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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만 전투적인가?

왜 노동운동의 전투적인 방식이 바뀌지 않는지, 그게 노동운동만의 잘못인지에 대해서 노사정 모두가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라고하는 프레시안 00원 님의 이러한 문제 제기에 동의한다. 
  

언론에 나오는 노동조합 관련 기사중 긍정적인 기사는 얼마가 될 지는 모르겠다. 그냥 전부가 부정적이라고 할 상황이니 말이다. 그중 대기업노동조합에 대한 기사는 진짜 올 백이라 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노동운동이 변해야 하는 상황인것은 인정하겠다. 새시대에 맞게 노동운동이 달라진다는건 파업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전투성이 그들에 의해 좋은 평가를 내오지는 못할 지라도 노동조합이 가진 최후의 수단으로서 활용되어져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전투적인 노조가 존재하는건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 내고 있는것 이다. 실제 노동조합이 먼저 전투적으로 치고나오는 경우는 없다. 항상 수세적인 면이 있어 정권이나 자본 혹은 언론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된 상황하에서 대응을 하기 때문이다.

 

노사문제에 있어서 정부는 신중해져야 한다. 내가 대통령과 장관이 툭하면 시비를 거는 대기업노조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정부가 내놓은 노사관계 선진화방안이라는 로드맵은 쓰래기일 뿐이다. 당연히 복수노조는 기업 수준까지 모두 허용해야 할 것이고, 노동운동이 국민경제를 고려하고 미조직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나 비정규직, 그리고 농민이나 빈민 같은 어려운 이웃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본다. 대화와 타협으로 노조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문제들이 풀려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말짱 도루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변화들이 이뤄지려면 자본과 정부의 태도 역시 전향적으로 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한테는 손에 든 돌을 내려놓으라면서 사회적 강자들은 여전히 식칼을 손에 쥐고 있다면 굴종의 삶을 살려는 자가 아닌 이상 손에 든 돌을 내려놓을 리 만무하다.
 
이상수 장관은 "노동운동의 변하지 않는 전투적인 운동방식"에 대해 지적했다. 나는 묻고 싶다. 노동운동만 전투적인가. 한국의 사용자들은 전투적이지 않은가? 한국의 공권력은 전투적이지 않은가? 
한국 정부는 어떤가? 사용자들이 노조에 폭력을 행사할 때는 뒤꽁무니만 빼던 한국의 공권력은 노조가 회사 건물을 점거하거나 사용자들이 동원한 '구사대'와의 충돌이 일어나면 노조만 조져대기에 바쁘다. '전경'이나 '의경'이라 불리는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군인제도를 통해 서민의 아들이 대부분인 젊은이들을 징집해놓고 서민의 민생시위를 진압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한국 사용자들의 전투성은 한국 자본이 투자된 아시아나 중남미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에서 그 명성이 자자하다.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 사장은 대만인 사장과 더불어 '가장 적대적이고 호전적인(hostile and militant) 자본가'로 분류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사용자의 전투성은 노사관계도 모르고 자본도 부족하고 노조도 없는 한국의 영세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나 삼성 같은 대기업들이 노사관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전투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인 사장이 그 호전성과 전투성을 어디서 체득했을까? 한국 안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한국인 사장들의 호전성과 전투성, 그리고 악착같음을 감안할 때 그간 정권의 행태를 답습해온것 일 것이다.


일본 도요타는 임원 보수를 지난 23년 동안 동결시켰다가 올해에야 올리기로 했는데, 2005년 임원 26명의 보수 평균액이 우리 돈으로 4억 원을 밑돌았다. 한국의 친재계 언론들이 칭송하는 도요타자동차 노동자들의 무파업과 임금동결 협조의 배경에는 이러한 도요타 임원들의 솔선수범이 자리잡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는 자기들의 보수는 얼마인지 밝히지 않으면서 회사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고액 연봉을 받는 '귀족 노동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불온시해 온 한국 대기업 임원들과 비교할 때 도요타의 사례는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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