발라져있었고

발톱 안쪽으로 보석같은 게 빛나고 있었다.

잠시 후, 버스가 YTN 건물 앞을 지나자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야, 전광판에, 쇠고기 협상..."하며 건물을 가리쳤다.

그 앞에 앉아있던 여자가 "뭐, 쇠고기 협상 뭐래?"하고 물으니

"어... 쇠고기 협상... 아, 지나갔다."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역시나 그 남자 얼굴은 못보고

여자의 뽀얀 옆얼굴과 앙증맞은 진주색 꽃 귀걸이만 바라보았다.

 

6신.

 

 

10시 반. 연구실로 돌아와 다시 뉴스들을 검색하니,

1만 3천이라 했다.

나도 한 만명쯤 된다고 생각은 했는데...

내일은 얼마나 재미있을지, 뭔일이 벌어질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왠지 익숙한 깃발이나 찌라시나 무대와 마이크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과연 이런 마음이 들어도 되는건가 하는 이상한 의구심과 함께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조마조마한 기분이 된다.

촛불을 들고 있던 그 시각, 이주노조위원장이 기습연행되었던 것을

방금 전 확인하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이 되어 오늘 밤도 잠은 쉽게 안오겠다 싶다.

 

 

내일도 카페 일 잠깐 땡땡이 치고 나갔다 와야할까.

 

 

 

<사진은 눈 감고 발로 찍었다고 생각하고 봐주십시오. >

 

 

 

 

내가 본 세 무더기 중 서울신문사 앞쪽

 

 

동영상은 안 올라가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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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봄비가 내린다.

웬일로 아침 일찍이 깨어나서는 후다닥 머리를 감고 옷을 챙겨 입고 눈썹을 그리고

얼른 연구실로 나왔다.

카페 손님들은 세미나실로 쫒고 챙겨온 CD를 크게 틀었다.

그리고 폴짝거리며 땀나도록 댄~스.

 

확실히, 계절이 오고 가는 일만큼 내 몸을 다시 느끼게 하는 일도 없다.

땀을 빼고는 갑자기 추워져 연구실에 있는 담요를 위 아래로 두르고 끙끙거리는 중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빈집 옥상.

 

 

아, 빈집 옥상에 상추 심었나?

 

봄비가 오기 하루 이틀 전에 씨를 쏘ㅑ악 뿌려야 되는데.

그래야 봄비 먹고 크는데.

 

몇일 전부터 허브 심을 궁리도 한층 커진다.

이사짐도 싸야 하고, 재활용센터에 가전제품도 넘겨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숙제도 해야하고 카페 일도 해야하고 피자매도 해야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일만큼은 때를 놓쳐서는 안되는데.

몸이 근질근질할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콧속이 말라 따가울 때 흙 속도 말라있고

요 때 씨를 미리 흙에 넣어주면 봄비가 오자마자 나처럼 춤추면서 싹을 틔웠을 거 아닌감.

 

벌써 비가 내리고 있다. 흠.

 

담주에 한 번 더 살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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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삐뚤어진 날

1. 바카디를 마신 것은 분명 실수였던 듯하다.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해가 떠오를 줄은.

하루 사이에 세상은 하얗게 변해버렸고

그밤 새벽 공기는 스산했다.

하긴, 실수가 한 두 번인가.

벌써부터 2월을 걱정하고 있다.

 

2. 언제 어디로 날아가버릴지 모르는 비행이다.

2월에 관한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오른다.

2월 *일. 물병자리인 그의 생일.

2월 ^일 27살, 내 삭발일.

2월 #일 불성실하게 가꿔오던 작은 꿈이 그대로 무너저내린 어떤 날.

 

언제나 겨울도 봄도 아닌 채로 애매하게

다른 달 보다 몇 일은 덜 된 채로 보내게 되는 달.

엄마가 나를 보고 말하듯, 덜 차서 태어난 놈.

덜떨어진다거나 비정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앞니나 송곳니 하나쯤 빠져버린 틈으로 시린 바람이 드나드는 것 같은 달.

2월의 구름. 2월의 달. 그런 것들이 올해는 어떻게 지나가고 어떻게 뜰까.

 

3.  들큰한 술에 취해 하루 종일 몸살을 앓고

몽롱한 기운으로 바닥에 납작 업드려 신을 찾았다.

아침에 오렌지주스 한 잔. 꿀 물 한 잔. 숭늉 한 대접, 밥알 몇 개를 먹고

학원에 갔다.

말하고 엎드리고 말하고 엎드리고

옆 선생을 따라 벌떡 일어나 키위 생과일주스를 사먹었다.

입이 풀려버려 이런 날은 인생에 대하여 몇 권의 소설책을 쓸 것도 같다.

몇 권의 만화책을 보았다.

니체를 읽어야 한다. 니체를.

부르튼 입술의 얇은 피부 조각을 손으로 뜯으며 말했다.

2월엔 니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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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꿈

1. 떠날 날을 상상해서일까.

고요한 방안에 들어서도 빽빽한 먼지 입자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부엌과 방.

문턱도 없이 대개는 열려있는 문 하나가 경계를 표시할 뿐인데도 이렇게 다르다니

신기할 뿐이다.

내 방에는 도대체 어떤 입자들이 어디서 이렇게 몰려와있는 것일까.

내가 방출하는 생체 먼지와 생체 가스들을 제외하고도 내 몸에서 나온 것 같지 않은

익숙치 않은 냄새들이 난다. (혹 저 익숙치 않은 냄새들도 내몸에서 나온 것인가? ㅡ,.ㅡ;;)

방에 있는 것이라곤 옷가지와 책들. 이불과 나무 가구들.

이것들도 호흡을 하겠지.

비어있다고는 하나 이 방은 어떤 흔적들과 그것들의 부패한 흔적들로 가득하다.

내 위장처럼 저 방도 이런 저런 흔적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녹이고 분해하고 발효시켜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저 방에 살아있는 한, 저 방은 계속 조금씩 무너지며 쌓여지며

그렇게 살아있을 것이다.

2. 어제, 꿈속에서 무너진 담장을 보았다.

무너진 담장은 희부연 시멘트 벽돌로 되어있었고

가까스로 서 있는 잔해는 내 키만한 높이에 두 팔 벌린 정도의 폭이었다.

나는 그 앞에 주저 앉아 울었다. 흐느끼다가 소리 내 엉엉 울었다.

현실에서 나는 무너진 담장 앞에 주저 앉아 울어본 적이 없다.

무너진 담장들을 본 적은 있지만, 그 중에 희부연 시멘트 벽돌로 되어있는 것이 있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침에 깨기 직전에 꾼 꿈이어서 오전 내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무슨 의미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이 고요함과는 분명 다른 냄새였다고 기억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사람이 떠난 빈방에는 가구들이나 옷가지, 책들이 있었지만

내 방보다는 눅진하거나 한결 가벼운 냄새가 났던 것 같다.

나무 가구들은 실제로 썩어가고 있었고 벽지와 책의 낱장들은 곰팡이들이 서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낡고 쓰러져가는 집이라도 사람이 들어가 살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가만 생각해보니, 시멘트 벽돌로 된 무너진 담장은 많이 봤을 것도 같다.

언제나 재개발로 몸살인 도시, 서울에 살고 있으니까.

3. 꿈속에서 통곡을 한 덕분인지,

어젯밤 스트레스로 터져버릴 것 같던 심정은 한결 잠잠해졌다.

내 뇌는 영민하게도 나의 의식이 잠드는 동안 격렬한 꿈을 꾸게 해,

고통의 분자들을 토해놓게 하고 기억의 농도를 엷게 희석시켜버렸다.

최근 몇일동안 꾸었던 잔혹극같은 꿈들에 감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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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 시음회

담주, 혹은 다담주 주말.
오래 묵혀뒀던 비주(秘酒) 시음회를 하려하오.
일전에 밝혀두었듯이
선착순 팔 명.
장소는 '헤븐'.
 
이번에 공개할 비주는 두 가지로 모두
강호에 무림고수 중 기인으로 알려진 쌍룡옹이 재료를 공수하였고 
수년간 각태일 계에서 독특한 지위를 점했던 김됸이 담근 것이다.
 
하나는 기존 레시피를 전혀 고려치 않고 만든,
오랜 비루의 전통을 깬 1빠 비루.
이 비루에 전해오는 설에 따르면, 양조자인 김됸씨가 그의 탄생일을 기념하며 도로 위를 뛰댕긴 밤에
달을 바라보며 몸을 정화한 후
탄산의 화려함을 과감히 제하고 삶의 허무와 쓸쓸함을 담아 만들었다는.
특징은 진한 그믐달 색, 죽은 효모취가 강하고 목에 걸림없이 넘어가는 부드러움.
 
또 하나는
김됸씨의 비루 제조 중기에 만든 수작으로
그의 제조 방식중에 특이하게도 정통법을 고수한 작품으로 매우 희귀하다.
양조자인 김됸씨는 이 비루에 이르러
잠을 설쳐가며 발효조에 붙어 살다시피 하며
끝내 효모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지에 도달했다 전해진다.
걸죽하고 진한 흑비루로 그 빛깔이 원유와 같다.
낙엽 태운 향과 초콜릿향이 은은하며 끝맛이 쓰다.
 
참가 자격은, '헤븐'을 알고 있는 자에 한정되며
신청자 중 연애인(연예인 아님)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신청은 리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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