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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04
    중환자실, 전교조 선생들의 호칭법
    득명

중환자실, 전교조 선생들의 호칭법

 

 

 

[Jethro tull-Elegy.mp3 (4.08 MB) 다운받기]

 

 

  15년전..  열받아 노조활동을 하였는데 지금껏 Jethro Tull  을 아는 분을 딱 한 명 만났습니다.  이 음악가가 누구냐면요 하드락 하는 분이라는데 예전에 전영혁의 음악세계 시작음악으로 나왔었습니다.    제가 20여년전 백수생활할때 말똥말똥 누워 있다 들으며 잠들었던 노래라 알게 되었고요.  Jethro Tull  은 예전나온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락커가 머리박아 시키기 전에 아는지 여부를 물어본 음악가 이기도 합니다. 

 

   노조활동은 먼가 달라야한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대중운동의 특성상 이런저런 취향들에 대한 쑥덕거림이 자유로워야하는데..   왠지 경직된 느낌입니다.   아니 그래야하고 먼가 달라야한다는 중압감들이 있는 것도 같고요.  노동자는 항상 무식하고 예술을 향유하면 않맞는 이미지이고도 하고요.  물론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체제를 살아가고 있고 생각도 다른 무수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게 노동조합입니다.   저희 지부장님 어머니 중에 한 분은 전에 한나라당 간부활동을 하셨던 아주머니도 계셨었습니다.  한나라당 간부서 민노총 간부로..  전향한 것일까요? 천만에!  그런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은 어떤 이념단체가 아니니까요.  그분은 현실에 무척 충실하셨고..  갈등사안에 대해 꼭 집어 주장도 하셨고 이해의 폭도 더 넓으셨던 것 같습니다.

 

   노조활동서 흔히들 격게되는 반목이나 일상화된 내편 가르기는..  사실 중환자실 앞에서는 그게 얼마나 부질없으며, 아무리 고상한 이유를 대더라도 얼마나 치졸한 행위들인가가 여실히 들어납니다.   종합병원 중환자실은 보통 하루 2번 30분가량 면회시간이 제한되어있습니다. 면회를 기다리다보면 상태가 호전되어 엄청 많은 기구들을 달고 나오시는 분도 계시지만..  가끔 달구지?같은 병실 침상이아닌 이동식 들것 같은게 들어갑니다.  그러면 얼마있다 거기에 한 분이 죽어서 실려나오죠. 가족들은 넋이 나가고 울음바다가 됩니다.  처음엔 빈 구급대 달구지가 왜 중환자실에 들어가나 이유를 몰랐습니다.  

 

   외상중환자실에 대기중인 가족들은 대기실서 숙식?하는 내과 중환자실 가족들에 비해 말끔합니다.  어떤 환자분은 조카부터 대가족?이 찾아오는 반면..  면회를 아무도 오지 않는 환자도 있습니다. 공통적인점은 모두 근심어린 표정입니다.   그 중에 눈물을 흘리는 가족이 있으면..  환자분 생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표징이기도 합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가족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됩니다.  가끔은 두꺼운 성경책을 들고 오시는 목사님도 계시고..  스님도 초조히 기다리기도 하고요.

 

  저도 내 삶이 영원히 지속될거 같이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요.. 중환자실 대기실에 서면 그러한 착각이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숨쉬고 자고 먹고 싸는게 엄청난 특혜라고 느껴지고..  어떠한 집단에 속에 아웅다웅..  끼리끼리 옳은척하며 자신의 아성만 쌓았던게 부끄럽고 굉장히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문뜩문뜩 듭니다.

 

 사람은 힘들면 남탓을 합니다.  힘들게 병과 싸우다보면..  간혹 간호하는 가족을 탓하여 본의 아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럴때일 수록 간호하는 가족들은 가족이 아니라 환자로..  객관적으로 보아주어야 할거 같습니다.   환자가 갖았던 선의와..  현재의 꺼져가는 환자가 갖고 있는 불성, 신성에 귀기울여야합니다.  그 어떤 어둠에 가리워진 모습이 아니라 진정으로 갖고 있는 사랑으로 태어난 참모습에 귀기울인다고 할까요?  이럴때 그러한 노력은 그냥 되는건 아니고..  '수행' 또는 '기도' 가 필요합니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종교밖에 답을 해줄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중환자실 앞에는 수많은 연령대가 모여있습니다.  나서..  초딩때 귀엽게 자라다가.. 중2때 번식능력(사춘기)을 갖게되어.. 누구하나 눈맞아..   2-3-40대에 번식하며 살다..  5-6-70대에 늙어 죽는게 인생으로 보입니다.  영원할거 같지만.. 흙으로 결국 모두 돌아갑니다.  종교에서는 죽음을 맞이한 순간부터의 '기도'가  돌아가신 이에겐 굉장히 중요한 행위로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49일동안 관문을 거친다고도 하고요.  이승길을 잘 밟아가시라고 그리스도교서도 기도를 계속합니다.  이러한 기도나 염불(지장경)들은 죽은이가 남기는 영혼에 영향을 끼친다고 종교는 이야기 합니다.  거꾸로 이러한 죽음 예식은 계속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주장하였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융 얘기가 더욱 와닿겠지요. 그러나 죽음 앞에는 유신론,무신론 구분 조차도 허무해집니다. 

 

 

 

   전교조 홈페이지에 가니 규약은 비공개로 되어있고..  강령이란 것을 적어놨습니다.  강령 02. 우리는 교직원의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과 민주적 권리의 획득 및 교육 여건 개선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교육여건을 개선하기위해서는 물론 많은 접점을 갖는 교사의 질이 높아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육여건 개선이 교사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라 다른 교직원과 함께 해야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목격한 전교조 선생님들은..   다른 학교 노동자를 호칭할때  기사님, 저기요, 여기요 하며 자기가 최고인 듯 호칭부터 무시하는 비율이 더욱 높았습니다.  유교 문화권의 폐해라고 넘기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이들이 같은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강령 2호에 적시한 교육여건 개선은 선생 혼자 하는줄 아는 오만함을 드러내는 호칭 행태이죠.  학교에는 전에 말씀드린데로..  마트보다 복잡 다양한 고용형태가 있습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학교내 다른 교직원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호칭으로 불러야합니다.

   1. 야간 당직 용역업체 비정규 노동자 (야간당직 경비아저씨, 저기요) → 당직 주무관님.

   2. 학교 직고용 급식소 조리 노동자 (식당 아주머니) → 조리사님.

   3. 학교 직고용? 촉탁직? 경비보조 비정규 노동자 (배움터 경비) → 배움터 지키미 선생님.

   4. 학교 직고용 교무, 과학, 행정보조 노동자 (여기요) → 교무실무사님, 행정실무사님.

   5. 정규직 시설관리 노동자 (소사, 기사님, 아저씨) → 시설관리 주무관님.

   6. 학교 화장실 청소 용역 비정규 노동자 (아줌마) → 위생사님.

   7. 학교 직고용 비정규 강사 (원어민, 체육코치, 기간제교사) →  원어민선생님, 코치선생님, 선생님

   8. 학교 직고용 비정규 특별수업? 및 방과후 강사 (방과후 강사) → 선생님.

 

   스스로 비민주적이고 반노동적인데..  무슨 연대다 단결이다..  민족민주인간화교육에 앞장설 수 있겠습니까?  전교조 선생님들의 행실이 엉망인 이상..  이런건 다 말장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거시적 담론을 얘기 하지 않더라도..  전교조선생님들이라면 당연히 개학전에는 학교에 나와 책상 갯수도 맞춰놓고 교실 정리도 하고..  입학생들 맞을 준비를 해야한다고 계속 얘기하고 다니셨어야하는거 아닌가요? 벌어먹는 선생들에 일침을 가해주셔야하지 않을까요?  뒤에서 욕할게 아니라요.

 

  마치 국가나 이명박 욕은 잘하면서 자신의 상사나 동료에 대한 비판이나 충고는 단 한마디도 못하는 가짜 노동자가 되신건 아닌가요?  투쟁하는 노동자, 희망 찾는 그 노동자 자체가 희망입니다.  누군들 싫은 소리 하고 싶은이가 있겠습니까?   

 

   전교조 선생님들의 삶 또한 다시 오지 않으며.. 영원하지 않습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의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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