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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Let Me Be Misunderstood / Nina Simon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 Nina Simone


Baby, you understand me now
If sometimes you see that I'm mad
Don't you know that no one alive can always be an angel?
When everything goes wrong you see some bad

Butl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You know sometimes baby I'm so carefree
Oh,with a joy that's hard to hide
And then sometimes again it seems that all I have is worry
And then you're bound  to see my other side

But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If I seem edgy, I want you to know
I never meant to take it out on you
Life has its problems and I get more than my share
But that's one thing I never mean to do 'cause I love you


Oh baby, I'm just human
Don't you know I have faults like anyone?
Sometimes I find myself alone regretting
Some little fooling thing, some simple thing that I've done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I try so hard
So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내 사랑, 이제 내가 좀 이해되시나요
내가 가끔 화를 내고 그러는 거 당신은 모르겠어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늘 천사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사람이 좀 못되지잖아요

나는 원래 심성이 못된 사람은 아니예요
제발, 날 오해하지 말아요

난 어떤 땐 아무 근심 걱정도 없이 기분 좋은 걸 감추지 못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떤 땐 걱정밖에 없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지요
그럼 당신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하지만 나 원래 심성이 못된 사람은 아니예요
제발, 날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나 내 신경이 날카로워 보일 땐, 당신은 이걸 알아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화풀이하려는게 아니라는 걸
살다보면 문제들이 있게 마련인데, 내겐 지나치게 많아요
하지만 절대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예요. 당신을 사랑하거든요


오, 내 사랑, 나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에요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도 결점들이 있다는 걸?
가끔은 나 혼자 후회하곤 해요
내가 저지른 사소한 일, 어리석은 일들 때문에

나 원래 심성이 못된 사람이 아니예요
오 제발, 날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나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니 날 오해하지 말아 줘요


 

Nina Simone(1933-2003, 미국)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이자 피아니스트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전설적 흑인 여가수 니나 시몬(Nina Simone).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달콤한 목소리의 이 정열적 흑인 여가수의 노래들은 전세계에 걸쳐 재즈와 블루스의 주류로 남아있음에도 불구, 조지 거쉰이 작곡한 ‘아이러브즈 유 포기’만이 미국에서의 그녀의 유일한 톱 40 히트곡이었다. 그녀는 지난 1959년 뮤지컬 ‘포기와 베스’의 이 노래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는 지난 1987년에 부른 ‘마이 베이비 저스트 케어즈 퍼 미’란 뜨거운 사랑의 발라드다. ‘솔의 대(大)여사제’란 별명이 붙은 시몬은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의 가난한 흑인가정의 7남매중 6째로, 유니스 캐서린 웨이먼이란 이름으로 출생했다. 4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기위해 뉴욕의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했던 그녀는 가족을 돕기위해 애틀랜틱 시티의 한 술집에서 반주자로 나서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니나 시몬으로 이름을 바꾼뒤 1950년대말부터 첫 음반을 내고 나이트클럽 가수로, 그리고 피아니스트, 편곡가, 작곡가로 활약했다. 그녀는 재즈, 블루스,솔로 가장 잘 알려졌지만, 브로드웨이 쇼의 인기곡들과 팝송, 포크송 등 다양한 노래를 불렀다. 밥 딜런, 비지스의 곡들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 불렀는데, 이중 특히 딜런의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을 그녀의 독특한 창법으로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시몬은 또 50∼60년대 ‘미시시피 갓댐’ ‘투 비영, 기프티드, 앤드 블랙’ 등을 불러 미국 흑인민권운동의 한 목소리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98년 한 인터뷰에서 “흑인으로서 기존체제에 맞서싸우는데 커다란 대가를 치렀다”며 미국내 인종차별이 “그 어느때보다 심하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에 대한 갈등으로 그녀는 결국 미국을 떠나 30년 가까이 방랑하게 된다. 시몬은 말년에도 콘서트에 많은 청중을 끌어모으는 가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쇠약했다. 오랜 방랑에서 미국에 돌아온 그녀는 2001년의 카네기홀 공연에서 부축을 받고서야 무대에 올랐고 무대뒤에서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녀는 향년 70세가 되던 2003년 4월 프랑스 마르세유 근교 까릴루소재 자택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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