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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아, 진부하다, 그런데 미안하다. 여전히 진실이다. 여성운동가 엠마 골드만이 일찍이 20세기 초에 했다는 이 명언은 아직도 지구촌에서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다. 여전히 발칙한 ‘예스맨’이 새롭고, 더 많은 ‘예스맨’이 필요한 이유다. 비록 아직은 소수지만, ‘예스맨스러운’ 방식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예스맨처럼 스스로 미디어가 되고(홈페이지 따위를 이용한단 뜻이다), 미디어를 활용하고(언론을 이용한단 말이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나들며(때로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조직이 조직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혈혈단신 나선단 얘기다). 월마트와 이마트에서, 아랍부터 한국까지 예스맨 정신으로 충만한 운동을 스캔해보았다.
당신 투표권의 가격은 얼마?
“뻥이야”도 운동이 된다. 하필이면 만우절에 시작했다. 2001년 미국 뉴욕주 트로이의 월마트에 사람들이 모였다. 쇼핑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쇼핑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들은 조용히 빈 카트를 몰고 천천히 통로를 돌아다녔다. 이렇게 집단 카트 몰이로 쇼핑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것이다. 월마트를 풍자해 훨마트(Whirl-Mart)라 불리는 이 운동의 응용법으로는 물건을 가득 실은 카트를 버리고 가거나 계산할 때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버리고 가는 것이 있다. 이 소비의 배교자들은 매월 첫 번째 토요일이나 일요일 점심시간에 전세계 ‘소비의 전당’ 대형마트 곳곳에 집합해 소비를 반대하는 집회(?)를 벌인다. 훨마트 운동의 소용돌이는 텍사스, 아이오와, 애리조나로 퍼지더니 대서양 너머 영국까지 확산됐다. 이렇게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장소에 모여 무언가 구호를 외치거나 하지 않아도, ‘뻥이야’ 하면서 상황만 뒤집어도 운동이 된다. 촌철살인의 유머로 현실을 비꼬는 사이트도 있다. 2000년 미국의 대학원생 제임스 바움가우트는 투표권 경매 사이트(VoteAuction.com)를 만들었다. “돈이 미국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역설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의 유권자가 자신의 표를 매물로 내놓고 살 기업을 기다린다. 표 가격의 등락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캘리포니아의 푯값은 1표에 1달러를 오락가락했다. 마침 극우 언론이 협조에 나섰다. 극우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이 이 사이트를 공격하자 사이트가 유명해졌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 사이트에 대해 “미국 전역을 통틀어 최악의 정치범죄”라는 영예로운 이름도 붙여주었다. 미 연방수사국(FBI)도 수사에 나서며 결국 서버를 해외로 옮겨야 했지만, 풍자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체 게바라의 정신을 따라서,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가 되려는 사람은 일본에도 있다. 니나가와 스미무라는 ‘선거를 일으키기 위해’ 출마했다. 2007년 4월 일본 지방선거 당시 니나가와가 사는 교토의 선거구는 지방의원 3명을 뽑는 데 3명이 출마할 상황이었다. 투표도 없이 그대로 당선이었다. 니나가와는 경선의 의미를 살리고 독특한 철학을 알리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그가 당선된다면 도입하고 싶다고 밝힌 선거 방식은 ‘마이너스 1표 제도’. 누군가 당선을 위해 1표를 더하는 방식의 투표뿐 아니라 누군가의 낙선을 위해 자신의 1표를 던질 수도 있도록 하겠단 것이다. 니나가와는 “유명세가 곧 당선으로 연결되는 일본 선거 풍토를 바꾸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의 제안은 상상력으로 가득한데, 예를 들면 모든 성인이 3년간 의무적으로 고령자를 돌보는 간병인 제도, 노동할 의지가 있는 60살 이상을 모두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고령자 공산주의 등이 있다. 그의 선거활동은 한국인 김지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선거, 일본의 경우>에 담겨 세상에 알려졌다.
“재개발, 제발” 재개발할 것은 언론
이렇게 주류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으면 스스로 진실을 전하는 미디어가 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방송은 언제나 래핑(rapping)으로 시작됐다. “용산 촛불 방송국 언론 재개발!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줘 제발!” “재개발”과 “제발”의 운율을 살린 활동가 조약골의 랩으로,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 재개발’(blog.jinbo.net/yongsanradio)은 2009년 4월20일 시작했다. 이름부터 발칙하다. 디제이 ‘용산 시스터즈’는 첫 방송에서 “정작 재개발을 해야 하는 것은 언론”이라는 뜻에서 방송의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고 전한다. “건물 대신에 진실을 파헤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은 용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됐다. 때로는 용산의 참상을 알리는 콘서트를 담았고, 철거민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했으며, 농성장에 침탈 위기가 닥치면 사람을 부르는 파발마 구실도 했다. 라디오의 속보성이 좋았다. 용산의 긴급한 상황을 동영상에 담아서 전하려면 편집하는 것을 포함해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라디오는 그대로 녹음해 전하면 되었다. 더구나 철거민을 폭도로 매도하는 가운데 철거민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할 매체가 필요했다. 지역에서 공동체 라디오 운동을 하던 사람과, 노래와 공연으로 평화를 전하는 ‘길바닥 평화행동’과, 어딘가에서 일하던 미디어 활동가들이 ‘언론 재개발’을 통해 안면을 익혔다. 그렇게 용산은 새로운 운동 방식을 개발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언론 재개발’은 용산에서 벌어진 운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역사가 되었다. 옷이 날개, 아니 주장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야간활동 반대.”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10여 명이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 앞에 모였다. 잠옷(파마자)을 입고 졸린 듯 눈을 비비며 나타난 이들은 마트 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자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바코드를 찍고 계산하는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도, 카트를 끌고 장 보러 나온 손님들도 깜짝 놀라 쳐다봤다. 알록달록 색색의 잠옷을 입은 이들은 왜 베개를 들고 마트에 나타난 걸까? 국제암연구소는 야간 문화와 야간 근무환경을 2급 발암물질로 지정하며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독일에선 상점이 저녁 8시까지만 영업하며 일요일엔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밤 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서는 응급실도 아닌 대형마트가 24시간 영업하며 불필요한 노동과 소비를 부추긴다. 여성환경연대 이보은 사무처장은 “야간 문화 중 하나인 쇼핑은 환경은 물론 노동자와 소비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파자마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 3월8일 ‘3·8 여성대회’에 참여해 “밤에는 자자”는 구호를 한 번 더 외쳤다.
야간 문화는 2급 발암물질
사실 복장을 통해 주장을 전하는 전통은 여성주의 평화운동을 통해 한국에 전해졌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당시에 한국의 여성들은 부르카(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 복장)를 입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전쟁으로 피해를 당하는 아프간 여성의 아픔을 전했다. 그로부터 촛불까지, 다양한 퍼포먼스가 거리를 수놓았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에 ‘발칙한 운동’의 전통은 희미하다. 스스로 즐겁지 않으면 나의 혁명이 아니란, 절체절명의 원칙을 고수하며 사회운동을 즐기는 당신이 필요한 이유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교토(일본)=김지영 다큐멘터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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