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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 화 (落 花)
그 많은 꽃들 망울이 터질 때는
하늘만 바라보며 구애 하더니
그 사랑 한달도 못 넘기고 사그라지네
이제는 한웅큼 머리카락 뽑혀나가 듯
바람 불 때마다 허공에 입맞춤하고
제 어미 뿌리내린 땅으로만 떨어져 뒹구네
저렇게 많은 아쉬움 남기고 내려왔으니
화사했던 꽃잎 까맣게 말라 비트러져야
온전히 썩어서 지난 흔적을 지우게 되네
계절 세 개 지나
또 다른 새 봄되어야
다시 욕심부려 그대를 만나겠네
구영택지지구
밤새 그리도
스산하게 흐르던
봄비 그치니
또 한번 해 떴다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
내뿜는 페인트 냄새
도토리 키재듯 뻗어가던 돈 냄새
한 풀 벗겨졌다 싶어도
대로변 고층 상가 빌딩 틈새마다
"절대 수익보장"
"빠른 입점이 더 큰 돈벌이"라
유혹하는 홍보맨들이 서성이고
고급 세단이 미끄러져 오면
구애의 목청 커진다
지난 한달, 전세살이라도
처음으로 새 아파트
그것도 고급브랜드 딱 붙어 있으니
괜히 머쓱 거렸고
누가 환호라도 던지면
괜히 '세입자'임을 강조했다
또 반대로 시큰둥거리면
28평이 대궐같다며
물어보지 않은 말까지 섞어 호들갑
봄햇살 덧칠해도
헐어 벗겨질
신분상승의 껍데기 아까워
무거운 줄 모르고 껴 입는다
상상의 매듭
당신 만난 첫 날부터
예상은 못해도 상상만 했어요
기나 긴 욕심의 끈이
보아뱀 뱃가죽처럼 불룩해져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우리 사이
나는 압정을 토하듯 구박했고
당신은 여운이 긴 별똥별처럼
고운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네요
그제서야
당신의 심장소리를 엿들었어요
나보다 한 발 더 동동거리는 떨림들
순결한 심장이 터져
진한 핏물이 흘러 넘치고
눈 앞이 온통 붉게 물들어 겁이 났어요
내가 더 많이 사랑하고
당신은 늘 야속한 사람이었는데
오로지 신과 나만 알고 있던
고르디우스 매듭처럼
두텁게 엉켜있던 쇠사슬도 녹았네요
상상이 일천 피스 퍼즐조각으로
흩어졌다 다시 모여 맨살을 드러내니
나는 수줍고 당신은 눈부셔요
내가 몇 곱절 더
당신을 사랑한다 믿었는데
늘 그렇게 상상했는데
하루 지내며 춥고 덥기를 반복하다
훌쩍 또 다른 하루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에 눌리다 보면
부질없다 여기는 한 숨도 절로 나온다
한 숨이 깔려서 안개가 되었다
천근의 무게로 바닥에서 꿈쩍 안하는
봄 햇살로는 가르지 못할
강철로 엮인 안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뿌리치지 못했다
몇 번 발을 떼려 힘줄을 키워보았지만
기름떨어진 난로마냥 푸석한 연기내다
제 풀에 지쳐버릴 걸 직감했다
환한 세상으로 나가는 문은
지옥문처럼 굳게 닫혀있고
십만년은 열리지 않았던 것 마냥
발갛게 녹이 슬어 있었다
용암이 되어 녹이고 싶었다
곰탕처럼 몸이 삭을 때까지 펄펄 끓어야 한다
그제야 한숨도 안개도 걷히고
봄의 한복판에 자립하리라 맘먹었다
- 봄날 허허로운 돋을 새김
봄 비 지나고 나면
꽃샘 바람 올까 지레 겁먹었는데
봄 햇살 토닥토닥
황사경보 걸린 도시에도
연초록 봄빛이 스며들고
한참을 뒤 쫓다 보면
누런 구름 뒤
쌀작 얼굴 내민 푸른 하늘
눈 시립도록 곱구나
날 위로하는구나
이미 와버린 반가운 계절
들떠서 미소짓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노란 나비 따라
어린 아이 마냥 종종걸음
혼자만의 설레임에 두근
지난 계절의
껍질안에서 아직 바둥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로하는
아... 봄바람
무제 01
- 구치소에서
거침없이 여문 바람
겨울 산 허리에 걸려서고
찌푸린 구름은 몸을 숙여
한바탕 제 설음 토해낸다
구치소 뒷 마당
빛바랜 시멘트 담장은 흠뻑 젖었고
검찰조사 3일 째
지장찍고 돌아오는 발걸음따라
괜한 한숨이 달려왔다
몇 평 남짓 테투리가 정해지면
포승줄 엮인 몸뚱이는
심장 밑둥부터 쉬이 지치고
고단했던 욕심이 접히니
미룬 숙제마냥 피곤이 늘어선다
나의 처음을
복기해가는 순간
앞 날의 계획은 부질없고
녹슨 창살 따라
흐르는 빗줄기만 더 굵어간다
무제 02
내 들어앉은 새로운 터는
울산구치소, 겨울비그치고
모범 2사1방 창살 가득
햇살로 도배를 한다
반투명 아크릴로 만든 창문 지나
나무바닥으로 넘혀 흐르고
아낙네 화사한 손길로
방안 가득 감싸 돌아 흩어져
하루 걸러 면회오는 아내의
환한 미소처럼 번지고
토닥 토닥 자장가되더니
지친 몸뚱이 꿈길로 내민다
귀하디 귀한 겨울 햇살
※ 이랜드투쟁으로 인해 구속되었던 기간 두달...
갇혀있는 몸이어도 늘 긴장하며 바쁘게 쫓겨 살던 때보다는 여유로와
미루었던 글들을 써나갈 줄 알았지만..
딱 2개.. 그것도 구속된 내 모습에 대한 푸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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