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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정보문화진흥원의 정보화로 가는 길, 아름다운 e세상, 그리고 따뜻한 디지털 세상으로 불리는 월간지에 2년간 기고했던 글들

[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1 애플의 아이팟, 문화 현상으로 진화하다



2008년 1월호

트렌드라 하면 하나의 동향 혹은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아가는 흐름을 지칭한다. IT 트렌드는 새로이 개발된 기술에 대한 파악보단 그러한 기술이 어떻게 현실 사회, 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방점이 있다. 개개의 기술은 소비자가 등을 돌리면 쉽게 시장에서 사멸하고 그 기술 발전 과정을 간파하기 쉽지 않으나, 선도적 기술들의 사회문화적 영향력과 진화 방향 그리고 그 문화적 파급을 본다면 디지털 미래 예측력이 증가한다. 이는 IT 트렌드가 단지 기업 상품의 선전장이 아닌, 미래 문화의 방향과 보다 바람직한 정보사회의 미래 설계의 길잡이임을 뜻한다. 올 한 해 필자는 미국을 포함해 사회와 문화에 영향력을 미치고, 그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창조하는 정보통신기술의 경향을 살필 것이다. 이번 호는 애플의 얘기로 시작할까 한다.



소 니의 워크맨이 아날로그 오디오 문화의 전설로 기억된다면, 이젠 스티븐 잡스가 이끄는 애플사가 디지털 오디오 문화의 후임자를 자처한다. 워크맨처럼 아이팟(iPOD)은 한 컴퓨터사가 개발한 제품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아이팟은 소비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한다. 애플의 이 조그만 장치는 아이도그(iDog)와 같은 캐릭터 스피커, 패션 케이스 등 다양한 기능의 수많은 액세서리들의 인접 수요를 엮고, 새로운 소비 문화를 연다.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 이미 애플은, 한창 말 많던 누리꾼들의 ‘불법’ 음악공유 문화에 상업 모델을 적용시켜 성공했다. 그렇게 난리를 치며 음반판매 손실을 누리꾼에게 전가하던 저작권자와 막무가내로 음악을 내려받는 누리꾼 사이의 이해관계를 비집고, 애플은 곡당 저가의 요금으로 그리고 아무 기술적 잠금장치없이 내려받기가 가능한 아이튠 음악제공 서비스로 큰 성공을 이뤄냈다. 애플은 누리꾼의 공유 문화를 거스리지 않는 범위에서 돈을 챙기는 방법을 모색했다. 애플이 그 험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세에도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애플의 문화 적응력에 있다. 이는 경쟁사들에 비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모두 가격이 싸지도 않을 뿐더러 성능도 떨어지고 아이비엠과의 연동에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맥북 컴퓨터 시리즈 이후로 인텔칩을 장착해 호환이 되긴 하지만)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 샌 조깅을 하는 사람, 버스에서 창가를 내다보는 사람,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승객 등 어디서든 아이팟을 듣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초등학생부터 아줌마까지 아이팟을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 이는 애플만의 독특한 상품 디자인의 힘일 것이다. 신기능의 수많은 엠피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전화기와 결합한 엠피폰이 선보여도, 아이팟에 밀리는 것은 애플만이 지닌 묘한 매력 때문이다.

최근 만들어진 맥북 컴퓨터, 아이팟, 아이폰 등을 보면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향후 전자 제품의 디자인을 선도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경쟁사들이 부단히 노력하나 역부족인 그들만의 디자인은 곧 애플 마니아를 만들고, 아이비엠 가이와 애플 가이라는 이분법까지 만들어낸다. 디자인은 문화와 소통하는 영역이다. 소프트웨어에서 보이는 인터페이스의 창의성과 하드웨어에서 풍기는 세련됨은, 디지털 문화의 아이콘이 되고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연스레 합류한다. 센스있는 한국인들에게 물 건너온 아이팟은 신종 명품 액세서리인 양 목에 걸리고, 아이폰을 사기 위해 밤새 미국 매장 앞에서 진을 치는 진풍경까지 벌어진다. 오늘날 애플이 가진 마력이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제품 구매 결정은 단지 성능, 가격 혹은 주변기능의 탁월함으로만 성사되진 않는다. 기술 발달로 제품의 가격대가 떨어지면서, 대개의 조건은 엇비슷해져 가는 것이 현실이다. 디자인과 인터페이스에 승부를 거는 애플에게 승산이 있는 이유다. 적어도 전자기술은 성능은 기본에다 패션 장신구로 어필하고 그 스스로 문화로 진화하는 능력에 생존 조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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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ID 기술의 가능성에 도전하기 (따뜻한 디지털세상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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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ID와 함께한 제주 여행기

예정보다 늦게, 아주 한밤중에서야 비행기가 나를 제주 국제공항에 토해 놓았다. 내리자마자 RFID 꼬리표가 붙어있어 위치추적이 가능한 내 수하물 꾸러미를 찾으러 향했다. 수하물 스크린에 내 좌석번호가 뜨면서 내 물건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중간에 여행 짐이 바뀌어 다른 사람의 속옷을 들고 집에 들고와 어찌할까하던 곤혹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짐 주인의 신원 확인이 RFID 칩에 의해 실시간으로 대조되어 이루어지니 전혀 그럴 걱정은 없고, 통관을 위해 세관카드를 작성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가면서 꼬리표를 통관대에 장착된 리더기에 갖다대니 저절로 가방 속 내용물들에 뭐가 있는 지가 죽죽 입력되고, 신원이 일치되자 ‘통과’ 사인이 떨어진다. 해외에서 국내 이동통신 전화요금으로 로밍서비스를 받던 휴대폰의 배터리가 다 죽어가 공항내 잡화점에서 재충전하여 밖으로 나섰다.
공항 입구를 나오자마자 정체불명의 여러 곳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요샌 공간 위치추적을 통한 표적마케팅 업체들이 서로들 밀고당기는 경쟁이라, 도대체가 어찌 내가 있는 곳을 알아냈는지 주위 저렴한 호텔 가격 정보를 안내하는 메시지가 쉼없이 휴대전화 액정으로 넘쳐난다. 다들 살피려니 피곤이 밀려들어, 간단히 가격과 거리를 비교해 근처에 묵을 호텔 예약을 해놓았다.
비행기 이륙 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AT&T 무선 인터넷 이용권을 사서 랩탑을 이용해 예약했던 자동차 대여 서비스 차량 조회 내역도 휴대전화로 같이 날아 들어온다. 앞으로 며칠 제주도 해변 여러 곳을 다닐 참이라 아예 차를 공항에서 대여하기로 했다. 공항 렌터카 서비스에 도착했더니, 차량 인수 절차는 의외로 간단했다. 한밤중이라 직원도 없었다. 달랑 RFID 리더기 하나 매달려 있다. 거기다 내 휴대폰을 갖다대보니 신용카드 결제부터 예약 확인, 그리고 차량 상태를 알리는 출고 증명 내역을 기록한 영수증이 빠져나오고 자동차 키가 슬롯 박스 안에서 툭하고 떨어졌다. 차를 몰고 호텔에 들기 전 와인 한 병과 면도기를 사기로 했다.
요 사이 이탈리아 와인에 입맛을 들이면서 잠들기 전 꼭 와인을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RFID 칩에 저장된 상품 정보 덕분에 특정한 와인의 숙성도나 가격, 원산지, 전문가의 평가 등을 꼼꼼히 읽고 익히는 버릇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하고 떠나려는 차에,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
어제 그 편의점 직원이었다. 그 이는 무척 낯익은 내 서류가방을 들고 서 있다. 그 직원은 내가 위치한 곳을 찾기 위해 편의점 실내 감시 카메라로 얼굴을 확인하고, 그리고 이와 연동되어 있는 RFID 칩이 들어있는 면도기 케이스의 이동경로를 추적해 손쉽게 알아냈다고 말한다. 어제 편의점에서 면도기를 집으려다 몇 번이고 망설이던 기억이 퍼뜩 떠오른다. 하나는 쓰다 버려도 추적과는 상관없던 목욕탕 전용 일회용 면도기 한 다발, 다른 하나는 한 유럽 가전업체의 RFID 칩이 들어있던 면도기 사이에서 무엇을 살까 엄청난 갈등을 겪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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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에 있을 법한, 아니 우리 주위에서 이미 볼 수도 있는 RFID 기술 사례들을 마치 실화인양 살펴봤다. 분명 일부는 현실이 되어 우리 주위에 성큼 다가서 있다. 제주 국제공항의 수하물 처리 시스템 사례는 이미 응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RFID 칩으로 가방 내용물을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이는 또한 여러 복잡한 사생활 문제가 걸려 있기에, 실현 여부에 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휴대폰과 연결된 자동차 대여 서비스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고, 언젠가 실현될 수 있을 법한 얘기다. 면도기 칩으로 가방을 찾는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미 필립스가 물류관리 목적으로 이를 시행하고 있질 않은가? 예서 가방 주인을 찾는 설정은 선행으로 끝났지만, 물론 면도기 상품에 내장한 RFID 칩은 소비자의 위치 추적 등 프라이버시 논란을 낳기도 한다. 아무튼 이 새로운 기술은 앞으로 우리가 이동하는 공간 어디든 등장하고 삽입될 확률이 높다. 분명한 것은 이 새로운 기술이 삶의 편리를 높이고 인간과 사물, 사물들 스스로를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해 경제, 사회 각 영역에서 크게 이바지한다면, 우리의 정보환경에 제 2의 혁신을 일으킬 충분한 힘이 되리란 것이다. 이 글은 그러한 긍정의 기술적 가능성을 살펴보는데 집중해보고자 한다.         
우선 용어 정리를 시도하자면, 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는 한국말로 무선주파수 식별 혹은 인증으로 옮길 수 있다. 아직은 통일된 용어 없이 그저 영어의 이니셜을 쓰니 여기서도 그리 쓰도록 하자. RFID의 기본 원리는 특정 전파를 쏘면 대상물에 부착된 꼬리표(태그)로부터 되돌아오는 신호를 분석하여 이의 정보를 식별해내고 판독하는 것이다. 이 고유 전자 식별과 안테나 혹은 코일이란 것이 달려있는 요 꼬리표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추적하고 식별하고 그 안에 담겨진 정보 내용을 수집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RFID 기술의 응용 범위와 가용 능력이 무한하다.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RFID 기술들


미국과 유럽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주로 물류, 유통업무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도입한 RFID 기술은 이제 유비쿼터스 사회를 위한 기초로 각광받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교통카드와 고속도로 통행료 결제에 사용하는 하이패스 카드 등에는 RFID 스마트 칩들이 삽입되어 범용으로 쓰인다.
어디 구간에서 들어오고 나며, 얼마만큼의 시간을 쓰고 어떻게 구간 이동을 하고 있는 지를 집적하는데 이 기술만큼 편한 것이 없다. 최근 한 전시회에서, 한 국내 통신사는 휴대폰을 통해 양주와 식품의 상태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는 거의 모든 상거래 제품으로 확대될 수 있다. 대형 할인매장의 쇼핑 카트에 RFID 리더기를 각기 장착해, 쇼핑 물목의 정보를 확인하고 이를 개인 카트에 담음과 동시에 결제가 이뤄지는 때가 멀지 않았다.
또한 늦은 밤 귀가하는 시민들이 택시 정보를 확인하거나, 버스 정류장에 부착된 태그로부터 버스 정보를 제공받는 RFID 대중교통 서비스도 이미 속속 나오고 있다. 횡단보도와 도로변 장애물 발견시 위험을 알리는 장애인 전용 태그 서비스는 이미 일본에선 실용 단계에 있다. 우리도 이에 대한 응용이 필요하다. 최근 영국에선 축구 등 스포츠 시즌 티켓 구입시 RFID 칩이 들어있는 스마트카드를 판매한다고 한다. 관객 팬의 성향들과 주로 몰리는 구단의 주요 매치 등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우리에겐 몇 년 전부터 시작된 RFID 국가 시범사업도 주목할 만한 분야이다. 예컨대, 조달청의 물품관리 프로그램, 한국공항 공사의 항공수하물 추적통제 시스템, 산업자원부의 수출입 국가물류 인프라 지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광우병 등의 RFID 관리프로그램, 그리고 국방부의 탄약관리 프로그램은 이미 이 기술을 도입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IT분야의 신성장 동력이자 중요한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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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으로 RFID가 대접받고, 거기서 더 나아가 ‘U-라이프’ 실현으로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 사람과 사물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야심찬 국가 계획이 착착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 정부와 정보통신부의 유비쿼터스 코리아 (U-Korea) 계획안과 U센서 네트워크(USN)라는 대규모 지능형 네트워크 공간 모델에 대한 기대감에 부응해서 RFID 기술의 영역이 커지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공 공기관들의 효율성 도모와 함께, 경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RFID 기술 영역의 시장 가능성을 크게 점친다. 세계 시장규모가 2010년에 1백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라 하니 잠재력이 큰 영역이다. 이미 해외 거대 글로벌기업이 점차 인프라 솔루션 분야, 센서, 칩, 태그, 리더 등 분야별로 진출해가는 상황이지만, 그 틈새를 찾아 미들웨어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이 기술을 어느 나라보다 경제/사회 전반으로 확대할 때 물류비용 절감 효과가 막대하리라 본다. 초고속 통신망 사업에 연이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15년전쯤 국내 최초로 한국마사회가 마필 관리를 위해 경주용 말들에 RFID 꼬리표를 달면서 이의 기술적 효율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니, 지금의 기대치는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젠 낙농이나 야생 동물 등에 확대되고, 말없는 상품들과 대상물들에 적용되는 형국이니 RFID의 적용 범위는 끝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기술 능력의 확대로 RFID 칩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가격은 떨어지고 지능화하는 추세다. RFID기술의 발전 추이를 보면, 단순히 이 기술을 이용한 물품 인식에서, 현재의 감지 및 이동경로 추적 단계, 그리고 향후 사물들간에 이뤄지는 자율적인 인공지능 통신 단계로 점차 발전해 나갈 전망이다.  


선결되어야 할 문제들


RFID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RFID의 전파가 미치는 인체 위험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예측이 없다. 전파가 미치는 국민 건강 위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고 충분히 평가하고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 바코드를 대신해 사물들이 각자 고유의 변별력이 생기고, 정보가 작은 칩 속에 저장되고, 그 칩의 위치가 상시적으로 관찰 가능해지면 사회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최근 국내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들이 기술적으로 고도화되고 지능화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RFID 칩이 그 잠재적 복병이 될 확률이 크다. 누군가 RFID 칩을 내장한 대상물을 이동 중에도 소지한다면 그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예를 들어 최근 발급되는 미국 여권에 RFID 칩이 장착되고 있다. 그 안에 들어갈 정보의 축적도 문제지만, 개인은 고유의 식별자에 의해 이동 중에도 정보가 채집될 수 있다. 더 심한 경우 칩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몸속에 들어가 숨기도 한다. 몇 년 전 멕시코 정부가 법무장관을 비롯한 법무부 직원 수백여 명에게 신원확인용 RFID 칩을 이식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병원 환자들의 RFID 칩 이식은 아직도 미국에서 논란거리다.
기술적으로 일본의 히타치가 개발한 0.03 밀리미터의 초소형 RFID 칩인 일명 뮤-칩(μ-chip)은 128비트의 정보를 송수신할 수 있다 한다. 거의 눈에서 숨고 사라지는 기술의 수준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정보 저장능력을 고려해보면, 이는 지구상 거의 모든 대상물에 고유 아이디를 부여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 위험성을 쉽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 소형 칩은 연성 또한 강해 지폐에 내장할 수도 있다. 이미 유럽은 RFID 칩 내장형 지폐의 실제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다. 뮤-칩을 장착한 지폐가 리더 즉 인식기를 통해 스치기만 해도 지폐의 진위 여부를 정확히 판독할 수 있고, 더불어 지폐의 유통경로까지 추적해 음성 자금도 손쉽게 잡아낼 수 있다고 하니, 그의 순기능이 돋보인다.
뮤-칩에서 보듯, 하나의 기술에도 그 순기능과 역기능의 가능성이 항상 공존한다. 지난해 과기부의 RFID 기술영향평가 심의에서도 드러난 바이지만, 이 기술이 지닌 생산성과 국민 복지 향상과 기여와 함께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문제가 항시 상존한다. 이의 쓰임새에 따라 개인 프라이버시의 크나큰 멍에가 되기도 하고, 유통과 물류 효율을 높이고 사회의 비용을 절감하는 우리에게 필수의 성장 기술이 되기도 한다. 멕시코의 생체 칩 사례나 미국의 RFID 칩 여권은 분명히 옳은 방향에서 진행되는 국가 사업들의 사례들은 아니다. 오히려 인권 침해의 오해와 결과들을 낳을 공산이 크다. 우리는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곤란하다. 과기부의 권고에서처럼,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각 부처의 RFID 시범사업에 프라이버시 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결과제는 RFID 기술로 다치는 시민들 개개인 신상을 보호할 수 있는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고, 이 새로운 미래 기술의 순기능을 부각시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투자 등의 국가 공공사업의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버려진 칩들과 리더기 등 전자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기술과 환경 친화적인 재료를 개발해야 한다는 과기부의 제안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물의 정보화’를 위한 RFID 기술 


정통부는 ‘전자태그의 보급이 ‘사물의 정보화’를 위한 첫걸음’이라 제안한다. 매력적인 문구다. RFID 칩과 U센서 기술을 통해 인간이 사물들에게 말을 걸고, 사물들끼리 서로 연결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세상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지난 10여년간 정부 주도의 정보초고속망 사업이 정보 속도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정보화 위상을 키우는데 공헌했다면, U-코리아 사업의 일환으로 벌이는 RFID 주요 사업은 사물들을 상호 연결하고 멍청한 사물들을 똑똑하게 바꾸는데 또 한번 크게 이바지하리라 보인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그랬듯이 U-라이프를 위한 ‘사물의 정보화’는 우리에게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일상 공간 경험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기왕에 제대로 사물의 정보화 혁명을 일으키려면, 민간 유통, 물류 시장에서 RFID 기술의 성장을 독려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공공 부문에서 바람직한 RFID 적용 사례들이 많이 발굴돼야 할 것이다. 예컨대, 강서구청 등촌로의 가로수 5백여 그루에 지리정보시스템(GIS)과 RFID를 이용해 이의 위치, 수종, 병력 등을 모바일로 관리하는 첨단 가로수관리시스템 시범사업은 그 좋은 경우이다. 앞서 소개되었던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거리 공간에서의 위험 감지 반응 시스템도 집중적으로 논의되어야할 사안이다. 사물의 정보화가 시민 영역의 발전과 편의성을 도모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RFID 기술 영역에서도 성장과 복지가 같이 가야 한다. 그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는 최소화하는 노력이 경주돼야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사물의 정보화란 매력적 문구의 의미가 우리 모두에게 진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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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보는데서 만지는 기술로 : 기술 제어력 키우기

보는데서 만지는 기술로 : 기술 제어력 키우기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요며칠 도서관에 가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모처럼만에 내 구닥다리 랩탑을 끼고 앉아 유선 랜을 쓸 수 있는 인입선들이 모여있는 한쪽 구석에서 인터넷 서핑을 했었다. 흘낏 한번 주의를 둘러보니 당시 내 주위에 앉아있던 예닐곱명의 학생들은 거의 대다수가 컴퓨터 모양새도 훨씬 내 것에 비해 3, 4년 신형에다 무선 인터넷카드가 다들 장착된 랩탑들을 쓰고 있었다. 필자는 당연 무선 인터넷카드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 유선랜 케이블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중에 얻은 허무한 답은 컴퓨터 전원 공급처가 그 곳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전기 컨센트를 찾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무선 랩탑들이 헤쳐모여한 것이다. 거의 날아다니는 속도에 무선카드를 장착해 어디든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랩탑들이 전원을 찾아 모여드는 꼴을 상상해보라. 기가 막히기도 하거니와 뭔가 큰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얼마전 미국 동부를 비롯해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정전에 휩싸였던 당시, 휴대폰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교통대란이 벌어지면서 결국 인간의 두 다리로 맨하턴 다리를 빠져나가는 인파들의 모습과 비슷한 무기력의 정서가 감지된다. 인간이 쌓아온 기술의 '첨단'이란 수사가 단지 전기 정전으로 허무하게 무너져내린다. 그 어떤 외부의 도전에도 끄떡없다는 컴퓨터 서버들이 어느날 버그에 파죽지세로 무너지고 한 국가의 기간망을 속수무책으로 마비시킨다. 올해초 우리 대한민국의 얘기다. 정보입국의 호언장담이 몇 줄의 전자 버그에 꼴사납게 망신당한다. 정보기술에 대한 인간의 열광과 과신을 반대로 통제 불능 위기로 되갚는다. 기술 과신이 불러오는 해악과 부정적 결과는 주위에 부지기수다. 예컨대, 범죄 예방을 위해 CCTV는 사회를 수호하는 안전핀으로 격상된다. 올 한해 한참 공적 논쟁을 이끌었던 강남 주택지구의 폐쇄회로 텔레비전은 이제 전국 설치를 목표로 진군한다. 기술적 수단이 범죄를 줄일 수 있으리라는 통제욕에 눈멀어 광장에서 자행되는 시민들의 인권 침해는 아랑곳없다. 개인의 사생활은 무엇보다 정보기술이 지킬 것이라 맹신하는 부류는 프라이버시 향상 기술들(Privacy Enhancing Technologies: PETs)에 목숨건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필터링 소프트웨어와 차단 프로그램은 막아야 할 것은 못막고 쓸데없이 건강한 정보들만 수없이 다치게 한다. 외설을 지칭하는 키워드들로 무식하게 체로 걸러내 이에 맞지않는 멀쩡한 사이트들까지 황천에 보낸다. 9-11 동시다발테러 이후 테러분자를 잡겠다고 부쩍 수요가 늘어난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도 대표적인 기술 남용의 사례다. 위성으로 사람의 동작 패턴을 연구하고 각 인간이 지닌 고유의 동작에 의거 사람들을 분별하겠다는 논리나, 마구 수집된 개인 정보를 통계값으로 환산해 이례적인 수치가 발생하면 '테러분자'로 몰겠다는 구상 자체에는 인간 감정이라곤 전혀 없다. 혹 오류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이는 기계 오류에 불과하다. 이에 테러 혐의를 받고 영장없이 구금되고 다치는 사람의 권리엔 별 관심이 없다. CCTV, 프라이버시 기술, 데이터마이닝 같은 통제형 기술들이 오늘날 각광받는데는 자율의 조절 능력도 깊이도 없는 소비형 기술에 익숙한 현대인의 속성이 크게 가세한다. 기술 원리를 배우려 힘을 뺄 필요도 없다. 그저 편하게 이용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낡으면 새것으로 바꾸면 된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기술을 이렇듯 소비 대상으로 보도록 현대인들을 길들여왔다. 그러다보니 간단한 오류나 고장에도 대개는 속수무책이다. 만들어진 기술의 원리는 항상 봉합되어 감춰져 일반인들이 알기가 더욱 어렵다. 첨단 정보기술 장비들이 전원 문제에 속수무책이고, 버그에 인프라 서버가 불통이 되고, 통제형 기술이 낳는 심각한 인권 침해에 대비 못하는 현실은 기술에 대한 맹목, 본질적으론 시민과 분리된 기술의 엘리트화로 생긴다. 해가 거듭할수록 인간이 느끼는 기술에 대한 골은 갈수록 깊어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개인이 부품을 사서 쉽게 바꿔 끼우거나 손볼 수 있던 제품들도 이젠 개인이 접근하기에 불능에다 손쓰기도 힘들다. 소프트웨어 코드도 마찬가지다. 유저들이 개인적 용도로 쉽게 소스 코드를 바꿔 쓰던 시대는 갔다. 거대 기업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는 워낙 복잡해 개인이 어쩌기에 역부족에다 들여다보려해도 온갖 보안 코드에 각종 지적 재산권의 방벽이 버틴다. 보기만하고 만지지 못하는 현실에서 기술은 맹신의 대상으로 등극한다. 막연히 좋고 추종해야 할 첨단의 어떤 것으로만 다가온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기술도 오케이다. 동작 원리와 효과를 고려하지 않으니 기술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고 일이 크게 터지면 일반인은 고사하고 전문가도 허둥댄다. 운좋게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새 풍속도가 관찰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협업으로 일대일 파일 교환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공개 소스를 이용해 자유 소프트웨어를 제작한다. 기술 원리에 개입하고, 효과까지 스스로 통제하는 새로운 정보기술 이용자들이 슬슬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자본주의 기업들이 조장했던 기술 과신과 맹신을 일소하는, 일반 이용자들의 기술 통제력 상실을 메꿀 수 있는 아이디어가 과연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전기가 나가도 당황하지 않고, 버그에 허둥대지 않고, 통제 기술들에 열광하지 않는 미래는 일반 이용자들 곁으로 여러 기술 내용을 공개하고 그 기술을 놓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때 가능하다. 그렇지 못하면 통제 불능의 기술들이 언제 발광할지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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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교육 현장에 디지털같은 자유의 바람을

교육 현장에 디지털같은 자유의 바람을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자유, 상상, 실험. 인터넷의 덕목들이다. 이는 종교적 삼위일체마냥 뗄래야 뗄 수 없는 상 호 긴밀한 가치들이다. 이 셋 중 어느 하나가 절뚝거려도 그 사회의 정보 성숙도 수준은 한 참 밑돌 수 있다. 손발과 머리가 자유롭지 못하면 상상은 고사하고 연명하기 바쁘다. 상상력 이 억눌리면 당연 실험도 기능적이고 조잡하다. 자유가 억압받아 상상이 늘 가뭄인데 무슨 기발한 실험과 아이디어가 나오겠는가. 가만 우리 현실을 보자. 한창 텔레비전에서 수험생들의 '아침밥 먹이기'와 폭주족 학생들 을 선도하는 안전 '헬멧 씌우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는 교육 시장의 억압과 피말리는 경쟁 상황을 복구할 어떤 제도적 장치에 대한 눈꼽만큼의 기대치도 사라졌기에 나오는 슬픈 고백담이다. 자유를 갈구하는 아이들의 채워진 족쇄를 내칠 힘이 부족해 소시민들이 그저 멍든 상처만 어루만지는 꼴이었다. 그래서, 자유의 바람은 교실에 입성한 밥차의 향긋한 밥 냄새나 헬멧을 쓰고 퇴장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기대해선 곤란하다. 한창 바람의 공부하는 학생들에 신선한 자유를 주는 것은 전적으로 사회의 책임이다. 날 아다니는 구둣발에 채이면서 자란 세대는 정신적으로 공황에다 불구가 된다. 불구가 된 상 상력으로 어디 피부 속에 실리콘칩을 심어 인터넷으로 감정 상황을 확인하는 장치를 만들 고, 의식의 확장 실험을 하기 위해 인조 로봇 팔을 만들고, 몸에 차는 컴퓨터를 개발해 늘상 입고 다니는 등의 기발한 상상과 실험이 나오겠는가. 제도권 교육은 학생들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자유를 체험한 그들이 성장해 다시 토해내 는 가치가 바로 그 사회의 부가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자유의 흡수력은 나이에 따라 틀리다. 자유, 상상, 실험, 뭐든 빠를수록 좋다. 인터넷의 덕목은 아이들의 교육 현장에 서 발휘돼야 한다. 의무 교육기관에서 당장 어려우면 보다 환경 조정이 유리한 대학 강의실 에서 먼저 자유의 덕목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대학생들은 학원 특강에 길들여져 그저 교수의 어록들을 줄줄이 받아적기에 사투 한다. 교수들도 여전히 불사초를 먹었는지 가는 세월을 막고 강의가 한결같다. 미술교사의 예술이 '빤스' 벗었다는 이유로 외설이 되고, 대학 강사의 특이한 예술 강의가 찬반 격론의 화두가 되는 우리의 현실에선 자유의 바람은 아직 낯설다. 줄쳐진 길에 따라 안가고 금밟고 넘어가 권위에 도전하면 온갖 시련을 감수해야 한다. 움치고 뛰는 것도 사방 제재니 상상력 이 제대로 발동될 리가 없다. 가뭄에 콩나듯, 제대로 된 상상력의 소유자가 나타나도 어느새 억압과 권위의 칼날에 싹둑 잘려나가기 일쑤다. 다 지난 친일을 들췄다 해서, 재단의 권위를 업신여겨서, 교수의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 해서, 미국을 알게 했다 해서 쫓겨나는 자유의 정 신을 가진 학생들과 학자들이 부지기수다. 판을 깨기에 현실이 가하는 힘이 너무 담대해 보 인다. 정장을 갖춰 입지 않았다 해서, 야외 학습 한번 했다해서 선생과 대학 강사가 경고먹는 비정상적 분위기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것이 오늘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면 미래는 없다. 학교에서 구둣발과 매로 숱하게 얻어맞고 짓눌려 자라온 나같은 불쌍한 이들은 평생 창의력 과 무관하게 산다. 외국 교수들을 처음 보고 순간적으로 머리부터 숙이고 움츠러드는 반사 능력을 보고 있자면, 이것이 우리 교육이 내게 남긴 유일한 자랑거리같아 씁쓸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는 동방 예의지국 어쩌구하는 것과 다른, 억압적 현실이 남긴 원초적 본능 의 허접 쓰레기에 불과하다. 외국 명문 교육 기관, 산업 현장 시찰입네 하고 나이 지긋한 행정관료나 교육자들을 내 보내 겉만 핥고 오는 관행도 그만둬야 한다. 시찰을 하더라도 교육 철학, 커리큘럼, 교수법 등이 미시적으로 관찰돼야 뭔가 소득이 있다. 그 곳에서 학생들이 누리는 자유의 정서, 상상 력의 만개, 그리고 늘 새로운 실험 정신이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면 말짱 시간 낭비에 혈세 축내는 여행길이다. 더불어 우리 교육 현장의 근본을 못보고 남의 성과에 입만 벌려봐야 상처받는 것은 또 다시 우리 아이들이다. 아직 희망의 거처는 존재한다. 딱 두 곳이다. 학생과 선생님, 특히 대학에서는 대학 강사. 학생은 뭐가 됐든 자유의 바람을 만끽하려는 주체이기에 항상 열려 있다. 이들의 자유는 기 성의 억압에 버튕기는 선생님들과 강사들의 자유와 상상력에 좌우된다. 서로 전자우편과 인 터넷 피드백도 주고받고, 웹 페이지도 만들고, 온라인 게임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차적 정서 공감대가 시작이다. 교실 안과 밖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외부 인적 자원의 네트워크가 활용될 수 있다. 입시에 맞춰진 중·고등 교과과정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다방면의 이색 전문가들, 디지 털 예술가, 벤처 사업가, 지역 활동가, 환경 운동가 등을 수업 내용에 맞춰 참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수업 내용의 파격도 필요하다. 학생들의 상상력이 잘 발동하고 다양한 실험 정신 을 부추기는 방법이라면 모험적으로 시도될 필요가 있다. 지난 10월호 칼럼(하이퍼링크 사 회 만들기)에서 얘기됐던 교수 선발의 다층화, 학제간 프로그램 공유와 협동 과정도 함께 적극 모색돼야 한다. 공교육을 더 이상 신뢰못해 기러기 아빠가 수없이 생기고, 형편 불구하고 해외로 자식을 내보내는 우리 현실은 보기에도 참담할 지경이다. 공교육의 장에 그리고 대학에 디지털같이 자유롭고 탈권위의 자유로운 교육 철학의 새 바람이 불어, 우리 교육의 미래가 한결 밝았으 면 하는 바램뿐이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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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하이퍼링크 사회 만들기

하이퍼링크 사회 만들기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초고속 인터넷을 쓰며 시·공간의 벽을 넘어 마음대로 움치고,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세상 이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전자공간에 비해 현실의 장벽은 부동에다 견고하기까지 하다. 그 러니 살면서 막히고 부딪히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좁은 울타리를 둘러 쳐놓고 이방인을 꺼리며 분과 학문 속에 꼭꼭 움츠리는 학계 현실을 보자. 학문의 본성상 갈갈이 찢겨선 얘기될 수 없는 것들임에도 불구, 기득권을 위해서라면 '경계넘기'는 주제넘은 월담이요 월권으로 취급된다. 교수 임용에도 끼리끼리와 가족주의에 멍들어 암만 능력있는 학자도 룰을 벗어나거나 외도를 하면 '따' 당할 판이다. 기득권은 움켜쥐고 책임은 떠넘겨라. 이런 악습은 조직 사회에 더욱 지배적이다. 지하철 사고가 터지고 물난리가 나고 태풍이 강타해 사람이 깔리고 죽고 하면 여전히 부처간 책임 미루기에 목숨건다. 철마다 뭔가 책임지고 물러나는 고위 공직자는 많은데, 정작 부처간 협 의로 위기를 넘기고 대책을 부심하는 노력은 드물다. 부처간 정책이 중복되거나 말거나 예 산 낭비를 하더라도 이권이 달리면 목숨걸고 혼자 독식하려 한다. 하지만, 정작 함께 일을 매달려 처리해야 할 때는 흩어져 서로가 적이다. 이렇듯 사회 현실을 보면 기득권과 이권에 의해 마구잡이로 금이 그어져 있고 외부의 근접을 철저하게 막는 높은 옹벽이 솟아 있다. 대학이 분과 학문들로 분리된 지는 오래다. 그 대부분의 책임은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른 "헤쳐 모여"였다. 기업이 원하는 인간형에 맞춰 각 분과 학문들은 공장 분업 마냥 철저히 나눠졌다. 그러나, 현실이 복잡해질수록 분과 지식의 한계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 젠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조차 학문간 경계를 넘는 '학제간' 연구가 흔하다. 서너 개의 분과 전공을 아우르는 학제간 학위 과정도 여기저기 생긴다. 교수들도 그룹 토 의에서 다양한 인종의,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선호한다. 사회과학 분야에 공학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임용되는 일은 벌써부터 흔하다. 이들에게 학문적 월경은 불 경이 아니라 자연스런 학문 지평의 확장 방식이다. 오히려 분과를 넘지 못하는 학자야말로 인식의 협소함으로 한참 뒤쳐지기 마련이다. 60여년전 옛날 얘기로 잠시 돌아가 보자. 전후 1945년에 미국 과학연구개발국 국장인 배 니버 부시(Vannaevar Bush)는 '미멕스'(memex)란 이상한 기계 장치를 논한 유명한 글을 썼 다. 그는 소통하지 못하는 분과 학문들의 한계, 보다 본질적으로 인간 의식과 과학의 한계를 느끼고 이를 해소하는 장치를 구상했다. 그의 꿈은 인간 의식과 지식을 서로 연결할 수 있 는 기계 장치, 미멕스의 개발이었다. 비록 실현되진 못했지만 분과 학문과 의식의 한계치를 가상의 연결을 통해 확장하려는 그의 시도는 이제와 보면 '하이퍼링크' 기능을 지닌 거대 슈 퍼컴퓨터의 기획에 해당한다. 부시의 미멕스는 오늘날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기능의 원조이자 기술적 수단을 빌어 인간 의식의 경계넘기를 시도한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물론 인간 지식을 거대 미멕스에 집적 하려는 시도는 '빅브라더'의 혐의를 충분히 받겠지만, 분과 학문간 지식을 링크로 연결해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희망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벽을 두고 있지만 서로 부분적으로 교집합이 그려지는 곳들이 태반이 다. 인터넷은 요 합치는 부분을 검색으로 모아주고, 하이퍼링크로 넘나들게 해준다. 링크들 이곳저곳을 넘다보면 의도치않게 해결점을 찾거나 중요한 정보나 아이디어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현실의 법칙은 다르다. 분명 하이퍼링크로 연결만 되면 지식 효과가 제곱 이 상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부처 이기주의'와 '제 밥그릇 챙기기'가 그 연결을 가로막는다. 한가지 정책 입안 사례가 떠오르면 대개 문화관광부, 정통부, 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부 가 함께 머리를 모아 지혜를 발휘해야 해결되는 일이 다반사다. 분명 최소한 서너개의 정부 부처가 연루되고 합심해야 일이 풀린다. 현실이 복잡해질수록 모든 업무나 안건이 더욱 뒤 엉켜 그만큼 사회에 인터넷의 링크같은 기능이 절대적으로 아쉬어진다. 그래서, 학교, 관공서, 기업 조직, 정부 부처 등 모든 곳에 하이퍼링크의 태그들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형식적인 업무 협조로는 부족하다. 어디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구색으로 의례 껏 마련한 관련 단체나 그룹 홈페이지들을 늘어놓는 형식적 링크 방식으론 곤란하다. 단위 분과, 부처, 학과 등을 링크로 연결해 상호소통의 길을 터놓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링크 는 마치 하이퍼텍스트의 구조처럼 서로를 참조하고 서로에서 이해를 구하는 보다 긴밀한 연 결 구조라야 한다. 예컨대, 부처간 사안을 아우르는 링크 형식이 전문 위원회(task force)든 특별대책 팀이든 아니면 보다 유연하고 작은 조직 단위로라도 수시로 빠르게 구성되어 함께 지혜를 짜내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물론 사회의 장벽을 넘어 링크를 만드는 작업은 인터넷에서 링크의 태그를 만드는 것처럼 만만하지 않다. 어렵더라도 사회적 링크들을 하나둘 만들다보면 조직의 유연성과 개방성은 물론이고 이는 결국 중요한 사회적 자산으로 축적된다.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기 보단 처한 곳 너머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협업하는 사회 각 부문의 하이퍼링크가 그래서 절실하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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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어린이 세상에 '자원공유'의 사회 철학을

어린이 세상에 '자원공유'의 사회 철학을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올 여름은 정말 바빴다. 무슨 연구활동을 많이 해서나 원고 청탁에 볶여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순전히 여섯 살 먹은 내 아이가 다닐 여름 캠프들을 발에 땀나도록 쫓아다녔기 때 문이다. 이곳 텍사스에서 보통 부모들은 어린이들이 3개월 가까이 되는 무덥고 길고 긴 여 름방학을 지혜롭게 날 수 있는 방법으로 여름 캠프를 선택한다. 이도 없으면 펄펄 나는 아 이들에겐 여름은 지옥과 다름없다. 대개 부모들은 방학 시작하기 전 한두달 정도 앞서 여름 캠프 문의에 분주하다. 인터넷을 뒤지고 직접 가서 답사하고 전화로 문의하는 등 열성을 보인다. 그 정도 서둘러야 빨리 마 감되는 인기 캠프에 그나마 자녀를 집어넣을 기회를 얻는다. 여섯 살박이는 거의 오전 혹은 오후를 소요하는 반나절 프로그램들이다. 물론 부모는 아이를 집에서 캠프장까지 데려가고 데려와야 한다. 어떤 곳은 도시락이나 간식도 준비해야 한다. 기간은 보통 1, 2주 단위다. 새로운 환경 적응에 대한 아이들의 두려움이나 낯섦은 그리 걱정거리가 못된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에게 칭얼거리고 매달리다가도 쉽게 익숙해지고 나중엔 부모가 오가는지 별로 관 심도 없어진다. 물론 이곳에도 컴퓨터, 미술을 배우고 놀이와 운동을 배우는 곳이 캠프의 주종목 중 하나 다. 하지만, 여름 캠프의 인기 종목은 따로 있다. 한국에서 어린이들의 방과후 일상을 지배 하는 사설 학원들의 비슷한 종목들보다는 야외 학습 프로그램이 단연 인기다. 여름 캠프라 하면, 이곳 아이들은 동물원, 식물원, 조경원, 농장, 민속촌, 목장 등에서 소나 염소 젖짜는 법, 버터 만드는 법, 먹이 주는 법, 동물 닦이는 법, 청소하는 법, 식물 가꾸는 법 등에 더욱 친숙하다. 상가건물 내에 운집한 숱한 학원들에 아이들을 강제로라도 몰아넣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얄밉도록 이곳 아이들은 야외에서 즐겁게 자연을 배우고 풀밭에서 뒹군다. 말과 소에 여물을 주고, 돼지 구정물을 비우고, 곤충과 파충류를 만지고 관찰하는 등 아이들 의 동심에 대한 자극소가 끝이 없다. 그렇지만 이들이 누리는 전원식 환경이나 프로그램의 질적 우월에 찬사를 보낼 필요는 없 다. 배울 것은 운용의 묘다. 내 아이를 여러 캠프에 보내면서 캠프 운영의 면모를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는데, 흥미롭게도 이들 모두 이미 있는 기존의 도시 자산을 가지고 아이들의 프 로그램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개 운영이 잘 되는 여름 캠프는 도시에 등록된 공원이 나 자연 보호 지구에 적을 둔 비영리 단체들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시의 공공 예산 지원 을 받고, 자체적으로 이미 시민들을 위한 휴식처로 기능하고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비영리 기관들은 여름 캠프를 통해 자신의 철학과 활동을 알리고, 아이들은 덕분에 이를 배우고 체험하는 장으로 삼는다. 우리에겐 이들 장소들은 쉽게 '관람/열람 시간외 출입금지' 의 명패를 굳게 걸어 잠그는 곳으로 익숙하다. 입장권이나 사야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것 들을 침묵으로 지켜봐야 하는 장소들이다.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식물원 등 우리의 도시 문화 자산들은 와글거리다 한번에 빠져나가는 어린이 단체관람 명목 외엔 그 쓸모가 없다. 아이들을 위해 뭔가 현장 학습의 장으로 프로그램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곳에 비영리 단체들의 웹사이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아이들을 위한 여름 학습 프로그램이 저렴한 비용으 로 세부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 아이들의 학습장을 위한 첫발은 도시 군데군데 흩어져있는 문화자산들을 관리하는 비영리 단체들의 노력에 의해 생긴다. 자산 규모는 별 문제가 아니 다. 대형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등만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능력이 있는 것 은 아니다. 아이들은 처마밑에 매달린 거미줄처럼 하찮다고 여기는 것에 더 큰 재미를 느낀 다. 처한 규모의 영세성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뭐든 재배열되면 아이들에게 학 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크게 보면 이는 사회적 자원을 함께 나누는 공유 모델이다. 페카 하이마넨(Pekka Himanen)의 <해커윤리>란 책을 보면, 그는 소프트웨어의 공유와 나눔의 철학을 배워 전 사회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의 '오픈소스' 철학을 모든 가치있는 자원을 서로 함께 나누는 사회의 공유 모델로 키우자는 얘기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이곳 여 름캠프는 하이마넨의 사회적 공유 모델과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다. 권위나 관성 논리로 꼭꼭 가두려는 무지보단 비록 크기가 작고 내용은 적지만 이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려는 사 회의 넉넉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에겐 아직 한 사회가 아이들의 현실과 미래 를 고민하며, 밑천없고 부끄러운 호주머니라도 다 털어 아이들에게 내보이려는 어른들의 용 기가 보여 부럽기 그지없다. 반대로 우리의 사회, 문화적 자산에 대한 공적 접근로는 거의 폐쇄적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뭐를 내보이는데 인색했다. 내보이는 것도 격식을 갖추고 규모를 따지고 장구한 뭐가 있어야 그 폼이 산다고 봤다.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처럼 방탄유리 저 너머 존 재하는 범접 불가능한 권위의 상징이다. 우선은 이런 수많은 국고 지원의 문화기관들이 폐 쇄성을 딛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면 밑천 없다 생각하는 단체들 도 용기 백배해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 일례로, 대학이나 비영리 시민 단체들이 나서 파고다 공원 등의 도시 공원들의 환경과 역사를 배우거나, 도시내 박쥐 서식 처를 탐사하거나, 가까운 한강과 바다 갯벌의 생태를 학습하거나, 민속촌이나 충무로 영화 현실 등을 배우는 게릴라식 여름캠프도 가능하리라 본다. 궁극적으로 이는 사회적 공유를 통해 어린이 세상을 가꾸는 현명한 길이다. (아름다운 e세상,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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