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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땅의 사람

33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2/05
    200612 -- 바로 이책!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땅의 사람
  2. 2006/12/03
    20061203 -- 반전평화공동행동
    땅의 사람
  3. 2006/12/03
    20061201 -- 평화오름
    땅의 사람
  4. 2006/11/30
    20061130 -- 눈이 옵니다.(1)
    땅의 사람
  5. 2006/11/29
    20061129 -- 한미FTA저지 2차 총궐기 집회
    땅의 사람
  6. 2006/11/29
    20061126 -- 전북 무주지역 문화답사
    땅의 사람
  7. 2006/11/25
    20061125 -- 한미 FTA저지 국민촛불문화제
    땅의 사람
  8. 2006/11/23
    20061122 -- 한미 FTA저지 국민촛불문화제
    땅의 사람
  9. 2006/11/16
    200611 -- 사진의 구도
    땅의 사람
  10. 2006/11/16
    20061116 -- 낙엽을 보면서..
    땅의 사람

200612 -- 바로 이책!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침묵과 열정 (부제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강양구, 김병수, 한재각 함께 쓰다.
-2006년 7월 처음펴냄
-펴냇곳 : 후마니타스

 

또 황우석인가?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이렇게 지나가기엔 황우석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한때는 국민의 희망이였고 전세계 불치병환자들에게 새 삶을 보장해줄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던 황우석은 역사에 길이 남을 국민 사기극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황우석은 조사결과에 반발하고 있고 당시 음과 양으로 밀어주던 검은 연결고리들은
나 몰라라 사과 한마디 없이 응근슬쩍 넘어가고 있습니다.

 

대충 1년전 혹은 2년정도의 사기극의 과정이 씁쓰레한 기억으로만 알고 있겠지만
사실 7년(1999년)전부터 사기극의 씨앗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 사기극의 조연으로 정치인, 자본가, 정부관계자, 언론인, 학자가 총 출동하여
온 국민을 사기극의 관객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는 불치병환자와 냄비근성의 네티즌을 들러리로 세우고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미신을 만들어 냈습니다.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2005년 12월 밤늦게 PD수첩이 긴급편성되어 방영된 다음날 황빠에서 황까로 돌변한
KBS뉴스가 황우석의 농장을 찾아가 이곳에서 황교수가 정부관계자와 언론인등을 불러
접대성 고기파티를 했다고 보도하던 뉴스를.

 

PD수첩의 취재윤리위반을 보도하며 덩달아 청부취재와 자금운반을 충실히 수행한 YTN의
김진두기자는 멀쩡하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그리고 순간의 실수를 반성조차 없이 넘어가려는 글쟁이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 진실보다 국익이 중요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중앙일보의 홍혜걸기자.......이미 고인이지만 강원용목사의 글도 대단합니다.

 

반면에 PD수첩에 황우석 연구의 허위를 제보한 사람은 회사로 부터 강제사직을 당하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면서 이 책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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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3 -- 반전평화공동행동

종로 보신각 앞

자이툰철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반전평화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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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1 -- 평화오름

평화오름
용산역 5층 강당
-군사도시 용산에서 김영진을 생각한다.

김영진
동국대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민주노동당 당원과 용산 진보정치연구회
회원으로서 사회진보를 위한 열성적인 활동을 했다.
2005년 사회주의자로서 국가의 폭력적인 징집제를 반대하며 병역거부를
실천하여 1년 6개월의 실형을 언도받고 지금은 의정부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1 사회자 김종철 #2 #3 '국기에 대한 경례'를 비판하여 정직 3개월에 처해진 이용석선생님. 김영진씨가 보내온 편지를 읽어주고 있습니다. #4 #5 그룹 소풍가는 날이 노래를 부릅니다. #6 #7 #8 #9 #10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의 이야기 마당 #11 정윤경씨가 노래를 불러줍니다. #12 #13 #14 #15 김영진씨의 부모님이 나와서 인사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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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30 -- 눈이 옵니다.

2006. 11. 30. 11:11
남산 산자락의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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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9 -- 한미FTA저지 2차 총궐기 집회

퇴근하고나서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어찌된 나라인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헌법의 기본권조차 말살하려하는지...

(가지고 다니는 컴팩트디카로 몇장 찍었습니다.)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앞길을 막고 집회중입니다.

 

 



농민분들이 배추를 도로에 버려두었습니다.

요즘 배추한포기 300원한다고 합니다.

길거리 자판기 커피보다 싼 배추.....

 

어찌하오리까...

 


 

명동성당 근처에서 촛불집회로 정리집회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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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6 -- 전북 무주지역 문화답사

"무진장" 춥다 라고 말 할 시기가 왔습니다.

하지만 "춥다"를 강조하는 부사로만 쓰기에는 무진장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진장(無盡藏)은 "더 할수 없이 많다"를 가진 불교용어이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저리로 서민들에게 융자해주는

금융기관이기도 했습니다.

이 금융기관은 조선에서도 무진장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흔히 무주(茂朱), 진안(鎭安), 장수(長水)를 아울러 무진장(無鎭長)

이라 하고 세지명을 아울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전북에는 세곳을 아우르는 "무진장소방서"도 있습니다.

 

 

그곳.

무진장의 무주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행사주체 : 전태일기념사업후원회 문화답사모임

 

#1

무주군청 뒷마당에 있는 천연기념물 249호 구상화강 편마암입니다.

바위속에(변성암) 아이 주먹만한 자갈이 있는데 신기하더군요.

세계에서 100여곳에만 나타나는 암석인데 우리나라에는 5곳이 있고

그중에 한곳이 무주입니다.

 

무식한 저는 돌멩이가 천연기념물인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2

 

#3

 

#4 한풍루(시도 유형문화제 19호) 예전에 돈깨나 있는 치나 벼슬아치들이 지들끼리 놀던 곳이라 합니다.

남원의 광한루와 함께 아름다운 누각이라 하는데 처음있던 곳에서

충북 영동군 강변으로 옮겼다가 1971년에 이곳으로 다시 옮겨졌다고 합니다.

 

#5

 

#6

 

#7 현대화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후대의 사람들이 보수하면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8 누각의 천정 이슬람사원의 천정문양과 비슷합니다.(사진으로만 보았지만)

이런 문양은 아라베스크문양이라고 합니다.

아라베스크문양은 문자, 식물, 기하학적인 모티브가 어울려 교차된 곡선이 융합되어가는

환상적인 무늬를 말합니다.

이슬람사원의 벽면과 장식품에서 흔히 볼수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청자상감 당초문유병, 분청사기 상감당초문병, 고려 동제범종,

청자상감국화당초문 대접등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당초(唐草)무늬를 사용한 공예품입니다.

이 소장품에 대한 영문설명서에는 당초무늬를 아라베스크 디자인(arabesque design)

이라 합니다.

아라베스크 디자인은 알게 모르게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참고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의 "중동과 이슬람 바로알기"강연)

 

 

#9 천정의 보에 그려진 용의 발톱.

재미있는 발견입니다.

왕이 시무볼때 입는 곤룡포에는 용의 발톱을 3개 까지 수놓을 수 있는데

그것은 왕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중국의 황제는 5개를 수놓는다고 합니다.

 

가끔 자주성이 강한 왕이 용의 발톱을 5개까지 사용했고 세자는 4개를 사용했다합니다.

그래서 이 한풍루는 세자가 이용했거나 세자를 위해 지은 누각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사원이나 향교에 가면 문이 3개인데 가운데 문은 신이 출입하는 곳이라

사람의 드나듦이 없고 사람은 (앞에서 봐서) 오른쪽문으로 들어가 왼쪽문으로

나온다는건만 알았지 문에 3개인 이유를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참고로 서울시청옆 덕수궁 대한문도 문이 3개이고 중국의 천안문은 문이 5개입니다.

 

 #10 나제통문

이 아니고 그냥 석굴문입니다.

 

높이 3m, 길이 10m 암벽을 뚫은 통문 1963년 무주구천동 33경을 만들면서 신라와 백제를

잇는 나제통문으로 둔갑해 교과서에도 실렸지만 한국 우리민족연구회 오재성씨가

일제시대때(1910년경) 채굴된 금을 운반하기 위해 뚫은 것을 밝혀내어 교과서에서는

사라졌습니다.

1970-80년대만 해도 일제시대때 강제 노역한 마을 노인들이 많이 생존해 계셨지만

지금은 대부분 작고하셨습니다.

 

주위에는 나제주유소, 나제분식, 나제휴게소라는 간판을 단 상점이 성업중에 있습니다.

아직도 무주 33경의 제1경을 차지하고 있게 내버려두는 관공서나 상업적 이윤에 앞서

역사까지 왜곡하는 모습이 내내 마음을 불편케 하였습니다.

 

#11

 

 

#12

 

 

#13

 

#14 서벽정 한말의 유학자 송병선이 1886년(고종 23)에 건립 송병선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종에게 상소를 올리다가 고향에 강제이송되어 자결한 사람입니다.

 

#15 반송(천연기념물 291호)

전북 무주군 설천면 보안마을. 나이 350살정도.

 

#16

 

 

#17 적상산성(사적146호) 1374년(공민왕23) 최영의 요청으로 적상산성축조 보기에는 특별해 보이지 않고

높이도 1m정도 입니다.

하지만 아래는 낭떨어지라 천연의 요새가 됩니다.

 

#18 적상산성위에서 바라보다.

 

#19 적상산성바로 위에는 안국사가 있습니다.

대웅전이 아니라 큰법당이라는 말이 맘에 듭니다.

 

 #20 안국사 극락전(시도 유형문화제 42호) 원래 이절터에는 호국사가 있었지만 양수발전소 건설로 안국사가 수몰지역으로 결정되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21

 

 

#22 극락전의 창살

 

#23 성보박물관

 

#24 세계 여러나라의 불상

 

#25

 

#26

 

 

#27

 

 

#28 안국사 근처에 적상산사고(史庫)가 있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습니다.

터만 남아 있던 사고터에 새로 짓고 건물모양만 있습니다.

책상이나 책꽂이라도 몇개 갖다 두지....

 

#29 적상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다.

 

#30 아래에 적상산 산정호수가 보입니다.

 

#31

 

#32

 

#3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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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5 -- 한미 FTA저지 국민촛불문화제

장소 : 서울 종로 보신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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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
 
 
 
끝으로 도로가에서 차안의 시민들에게 선전전을 합니다.
#12
 
#13
 
#14
 
 
건널목에서 파란신호일때 잠시 서서 선전전을 합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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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2 -- 한미 FTA저지 국민촛불문화제

먹고 살아야 하기때문에 퇴근후에 촛불문화제에만 갔었습니다.
그나저나...
오늘도 공중파들중에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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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 -- 사진의 구도

* 어느 단체의 소식지에 싣고자 사진관련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글 솜씨가 없어 한참 고민하다 몇 글자 적어봅니다.

* 사진의 구도
요즘 나오는 카메라는 성능이 좋기 때문에 초보자라 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불과 5년전 수동카메라를 사용하던 때보다는 여러모로 좋아진 것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적정한 노출과 셔터스피드로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사진의 구도에

있어서는 부담스럽고 낯선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사진의 구도는 무엇인가?
네이버 지식검색창에서 자료를 뒤져보면 예제사진까지 곁들여진 친절한 설명이 수십 가지가 나옵니다.

먼저 사진교과서에 있는 설명을 옮겨보면 구도에는 사선구도, 삼각형구도, 수평구도, 수직구도, S자형구도, 원형구도, 황금분할 구도등이 있는데 막상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다 보면 막막해 지는 게 누구나 경험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지레 겁먹지는 마십시오.
하루아침에 되는 일도 없지만 하다보면 안되는 일도 없습니다.
저도 늘 구도에 있어서는 여러 장을 찍어서[브라케팅] 가장 어울리는 사진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원과 삼각과 사각의 구도입니다.
사실 이런 기준은 우리가 흔히 보는 주위의 사물들 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보이는 프레임속의 사물에 대해서 각각의 기준으로 조합을 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교과서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구도는 잠시 잊어주십시오.)


△사진 1 - Nikon D2X af24-70 F2.8 1/125 iso 500

(2006.7.13. 광화문 촛불문화제)

 

사진1은 바로 원형구도로[S자형구도, 중심구도, 원형구도]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주제만을 강조할 경우에 효과적인 구도입니다.


 

△사진 2 - Nikon D2X af80-400 F4.8 1/200 iso 800

(2006.8.14. 연세대 자주평화 범국민대회 전야제)

사진2 는 삼각형구도로[사선구도, 삼각형구도] 이사진에서는 진행성과 긴박감,

역동성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삼각형구도에서는 안정감과 깊이감이 표현됩니다.

 

 


△사진 3 - Nikon D2X af80-400 F5.6 1/250 iso 100

(2006.9.23. 서울역 923 반전행동)

 

사진3은 사각형구도로[황금분할구도, 수평/수직구도] 가장 안정감이 있는 구도이지만

교차되는 점의 위치에 따라 다른 느낌의 사진이 가능합니다.


몇 가지만 보기를 들어 설명드렸지만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는 대상들 속에 사진의 구도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구도들이 이미 정해진 틀이 아니며 공식화된 규격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구도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가장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보여주는 구도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세가지 기준은 구도를 구성할 때 삶속의 대상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통해서 익숙해 질 수 있는 기준들입니다.

자..그러면 일단 카메라를 들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시고 시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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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6 -- 낙엽을 보면서..

점심먹고 잠시 걷다보니 낙엽이 눈이 들더군요..

몇장 사진을 찍고 보니 이 시간쯤엔 오늘 하루에 인생이 걸린 사람들이(수능수험생)
점심을 먹고 잠시 마음을 달래고 있겠구나..싶더군요.

인생이 하루에 결정된다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좌우간 고생들 했으니
이제는 편안하게 낙엽도 보면서 삶을 계획하였으면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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