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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詩 모음

 

 

 

 

별똥별 

 

- 정 호 승 -


밤의 몽유도원도 속으로 별똥별 하나 진다
몽유도원도 속에 쭈그리고 앉아 울던 사내
천천히 일어나 별똥별을 줍는다
사내여, 그 별을 나를 향해 던져다오
나는 그 별에 맞아 죽고 싶다

 

 

별똥별 

 

- 정 호 승 -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에
내가 너를 생각하는 줄
넌 모르지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는 순간에
내가 너의 눈물을 생각하는 줄
넌 모르지

내가 너의 눈물이 되어 떨어지는 줄
넌 모르지

 

 

 

미안하다

- 정 호 승 -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누더기


- 정 호 승 -



당신도 속초 바닷가를 혼자 헤맨 적이 있을 것이다
바다로 가지 않고
노천횟집 지붕 위를 맴도는 갈매기들과 하염없이 놀다가
저녁이 찾아오기도 전에 여관에 들어
벽에 옷을 걸어놓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잠은 이루지 못하고
휴대폰은 꺼놓고
우두커니 벽에 결어놓은 옷을 한없이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무인등대의 연분홍 불빛이 되어
한번쯤 오징어잡이배를 뜨겁게 껴안아본 적이 잇을 것이다
그러다가 먼동이 트고
설악이 걸어와 똑똑 여관의 창을 두드릴 때
당신도 설악의 품에 안겨 어깨를 들썩이며 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같이 묵묵히 등을 쓸어주는
설악의 말 없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은
바다가 보이는 여관방에 누더기 한 벌 걸어놓은 일이라고
누더기도 입으면 따뜻하다고

 

+_+_+_+_+_+_+_+_+_+_+_ +_+_+_+_+_+_+_+_+_+_+_ +_+_+_+_+_+_+_+_+_+_+_ 

 

맨 처음 정호승이란 시인을 알게된 것은 별똥별때문이었다.

PC통신 참세상 시절 친구 푸른노트가 내 아이디를 보고는

국문과답게 몇개의 시를 골라서는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정호승의 '별똥별'

 


그 친구의 푸른 마음이 좋았고 내게 권해 준

정호승의 날것처럼 치명적인 시어들도 맘에 들었다

그래서 솔직히 정호승을 흉내낸 습작도 몇개 있다

 

등단한지 35년이 되가는 정호승시인은

동년배의 것들과는 다른 젊은 치기가 있다

마치 일탈을 시작하는 중년

그 눈가에 덧칠하는 진한 화장보다도 더 자극적이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한풀 죽은 모습이다

조금 더 깊이가 있어졌다고 누구는 말할지 몰라도

내겐 실패한 사랑의 쓴맛이 느껴진다

 

그가 젊은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젊은 날의 시보다 나이 먹어 녹여낸 말들이 더 가슴에 와닿기에

정호승이란 시인이 고급 품격을 갖춘 것도

또 치열한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어서

더 많이 흉내내려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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