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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6
    아! 노무현
    없는데요
  2. 2009/05/19
    古典(고전)을 읽고, 오늘을 통곡한다.
    없는데요
  3. 2009/05/12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우진교통
    없는데요
  4. 2009/05/05
    주공, 우진교통의 절규를 한귀로 흘리지 말라!
    없는데요

아! 노무현

아! 노무현

 

2003년 가을께 였다.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35M 고공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팔십 몇 만원. 근속 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10.17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 유서 중에서)

 

우리는 정말 그때, 많이 울었다.

 

그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해 관계 장관 담화문이 자신의 이런 뜻을 담지 못했다며 장관들을 심하게 질책했다고 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렇게 서럽게 죽어간 노동자의 죽음을 ‘투쟁수단’으로, ‘귀족노동자’로 조롱하며 외면했다.

 

그랬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론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시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 배달호(두산중공업), 김주익(한진중공업)이였다.

 

왜 그들이 먼저 떠올랐을까! 그만큼 깊은 상처가 남아있었기 때문일까! 그랬다. 바보 노무현, 그는 정말로 한때 노동자들과 친구였다. 소외된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친구였다.

 

그랬던 그였는데, 그가 어느날 대통령이라는 권자에 오른 순간 태도를 바꿨다. 그의 임기중에 10여명 남짓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비정규보호법’이라는 말로 누더기가 됐다.

 

사랑이 깊었다. 그만큼 실연의 상처도 컸다. 그랬던 그가 죽었다. 그도 분노의 대상이였고, 그의 죽음도 분노의 대상이였다. 왜냐하면, MB 정부의 정치적 타살이기에!

 

그의 죽음 초기에, 떠올랐던 배달호, 김주익에 대한 기억이 저녁 무렵 전혀 다른 감정으로 변해있었다. 노무현! 그는 정말 많은 것을 남겼다. 그가 남긴 큰 울림이 가슴한편으로 저며왔다.

 

이제, 그의 죽음에 대한 내 마음의 정리를 해야 한다. 나는 켤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숭배할수 없다. 그러나, 그의 ‘지역주의, 권의주의, 학벌, 세습족벌언론’에 대한 저항정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부정할수도 없다.

 

이제, 산자의 몫이다. 역사를 20년 전으로 돌이켜, 다시 민주주의를 부르짖게 만든,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를 빛나게 만드는 현실앞에서 살아남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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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고전)을 읽고, 오늘을 통곡한다.

 

古典(고전)을 읽고, 오늘을 통곡한다.


신영복 선생은  동양고전 해설서인 ‘강의’에서 시경(詩經) 위풍(魏風)편에 나오는 석서(碩鼠),- 즉 ‘큰 쥐’ 라는 시를 다음과 같이 풀어주셨다.


"쥐야 쥐야 큰 쥐야.

내 보리 먹지 마라.

오랫동안 너를 섬겼건만

너는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구나,

맹세코 너를 떠나

저 행복한 나라로 가리라.

착취가 없는 행복한 나라여.

이제 우리의 정의를 찾으리라."

 

여기서 큰 쥐는 부패한 고위관료요 간신배요 궁극적으로 국가를 지칭한다.


목민심서의 저자, 정약용은 그의 한시 '하일대주(夏日對酒)를 통해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생활수준이 유지될수 있도록 분배의 평등함’을 강조했다. “임금이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말하자면 부잣집 영감 같은 것. 영감 밭이 일백 두락이고 아들 열이 제각기 따로 산다면, 당연히 한 잡에 열 두락씩 주어 먹고 사는 형편을 같게 해야지. 교활한 녀석이 팔구십을 삼켜버리면 못난 자식은 곳간 늘 비기 마련”


그리고, 경제가 어렵고 민생고가 가중할 때,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는 상위계층의 양보를 강조했다.


“많고 많은 머리 검은 자들 똑같은 나라 백성들인데 ,

마땅히 무엇인가 거두어야 할 때면 부자들을 상대로 해야 옳지

어찌하여 피나게 긁어가는 일을  유독 힘 약한 무리에게만 하는가“


대한통운은 처음에 속해있던  택배노동자 70여명에게  수수료 30원 인상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를 뒤엎고 오히려 40원 인하를 요구했다. 택배노동자는 누구인가! 하루 14시간 일하고 한달수입 1백오십만원 가져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는 택배노동자(정부의 말은 빌면, 택배업을 하는 ‘개인사업주’)을 해고(정부의 말은 빌면 ‘계약해지’)했다.


그리고, 그들을 지원했던 화물연대 광주1지회장 박종태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거대자본의 횡포에 항의했다.


슬프고 또 슬픈일이다. 화물연대의 투쟁과 박종태씨의 죽음에 항의하는 수만의 외침이 대전시내를 가득메웠다. ‘큰쥐’는 이들을 가로막았고, 수만의 인파는 만장 깃발을 떼어내고, 죽봉(대통령의 말을 빌자면, ‘죽창’)으로 맞섰다. ‘큰쥐’는 기다렸다는 듯이, 457명을 연행하고, 3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리고, ‘큰쥐’는 다시 강조했다. 그리고 올해 제일의 국정과제는 ‘노동유연화’다. 부자가 아니라, 힘 약한 무리의 양보를 강조한 것이다.

다시, 정약의 시로 돌아가보자. 정약용은 한탄한다.


“뱃속에서 갓 태어난 어린 것도 백골이 진토가 된 사람도

그들 몸에 요역이 다 부과되어  곳곳에서 하늘에 울부짖고

성기까지 잘라버릴 정도니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결국, 고전을 읽고, 화물연대 택배노동자들의 오늘을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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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우진교통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우진교통


윤흥길씨의 장편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에 나오는 권씨.


출판사에 다니던 권씨는 집 장만을 해 볼 생각에 철거민 입주권을 얻어 광주 대단지에 20평을 분양받는다. 그러나, 시청은 이런 저런 명목으로 땅값을 올리고, 감당할수 없는 세금을 부과한다.


권씨의 집장만의 부푼 꿈은 곧 허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 개발이 사실은 그 안에 있던 원주민들의 돈을 빼앗고, 더불어 쫓아내기 위한 술책임을 알고 거대한 분노로 바뀐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소요를 일으키고,  권씨는 주동자로 지목되어 옥살이를 하게된다.


30년전에 쓰여진 이 소설의 권씨가 새삼 주목받는다.


철거민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극이후에, 원주민들을 내쫓는 재개발의 문제가 지적되면서부터 사람들은 다시, 3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권씨를 주목한다. 2억여원을 들여, 새로 치장한 호프집을 2천만원의 보상금만 받고 쫓겨나는 용산 철거민과 30여년전의 권씨. 그들의 삶은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나, 용산 참극이후에도 권씨의 삶은 내게 쉽게 다가오질 않았다. 여전히 생경했다. 그러나, 우진교통의 차고지문제에 대한 주공이 보이는 행태를 보면서 권씨의 삶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한주택공사, 청주동남지구 대규모 택지개발을 하면서 우진교통의 차고지를 강제수용할 예정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남고 싶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을 추가로 납부하라고 요구한다. 우진교통은 이에 반발한다. 도저히 나갈수 없는 처지이니, 그냥 있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주공은 손실을 이야기한다. 우진교통차고지를 개발에서 제외하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댄다. 무슨 손실인가! 개발로부터 얻을 이익을 얻지 못한댄다. 미래의 기대이익을 현실의 손실로 둔갑시키며 우진교통의 요구를 한방에 묵살한다.


미래의 기대이익과 현재 260여명의 생존권. 주공은 260여명의 생존권 대신에 개발이익을 선택했다.


30년전 권씨와 우진교통. 그들은 시간을 거슬러 어떻게 동일한가! 이들은 개발의 원주민이면서도 한푼의 개발이익도 얻지 못한다. 오히려 개발로 인해, 쫓겨날 처지이거나 쫓겨나게 된다. 재개발의 본질을 깨닫고 생존권을 건 싸움을 한다.


소설에 나오는 권씨의 삶이후 3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주공이 청주동남지구에서 보이고 있는 모습은 30년전의 그 시간이다.


그래서다. 주공 충북본부장에게 이 책을 권한다. 애면글면, 힘들게 살아가는 우진교통 아저씨들의 고달픈 처지를 조금이나나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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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 우진교통의 절규를 한귀로 흘리지 말라!

주공, 우진교통의 절규를 한귀로 흘리지 말라!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의 줄거리다. 여우는 생일에 두루미를 초대했다. 집으로 찾아온 두루미에게 여우는 납작한 접시에 콩국을 담아내었다. 여우는 혓바닥으로 국을 맛있게 먹었지만, 두루미는 접시에 부리만 쿡쿡 찍었을뿐 먹을수가 없었다. 여우는 두루미가 먹지못한 것까지 맛있게 먹어치웠다.

 

절치부심한 두루미가 이번에는 여우를 초대했다. 그리고 맛있는 생선국을 호리병속에 담아 내어놓았다.

두루미는 긴부리로 맛있게 국을 먹었지만, 여우는 하나도 먹을수가 없었다.

 

지난주 우진교통의 노동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문을 발표했다. 내용은 청주동남지구 택지개발을 시행하고 있는 대한주택공사의 행태가 꼭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와 같다는 거다.

 

지금까지 대한주택공사가 우진교통의 차고지 강제수용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안을 내놓았지만, 실상은 우진교통이 수용할수 없는 것들로만 죄다 구성하고, 상차림의 화려함만 선전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우진교통은 그달의 수입금가지고 간신히 그달 월급주고, 아끼고 아낀 돈으로 전 경영진이 남겨논 부채를 상환하는 실정인데, 20억에서 80억까지 소요되는 추가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260여 노동자와 1천여명의 가족의 이름으로 생존권을 지켜달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는 게 우진교통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아, 그런데 그들은 왜 생존권의 이름으로 호소하는 것일까!

 

그들은 간단하게 답한다. 첫째, 버스회사의 필요충분조건중의 하나가 차고지란다. 일정면적의 차고지가 없으면, 면허취소가 되고 그렇게 되면 우진교통이란 회사는 공중분해가 된다.

 

둘째, 우진교통의 특수성이다. 우진교통은 전 경영진하에서 막대한 부채와 체불임금이 발생했다. 그 부채를 상환하는 과정에서 작년 한해에만 추가로 6개월의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이렇게 임금과 퇴직금등총 60여억을 상회한다. 그런데, 이 유일한 담보가 차고지란다. 차고지가 없으면 이 유일한 담보가 없어지는 것이란다.

 

그래서, 우진교통의 차고지 문제는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라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인근 대전지역에서, 몇일전 한 노동자가 생존권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대한통운이라는 택배회사가 10만원 임금인상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70여명의 화물운송 노동자를 해고한 것이 이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거두게된 배경사연이다.

 

생존권이라는 것, 사실 거대한 그 무엇이 아니다. 하루 세끼 먹을 밥을 보장 받는 것, 바로 그 정도에서 출발한다. 월급쟁이 노동자에게 그 무엇이 있겠는가. 존재, 즉 일할수 있는 끈을 놓지 않고 내가 여기 노동의 현장에 그대로 있는 존재를 확인하는 것.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주공은 우진교통노동자들이 일할수 있게 해달라는 이 절규를 헛되이 들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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