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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이 세대갈등 부추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메르스 부실 대응에 대한 사과가 포함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박 대통령은 메르스라는 단어 자체를 꺼내지 않았다. 독단적인 정권의 통치스타일은 이번 대국민담화에서도 반복됐다. 기자들과의 문답도 없이 고위 공직자들을 병풍처럼 둘러세우고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린 것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노동개혁’이었다. 대통령은 노동개혁은 일자리라고 단언했다. 특히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시장의 유연성이 절실하다는 인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인식 자체는 아무런 실증적 근거가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은 내년부터 시행될 60세 정년제로 인해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청년 채용을 늘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주장은 전경련을 비롯해 경영자 단체들이 줄곧 해온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특히 대기업이 돈이 없어 청년 채용을 꺼리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당장 10대 그룹의 상장사 96개사의 사내유보금만 500조원이 넘는다. 지난해만 해도 이들 대기업은 40조원이 넘는 유보금을 더 쌓았다. 따라서 60세 정년제가 이들 기업을 한계 상황으로 몰아 청년 채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쉬운 해고’를 청년 일자리의 해법으로 제시한 것도 황당하다. 해고가 쉬워지면 노동자들의 교섭력이 낮아지고 임금도 떨어지게 된다. 더 싼 값에 노동자를 부릴 수 있게 되면 여기서 얻은 이익으로 청년들을 고용할 것이라는 식인데, 그야말로 순진한 발상이다. 스스로도 쑥스러웠는지 박 대통령은 대기업에 대해서도 두 문장을 통해 ‘대승적 결단’, ‘양보’, ‘타협’을 주문했는데 막상 이를 강제할 어떤 정책적 수단도 내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은연중에 세대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극한에 달한 청년층의 분노를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돌리겠다는 것인데, 이미 지적한 것처럼 여기엔 아무 실증적 근거도 없다.

한편 노동개혁을 제외한 공공부문 개혁, 교육 개혁, 금융 개혁에서는 이렇다 할 내용이 없었다. 말로는 4대 개혁이라지만 결국 노동자들의 권리를 축소하겠다는 위협 빼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셈이다.

현 정권은 심지어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서도 아무런 업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라는 구호 아래 보수 개혁을 주도했다면, 이 정부는 ‘정상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왔다는 것이다. 이번에 4대 개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노동개혁 하나뿐이고, 그것조차 일방적 강요에 그치니 저항은 필연적이다. 지금껏 무능했던 정권이 이제 내놓은 것이라곤 국민들을 사분오열시켜 서로 갈등하게 만드는 것이고, 갈등과 저항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으니 또다시 무능으로 귀결된다. 악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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