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5/12/22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2/22
    카스테라 / 박민규
    ninita
  2. 2005/12/22
    나의 미카엘 / 아모스 오즈(2)
    ninita
  3. 2005/12/22
    천리마 축구단 / 대니얼 고든(2)
    ninita

카스테라 / 박민규

= 아무튼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는 건데, 왜 사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한다는 건 참, 하하, 묘한 설정인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살아요. 잘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고. 내가 잘살면 다른 누군가가 못살 것이라는 느낌도 들어요.

 

- 이 세계에서 고통의 총량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의미인가요?

 

= 예. 그래서 지금은 막연하게 특별히 아무것 안하고 그냥 있다가 가고 싶어요.

 

(씨네 21 김혜리 기자와 박민규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막연하게, 특별히, 아무것 안하고, 가 그까이꺼 대충은 아닐 테지만, 나는 이미 보아뱀의 뱃속에 들어간 코끼리처럼, 그냥, 숨만 쉴래.

 

후후하하. 세 번쯤 웃었고, 총 열 편 가운데 세 편쯤 좋았다 - 작가는 대책없이 톡톡 튀어올랐지만 그의 대책없음에는 세상에 대한 나름의 통찰과 세상살이에 대한 연민이 있어 좋았다 - 유쾌한 모든 구절들을 뒤로 하고 갑을고시원 체류기의 마지막을 인용해 보자, 그럼 이해가 갈테니.

 

어쨌거나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거대한 밀실 속에서

혹시 실패를 겪거나

쓰러지더라도

또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모두가 돌아와 잠들 수 있도록.

 

그것이 비록

웅크린 채라 하더라도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의 미카엘 /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은 적요한 소설이었다 - 사랑하는 이에게서 낯설음을 느끼고도 결혼한 어떤 여자의 10년은,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듯 퍼석거렸다 - 따뜻하고 예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 잊는 것은 곧 죽는 거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하나씩 잊어가기 시작했다 - 

 

이 얘기도 기록해 두어야겠다.

미카엘과 내가 침대덮개를 털기 위해 마당으로 가고 있다. 잠시 후에 움직임을 맞춰서 함께 흔들어낸다. 먼지가 일어난다.

그러고는 침대덮개를 접는다. 미카엘이 갑자기 나를 안겠다고 생각한 것처럼 팔을 쭉 뻗은 채로 내 쪽으로 온다. 그가 쥐고 있는 두 귀퉁이를 내민다. 그는 뒷걸음질쳐서 새 귀퉁이를 다시 잡는다. 내게로 온다. 내민다. 뒷걸음질친다. 잡는다. 내게로 온다. 내민다.

 

- 됐어요, 미카엘. 다 끝났어요

- 그래, 한나

- 고마워요 미카엘

-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한나. 침대덮개는 우리 둘 다 쓰는 거잖아.

 

마당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저녁. 첫 별들. 희미하고 멀리서 들리는 울부짖음 - 비명을 지르는 여자 혹은 라디오의 소리. 춥다. (p.26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천리마 축구단 / 대니얼 고든

 

이 자료사진만 하더라도 몇 컷으로 나뉘어 북한팀과 상대팀의 명암을 드러내는데 위트있게 쓰였다. 인터뷰 내용과 적절하게 매칭되는 자료화면과 나레이션의 리듬이 전체적으로 영화를 살리고 있었고.. (문장으로 보면 참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데, 어렵지..)



별다른 주장 따윈 담겨있지 않은 이 작품에 대해서.... 감독이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이라고도, 외부자의 시선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소재가 그러했을 수도 있고.. 이 작품은, 굳이 북한이 아니었다 해도 어떤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정치적인 어떤 시대의 공기가 이성을 흐릴 때, 그로 인한 무지는 편견과 공포를 조장하기 마련.. 북한팀에 대한 초기 영국 언론의 반응은 그러한 것이었다. 외무성의 입장은 그것대로 냉전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고. 편견으로 덧칠된 미지의 북한팀이 미들스버러 시민들의 '홈팀'이 되고, 리버풀에서도 환대를 받는 동안, 편견은 탈색되고 그들 사이를 흐른 건 '우정의 노래'였다. 그렇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만으로도 그저 따뜻하게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인 셈. 하지만 그들 사이에 생겨난 '우정'과 몇십 년이 지나 미소지으며 회상할 수 있는 따뜻한 '기억'은, 축구선수와 축구팬 사이의 인간적인-감성적인 무엇이지 체제에 대한 이해나 공존을 보장하기 위한 길로 나아갈 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흥미롭고 재미있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