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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하여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

 

 

사회는 우리에게 도덕적 윤리적 조건들을 심어 놓았다.


어떤 행위에 앞서 양심이라 하는 것이

 머리를 들고 제동을 걸어온다 .


그 양심이라고 하는 것들은 타인들의 요구이다.

 

 

때문에 양심을 따르고자 할때 본성이 억압당한다.


본성을 따르려 할 때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불행의 요인이다.

 

 

남들이 반대하는 것을 할 때마다 우리는 죄의식을 느끼며

남들이 말하는 것을 할 때면 행복하지 않다.

 

이러한 갈등에 시달리며 지옥을 초대한다.


지옥으로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라

지옥이 우리에게 다가 오는 것이다.

 

 

자연스러울 때 즉 내적 갈등이 사라질 때

행복속에 있을 수 있다.

 

본성을 따르는 것이 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충동적인 것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각성에서 나온 자연스러움이라야 한다.

 

행위의 충동을 느끼는 것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이랄 수 없다.
 


자연스러워야 한다며 충동대로 살겠다고 하는 것은

커다란 오해이다.

 

자연스러우려면 완전히 깨어(각성) 있어야한다.


깨어 있을 때에는 마음의 함정과 몸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충동에는 마음보다는 자연스러움이 있기는 하다.


육체의 소리를 들을 때는 화학작용의
영향권내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소리를 들을 때는 관념의영향권
내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몸과 마음 둘다의 관조자가 되어야만 한다.

 

관조속에서 자연스러움이 있다.

외줄타기에서 이쪽과 저쪽은 몸과 마음의 기울기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양쪽의 균형을 찾아 평정심을 찾으면
자유로움속에 평화가 이어진다.

 

우리가 불행하다 느끼는 것은 몸과 마음의 불 균형이다.


머리속에 사념을 허락하는 한 불균형속에 있는 것이다.

 

 

관조란 몸과 마음의 소란함으로 부터 거리를 두고
지켜봄을 뜻한다.


소란을 억압하여 재우는 것이 아니라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봄으로서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지켜봄을 뜻한다.

 

-오쇼.라즈니쉬-

 

 

 

 

 

 

 

린다 에더 Once Upon A Dream - Good Night (편안하고 아늑한 밤을 위한 음악) -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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