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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모습이 일품!!

커 갈수록 제일 힘든게 밥먹이는 일이다.

한끼 먹일때마다 최소한 30분에서 1시간은 기본이다.

식사습관을 위해 함께 먹으려고 노력중인데, 그러다 보면 정작 엄마 아빠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정신이 없다.

그래도 잘 먹는 모습이 가장 보기가 좋다. 옛 어른들이 "자식새끼들 입에 밥 들어가는 재미로 산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모양이다.

 

 

 

밥을 한숟가락 받아 먹고서, 밥풀이 덕지덕지 붙은 상태로 귀여운 표정을!

 

 

 

이빨도 제대로 나지 않은 상태로 사과를 덥썩! 

 

 

 

시골 할머니 댁에서 안주 삼아 마련한 문어 다리를 질겅 질겅 ^^

(5월 6~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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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오월과 유월에는 ‘말’이 있었다

2008년 오월과 유월에는 ‘말’이 있었다

 

불후의 명작, 촛불의 명 카피들
미친 2MB, 명박산성 등 직설-은유 버물어 ‘말대포’
온-오프 넘나 들며 집단지성 상상·표현 ‘무한도전’

  

 

 
 
» 10일 저녁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열린 6.10항쟁 촛불집회에서 경찰이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을 막기위해 광화문 네거리에 쌓아놓은 컨테이너 장애물에 시민들이 명박산성이라 이름 붙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2008년 5월과 6월엔 ‘말’이 있었다. 80년 광주의 5월과 87년 광화문의 6월에도 물론 ‘구호’가 있었다. 그러나 달랐다. 촛불은 ‘언어의 마술’을 지폈다. 온-오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전경차와 마주한 ‘경계의 광장’에서 ‘말의 향연’을 펼친 것이다.

‘2MB, 너나 쳐드삼!’ ‘미친 2MB, 너 때문에 우리가 미쳐! 2MB OUT!’ ‘조중동이 신문이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시위를 즐기고 즐거움을 ‘시위’하며 분노하고 저항

두달 넘게 도심에서 불타던 촛불은 잦아 들고 있지만, 촛불이 피워 올린 불후의 명 카피들은 여전히 온-오프라인에서 타오르고 있다. ‘촛불 시민’들 사이에 이명박 대통령을 지칭하는 단어는 ‘2MB’다. 단지 이니셜만이 아니다. 디지털의 저장 용량인 byte에서 따왔다. 2 메가바이트는 노래 한 곡도 채 담을 수 없는 용량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그렇게 빗댔다. IT세대들의 ‘말’이 능청스럽지 않은가.

‘광우병소’는 ‘미친소’로 더 많이 불린다. ‘이명박 정부’는 ‘미친 정부’로 통한다. 이명박 정부를 규정하는 프레임은 제도권 언론이 아니라 ‘거리의 언론’이 만들어 유통시켰다. 직설과 은유를 버물어 시위를 즐기고, 즐거움을 ‘시위’하며 분노하고 저항했다.

하나의 단어가 등장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고유명사화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일반적인 언어의 사회화 과정이다. 하지만 이번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단어와 문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생산도, 공감도, 이해도, 습득도 새로웠다.

 

»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2003년 탄핵 정국에서도 ‘톡톡’ 튀는 패러디 문구와 사진, 포스터, 영상 등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때와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 등에서 활약하는 누리꾼들이 패러디물을 만들었고,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이를 즐기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촛불정국에서는 달랐다. 몇몇 누리꾼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문구와 카피를 다수의 대중들이 수동적으로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개개인의 적극적인 의견 표출의 주제로 활용됐다. 청계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담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나왔다. 문구 역시 기발했다. 그만큼 누리꾼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무한도전’했다.

 

 

  

 

»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Boys, be MB Shuts, 촛불 내 돈으로 샀다, 우리 이제 방학이다…본질 압도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Boys, be MB Shuts(소년이여, MB 입 좀 막아라)’, ‘Be the Cats.(‘쥐를 잡는’ 고양이가 되자)’, ‘미친 쥐에 경읽기:그래도 한다!’ 등이 5월 초가 지나면서 등장했다. 이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2MB’, ‘쥐(박이)’로 더 많이 불리게 된다. 간명하고 명확한 구호는 현상을 넘어 본질을 찌르는 예리한 비수다.

6월10일 경찰이 세종로 네거리에 쌓은 콘테이너 바리케이드를 향해 붙여진 ‘명박산성’은 이번 촛불정국에서 등장한 카피 중의 카피라고 불릴 만하다. 시민들은 콘테이너 앞에 ‘경축!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이라는 펼침천을 내걸었다. 그리고 그 앞에 맞세워 쌓은 스티로폼을 ‘시민산성’이라 이름 붙였다. ‘청와대 행진’을 막아선 전경버스에 붙여진 스티커 ‘불법주차’ 또한 명 카피 중의 하나다. 경찰의 무차별적인 연행이 진행되자 ‘닭장투어’라는 말과 행동으로 조롱했고, 경찰의 물대포를 ‘비데’라는 단어로 응수한 것도 명 카피라고 할 수 있다.

 

  

▶‘조중동이 신문이라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재치 만발

 

 
»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촛불 시민들의 재치와 상상력은 정부와 보수언론이 제기한 ‘배후세력 음모론’과 ‘촛불 쇠퇴론’ 앞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 이제 방학이다”라는 카피다. 간단 명료하면서도 정부와 보수언론의 논리를 순식간에 무력화 시킨다. “이명박이 배후다”와 “촛불 내 돈으로 샀다” 같은 카피는 촛불에 대한 상투적인 흠집내기를 되받아치는 재치가 절묘하다.

보수언론을 꼬집는 카피들은 훨씬 냉소적이고 조롱에 가깝다. ‘조중동이 신문이라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버럭! 님하! 저거 찌라시! 우리집 강아지는 조중동을 깔개로 주면 주인도 물어버린다!(찬조출연: ytn, sbs, 매경, 한경)’, ‘조선이 신문이면 똥파리는 독수리다’…….

 

카피라이터 정철씨는 “누리꾼들이 만든 표어나 문구들이 너무 기발해 놀랐다”며 “특히 ‘우리 이제 방학이다’의 경우 전문 카피라이터나 광고인도 따라할 수 없을 정도”라고 평했다. 카피라이터 김하나씨는 “청계광장의 손팻말 속 메시지는 명료하고 유머감각이 살아 있으며, 전달 방식 또한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쳐난다”며 “촛불집회의 카피들은 정말로 훌륭했다”고 말했다.

 

 

 

 

» 배지호, 김향남, 배가영씨 가족이 “한국 촛불들 힘내시라”고 외치고 있다. 파리= <한겨레21> 윤석준 전문위원

  

▶“온수! 온수”, “노래해! 노래해”…무마 하려는 경찰 단숨에 ‘무마’

 

이번 촛불 정국에서 이같은 문구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첫째, 사람들의 절실한 마음이 한 단어, 혹은 한 문장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2MB, 너나 쳐드삼!’, ‘이명박, 넌 아~무것도 하지마!’, ‘공약 지킬까봐 겁나는 건 네가 첨이다!’ 같은 문구는 광우병 소와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을 단숨에 드러내고 있다.

과거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를 통해 ‘대박’을 터뜨린 한 전자제품의 광고와 유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하나씨는 “‘넌 아무것도 하지마’ 안에는 ‘네가 하는 게 다 마음에 안들고 화가 난다’는 의미까지 포함돼 있다”며 “정말 기발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둘째, 재치가 넘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경찰의 물대포가 쏟아질 때 “온수! 온수”라고 외친 것이 대표적이다. ‘온수’라는 말 속에는 물대포를 쏘는 경찰에 대한 비꼼과 시민들의 비폭력 지향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유머스럽다. 경찰이 시위대를 무마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면 “노래해! 노래해”라고 하거나 “개인기! 개인기!”라고 외쳐 경찰을 거꾸로 단숨에 ‘무마’해 버렸다.

정철씨는 “좋은 카피란 출중한 능력과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분명 한계가 있다”며 “마음으로 쓰고, 생활에서 느낀 것을 유머와 재치 속에 녹였을 때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촛불정국에서 등장한 카피들이 대체로 그랬다”고 설명했다.

 

 
» 서울광장과 태평로를 가득 메우고 촛불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이 6일 저녁 촛불을 밝혀든 채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쥐박이’ ‘이명박이 배후다…거침 없이 ‘생각대로 하면 되고'

 

 
»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셋째, 마케팅을 염두에 둔 카피와 달리 제약 없이 자유롭게 상상력의 날개를 펼 수 있었던 환경의 덕이다. 광고주나 광고회사의 입장, 소비자의 반응, 상품의 주 사용자를 밑바탕에 둬야 하는 광고 카피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은 반면,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카피들은 이런 것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거침 없이 ‘생각대로 하면 됐’다. ‘쥐박이’나 ‘이명박이 배후다’ ‘쥐를 잡자’ 등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만 해도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넷째,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인터넷이라는 소통 창구를 통해 개방되고, 서로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끌어 주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이번 촛불 정국에서는 대체로 다음 아고라를 주축으로 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안됐고, 반론과 댓글 등을 통해 의견이 정제되는 수순을 밟았다.

정철씨는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일방적으로 선보인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들이 더해져 많은 대중이 공감하는 최첨단의 카피가 생산됐다”며 “인터넷을 통해 소통과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쳐 좋은 카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평했다.

김하나씨는 “촛불정국에 등장한 카피 대부분은 사람들이 들고 나온 손팻말을 보고 웃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감하는 문구들을 가져다 다른 사람이 활용하고, 발전시킨 것들이었다”며 “집단의 아이디어가 결합되면서 더 나은 카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이명박 대통령=2MB, 쥐(박이)

쥐(박이)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Boys, be MB Shuts.(소년이여, MB 입좀 막아라)
 쥐를 잡자, 쥐새끼!, Be the Cats.(‘쥐를 잡는’ 고양이가 되자) 
 미친 쥐에 경읽기:그래도 한다!
 2MB 고마쎄리 들가라마!
 미친소 미친교육 2MB OUT!
 미친 2MB, 너 때문에 우리가 미쳐!
 2MB, 너나 쳐드삼!
 국민건강권 팔아먹고 미국에 박박기고 국민들은 2MB 당신을 팔고 싶다
 우리집 햄스터가 2MB보다 똑똑하다(아고라당 아프리카지부)

  

 ▷ ‘배후세력론’ 일침

 이명박이 배후다
 촛불, 내 돈 주고 샀다. 스스로. 배후는 양초공장
뇌열이 개념이야, 배후세력=송아지
 2MB는 각오하라! 우리 이제 방학이다!

 

 ▷ 조중동 비판 

버럭! 님하! 저거 찌라시! 우리집 강아지는 조중동을 깔개로 주면 주인도 물어버린다!(찬조출연 : ytn, sbs, 매경, 한경)
 조선이 신문이면 똥파리는 독수리다
 조중동이 신문이라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조중동은 쓰레기통에, 딴나라당은 다른나라에, 바퀴벌레는 세스코에

 

 ▷ 경찰의 과잉대응 및 굴욕협상 비판 등

 (바리케이트로 세워진 경찰차에 붙인 스티커 및 포스터 문구) ‘명박산성‘ ‘불법주차’ ‘닭장투어’
 물대포 안전하면 너네 집 비데로 써라!
 해고통지서 : 해고대상자 이명박 (주) 대한민국
이곳은 국경선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미국의 코리아주입니다.

 

 ▷ 이명박 대통령 및 정책에 대한 불신

 미안하다. 실수했다. 내려와라!!
 대통령도 리콜이 되나요?
 전두환은 난폭운전 노태우는 초보운전 노무현은 안전운전 2MB는 역주행… (그러라고 준 권력 아닐텐데?)
 안돼. 하지마. 이명박 넌 아무것도 하지마!
공약 지킬까봐 겁나는건 니가 첨이다!
 이름은 명박, 관상은 쥐박, 개념은 외박, 경제는 쪽박
 명박이 점지하신 삼신할미 각성하라!
 업무태만 직무유기 저승사자 반성하라!
 

▷ 기발한 신문광고 문구들

 대한민국은 주식회사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입니다. (5월29일 <한겨레신문> 1면, ‘마이클럽’ 회원)
 대한민국이여, 가슴에서 불을 꺼내라! (6월2일 <한겨레신문> 7면, 82cook나사모, DVDPrime, miclub, ppcmppu, slrclub 회원들)
 국민을 소통을 하려고 하는데 불통이 되니까 울화통이 터집니다. (6월7일 <한겨레신문> 1면, 다음카페 ‘소울드레서’ 회원)
 진정 나라를 위한다면 촛불 앞에 꿇어라! (6월10일자 <한겨레신문> 7면, 82cook나사모, DVDPrime, miclub, ppcmppu, slrclub 회원들)
잘 들어라! 국민이 아니라면 아닌거다! (6월11일자 <한겨레신문> 7면, ‘마이클럽’ 회원)
 대한민국의 주인이 반대합니다! (6월24일자 <한겨레신문> 21면, 다음카페 ‘화장-발’ 회원)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6월25일자 <한겨레신문> 1면, 여성커뮤니디 ‘쌍코카페’ 회원 )
 우리가 또 다시 과거로 회군할 수는 없습니다. (6월25일자 <한겨레신문> 9면, 디시인사이드 ‘밀리터리 내부반’)
 한번은 경고지만, 두번은 퇴장입니다. (6월28일자 <한겨레신문> 1면, 다음카페 ‘I Love Soccer’ 내 참 언론 지지모임)
 때리지 마세요. 당신의 국민입니다. 짓밟지 말아요. 당신의 주인입니다. (6월30일자 <한겨레신문> 1면, 다음 재테크카페 ‘맞벌이부부와 아름다운 미혼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7월5일자 <한겨레신문> 1면, 다음카페 ‘부산맘 아기사랑’) 

 

 

 

 

 

 

 


 
»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72시간 촛불집회 이틀째인 6일 오후 서울 동십자각 인근에서 한 가족이 촛불가면을 쓰고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6.10 민주항쟁 21돌 기념일인 10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에서 덕수궁을 지나서까지 거리를 가득 메운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밝힌 채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등을 요구하는 ‘100만 촛불 대행진’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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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 와서 지역운동 이야기 하나

왜 이제 와서 지역운동 이야기 하나

[공공성 지역투쟁] 신명호, "지역투쟁 실천방안 새로운 게 없다"

유영주 기자 www.yyjoo.net / 2008년05월26일 8시56분

23일 노동전선 정책토론회에 대전지역 지정토론으로 참석한 신명호 활동가는 주발제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는 가운데, 제시된 지역운동의 실천 과제가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토론을 펴 눈길을 끌었다.

 

▲  신명호 활동가. 과학참터에서 과학기술과 관련한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참터에서 활동중인 신명호 활동가는 “왜 이제 와서 지역운동을 이야기하는가. 지역운동은 이전부터 이야기해왔고 여러 사람들이 해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라며 과잉된 지역운동 논의 분위기를 환기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우선 이경수 노동전선 대표의 발제문 ‘지역운동의 방향과 실천방안’의 ‘관점과 방향’ 부분(1.2장)과 관련, 다섯 가지의 토론을 펼쳤다.

 

첫째,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과 관련, 지역운동이 중앙 차원의 운동과 분리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신명호 활동가는 두 가지 실패를 드는데, 민주노동당의 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와 산별노조 운동의 실패가 그것이다. 신명호 활동가는 “최근 이 두 가지가 다 안됐으니 새로운 목표를 찾자는 것이고, 그래서 상실된 운동의 목표를 지역운동이라는 모호한 단어에 집약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두 번째로 “지역운동은 지역사회운동인가, 지역정치운동인가, 지역노동운동인가”를 따졌다. 신명호 활동가는 “대전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와 노조 등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지역운동이 하나가 아니며, 이 세 가지는 분명히 구분이 되고, 주체도 실천방식도 다르다”고 짚었다. 재생산과 공공서비스 영역은 지역정치운동에 가깝고, 대안적 양식을 모색하는 것은 지역사회운동이며, 지역 미조직 노동자 조직 문제는 지역노동운동으로 제각기 다른 실천 방법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이어서 “중앙 중심의 운동이 갖는 한계를 철저히 인식하지 않고 지역운동을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중앙 중심적 운동이 어떻게 노동운동을 고사시키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하고, 현장활동가가 정당과 상급단체로 가면서 생기는 공백, 직업적 활동가들의 관료화에 따른 운동의 퇴보, 노동계급의 분화로 인한 조직노동자의 보수화, 새로운 노동 활동가가 재생산 되지 않는 문제 등을 짚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이런 점을) 고민해보지 않고, 잘 안되니까 지역운동을 해보자는 것인가. 각각 정말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되물었다.

 

네 번째 질문은 “‘노동과 고용의 지리학’을 지역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이다. 신명호 활동가는 “자본 발전은 원래 불균등하며, 발전하는 곳이 있으면 반드시 내부 식민지가 생기게 마련이며, 지역 경쟁을 하는 셈”인데 “그렇다면 고용을 지역에서 창출해야 하는가. 과연 이 문제를 지역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행정도시 건설 등은 ‘노동과 고용의 지리적 분포와 관리’ 즉, 국가적 차원의 전략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관점과 방향’의 마지막 질문으로, 노동조합이 지역 사회 차원에서 새로운 시도,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적 체제를 만들 수 있는가를 따졌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생산양식과 생활양식이 사회의 전 영역을 식민화하는 상황에서 이 생산 소비 메커네즘의 소멸은 곧 임금노동의 소멸이자, 고용되지 않고서도 지역사회 차원의 생활이 가능한 것임을 의미하는데, 이는 "한 지역을 사회주의화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지역운동을 제기하는 한 이러한 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준비할 수 있는지를 토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계속해서 신명호 활동가는 이경수 대표의 발제문에서 밝힌 ‘실천과제’(3장) - 지역노동운동 차원의 실천(지역투쟁 강화, 지역본부 강화, 지역중심 산별노조)과 지역차원의 연대(지역민중전선의 구툭과 민중투쟁, 사회공공성 강화투쟁) - 가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일축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지역 운동을 끌고갈 수 있는 주체와 지역본부가 있다지만 그들이 기획하는 사람들은 아니며, 구심점이 되는 활동가조직이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정작 지역 차원으로 잘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며, 이는 대중추수주의적이라고 냉정하게 짚었다. 나아가 "노조 스스로가 지역운동에 대한 내용과 목표를 갖고 있지 않는다면 (네트워크 제안도) 일회성 협의체 구성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명호 활동가는 자신이 속한 과기노조의 활동과 과학기술과 관련한 지역사업을 소개한 뒤 앞으로의 방향과 관련 △활동가조직의 건설과 현장조직과 소통할 수 있는 지역본부 운영 실천방안 △지역사회운동과 지역정치운동의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내용과 노동조합의 전략 마련 △지역운동과 중앙 운동의 상승작용을 위한 단계적 실천 방안과 전략적 집중점 마련 등을 꼽았다.

 

현재 논의의 한계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네트워크나 협의체가 성장해 나가고, 거기에 계급적 관점을 관철시키고, 우리가 견인시키고 저들도 변화해 나가고. 그러려면 우리의 중심성과 계기가 있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공공성 투쟁은 아주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전 지역의 경우 “당장 협의체도 없고, 민주노총 대전본부도 안 만들어진다”며 어려운 현실 상황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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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노리다

갈수록 움직임이 민첩해진다.

기분이 좋을 때는 앞도 보지 않고 기다가 보행기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다. 

침대를 잡고 서서 옆으로 걷더니, 어느새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혼자서도 안는다.

아이의 몸이 민첩해지면서 밥먹는 것도 쉽지가 않다.

밥상을 노리더니 드디어(!) 밥상위로 올라왔다.

 

 

지우를 피해 도망온 밥과 반찬^^

 

 

 

밥상을 못덮치게 보행기에 태워났더니, 꿩대신 닭이라도..

 

 

 

마침내 기회를 틈타서.

 

 

겁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밥상 위에 않아 있는 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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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새와 빽차의 유래

- 짭새 : 짭은 경찰을 말하고 경찰이 쓰는 새(독수리)문양을 합쳐 '짭새'라 함.
             짭아들이는 새:독수리: 경찰
- 빽차 : 옛날 경찰차이 색깔이 하얀색이어서 '백차'->빽차라 불렀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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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걷기 시작할 것이다.

2007년 8월 24일생이니, 어제부로 8개월을 채웠다.

 

아이를 가지고 또 낳을 때까지 별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막상 키우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탯줄을 자르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아기의 귀였다.

다른 곳은 미처 사람이라고 하기엔 어려웠지만(;;) 귀만큼은 완전한 모양이었다.

이틀을 병원에 있다가 퇴원하고 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감이 많았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아 혹시나 하고 귀를 가까이 대보기도 했다.

잠 많기로 자타가 인정하는 나였지만, 아기의 소리 하나하나에 척후병처럼 반응했다.

매일같이 청소기와 걸레로 방을 훔치면서 그 동안 이런 쓰레기장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다.

 

어느덧 옹아리를 하고, 기어다니고, 뒤집고, 쌕쌕거리며 자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예쁘다.

그런데, 가슴이 쨘한 건 왜그런지 모르겠다.

아기들과 관련한 모든 이야기들과 자식들과 관련한 모든 이야기들이 내 이야기로 들린다.

 

주변에서 6개월을 전후로 병치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행히 아무일 없이 넘어갔다.

요즈음엔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짜증도 곧잘 낸다.

기어다니다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안아달라고 찡찡거리기도 하고, 의자같은 것을 짚고 일어서기도 한다.

 

곧 걷기 시작할 것이다.

 

 

.......

 

손자를 물어뜯는 이와 벼룩을 중오하다.

 

 

태어날 때 예닐곱 번 응애응애 울더니

그후로는 멈춰 울음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때때로 태어나던 날처럼 울기르 바라는 것은

병이 깊어 편안하지 못해서인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살결과 피부가 무르고 약해 핏줄이 보이는데

얄미운 이와 벼룩이 다투어 달라붙는다.

젖먹이가 속으로는 괴로워도 어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온몸에 침을 놓은 듯 붉은 상처 보기 괴롭다.

작은 벌레가 날카롭게 뾰족한 입을 가진 것은

조물주 역시 시기심이 많기 때문인가

차라리 내게 오도록 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가엾구나, 어린아이는 물어뜯지 말거라.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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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독서일기

2008년 1월 독서목록

 

나무를 심은 사람(1.5)

 

1.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출판사

 

2.

단 한 사람의 외로운 노력으로

프로방사의 황무지가

거대한 숲으로 바뀐 기적 같은 이야기

 

3.

이윤기의 "내려올때 보았네"를 보고 사 놓았다.

광주에 내려갔을 때 읽었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나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아메리칸 버티고(1.18)

 

1.

베르나르 알리 레비 지음, 김병욱 옮김 / 황금부엉이

 

2.

미국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다!

고급 여행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프랑스 대표 철학자의 종횡무진 미국 탐방기

 

3.

작년 읽은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 "나를 부르는 숲",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에 이은 미국에 관한 책이다.

프랑스 작가의 글은 읽기가 쉽지 않다. 장문에다가 사변적인 이야기가 중간중간 끼어들어 집중이 잘 안된다.

책의 제목처럼 미국은 현기증 나는 나라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작가의 결론은 많은 사람들의 전망(?) 과는 달리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란다.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미국이라는 나라는 애초부터 현기증 나는 나라였음을 읽는다. 

 

 

사기본기(1.28)

 

1.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을유문화사

 

2.

동양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이자 인류 전체의 고전

<사기본기>는 <사기> 130편의 근본이 되는 책으로, 중국의 전실 시대부터 춘추전국 시대를 거쳐 한무제에 이르기까지 근 3천년의 역사를 제황이나 제왕을 대신했던 실권자의 사적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다. 특히 고금의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확한 기술과 투철한 역사관, 기전체 형식을 빌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흥미진진한 전개방식, 치밀한 구성 등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역사서의 번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3.

출판된 "사기" 또는 관련 책들이 너무 많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할 지를 알 수가 없다.

인터넷 서점을 돌면서 완역한 책을 골랐다.

쉽게 읽히기는 하나 생각보다 재미 있진 않다.

소개에서도 사기 중에서 본기가 가장 재미없다고 한다.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진본기, 진시황본기, 항우본기, 고조본기, 여태후본기, 효문본기, 효경본기, 효무본기 총 12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대부분 우리가 아는 이야기들이다.  

 

진시황본기는 조금 당황스럽고, 여태후본기는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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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독서목록

2008년 독서목록

 

- 나무를 심은 사람(1.5)

- 아메리칸 버티고(1.18)

- 사기본기(1.28)

- 정관정요(2.9)

- 장자 30구(2.11)

- 논어 30구(2.12)

- 사기열전1(2.22)

- 염철론(2.25)

- 육도삼략(3.1)

- 숫타니타파(3.4)

- 대지(3.9)

- 법구경(3.11)

- 노동조합의 전략과 전술(3.15)

- 너만의 길을 가라(3.17)

-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3.22)

- 장미의 이름 읽기(3.24)

-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3.25)

-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3.29)

- 전쟁의 세계사(4.5)

- 마흔에 길을 나서다(4.6)

-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좌파(4.8)

- 헝그리 플래닛(4.13)

- 헤겔 근대철학사 강의(4.16)

- 제국 그사이의 한국(4.24)

-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4.29)

- 아파서 우는게 아닙니다(5.8)

- 유쾌한 발견,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6.2)

- 무소유(6.6)

- 아프리카 내사랑(6.16)

- 마지막 기회(6.24)

-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 이념과 운동(7.5) - 다섯번째

-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7.10)

-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7.18) - 다섯번째

- 빌 브라이슨의 재미있는 세상(7.29)

- 시대를 건너는 법(8.1)

- 키다리 아저씨(8.3)

- 우리들의소박한 꿈을 응원해줘(8.14)

-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8.22)

- 산촌유학(8.28)

- 인생이여, 고마워요(9.2)

- 하이디(9.4)

- 잉카 in 안데스(9.6)

- 꾸뻬씨의 행복여행(9.10)

- 리틀비트와 함게한 여섯번의 여름(9.16)

- 설국(9.26)

- 소리의문화사(10.1)

- 노래를 찾는 사람들 지금 여기에(10.6)

- 클래식은 내친구1 (10.13)

- 클래식은 내친구2(10.24)

- 반쪽이의 육아일기(11.12)

- 서울을 여행하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11.15)

- 홀로사는 즐거움(11.26)

- 오두막 편지(12.3)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12.10)

- 금융위기와 사회운동노조(12.13)

- 맑고 향기롭게(12.15)

- 노동운동론 연구(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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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 탈국가적 상상력 ③

III.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대안세계화, 그리고 국제주의

 

1. 냉전 이후의 세계와 국제주의의 새로운 소생

 

  냉전의 종식과 금융세계화의 추동, 그리고 신자유주의 압력의 전지구적 확산은 분명 기존의 사회운동의 위기이자 대중의 삶의 조건에 대한 전면적인 위협이지만, 동시에 이전까지 국제주의적 연대를 억압해온 조건들이 완화되고 새로운 연대의 조건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중심-주변을 나누던 분명한 분할선들이 약화되고 중심부 내의 주변부적 특성의 증가, 주변부 내의 일부 소수 지역에서 부의 집중에 따라 중심부적 특징의 등장 등이 나타나며, 또한 냉전 시기 정치적 이유하에 추진되어 온 발전주의가 중단되면서 국가의 역할의 균열과 동요가 발생하고, 코포라티즘적 보호의 틀이 무너지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EU의 등장처럼 새로운 지역주의의 등장, 그리고 전쟁의 형태 변화 등에 따라 과거의 쟁점의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중요해지고 있다.
  변화된 조건 하에서 국제주의의 소생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문제의 지형이 20세기를 우회해 다시 19세기적 조건 속에서 초민족적 연대의 형성가능성이라는 형태로 제기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20세기를 거치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기보다 사회주의 국가들사이의 국제적 연대(그런 점에서 어떤 경우에는 매우 보수적 함의의 국제관계의 외양을 띠기도 한)였던 한계를 넘어서 다시 노동자계급을 분할시키는 경계들을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하다.

 

2. 동일성의 위기

 

  그렇지만 이런 변화가 그 자체 새로운 국제주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새로운 국제주의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 각종 인종주의, 배타주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의 표지이다.
  이는 한편에서 이전에 사회적인 동일성을 형성하게 만든 유사-동일한 공통지반들이 붕괴해 가면서 사회적 동일성의 조건들은 취약해지는 반면, 국가적 동일성의 취약화에 대한 반사물로서 동일성 형성의 요구는 오히려 강해지는 역설 속에서도 관찰된다. 국가적 동일성의 불가능성이 커지는 속에서 다른 동일성에 대한 욕구는 강화된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국가를 넘어서 초민족적 동일성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하적인 배타적인 동일성의 형성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3. 대안세계화운동

 

(1) 대안세계화 운동의 등장

 

  2000년대 들어서면 사회운동의 위기를 넘어서서 이전과는 다른 전지구적 범위를 아우르는 사회운동이 등장하게 되고, 여기에 스스로 대안세계화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그 가장 두드러진 계기는 2001년 2월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이었다. 이 세계사회포럼은 정당조직을 배제하고 중앙집중성을 배제한다는 새로운 조직구도를 보여주었으며,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기존의 모든 운동 유형들을 결합하여, 지방, 지역, 국가, 초국가적 형태의 다양한 조직을 포괄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조직들의 기반은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적 재난과 맞서 싸운다는 공동의 목적과, 서로에게 닥친 우선과제들을 서로 공히 존중하는 것이었으며, 특히 중요한 점은 남(제3세계)과 북(선진국)의 운동을 하나의 단일한 틀 속에서 결합되었다는 것이었다. 세계사회포럼 결성을 주도한 비아캄페시나와 아탁이 남과 북의 운동을 각각 대표하고 있었다는 점도 이를 잘 보여준다.
  세계사회포럼은 다음과 같은 측면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운동과 접근방식을 달리 하고 있다. ①세계화에 대한 이론 분석  ②이행과정의 구도를 전지구적 사고하는 국제주의를 강조한다는 점 ③대중 창의성과 주도성 중심의 연합적 사고를 보인다는 점 ④소유의 문제를 수단으로 파악한다는 점 ⑤집권의 문제를 전술적으로 파악한다는 점 ⑥대중 구성의 변화에 주목한다는 점 ⑦정파/현장을 넘어서는 연합적 조직틀을 제시한다는 점 ⑧경제/정치/사회 혁명의 구분을 지양한다는 점 등이다.
  2006년에 다중심적 형태로 전개된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체계적 선언문의 발표와 네트워크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관찰되었다. 선언문 중 대표적인 것은 “민중의 반둥회의”라는 이름 하에 반둥회의 50주년 기념으로 말리의 바마코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에서 사미르 아민의 주도로 80여명의 대안세계화 활동가와 이론가들이 발표한 ‘바마코 호소’였다.
  이 바마코 호소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담았다. ① 경쟁이 아닌 연대를 바탕으로 한다. ② 시민권과 양성의 평등을 전적으로 옹호한다. ③ 모든 다양한 구성원에게 창조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보편적인 문명을 구축한다. ④ 민주주의를 통한 생산과 재생산의 사회화 ⑤ 자연·자원 및 농지의 시장화를 거부한다 ⑥문화적 산물, 과학적 지식, 교육, 의료의 상품화를 저지한다 ⑦ 제한 없는 민주주의, 사회진보, 각 나라와 개인의 자율성을 포함하는 정책을 촉진한다 ⑧ 반-제국주의에 기초한 국제주의와 남-북반구 민중의 연대를 강화한다.
  물론 대안세계화 운동에는 단일한 세력만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질적인 세력들이 끼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안세계화포럼을 주도하고 있는 사미르 아민은 현재 대안세계화운동에 결합해 있는 세력들에는 크게 네가지 상이한 세력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되는 세 가지는, 첫 번째 부유한 사회의 무기력 대안세계화 운동, 둘째 가난한 사회의 무기력한 대안세계화 운동, 셋째는 중산층의 대안세계화 운동이다(이는 자본주의에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저소득층에 대한 고민 없은 없고, 남반구에 대한 고민도 크게 없는 세력이지만, 상대적으로 부유하기 때문에 세계사회포럼에는 가장 많이 참석하며, 향후 운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대립되는 네 번째 세력은 진보적 대안세계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2) 방향을 둘러싼 새로운 모색

  대안세계화 운동의 출현과 더불어 기존의 사회운동 내에도 새로운 모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사회운동의 한계를 넘어서, 대안세계화운동의 방향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점은 이런 변화가 사회주의에 대한 표상의 변화와 당의 위상에 대한 재검토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러한 변화중 하나는 프랑스 내의 제4인터내셔널계의 트로츠키 조직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LCR)이다. 다니엘 벤사이드가 주도하는 이 조직은 가장 두드러진 유럽 내 대안세계화운동 세력인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재건당(PRC)이나 프랑스에서 등장한 아탁 등과도 긴밀한 관계에 있다. LCR의 변신 방향은 전위정당에서 사회운동적 정당으로 전환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06년 이 조직의 기관지 "공산주의적 비판"에서는 ‘전략’ 논쟁이 전개되었다(Artous, Durand, Sitel, Callinicos 등이 개입). 주요 논지를 담은 벤사이드의 글은 기관지인 공산주의 비판에 게재되었는데, 그 번역본이 사회주의노동당 계열 기관지인 IS에 게재되었고, 제4인터내셔널 기관지인 International Viewpoint에 그대로 다시 게재되었다.
  벤사이드의 주장이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전략논쟁이라는 구도 하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인데, 벤사이드는 전지구적 전략과 특정 지역내 권력장악과 관련된 ‘제한된 전략’을 구분해서 보고 있다. 즉 전지구적인 정세와 지역적 정세를 구분하는 동시에 결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전략이란 복제하고 따라야 하는 ‘모델’이 아니라, 과거 경험에서 나오지만 새로운 경험과 의외의 상황에 개방되고 수정될 수 있는 ‘전략적 가정들’로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벤사이드의 논의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대중의 주도권을 평의회적 전통을 통해 복원시키려 하는 것이다. 벤사이드는 대중적 주도권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들을 중시하여, 니카라과 혁명에서 ‘국가 평의회’ 억압 비판하고,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예산 확정 위한 시정부기구(선거로 선출)과 참여위원회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 중시하는 등의 논지를 제기한다. 이행적 요구들에 대한 강조 또한 그것이 도구적 위상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벤사이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용어의 언어의 물신주의 벗어날 필요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는 정치체계의 근본적 단절과 차이를 강조(특히 꼬뮨적 형태에 의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용어가 낡았기 때문에 이를 꼬뮨, 소비에트, 평의회, 자주관리로 이해하여 본래의 정신을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다음으로 벤사이드의 논의에서 중시되는 것은 당의 역할이다. 벤사이드는 당이 국가에 포섭된다는 점을 살펴볼 때, 그 동형성이 자본의 구조와 거기에 종속된 노동자 운동의 구조 사이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임금 투쟁과 고용의 권리는 자본/노동 관계에 종속된 투쟁인데, 정치적 영역에서 당 또한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 관점에서 벤사이드는 전위당의 관점을 벗어나서, PT, 공산주의 재건당, 포트투갈의 좌파 블록의 강조한다. 이런 당의 조직 형태는 미리 정해져있지 않으며, 대중적 조직 내에서 활동하는 요소들로서, 정세에 따라 조직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동맹이 누구이며 동맹의 동학이 어떻게 변화되는가에 따라 조직의 존재 형태가 조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네트워크로 조직된 유동적 조직형태와 친화성을 갖는 집단의 논리(헤게모니 논리에 대한 반대로서)를 수용하는 것은 아닌데, 이런 종류의 유동성은 현대 컴퓨터화한 자본, 유연적 작업, ‘유동성 사회’의 완벽한 동형성일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우리가 국제주의를 새로운 형태로 보편성의 재구축의 기획으로 이해한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분할의 선을 넘어서 새로운 보편성의 지평 속에서 이 분할의 선을 극복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중심과 주변 사이의 공간적 분할, 그리고 성차, 인종, 지식의 분할선이 핵심이 될 것이고, 그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국가는 다시 이런 분할의 재생산의 중심축에 놓여있다.
이 때 특히 강조할 점은 이는 새로운 동일성의 형성, 또는 동일성의 다차원성을 통해 문제를 풀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동체 내의 ‘관계’의 전화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접근을 제기하려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를테면 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적 개조). 다시 말해 어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공동체 일반을 변혁하려는 것이다(에티엔 발리바르, "대중의 공포", 542쪽) 


4. 동아시아

 

동아시아는 국제주의의 연계를 막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의 국제주의의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동아시아에서 민중적 국제주의의 논의가 봉착한 난점은 대립적 역사, 그리고 국가규모의 상이성, 그리고 위계적 경제구조 등의 이유 때문에 수평적 논의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는데, 여기서 몇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 보면, 동아시아 내에서는 이주노동과 신자유주의라는 현재적 쟁점에서부터 출발해, 장차 20세기초 역사적 경험으로 나아가는 구도 속에서 함의를 키워갈 수 있는 영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장기 21세기와 국제주의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 세계에서 국제주의는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지녀온 자본주의 역사와 변혁에 대한 지배적 형상의 재구성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지배적 형상의 교체는 고민의 무대를 세계로 확대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이렇게 고민의 무대가 세계로 확대되면 우리는 장기21세기라는 이행의 시대라는 관점에 서게 된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시기를 전지구적 차원에서 200여년에 걸쳐 형성된 유럽세계경제의 형성과정으로 보는 관점과도 유사한 관점이 된다. 이럴 경우, 국제주의 또한 좀 더 넓어진 전지구적 차원에서 사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장기21세기라는 사고는 첫째로, 이행이 장기간의 세계적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둘째로, 이 이행은 사전에 예정된 필연적 경로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통과점과 부정적 통과점으로 분화될 수 있으며, 그 긍정적 통과점을 향해 가도록 하는 것이 운동의 과제임을 강조하게 된다. 셋째로, 기존의 이행의 역사에서 그 세계적 확장은 전체 동시적 변화 아니라 헤게모니 지역으로부터 파급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는데, 지금 또한 세계적 변화가 세계의 동시적 변혁으로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중시할 수 있다. 넷째로, 국가가 이행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는데,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국가를 통해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공고화하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면, 21세기의 이행은 그 반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현재의 이행의 시대에 나타나는 구조적 위기가 자본주의 자체 내의 쇄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여섯째는 이행에서 소유제의 문제는 부차적이라는 점, 일곱째는 이행의 시대에는 삼중의 위기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수취구조의 위기, 국가의 위기(또는 통치의 위기), 그리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위기이다.
장기 21세기는 지금까지 정세적으로 계급을 계급으로 일시적으로 통일시켜온 다양한 동일성들 자체가 동시에 위기에 처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로부터 새로운 동일성의 형성, 그리고 새로운 보편성의 형성을 통해 평등-자유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사고를 확장해 가야할 필요성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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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의 국가주의, 탈국가적 상상력 ②

II.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와 국제주의

 

  여기서는 역사적 자본주의 속에서 역사적으로 유지·변천해 온 마르크스주의가 국제주의라는 쟁점을 어떻게 제기해 왔고, 또한 어떤 아포리아들에 부딪혀 왔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늘 국제주의는 단순한 구도 속에서 제기되어 온 것은 아니고, 당시의 매우 구체적 정세와 연관된 구체적 쟁점 속에서 문제로 등장하였다. 이는 국제주의의 쟁점이 국가인가 반국가인가라는 단순한 쟁점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넘어서는 통일적 경향을 형성할 수 있느냐라는 쟁점으로 등장했고 매시기 이는 매우 구체적 정세 속에서 제기되는 쟁점이었기 때문에 그 대응 방식과 쟁점은 시기별로 매우 상이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다루는 쟁점들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의 모든 쟁점을 다 다루는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중요한 주목되는 쟁점들을 다룰 것이다.

 

1. 프랑스혁명과 보편적 권리

 

  역사적으로 재해석된 프랑스혁명은 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그것은 프랑스혁명 자체가 민중혁명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하나의 이유와, 프랑스혁명과 더불어 보편적 권리라는 쟁점이 본격화되었다는 또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이유가 결합되는 지점은 보편적 권리로서 ‘평등-자유’라는 쟁점이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평등은 자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며 자유는 평등이 있을 때만 보장된다는 자명한 논리로서 ‘평등-자유’는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 권리가 특정 공동체의 일정한 경계 속에 봉합된다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한계가 늘 그 평등-자유의 논리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평등-자유’는 그 자체로 늘 진정한 국제주의적 확장을 가능케하는 경계부정의 논리로 작동한다.
  현실에서 이 ‘평등-자유’ 테제를 한정된 공동체 속에 유예하고, 그 다음 단계로 평등과 자유를 분리 시킨 후 평등과 자유의 함의를 보수적으로 한정하는 논리가 작동하게 된 것은,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게 된 조건과 무관하지 않은 유럽의 세력균형이라는 ‘보수주의적 국제주의’(또는 국가간관계의 현실주의)와 그리고 프랑스혁명의 지양 속에서 자리잡은 영국 중심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영향력 확대라는 맥락 속에서였다.

 

2. 「공산주의자 선언」과 「독일이데올로기」의 계기 --계급의 등장, 그리고 지배의 비대칭성

 

  보수적 또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다른 노동자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쟁점이 된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출현과 더불어서였다. 「공산당선언」은 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국제주의가 ‘형제들의 유대’라는 모호한 구호로부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로 넘어가게 됨을 선언하였다. 국제주의는 이제 초계급적 언사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계급의 ‘발견’과 더불어 계급으로 분할된 세계 속에서 특수하지만 그 때문에 매우 보편적인 함의를 지니는 담론으로 등장하게 된다. 「공산당선언」은 한편에서 자본에 의한 세계의 통일화의 경향과 다른 한편에서 노동자계급의 궁핍화와 분할이라는 비대칭성(그렇지만 또한 대칭성)의 쟁점에서 출발하고, 이 때문에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국제주의의 책임을 자본이 아니라 노동에 안기는 것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논리를 전개한다(즉 자본의 국제주의는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의 조건이며, 반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달성되어야 하는 목표로서).
  그런데 이 「선언」의 시기에는 매우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상이한 논리들이 공존하고 있고, 그것이 사실상 국제주의의 난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선언」은 한편에서 생산의 사회화와 노동자계급의 궁핍화라는 논리를 통해 노동자계급 동질화의 주장을 전개한다. 이것이 사실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가 가능할 수 있는 논리적 기반이 된다. 그렇지만 이보다 앞선 시기에 같은 저자 중 한 명인 엥겔스의 주요한 저작인 "영국에서 노동자의 상태"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 이후 오랫동안 묻혀버린 쟁점인 ‘아일랜드 노동자’와 그에 의한 영국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열이라는 쟁점을 제기한다. 마르크스에게 덜 두드러졌고, 엥겔스에 의해 훨씬 더 부각된 이 아일랜드 노동자라는 쟁점은 후기 엥겔스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고민까지 이어지는 계기였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쟁점이며, 자본의 통일성과 노동의 분열이라는 비대칭성에 대한 최초의 주목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이주노동자라는 쟁점은 그리 사소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 「선언」에서 노동자계급 통일성의 두 가지 논리인 생산의 사회화와 노동자계급의 궁핍화는 현실 속에서는 세계경제의 공간적 분할을 따라 지역적으로 상이한 지역에 배정됨에 따라, 국제주의의 형성을 막는 지역적으로 노동자계급 존재형식의 공간적 분리와 그에 따라 사회운동의 대응형태의 지역적 이질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계급’은 발견되고 등장하자마자, 국가와 인종에 의해 분할된 존재로 인식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이러한 계급의 통일성과 국제주의라는 쟁점은 아포리아로 작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제1인터내셔널과 아나키즘 -- 지배의 비대칭성과 국가장치

 

  「선언」에서 "자본"에 이르는 과정은 자본의 추상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면서 이런 노동자의 내부적 분할의 동학을 설명하는 논리를 추가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동시에 이 시기 마르크스는 차티즘에서 출발하여 각종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지는 노동자계급의 대중운동의 중요성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중요하게 등장한 쟁점 중 하나가 아나키즘의 문제였다. 그것은 처음에는 프루동주의에 대한 대립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바쿠닌주의에 대한 대립으로 제기되었다.
  두 경우 모두 아나키즘이 국가를 무시하는 또는 국가를 우회하는, 그럼으로써 결국 국가의 물질적 존재성과 그 작동을 해체시키지 못하는 무능력을 문제삼는 것이 쟁점이었다.
  두 경우 모두 국가는 계급 재생산의, 그리고 자본주의적 축적의 생산과 재생산의 필수적 고리임이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국가 ‘외부’라는 사고, 또는 국가를 우회한다는 사고는 결국 국가를 넘어서지 못하고 매우 국가적인 구도 속에서 진행되는 계급의 재생산을 다시 반복할 뿐임이 두드러지게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특히 파리코뮨과 그에 수반해서 제기된 ‘국가장치’라는 쟁점, 그리고 국가의 ‘전화’라는 쟁점 속에서 드러난다.

 

4. 제2인터내셔널과 1차대전 -- ‘국민적 동일성의 형성을 넘어’

 

  제1인터내셔널에서 제2인터내셔널로 이어지는 시기는 운동의 발전임과 동시에 운동에 새로운 질곡이 발생하는 시기였다. 그것은 ‘국제노동자협회’라는 개인들의 연합체 수준의 운동이 <독일사회민주당>이라는 매우 잘 조직된 정당에서 출발해 전세계적 정당조직의 기반을 가지는 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진정한’ 인터내셔널로 발전하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국가적’ 특성보다는 ‘초민족적’ 성격을 강조한 제1인터내셔널이 민족당에 기반한 민족당들의 국제적 연합체인 제2인터내셔널로 전환되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국가간체계 내의 모순들이 사회운동들 사이의 모순으로 곧바로 이전될 가능성을 늘려간 시기이기도 하다.
  모순은 1차대전이 발생하면서 증폭되었고, 전쟁공채에 동조하는 좌파가 늘어나면서 문제가 된 ‘조국방위’ 구호가 결국 제2인터내셔널을 붕괴시키기에 이르렀다.
  1차대전이 촉발되자,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에 대한 태도를 놓고 분열되었는데, 다수가 자국의 운동을 살리기 위해서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데 동의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국제주의를 붕괴시켰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결성된 찜머발트 좌파는 국제주의를 다시 내걸었고, 이는 러시아 혁명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구호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모순 속에서 등장한 1차세계대전은 노동자계급 국제주의에 새로운 계기를 던져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 시기는 ‘제국주의’라는 시대 규정을 둘러싼 논쟁과 더불어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피압박인민들로 국제주의의 전선이 확대된 시기였다. 이는 19세기 영국 중심의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전지구적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독해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세가지 쟁점이 동시에 시기적 규정성으로 제기되었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위기라는 쟁점, 두 번째는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쟁점, 세 번째는 평화라는 쟁점이었다. 사회주의혁명과 식민지해방운동이 같은 동시대적 과제로 제기될 수 있던 것이 이 시기 국제주의의 매우 독특한 맥락이었다.
  「선언」에서 제기되었으나, 구현되지 못한 국제주의가 현실성으로 등장한 것은 이 시점이었는데, 그 이유는 「선언」이 강조하였지만 공간적으로 실현이 분리되어 나타난 특징들이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모순의 응축 속에서 공간적으로는 상이한 맥락이 작동하더라도 전지구적으로는 하나의 전선을 형성해 낼 수 있는 조건이 등장하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 쟁점들을 정리해 낸 방식은 상이했고, 그리고 이런 모순들이 러시아혁명과 ‘사회주의 혁명’관을 형성한 배경이 되었지만, 회고해 볼 때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주의’라는 쟁점으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두드러지게 평화와 소비에트라는 매우 중요한 쟁점과 조직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5.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 -- ‘사월테제’와 「임박한 파국」의 대립

 

  20세기초 세계자본주의의 모순은 여러 가지 형태의 이른바 ‘사회주의혁명’으로 귀결되었다. 그 모든 ‘사회주의혁명들’은 모두 세계혁명으로 발언되었고, 추진되었지만, 그 과정은 세계혁명으로 귀결되지 않았고, 일국사회주의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사후적으로 이들 혁명은 혁명후 국가들을 세계체계의 주변부에서 반주변부의 위치로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고, 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한 후 이들 국가를 다시 세계경제에 핵심적 동력으로 다시 ‘접궤’(接軌)시키는 것으로 역설적으로 끝맺음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다음 부분에서 이야기할 미국헤게모니의 확립과정과도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데, 이 과정을 통해 20세기적인 국가주의-발전주의쌍이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자동적인 것은 아니었고, 여기에는 이를 고착화하게 되는 내적으로 대립적인 상이한 두 가지 사고의 대립이 공존해 있었다. 러시아혁명의 과정에서 보자면 이는 레닌의 사고 속에서 나타나는 ‘4월테제’와 「임박한파국,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사이의 대립 속에서 드러난다.
  후기 레닌에게서 나타나는 이행기론의 쟁점은 세 가지 상이한 저작들 속에서 등장한다. 첫 번째로 ‘사월테제’는 소비에트라는 쟁점을 제기하며, 두 번째로 "임박한 파국"은 이행의 물적 토대라는 쟁점을, 세 번째로 "국가와 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정치와 경제” 같은 글들은 사회주의 하의 모순의 문제, 그리고 국유화와 사회화의 구분이라는 쟁점을 제기한다.
  여기서 두 번째 저작인 "임박한 파국"은 다른 저작들과 다소 모순적인 관계에 놓인다. 특히 ‘사월테제’는 소비에트를 특권화하고, 당은 중심적 위치에 놓이지 않고, 이에 적합하게 당의 사업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월테제’ 이후의 레닌의 저작들은 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성장전화’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이런 점에서 ‘사월테제’는 이례적인 저작이며, 사실은 이 테제가 발표된 당시나 그 이후 모두 체계적인 오해의 대상으로 남았던 저작이다.
  ‘사월테제’에는 정리해 보자면 세 가지 내용이 포함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첫째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라는 구호가 핵심이 된다는 점, 둘째로 당의 위상은 소수파이며, 소비에트에 대한 지지에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 셋째로 국유화에 부차적 중요성만 부여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사월테제’이후 10월혁명으로 가는 과정에서 볼세비키의 현실적 집권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사월테제’의 쟁점은 뒤로 밀려나면서 오히려 "임박한 파국"의 문제제기가 전면에 부각된다.
"임박한 파국"은 사회주의와 구분되는 민중민주혁명의 시기를 명시화하는 방식으로 독해되었다. 여기서 레닌은 "두 가지 전술" 시기와 다르게 이행강령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특히 핵심은 조건이 붙은 국유화 강령이었다. 그것은 세 측면의 내용을 갖는다. 첫째는 독점자본의 국유화가 사회주의로 가는 물질적 토대가 된다는 점, 둘째는 민주주의적 요구들이 최소강령에서 이행강령으로 전환되는 제국주의 시대의 규정들로 인정된다는 점, 셋째는 그 결과 사회주의에 대한 ‘성장전화’론이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규정된 레닌의 이행기론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일정한 비판의 준거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주의로 성장전화와 여기서 민중민주주의 혁명의 불가피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정한 선긋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 레닌의 논지는 우클라드론의 전제에서 나온 결론들이었는데, 쟁점은 그럼 국유화란 무엇인지, 국유화된 부분은 사회주의적인 우클라드인지라는 질문이 다시 제기된다. 특히 ‘사월테제’와 더불어 수면위로 부각되었던 이행기의 ‘정치’라는 쟁점은 이 시기에 다시 수면 아래로 잠복한다는 문제가 숨겨져 있었다. 물론 이후 레닌이 줄곧 강조했듯이 국유화와 사회화는 구분되며, 현실 사회주의 하에서 사회화의 과제는 미해결로 남아있다는 쟁점이 남아있음에도, 국유화 우위의 사회주의 해석이 일반적으로 정착되는 효과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구도에서 볼 때 국독자론은 사실 일국일공장제의 기반이 될 수 있었는데, 전국에 대한 경제통제가 가능하다는 생각, 그리고 이는 전 산업이 아니라 일부 핵심 부문만 국유화하더라도 가능하다는 생각에 의해 이 구도는 강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네프 시기 들어 이데 대한 일정한 사고의 전환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시기에 소비에트에 대한 강조가 복권되지는 않았다. 이 시기에는 혁명이 강요한 자기제약이 작동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단 일정에 오른 혁명을 실패로 돌릴 수 없다는, 그리고 장악한 국가권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자기 제약이었다. 그 때문에 ‘사월테제’는 부활하지 않고, 대신 현실적 문제에 대한 조치로 당내 정풍과 대중민주주의에 대한 강조가 등장한다. 그 결과 관료제의 문제는 모호하게 남으며, 잉여가치 전유 메카니즘의 질적 구조의 문제, 또는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노동 분할의 내적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은폐된다. 결국 소비에트의 우위 대신 당이 지도하는 대중의 재교육 사업이 중요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러다 보니 대중 조직과 관련해 ‘당,’ ‘소비에트’, ‘노조’ 셋이 동시에 문제되고, 이들 사이의 관계 또한 문제가 되었지만, 결국 당의 우위 하에 다른 두 가지 조직의 문제제기가 봉쇄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1920년대 초반의 구도에서 대중조직의 발전의 제약은 세 가지 조직 발전의 억압으로 나타난 바 있는데, 소비에트, 레드 페트로그라드, 수병반란이 그 세 측면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 중국혁명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는 1927년 마오의 「호남성 농민운동 조사보고」와 1930년대말 이후의 신민주주의론 사이의 대립에서 유사한 형태로 발견된다. 마오에게 잊혀졌던 이 쟁점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1960년대 문화대혁명과 더불어서인데,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 「호남성 농민운동 조사보고」가 주요 저작으로 다시 광범하게 학습되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문화대혁명의 국제적 영향력의 전파도 이런 점에서 다시 재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여기서 잠시 중국혁명의 길의 독특성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후 동아시아에서 국제주의의 문제를 논의할 때 중요해지는 부분이다. 여타 사회주의 국가의 성립과정의 경험에서는 기존의 국가의 위기 속에서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사회주의 정당이 출현하여 짧은 정치적 이행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구국가의 붕괴 이후 사실상의 국가부재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고, 그 속에서 새로운 국가보다 먼저 오히려 당이 건설되었고, 이 당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갔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여타 사회주의 정당에 비해 대중적 토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왜 중국에서 당의 존재가 국가의 존재와 거의 동일시 되는지, 중국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 위기가 출현함에도 왜 당이라는 경계를 넘어서기 어려운지를 설명해 준다.

 

6. 미국헤게모니와 발전주의

 

  19세기말의 영국식 자유주의의 위기는 20세기 30년대 미국의 뉴딜과 더불어 미국식 20세기 자유주의가 재탄생하면서 극복되었다. 사실 미국이 새로운 헤게모니로 부상하는 것은 미리 예측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영국 중심의 자유주의가 노골적인 유럽중심주의를 드러내는 ‘문명론적 자유주의’라고 한다면, 20세기 미국자유주의는 전세계의 ‘미국화’의 가능성과 필수성을 역설하는 ‘발전주의적 자유주의’로 등장한다. 그 발전의 단위는 국가가 되며, 그 국가의 관리학으로서 사회과학의 포괄적 중요성은 미국 헤게모니와 더불어 증가한다. 19세기까지 국가들 사이의 관계의 구체적 질서가 없이 외형상 ‘세력균형’이라는 보수적 국제주의나 자유시장경제라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내맡겨져 있던 것에 비해, 20세기는 명시적으로 UN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정치’질서를 만들어 냈다.
  그 영향은 생각보다 매우 광범하였다. 한 예로 사회주의 국가들의 혁명과정에서도 그 영향은 두드러지는데, 중국 혁명의 경우에도 1930년대 줄곧 관철되어 나타나던 세계혁명적 관심이 1940년대 들어서는 줄어들면서 대신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 증가와 더불어 일국사회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언사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만큼 발전주의-국가주의 담론은 사회주의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후 이런 ‘미국화’의 영향력은 전지구적으로 폭넓게 확산되며, 그것이 결국 20세기를 넘어선 이후 국제주의의 재형성의 질곡으로 작동하게 된다.
  또한 냉전시기 이후에도 이런 미국 중심의 발전주의적 질서의 재편은 매우 중요해졌는데, 심지어 이러한 상황 속에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제3세계주의조차 국제주의라기보다 국가주의에 핵심적으로 포섭된 부분적 국제주의로서 나타났다. 다만 이런 제3세계주의는 중심-주변 문제를 징후로서 포착해낸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7. 평화를 향한 대장정

 

  사회주의와 국제주의 사이의 모순은 처음에 두드러지지 않다가 냉전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점점 더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소련의 국가 존속의 논리에 세계혁명의 논리를 종속시켰다는 비난이 곳곳에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그 정점은 군사적 논리로 혁명의 논리를 대체하는 데서 발견되었다. 미국의 위협론에 대응하는 논리로서 핵개발이 정당화되면서 이 문제는 좀 더 두드러졌다.
  2차대전 종전 후 핵무장과 핵무기에 대한 반대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소련의 핵무장이었다. 소련은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하였고, 미국 핵보유에 대한 억지력을 갖기 위해 핵무장을 정당화하였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핵폭격 위협에 노출된 중국 또한 핵개발을 추진하였으며, 중소분쟁이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핵보유의 논리를 더욱 정당화하여 1964년 핵실험에 성공하였다.
  여기서 모두 핵보유는 ‘국가생존’의 차원에서 정당화되었으며, 소련의 핵보유는 소련이나 소련 외부에서 모두 사회주의 운동이 핵무장에 반대하는 싸움을 전재할 수 없는 자기무력화의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무엇보다 ‘사회주의 조국을 방위’해야 하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기파괴적이었다. 핵보유는 결국 국가간체계의 논리를 사회주의 국가들에 깊숙이 내장시키는 핵심 기제로 작동하였으며, 국가권력의 논리가 대중보다 우위에 서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문제는 핵보유가 대중운동을 희생하는 대가로 국가를 생존시키고 국제주의를 억압하는 계기이자 논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국가권력의 지속성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더라도 운동을 소생시키고 국제주의로 나아가는 길은 봉쇄되었던 것이다. 세력의 비대칭성을 운동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간체계의 동학을 통해 쉽게 세력균형의 틀 속에 들어감으로써 비대칭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이 커졌던 것이다. 그 가장 극단적 사례로서 초대형 수소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짜르 봄바’의 개발은 그 역설을 가장 잘 보여준다. 짜르봄바는 소련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결국 체르노빌 사건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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