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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9
    난 내일 뭐하지... ...
    별똥별
  2. 2008/04/09
    뼈가 아픈 장애인 부모...
    별똥별
  3. 2008/04/09
    내가 새로 만든 명함
    별똥별
  4. 2007/10/10
    다시 스쿠터를 샀다...(2)
    별똥별
  5. 2007/02/21
    버스를 타면 나는 시인이 된다(2)
    별똥별
  6. 2007/02/04
    일곱살 아이와의 데이트(4)
    별똥별
  7. 2007/01/23
    나는 부품(2)
    별똥별
  8. 2007/01/22
    먼저 떠난 친구를 기억해
    별똥별
  9. 2007/01/12
    겨울 끝자락 홀로 서는 이들을 위한 반성문
    별똥별
  10. 2007/01/09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별똥별

난 내일 뭐하지... ...

선거 결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지만

난 개표 방송을 거의 빠짐없이 지켜봤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이 언제부터 보수의 색깔이었던가.. 되묻기도 하고..

민주당의 녹색을 보수에서 떼어 놓고 설명한는 선거방송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의 정당지지율 합이 8%가 되지 않았고

창조한국당을 섞어서 애써 후하게 봐줘도 겨우 10%라면..

10:90 의 양극화사회에서 90:10 의 보수정치가 만나는 아이러니를 절감한다.

 

또 연령별 정당지지도를 보면서

20, 30대 상관없이 이미 보수의 물결에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가 1000만을 육박한다면 투표인구의 최소한 40%이지만

우리들의 정치는 삶의 조건과는 정반대에 꽂혀 있음을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꺼구로 엎어진 풍경을 다시 재확인하였다.

 

진보정당들의 논평에서 투표율이 낮은 것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라 자위하지만

그 밑바탕에 얼마만큼의 자기 반성이 녹여 있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최선을 다한 사람들은 그 만큼의 위안을 가져 가겠지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쉼없는 자기 질문과 그 대답찾기에 시달린다.

 

원래 10년을 끊어서 나침판 바늘을 맞추었는데...

선거 주기인 4년동안 뭘 할까로 바뀌더니

올 해 남은 8개월로 줄더니

어느새 '난 내일 뭐하지'로 확실하게 좁혀 들어갔다.

 

원래 나라면 분위기 업 하기 위하여 없는 에너지라도 내서

괜찮다고 우리는 더 잘 할 수 있다고 신바람을 낼 꺼다.....

그런데 내일을 그러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사람들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만 내가 할 일을 찾을 것 같다.

이미 내가 알고 있고, 내가 가겠다고 생각하고 걸어온 그길을.. 되짚어보는 거다.

 

아...........

내일 오전, 오후 회의 두개가 문제구나..

어떻게 하면 과묵하게 귀만 열고 하루를 버틸 수 있을까

결국 그 것이 문제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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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아픈 장애인 부모...

어제 밤 늦게 까지

장애인부모회에서 일하는 참 좋은 이들과 술 한잔을 나누었다.

 

10명중 1명이 크고 작은 장애를 갖고 산다지만

중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세상의 벽이 너무도 높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심적 외상은 가늠키 어렵다.

 

아이를 키우면서 함께 죽으려고 아파트 베란다에 섰던 기억

장애아가 죽자 차라리 잘되었다고, 차별없는 세상으로 가라고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

아이와 함께 세상의 벽을 넘다보니 너무 힘들어서 뼈가 아프다고 말하는

푸념아닌 푸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게다가 복지라는 딱지속에 얼마나 따스한 기운이 스며있는지

피를 토하고, 격한 투쟁을 해야 겨우 귀를 기울여온 관료들과

이를 냉담히 쳐다보거나 애써 외면하는 이들이 아직은 더 많은 세상

 

TV 다큐를 보면서는 눈물을 흘렸다면

그 현실을 바꾸는 길에 서있는 이들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어야 한다.

 

오체불만족의 작가 오토다케 히로타다 처럼 장애를 갖고서도

의연히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 만큼

대부분은 장애를 겪기 때문에 출발선이 다르고 집 밖으로는 일년에 겨우 몇번 발걸음 떼는

보통의 중증 장애인의 삶에 햇살이 들 수 있기를 바란다.

 

 

또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선생님은 알고 있는데

낳고 키우면서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흘렸을

헬렌 켈러의 어머니는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문득 생각했다.

 

모든 장애인에게는 함께 살아가는 그 가족이 있고

그들의 고통까지도 안을 수 있는 세상이 진정 함께 사는 세상임을 깨달았다.

 

겪지 않으면 다 알지 못한다고 하지만

겪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기를

나역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조금 더 낮은 곳의 울림에 겸손해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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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로 만든 명함

명함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요사이 제일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10년동안 나와 함께 할 화두

'노동자 공동체' 를 담아서 만들었습니다

 

 

누구는 예쁘다 하고

누구는 할 짓 더럽게 없다고 구박합니다

그게 '내가 사는 길'이라 생각하니 핀잔어린 말도 달았습니다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선거운동 하는 국회의원 후보보다 더 공손하게

명함을 건네 줬습니다

 

 내가 직접 디자인한

이 작은 명함이 무슨 소용 있겠나 싶기도 하지만

내 맘이 조금은 묻어서 옮겨가길 바랍니다.

 

 

 

 



 

내가 노동하고 그 댓가로 밥먹고 사는 일터입니다. 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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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스쿠터를 샀다...

다시 스쿠터를 샀다...

사는 곳은 동쪽.. 일하는 곳은 남쪽..

그리고 매일 달려가 투쟁해야 할 곳은 북쪽..

 

버스를 타는 것보다

마음이 더 바빠져 택시 타기를 거듭했더니

얼마안되는 용돈은 바닥나고

질끈 눈 감고 1년만에 다시 스쿠터족으로 복귀

 

125cc 스쿠터.. 최대속도 140Km

오토바이 가게.. 사장이란 어색한 이름의 광재형은

원가로 가져가는 거라며 너털웃음짓는데

나는 용돈을 아껴 할부 메울 생각은 간데 없이

새로운 장난감을 구한 어린아이 마냥 신이 났다

 

엔진을 길들여야 한다고 며칠은 천천히 달리라 했지만

이틀만에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

전에 갔던 그 지름길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득의 만만.. 뿌듯해지는 걸 어쩔 수 없다 ㅎㅎ

 

지난 1년 동안 기름값은 훌쩍 뛰어 있었고

내가 가야 할 길도 더 넓어져 있다

 

조금은 더 천천히 살아가도 되겠지만

바삐 움직이는 세상을 멀뚱히 바라보다 보면

게으른 본능도 조금은 긴장된다

또 한켜씩 높게 쌓이는 일들, 책임들 그리고 또다른 미래들

 

스쿠터로 달리며 맞는 세상은 아직 시원하다

폐속 깊이 차고드는 가을 바람

 

빠라바라바라 바...  ^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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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면 나는 시인이 된다

 

맛깔난 언어가 매력인 어느 시인이 쓴

버스이야기를 읽고 난후 부터

나도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시인흉내를 내본다

 

이른 아침 또는 늦은 밤

집과 사무실을 오고가면서

때로는 선 채로, 운 좋은 날은 앉아서

정류장마다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 보면서

그네들 삶의 이력을 상상하면서

시를 쓴다

 

한껏 멋을 부려도 결국 교복에 갇힌

아이들을 보면서 내 어린시절 떠올리고

얼굴 가득 주름 패인 어르신들의

고단한 몸뚱이에서 나 역시 늙어질 것을 알고

맨뒷자리 몸을 붙여 앉아 제 짝의 손을 꼭 쥔

미혼의 한쌍을 훔쳐보며 나 또한 만들어 왔을 

사랑의 흔적을 더듬어보기 수줍어 미소짓는다

 

그러나 결국 돌아서 곱씹는 것은 

심장과 폐속 깊은 곳에서 두드리는

자신과의 대화와 반성 그리고 연민이다

 

포장된 길을 가면서도 울렁증이 생기고

만원버스 매캐한 기름내에 뿌연 매연 먼지가

코끝을 간지르면 멀미를 토해내듯  

머리속 뒹굴던 낱말들을 조립했다 부수기 여러번

 

목적지에 도착해 빨간 벨을 누르는 순간

나프탈렌 향처럼 흔적없이 사라져도

사춘기 문학소년시절 습작노트를 꺼내듯이 

오늘도 버스에 올라 얼치기 시인이라도 되본다



그 작고 하찮은 것들 / 안도현



버스를 기다려 본 사람은
주변의 아주 보잘 것 없는 것들을 기억한다

그런 사람들은 시골 차부의
유리창에 붙어 있는 세월의 빗물에 젖어
누렇게 빛이 바랜 버스 운행 시간표를 안다

때가 꼬질꼬질한 버스 좌석 덮개에다
자기의 호출번호를 적어놓고
애인을 구하고 싶어하는 소년들의 풋내나는 마음도 안다

그런 사람은 저물 무렵 주변의 나무들이 밤을 맞기 위해
어떤 빛깔의 옷으로 갈아 입는지도
낮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저녁 연기가 어떻게 마을을 감싸는지도 안다

그리고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버스는
천천히 오거나 늦는다는 것도 안다

작고 하찮은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가슴이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열심히 산다는 것 / 안도현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 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 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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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살 아이와의 데이트

영화표를 끊고나서

백화점 광장을 달려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본다

 

세상 가장 맑은 미소로

뛰놀다가도 아빠 있는 곳을

한번씩 확인하는 해바라기 웃음

 

눈가에 걸린 순수한 결정

저녁햇살로 모이더니

가지런한 옥수수 알갱이처럼 박혀온다

 

태어난 달이 늦어서   

또래들의 놀림받는 날

작은 몸뚱이로 울면서 들어오길 몇번

 

'네 몸엔 아름다운 씨앗이 있어

그게 자라면 씩씩한 어른이 된단다'

일러주자 그때서야 고개 끄덕였던 아이

 

이 여린 영혼이

큰 탈없이 커온 것에 감사하고

성년 되어 내 품을 벗어날 때까지

변함없이 평온하기를

 

혼돈의 세상

시기와 질투 그리고 경쟁이

거미줄로 엮이는 수많은 갈래에서

제 길 잃지 않고 커가기를

 

반나절을 단 둘이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

잠든 아이를 보듬고 서로의 심장박동을

맞추며 기도했다

 

사랑하는 아이야

네가 앞으로 겪을 시련과 아픔도

나 같지 않기를

아니 조금 더 현명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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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품

 

[ 나는 부품 ]

 

 


 분주한 출근 길
 빼곡히 채워진 성냥갑
 만원버스에 오른다

 

 빈자리 생기면
 왜그리 고마운지

 

 팽팽했던 실밥이
 스르르 풀려
 하얀 솜 드러내듯
 염치없이 몸을 기댄다
 
 서서 갈 때
 거슬리던 안내방송도
 자장가삼아 눈을 감고

 

 새벽녘 알람에 끊긴
 단꿈의 줄기 엮어보려
 어설픈 최면술사처럼 애쓴다

 

 아구대가리 벌어진 입으로
 빨려가는 플랑크톤은
 제 운명 모르는 알갱이 신세

 

 녹슬지 않는 쳇바퀴 실려
 최면과 주문 섞여
 몇 만번째 굴러가는 부품

 

 - 2007.01.23. 출근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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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친구를 기억해

먼저 떠난 친구를 기억해

 

며칠동안 그 날 꾸었던 꿈에 사로 잡혀 지냈다

너무 선명해서 현실과 구분이 안 갔던 시간들

어쩌면 마음 깊이 그 친구를 품고 살아왔던 게 아닐까

 

처음 만났던 때는 96년 초

파란 화면과 흰 글씨만으로도 모든 소통이 가능하다 여겼던

PC통신 참세상시절.. 같은 또래 친구들과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아가도

비슷한 꿈을 확인하고 응원해줄 수 있던 때였다

 

내 아이디는 별똥별, 그 친구의 아디는 루팡

독문과르 나왔고 대학시절에는 언론사에서 일했다

괄괄한 성격에 중성적인 느낌의 카리스마까지..

처음 만나는 유형의 여자친구였고 헤어지는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었다

 

내 절친한 후배의 애인이었고 내게는 대학졸업과 함께 만난 친구인지라

똑같은 학번에 비슷한 경험들이 쉽게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감동적인 수작을 뽑아낼 만큼의 문필력은 없었다

노래를 좋아했고 노래방에서는 늘 정해진 곡을 부르며 매번 눈물을 짓곤 했다

멀지 않은 동네에 살다보니 만날 때도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

서울을 한바퀴 돌아다니다 헤어지길 여러번.. 그만큼 정도 깊어져갔다

 

그 친구가 한국을 떠날 무렵

난 방송국에서 일하게 되어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대학로에 카페에서 점심과 커피한잔을 사달라고 해 만난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두려움없이 살아온 20대 중반에 처음 겪는 공통의 화두들

성공을 꿈꾸지 않았는데도 막연한 압박을 느끼고 있음을 재확인할 즈음 나에게 말했다

 

'나 다음주에 떠난다'

 

그 후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뒤늦게 들려온 소식은 귀국을 앞두고 사고를 당했다는 것

하지만 그 사고가 어떤 것이며 어떤 모습으로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물어보지 못했다 며칠 전 꿈에서도 그건 묻지 않았다

 

다만 환하게 웃는 모습

잠에서 깨어난 뒤 더 선명해지는 

지금은 그 모습을 그림으로 다 그려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진한 그리움으로 남겨졌다

 

만약 이 세상 다음이 있다면

내가 크게 자란 이후 단 한번도 믿지 않았던 그 곳이 만약 있다면

거기에서 만날 수 있겠지 아니 오히려 그러길 바라지

 

보고 싶다... 성미야 

 

 

- 2007.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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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끝자락 홀로 서는 이들을 위한 반성문

 

 

 [반 성 문]

 

      - 겨울 끝자락 홀로 서는 이들을 사랑한다

 

 

 홀로 길에 서게되면 
 오랜 거짓약속에 익숙했던
 검은 혀도  비로소 쉼을 허락받는다

 

 회색도시 한복판
 인공섬으로 꾸며진 공원
 윤기잃은 나무벤치라도 있어
 당겨진 활시위 처럼 뻣뻣한
 몸뚱이를 기대자마자 절로 눈이 감긴다


 길잃은 도시짐승들은
 늘 따뜻한 눈길 그리워 하고
 떼를 지어 나는 날짐승들은
 누가 먼저 채갈까 조바심으로
 모이가 될만한 것이면 쪼아댄다

 

 낯선도시도 8년이 지나면
 흘린 눈물의 무게만큼 정이 든다

 

 숨돌릴 틈 없이  매인 일에 쫓기고
 책임질 것들의 빈궁함을 견뎌내다보면
 묵묵히 일해왔다는 것이
 자기 몸을 뜯어먹고 허기 채우길
 반복해온 것이 아닐까  맴도는 질문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생각이 많은 만큼 주름이 생긴다
 고된 노동의 땀이 그 안에 차고
 생채기 투성인 삶에 시달린 만큼 그 골이 깊어진다

 

 정답이 아니어도 그것이 해답이라고 강요받고
 적당한 타협의 유혹과 이를 뿌리치지 못해 
 덧칠된 절망, 거짓변명도 한웅큼 쌓아왔다
 그래서 더욱 여물어진 알곡처럼
 고요한 빛으로 생명으로 심어진 사랑이 애처롭다

 

 내가  나를

 조금 더 사랑해야 했던 것처럼
 나를 아는 이들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려는 것은
 늘 속삭이고 다짐으로 그친 것을 부끄러워 함이다

 몇번을 갈아 탔을 뿐
 늘 쳇바퀴에 매여 있었던 날들의 회한이다

 

- 2007. 01. 12  겨울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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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시간이란 형틀에 놓이게 되는 순간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 잡힌 나그네처럼 바둥대어 왔다.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고

자신의 쇠침대에 눕혀놓고는 길면 잘라내고,

짧으면 늘여서 침대의 크기에 맞춤했던 강도 프로크루스테스..

그렇게 폭압적인 것들은 빠져나갈 길을 처음부터 막아놓고 기다린다

 

손이 잘 닿지 않았던 지난 몇개월동안 과연 얼마나 발버둥쳤던가

그새 많은 눈물과 웃음이 교대로 지나쳐왔다.

 

새벽녘부터 보이지 않는 실로 짜놓은 거미줄은

해가 중천에 떠도 조용한 함정일 뿐... 날개짓 하는 작은 짐승들에게는

떼어낼 수 없는 고통과 회한의 시간이었을테다

 

번잡한 것들을 정리하고 새책 새연필 새공책을 꺼내서

새해의 바램들을 다짐해 적어가던 때의 순박함을 떠올린다.

얼마 가지 않아도 그 때의 순진한 욕심이

지금 품고 있는 서투른 욕정보다는 몇배 진실하지 않은가

 

세상 모든 죄를 정죄하게 하는 샘물이 있다해도

내가 지은 것들을 다 깨끗게 하지 못할 지니

침묵하고 또 침묵하는 것으로 더 깊은 무덤을 잠시라도 더디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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