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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IMF사태 근원 밝힌 '이상호 X파일'

97년 IMF사태 근원 밝힌 '이상호 X파일'

"오늘은 우리 언론사에 특이한 사건이 일어난 날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2005년 7월 21일, MBC '뉴스데스크' 엄기영 앵커의 말대로 이날은 전 언

론사가 한 언론사의 보도를 놓고 일제히 주목한 '특이한' 날이었다.

'조선'이 찔러보고 MBC 방패삼아 KBS는 할 말 다 하고….

조선일보의 보도에 '이상호 X파일'의 실체가 드러나자 MBC는 세시간여에

걸친 난상토론을 통해 보도를 결정했고 이에 삼성 측은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MBC와 삼성의 반응과 행보에 주목하며 중계방송에

들어갔다.
방송은 허용하되 원음이 나가는 것을 금지한 법원의 결정에 따라 MBC는

불법 녹취 테이프의 원음을 공개하지 않은 리포트를 방송했다.

이른바 `X파일`은 지난 정권이 운영했다는 도청팀 `미림`이 녹음한 테이프중

 하나다. 이 테이프에는 지난 1997년 대선때 모 그룹 고위관계자와 언론사

고위관계자 사이의 대선자금 지원관련 대화들이 녹음돼있다.

어쩄든 x파일의 이번 파일은 어디까지나 '이상호 X파일'로 불려야 마땅하다.

작년 말부터 지난 7개월동안 진실보도를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해 온 이상호

기자가 없었다면 묻혀질 내용이었을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없었으니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이곳에 쏠릴수 밖에 없다.
  
 조선일보에 이어 선수를 친 KBS를 통해 부분 공개된 '이상호 X파일' 내용은

 우리나라의 자본권력, 언론권력, 정치권력, 관료권력 등 4대 권력의 추한

뒷거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국민들을 또 한차례 분노케 하고 있다.

이미 미뤄 짐작하던 바이나 실제로 접하니 이들 권력의 위선과 교묘함에

살이 떨린다는 게 다수 국민의 반응이다.
  
이러한 보도로 마음 졸이고 있을 정치인과 자본가들은 어떤 심정일까 몹시도

 궁금하다. 삼성그룹 등 X파일에 언급된 당사자들은 "이미 2002년도 대선자금

 문제가 밝혀져 처벌까지 받은 마당에 그 전 얘기인 1997년도 대선자금 문제가

 왜 뉴스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국민들이 일시적으로 재벌 등을 욕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지 모르나 경제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언론 보도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지들이 경제를 이지경으로 망쳐놓은 것도 모르고

  그저 지들이 전보다 쓰는 돈이 많아져서 남들도 경제가 더 나아진 걸로 착각

하는 모양이다.
  
  국가재앙을 초래한 삼성의 기아차 인수공작
  
  '이상호 X파일'의 진정한 가치는 이같은 4대권력간 야합이 다름아닌 '

1997년'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는 데에 있다. 1997년은 IMF사태라는

 '국가 파산'이 발생한 해다. '이상호 X파일'은 왜 1997년 한국경제가 국가파산을

 하며, 수많은 국민이 해고와 불황의 늪에서 고통받아야 했는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관련, KBS가 공개한 여러 녹취 내용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 공작이다.
  
  KBS 보도에 따르면, 중앙일간지 고위인사는 기아자동차를 문제의 대기업이

인수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한 뒤 정치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대기업 고위인사에게 제시했다. 그는 또한 이와 관련, 집권당 실세가 "이 기업이

 갖고 있는 복안을 당당하게 공론화시켜주면 당내 정책위에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을 대기업 고위인사에게 전했다.
  
  이 녹취는 기아자동차 인수를 위한 삼성-언론-집권당간 3각 야합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1997년 IMF사태 발발의 결정적 기폭제가 된 것이 '기아사태'였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1997년 7월15일 발발한 기아사태는 가뜩이나 위태롭던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가하며 외국인 자금 이탈을 초래해 우리나라는 그해말

끝내 IMF에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하며 비참한 '경제 피식민지'의 길을 걸어야

했다.
  
  기아사태 발발 직전 기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삼성의 공작으로 기아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캐피탈 등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이 빌려주

었던 4000억원을 급작스레 회수하는 바람에 재정난에 봉착해 파산위기에

몰렸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채권단이 기아에 대해 화의 결정을 내렸음에도 강경식 당시 경제

부총리가 법정관리를 고집해 이를 관철시킨 대목에 대해서도 기아 관계자들은

 강한 의혹을 제기했었다. 이들은 강경식 부총리가 삼성차 인허가 논란 당시

 '중복과잉투자'를 우려한 산자부 등 관련부처의 강력 반대에도 불구하고

삼성차 공장의 부산유치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 친삼성맨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차 진출 당시 재경원(재경부의 전신)에는 친삼성맨들이 즐비했다.

한 예로 현 정부의 고위각료인 한 경제관료는 삼성차가 자동차를 생산하기도

 전에 재경원 주차장에 있던 현대차를 지목하며 "현대차를 보면 문짝 사이의

 틈이 크게 벌어져 있는데 꼼꼼하기 짝이 없는 삼성이 차를 만들면 결코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자들 앞에서 주장할 정도였다고 한다.
  
  법원이 '이상호 X파일'을 전면 공개해야 하는 이유
  
  하지만 이같은 기아 관계자들의 주장은 심증만 있었을뿐 뚜렷한 근거가

 없어 '음모론적 의혹' 차원에 머물렀으나, 이번 '이상호 X파일'을 통해 기아차

 인수를 위한 삼성 막후공작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기에 이르른 것이다.

 신문을 통해 "삼성이 기아차를 인수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고, 집권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대신 기아차 인수 지원사격을 얻어내려 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치밀했던 기아차 인수공작은 그러나 기아 법정관리 후에도 계속된

 음모론적 의혹 제기와 외국인 자금이탈에 따른 경제적 아노미(무정부)

상태가 발발하면서 결국 실패했고, 그 결과 애꿎은 국민들만 IMF사태 발발로

 극한고통을 겪어야 했고 그 여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이상호 X파일'은 단순히 4대 권력간 야합의 적나라한 실체를 보여

줬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권력들이 목전의 이익에 눈멀어 국정을 농단할 때

 어떤 국가적 재앙이 도래하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엄중한 진실규명과 책임추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권력들은 언제든 또다시

 야합할 것이며 국가적 재앙은 다시 도래할 것이다.  
  이는 법원이 '인격권' 등 지엽적 시야에서 벗어나 국가안위적 차원에서 '

이상호 X파일'의 전면 공개를 허용해야 하는 핵심적 이유이기도 하다.

법원이 엄격한 보도지침을 내려 다 준비한 특종을 놓쳤다는 mbc의 하소연이

 눈물나올 지경이다.

이나라 이 민족의 발전을 위해 이같은 보도는 세세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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