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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면 나는 시인이 된다

 

맛깔난 언어가 매력인 어느 시인이 쓴

버스이야기를 읽고 난후 부터

나도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시인흉내를 내본다

 

이른 아침 또는 늦은 밤

집과 사무실을 오고가면서

때로는 선 채로, 운 좋은 날은 앉아서

정류장마다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 보면서

그네들 삶의 이력을 상상하면서

시를 쓴다

 

한껏 멋을 부려도 결국 교복에 갇힌

아이들을 보면서 내 어린시절 떠올리고

얼굴 가득 주름 패인 어르신들의

고단한 몸뚱이에서 나 역시 늙어질 것을 알고

맨뒷자리 몸을 붙여 앉아 제 짝의 손을 꼭 쥔

미혼의 한쌍을 훔쳐보며 나 또한 만들어 왔을 

사랑의 흔적을 더듬어보기 수줍어 미소짓는다

 

그러나 결국 돌아서 곱씹는 것은 

심장과 폐속 깊은 곳에서 두드리는

자신과의 대화와 반성 그리고 연민이다

 

포장된 길을 가면서도 울렁증이 생기고

만원버스 매캐한 기름내에 뿌연 매연 먼지가

코끝을 간지르면 멀미를 토해내듯  

머리속 뒹굴던 낱말들을 조립했다 부수기 여러번

 

목적지에 도착해 빨간 벨을 누르는 순간

나프탈렌 향처럼 흔적없이 사라져도

사춘기 문학소년시절 습작노트를 꺼내듯이 

오늘도 버스에 올라 얼치기 시인이라도 되본다



그 작고 하찮은 것들 / 안도현



버스를 기다려 본 사람은
주변의 아주 보잘 것 없는 것들을 기억한다

그런 사람들은 시골 차부의
유리창에 붙어 있는 세월의 빗물에 젖어
누렇게 빛이 바랜 버스 운행 시간표를 안다

때가 꼬질꼬질한 버스 좌석 덮개에다
자기의 호출번호를 적어놓고
애인을 구하고 싶어하는 소년들의 풋내나는 마음도 안다

그런 사람은 저물 무렵 주변의 나무들이 밤을 맞기 위해
어떤 빛깔의 옷으로 갈아 입는지도
낮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저녁 연기가 어떻게 마을을 감싸는지도 안다

그리고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버스는
천천히 오거나 늦는다는 것도 안다

작고 하찮은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가슴이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열심히 산다는 것 / 안도현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 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 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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