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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Let Me Be Misunderstood / Nina Simon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 Nina Simone


Baby, you understand me now
If sometimes you see that I'm mad
Don't you know that no one alive can always be an angel?
When everything goes wrong you see some bad

Butl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You know sometimes baby I'm so carefree
Oh,with a joy that's hard to hide
And then sometimes again it seems that all I have is worry
And then you're bound  to see my other side

But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If I seem edgy, I want you to know
I never meant to take it out on you
Life has its problems and I get more than my share
But that's one thing I never mean to do 'cause I love you


Oh baby, I'm just human
Don't you know I have faults like anyone?
Sometimes I find myself alone regretting
Some little fooling thing, some simple thing that I've done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I try so hard
So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내 사랑, 이제 내가 좀 이해되시나요
내가 가끔 화를 내고 그러는 거 당신은 모르겠어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늘 천사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사람이 좀 못되지잖아요

나는 원래 심성이 못된 사람은 아니예요
제발, 날 오해하지 말아요

난 어떤 땐 아무 근심 걱정도 없이 기분 좋은 걸 감추지 못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떤 땐 걱정밖에 없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지요
그럼 당신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하지만 나 원래 심성이 못된 사람은 아니예요
제발, 날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나 내 신경이 날카로워 보일 땐, 당신은 이걸 알아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화풀이하려는게 아니라는 걸
살다보면 문제들이 있게 마련인데, 내겐 지나치게 많아요
하지만 절대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예요. 당신을 사랑하거든요


오, 내 사랑, 나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에요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도 결점들이 있다는 걸?
가끔은 나 혼자 후회하곤 해요
내가 저지른 사소한 일, 어리석은 일들 때문에

나 원래 심성이 못된 사람이 아니예요
오 제발, 날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나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니 날 오해하지 말아 줘요


 

Nina Simone(1933-2003, 미국)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이자 피아니스트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전설적 흑인 여가수 니나 시몬(Nina Simone).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달콤한 목소리의 이 정열적 흑인 여가수의 노래들은 전세계에 걸쳐 재즈와 블루스의 주류로 남아있음에도 불구, 조지 거쉰이 작곡한 ‘아이러브즈 유 포기’만이 미국에서의 그녀의 유일한 톱 40 히트곡이었다. 그녀는 지난 1959년 뮤지컬 ‘포기와 베스’의 이 노래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는 지난 1987년에 부른 ‘마이 베이비 저스트 케어즈 퍼 미’란 뜨거운 사랑의 발라드다. ‘솔의 대(大)여사제’란 별명이 붙은 시몬은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의 가난한 흑인가정의 7남매중 6째로, 유니스 캐서린 웨이먼이란 이름으로 출생했다. 4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기위해 뉴욕의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했던 그녀는 가족을 돕기위해 애틀랜틱 시티의 한 술집에서 반주자로 나서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니나 시몬으로 이름을 바꾼뒤 1950년대말부터 첫 음반을 내고 나이트클럽 가수로, 그리고 피아니스트, 편곡가, 작곡가로 활약했다. 그녀는 재즈, 블루스,솔로 가장 잘 알려졌지만, 브로드웨이 쇼의 인기곡들과 팝송, 포크송 등 다양한 노래를 불렀다. 밥 딜런, 비지스의 곡들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 불렀는데, 이중 특히 딜런의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을 그녀의 독특한 창법으로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시몬은 또 50∼60년대 ‘미시시피 갓댐’ ‘투 비영, 기프티드, 앤드 블랙’ 등을 불러 미국 흑인민권운동의 한 목소리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98년 한 인터뷰에서 “흑인으로서 기존체제에 맞서싸우는데 커다란 대가를 치렀다”며 미국내 인종차별이 “그 어느때보다 심하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에 대한 갈등으로 그녀는 결국 미국을 떠나 30년 가까이 방랑하게 된다. 시몬은 말년에도 콘서트에 많은 청중을 끌어모으는 가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쇠약했다. 오랜 방랑에서 미국에 돌아온 그녀는 2001년의 카네기홀 공연에서 부축을 받고서야 무대에 올랐고 무대뒤에서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녀는 향년 70세가 되던 2003년 4월 프랑스 마르세유 근교 까릴루소재 자택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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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노동자연합의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사회주의 노동자연합의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사실 동지들의 열정과 순수함에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높은 수준을 드러내는 강령이

제게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것이 또 하나의 장벽이 됩니다.

 

저 같은 사람은 동지들을 존경해도

동지들에 뜻에 동참해도, 실천에서 뒤걸음질쳐 부끄러운 길만 걷다

낙오하지 않을까 주춤하게 되는 겁니다.

 

앞으로 만들어갈 또는 걸어나갈 동지들의 그 길...

한번은 교차로에서든, 샛길에서는, 또는 대로에서는 만나고 싶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한국인권뉴스 2008. 2. 25]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출범,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할 터



최덕효(대표 겸 기자)

김수행 "계급투쟁이 득표공작 되는 정치는 안된다"



진보진영의 급진화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혁명적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건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공식 출범해 주목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23일 오후 서울 카톨릭노동사목회관에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식을 갖고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과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선전 선동할 것 △사회주의 혁명의 도구로 공장소조를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을 위해 분투할 것 △국제주의를 수호하고 모든 노동대중을 노동자계급이라는 단일한 대오로 결집시킬 것 △아래로부터 현장투쟁에 헌신하고 수세적 투쟁을 공세적 투쟁으로 조직할 것을 결의했다.



오세철 운영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자본과 적들에 맞서 그동안 혁명적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기본원칙을 다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고 술회하고, 현장동지들과 함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을 검증하는 대중투쟁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사회실천연구소 김수행 운영위원은 격려사에서 "머리만 쓰고 토론만 하면 뭐하냐"며 사회주의 혁명을 하자고 외치고 조직하는 실천을 주문하고, "계급투쟁이 득표공작 되는 정치는 안된다"면서 현행 의회주의의 한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경과보고를 통해 노동해방연대, 당건투, 사회주의정치연합, 울산노동자신문이 참여했으며, 이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해산하고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단일 대오로 모였음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전 세계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투사들에게 보내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연대 메시지"가 영문과 함께 발표됐다.

다음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출범선언문 전문이다.



출범선언문

오늘 우리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역사적인 출범을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당당하게 선언한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운동에 앞장서 헌신하려는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조직이다. 나아가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모든 사회적 억압과 착취를 근절시킨 새로운 인류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세계 노동자계급 운동의 한 부분이고자 한다.

우리가 건설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지난 10여 년 숱한 어려움과 탄압을 뚫고 전진해 온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마침내 일구어낸 소중한 결실이다. 1920년대 일제하로부터 1940년대 해방공간까지, 그리고 30년전의 단절을 뚫고 혁명 광주로 부활한 1980년대에, 이 땅에는 선배 사회주의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있었다.

우리는 스탈린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던 선배들의 사상은 철저히 극복하되, 노동자계급의 현실에 치열하게 응답하며 혁명 투쟁에 헌신하고자 했던 정신만큼은 소중하게 이어받을 것이다. 자본과 권력의 탄압으로 강요당한 단절을 넘어,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가슴 속에 자본주의 철폐와 노동자계급 해방의 참된 희망을 새롭게 아로새겨 나갈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진보적 역할을 마감한 자본주의는 점점 더 심화되는 모순 속에 헤어날 길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자신의 지배를 연장하려는 자본가들의 몸부림은 전 세계에 걸쳐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더욱 강화하고 전쟁과 반동의 먹구름으로 온 지구를 뒤덮어 가고 있다.

장차 세계 노동자혁명으로 자본주의 숨통을 끊고 사회주의로 전진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죽음 앞에 내몰린 자본쥐가 빚어내는 상상을 뛰어넘는 야만적인 살육과 억압에 유린당하고 말 것이다.

야만의 절망을 단호히 거부하고, 거짓 환상을 단호히 배격하며, 온갖 분열을 단호히 극복하여, 사회주의 희망을 쟁취하려고 달려 나가는 세계 노동자계급의 투쟁 속에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당당히 함께 할 것이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노동자계급 해방의 궁극적 전망을 바로 세우고 그 길을 현실에서 구체화해 나갈 것이다. 광범한 현장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운동의 주체로 일어서고 결집하는 틀로 굳세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노동자 대중의 투쟁이 자본주의에 대담하게 도전하는 참된 전망을 얻을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결합할 것이다.

전 세계 사회주의 노동자 운동과 긴밀한 연대를 건설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이러한 모든 노력 속에서 사회주의 노동자연합은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향해 힘차게 전진해 나갈 것이다.

[한국인권뉴스]

http://www.k-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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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소품 걸작들

 

출처 블로그 > 學古山房
원본 http://blog.naver.com/anathema81/110027945092

 

 

 

 

김홍도. 목동귀가도. 지본수묵담채, 서울 개인 소장.

 

김단원은 18세기 말, 정조 치세를 별같이 장식한 화원이다. 자고로 역사를 보면 국가적으로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한 시대에 문화와 예술도 절정으로 발달한다. 김단원은 조선시대의 화가로 그 절정에 우뚝선 유일무이한 화원이다. 김단원의 역사적 중요성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김단원은 그 손꼽히는 솜씨로 화면 위에서 노니는 화선의 경지를 보인 사람이다. 단원이 소소한 즐거움 속에서 그린 그림을 우리는 무거운 역사적 의미를 벗어놓고 즐겁게 보아야할 필요도 있다. 김단원은 정조의 배려를 받음인지, 무거운 화원업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던 듯, 여가를 즐기면서 그렸을 것으로 보이는 작은 그림들이 많이 남아있다. 공을 안들였다고 할 수 없는 작품이면서도, 단원의 이러한 소품 그림들에는 그 교묘함을 넘어서는 즐거움과 여유가 있다. 화원이라면 이렇게 전통대로 그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단원은 자신의 개성과 단원이 친숙하고 눈여겨본 것들을 오롯이 표현한 경우가 많다. 기량은 이미 익을대로 익어서 물이 흐르듯 붓이 손을 따른다. 사소한 신경에 대한 고뇌적인 집착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태평성대에 사소한 행복들이 스며든 삶에 대한 만족감이기도 하리라.

 

 그래서인지 단원의 그림 중에는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많다. 고느적하고 무한히 펼쳐지는 시골 들판의 풍경들이 그렇다. 단구 낙관이 있으므로 60 즈음에 그린 그림일듯 하다. 무심한 듯하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붓질이다. 그 속에 오랜 기량이 명쾌하게 녹아있다.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이 무엇일까? 맨앞 둔덕의 하엽준이 단원의 어느 그림보다도 맛깔난다. 음악의 선율이 지배하는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을 뒤로하고 해질녘 목동은 집으로 향하고 있다. 

 

 

김홍도. 총석정도. 을묘년화첩, 1795년, 지본담채, 23.3 x 27.7cm, 개인 소장.

 

 

 

김단원은 그의 나이 50이 되서,

그 꼼꼼하기 그지 없는 붓질이 다소 느슨해진다.

가득채우던 경물은 줄어들고 깍듯한 선은 적어진다. 

필치는 명쾌해지고 구도는 더욱 기묘하다. 

거기엔 비로소 새소리와 물소리가 노닌다. 

조선의 산천이 비로소 조선인의 손에서

조선의 가장 깊은 아름다움을 머금고 다시 태어났다.

 

 

김홍도. 백로도. 병진년화첩, 1796년, 지본담채, 26.7 x 31.6cm, 호암미술관 소장.

 

 

 

 근대화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땅들, 우리는 그 고느적한 습지들을 잃어버렸다.

내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북한을 다녀오고서 였다. 그 곳의

천연의 손대지 않은 땅들을 보면서 '김단원이 그린 것은 이 들녘이었구나.'

감탄하고 감탄했다. 하지만 이는 또 남한의 땅으로 돌아오면서

느낀 아쉬움이었으니, 우리의 풍경들은 왜이리 변한 것일까.

 

계속 이어지는 들녘과 작은 연못, 그리고

살찐 고기를 찾아 이곳에 몸담은 백로들이 이 그림의 전부이다.

참 아쉬운 것은 이러한 풍경들을 그린 조선화가는 김단원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조선사람들이 오고 가며 보아오던 평범한 풍경들이

이제 우리에게는 너무 값어치가 큰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단원이 손에 익은 붓을 써서 그린 평온하기 그지 없는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에 아무래도 불편한 마음 구석을 어쩔 수 없다.

다만 조선 땅의 아름다움과 김단원의 솜씨에 감탄하고 감탄할 뿐.  

 

 

 

김홍도. 비학도. 지본수묵담채, 27,5 x 33cm, 서울 개인 소장.

 

 

 갈필로 그려진 바위산과

키 작은 고목 왼편으로

두루미가 날아오른다.

아마도 단원은 참선중이었나보다.

비워둔 것이 허공이 아니라 

가득차서 날아오르니

선학임을 비로소 알겠다.

 

 

 

김홍도. 선유도. 지본담채, 32 x 42cm, 평양 조선미술관.

 

김단원의 그림은 산수와 풍속이 만난 명작이 많다.

깔끔한 구도며, 명료한 경물이 즐거운 선들 속에서 노랫소리가 가득하다.

저리 날아가는 3마리의 새가 그림에 보다 활력을 넣는 듯하다.

풍속이 들어간 단원 그림으로 50대 이후의 득의작이다.

 

 

 

김홍도. 송석원시사야연도. 1791년, 지본수묵담채, 25.5 x 32. 개인 소장.

 

 

 

 김홍도의 절정의 가장 입구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이미 기이한 구도며 가득한 시정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47세의 득의작이다.

 

 

김홍도. 좌수도해도. 지본담채, 26.6 x 38.4cm, 간송미술관 소장.

 

 달마는 어느새 아이가 되었다.

지푸라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며,

그만 곤해 잠들었다.

이 가득한 맑음은 무엇일까?

 김단원이 화선이라 함은

바로 이러한 그림들에서 당당해 지는 것이다. 

그 격식은 간략하게 하면서

그 뜻은 더 높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롭기 그지없는 파도, 

동자를 이룬 선들이며,

그 붓질 몇번이나 들어갔고

번개보다 느렸을까. 

그리고선 그림을 살려서

이토록  감동은 가득하니,

마치 도를 이룬 스님의 발걸음같다.

선적인 경지를 내포한

단원 말년 단구 낙관의 걸작이다.

 

 

 

김홍도. 청명낭화도. 지본수묵, 41.7 x 48cm, 간송미술관 소장.

 

 홍도라고 관서가 되어있는 특이한 그림이다.

그림을 채우고 있는 것은 파도와 안개일 뿐이다.

그 속에서 파도소리만 가득하다.

단원의 그림은 항상 가득히 자연의 소리들을 들려준다. 

 

 

 

 

 

 

 

p.s) 댓글을 읽어보다가 적어봅니다.

 사실 우리에겐 우리 과거의 그림들이 익숙치 않기 때문에 그 미감을 못느끼기 쉽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무리 뛰어난 현대화가도 시각적 예술성만에서라도 김홍도는 따라가기 힘들다고 봐요. 요즘 기량 좋은 젊은 화가분들많죠. 하지만 20~30대 때 김홍도만한 기량을 가진분은 못본거같아요. 특히 초상화, 영모화에서는 두드러지죠. 조선의 초상화는 현대의 누구도 재현을 못해내니까요. 제가 올린 위의 그림들은 그러한 꼼꼼한 초상화와 좀 다르죠. 더 꼼꼼하고 자세하고 반듯하게 그릴 수도 있는 거지만, 그렇게 그리면 그림의 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그리지 않은거에요. 이러한 미감에 대해서는, 유학, 도가 등 동양 고전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있어야 쉽게 느낄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조선사람을 현대의 동양화가들이 못따라오는 한가지 이유는, 조선처럼 현대가 일반적으로 붓을 쓰는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미 어려서부터 붓쓰는 것에 익숙했던 조선 사람들에 비해서, 그 붓질의 맛이 덜하기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붓을 안쓰다보니, 그 붓맛을 모르게 되고 자연 우리의 미감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예술로써의 회화는 공예가 아닙니다. 공예처럼, 세세하게 장식적이고 화려한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고흐, 모네, 피카소 등이 위대한 이유가 장식적이고 화려한 공예성을  추구한 데 있지 않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하지만 그런 피카소도 초기 뎃생이나, 유년 작품을 보면 치가 떨리도록 섬세하고 이상적입니다. 이 점에서는 김홍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홍도는 초년 그림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20대인데, 그때 그려진 군선도와 30~40대에 그려진 송하맹호도 등의 영모화는 김홍도 이래로 제대로 재현한 화가가 없을 정도로 그 실력이 발군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년가서 고흐, 피카소 등의 개성있는 화가들과 다름없이 김홍도도 자신의 세계를 연 것이죠.

 

 제가 올린 그림들은 주로 50대 이후 말년, 이러한 그림 수련의 최고경지에 이른 후, 유가나 도가의 사상처럼, 덜어낼 것을 덜어내고 즐거움과 화목함을 가득 표현해낸 그림들입니다. 온통 신경을 곤두세운 삼엄한 그림에서 화가가 일상의 어떠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김홍도는 홍도라는 그의 예명처럼 유학을 깊이 공부하고 불교와 도가학문에도 관심이 많았고 당시를 즐겨읽었던 사람입니다. 비록 출신은 중인이었으나, 선비나 다름없었던 것이죠. 이는 홍도 자신도 자인했을 뿐더러 주변사람들도 항시 찬탄했던 바입니다. 홍도는 자신이 공부한 것들을 말년에 와서 그림에 투영시켰던 것입니다. 단원의 그림은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그 의미를 투영하였기 때문에 더욱 훌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홍도는 기량도 기량이지만 그의 인품이 있기에 이러한 그림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죠. 당시 화원들이 대부분 화업에 치어 항시 정통적인 회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김홍도는 어찌된 영문인지 유독 독창적인 화법을 만들어내고, 독창적인 소재들을 많이 씁니다. 기존의 소재를 이용하면서도 상당히 그전과는 다른 그림을 그려냅니다. 이것은 김홍도가 당시에도 이미 인지도가 상당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화법이나 소재 면에서 자유로웠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김홍도 작품이 모조리다 훌륭하고 뛰어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너무도 위대한 그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슬픈 것은 정작 김홍도와 같은 땅에 사는 현대인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훌륭한것이 있는데도, 다른 나라 것보다 덜 좋다는 관념에 싸여서 비하하고 아쉬워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보았습니다. 식민지를 거치면서 느껴왔던 감정들이 여전히 존속되고 있는 것이죠. 우리 문화유산 모든게 다 훌륭하고 뛰어나고 부족한 점은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훌륭한 점이 있다면 적어도 그것이 어떻게 훌륭한지는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가요.

 

 우리 선조들과 문화유산에는 어떤 훌륭한 점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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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323화 <직장인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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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01, 02 - 구치소에서

무제 01

 

                       - 구치소에서

 

 

거침없이 여문 바람

겨울 산 허리에 걸려서고

찌푸린 구름은 몸을 숙여

한바탕 제 설음 토해낸다

 

구치소 뒷 마당

빛바랜 시멘트 담장은 흠뻑 젖었고

검찰조사 3일 째

지장찍고 돌아오는 발걸음따라

괜한 한숨이 달려왔다

 

몇 평 남짓 테투리가 정해지면

포승줄 엮인 몸뚱이는

심장 밑둥부터 쉬이 지치고

고단했던 욕심이 접히니

미룬 숙제마냥 피곤이 늘어선다

 

나의 처음을

복기해가는 순간

앞 날의 계획은 부질없고

녹슨 창살 따라

흐르는 빗줄기만 더 굵어간다

 

 

무제 02

 

 

내 들어앉은 새로운 터는

울산구치소, 겨울비그치고

모범 2사1방 창살 가득

햇살로 도배를 한다

반투명 아크릴로 만든 창문 지나

나무바닥으로 넘혀 흐르고

아낙네 화사한 손길로

방안 가득 감싸 돌아 흩어져

하루 걸러 면회오는 아내의

환한 미소처럼 번지고

토닥 토닥 자장가되더니

지친 몸뚱이 꿈길로 내민다

 

귀하디 귀한 겨울 햇살

 

 

※ 이랜드투쟁으로 인해 구속되었던 기간 두달...

   갇혀있는 몸이어도 늘 긴장하며 바쁘게 쫓겨 살던 때보다는 여유로와

    미루었던 글들을 써나갈 줄 알았지만..

    딱 2개.. 그것도 구속된 내 모습에 대한 푸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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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130화 <추억의 고무줄 놀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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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삼 - 정글고등학교 159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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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삼 - 정글고등학교 158 <잉그리쉬 헤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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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가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

1.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2.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하네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 같은 우리의 손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 내고 해방으로 나가자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3. 억세고 못 박혀 굳은 두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 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전진 또 전진

 

 

전세계 노동자들의 영혼이 숨쉬고 있는 노래, 바로 <인터내셔널가>이다.

외젠 포티에의 시에 누군가의 즉흥 오르간 연주과 씌워져 탄생한 이 곡은

파리코뮌을 시작으로, 유럽과 남미, 아시아 변혁의 과정에서 면면이 이어 내려오고 있다. 

 

이미 100년이란 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파리코뮌의 최후 바리케이트 안에서 이 노래를 나지막히 읖조리던 한 병사의 마음과, 오늘 날 새 세상을 바라며 주먹 불끈쥐며 이 노래를 부르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

 

많은 활동가들에게 인터내셔널가는 점차 추억이 되고 있는것 같다.

노동절, 그러니깐 메이데이마다 이 노래를 꼭 한 번은 불렀는데,

이제는 언제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다.

 

<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노래인만큼, 다양한 언어와 버전들로 만들어 지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좋은 베스트 곡들을 선정했으니, 가끔 생각 날때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변혁을 꿈꾸는 이들의 감수성을 나눠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1. Jazz 인터내셔널가


 

너무 좋죠? 이지리스닝입니다.

우리나라 민중가요도 다양한 버전으로 편곡되었으면 좋겠네요.

 

 

2. 피아노 솔로의 인터내셔널가

 

 

plsong에서 보니 "이 곡은 청년진보당(현 사회당)이 정치연수원을 개원하고 1기 간부학교를 마치고 난 졸업식때 공연된 것의 녹음입니다" 라고 설명이 붙어있네요. 매우 감미롭습니다.

 

 

3. 볼쇼이 합창단의 인터내셔널가

 

 

러시아 볼쇼이 합창단의 인터내셔널입니다. 매우 웅장합니다.

 

 

4. 중국의 인터내셔널가 (Rock ver.)

 

 

중국어가 좀 낯설긴 하지만, 경쾌합니다^^

중국의 유명한 록밴드라고 하던데...

 

 

5. 영화 <랜드앤프리덤>의 인터내셔널가

 

 

영국의 좌파감독 켄로치의 <랜드앤프리덤>에서 나온 인터내셔널입니다.

 

 

 

6. Hannes Wader의 인터내셔널가

 

 

들어본 외국 인터네셜널가 중 가장 멋진 노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기타 하나들 들고 마치 어느 선술집에 모여서 다같이 합창하는 분위기인데,

마지막의 구호합창이 정말 압권! 꼭 끝가지 들어보시길!

 

 

7. 최도은의 인터내셔널가(이게 최고!)

 

 

아무리 좋은 외국곡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가사가 들리는 한국어버전이 제일 귀에 익습니다^^;

그 중에 폭발력 있는 가창력의 민중가수 최도은씨의 인터내셔널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끔 집회에서 이 분의 노래를 들을때마다 온 몸에 전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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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달구경가자

휘영청 커다란 달이 둥둥 뜨면
 
달집은 모두의 소원을 묶어 타오르고
 
그 아래 모인 이들 모두 평등하여라
 
 
 
맘 깊이 비는 소원 모두 이루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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