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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많다 해금교실이 어디서 하는거냐고 자꾸 문의하시는 분이계시는데.. ㅠㅠ 죄송합니다. 별많은 해금교실은 이곳 싸이버 공간에서만 열리는 싸이버 해금교실임다. 오늘은 산삼을 한 뿌리 먹고 명현반응으로 얼근히 열이올라 슬기둥의 산도깨비란 노래를 연주해 봤슴다.. ㅋ
[산도깨비_110528.mp3 (1.18 MB) 다운받기]
국악의 대중화란 얘길하다보면 90년대 슬기둥이란 실내악단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장사익이란 분도 이 악단서 소금장수, 산도깨비 등 함께 노래를 하시다 임꺽정인가 하는 드라마 주제곡을 부르셔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슴다. 잘 알고 있는 정수년님도 이 악단에 계셨다하고.. 캐롤을 국악으로 첨 연주하기도 하고.. 지금도 활동하는진 모르겠지만 암튼 무척 유명한 악단입니다.
짧게는 일제시대, 625전쟁을 격으며.. 새마을 운동을 격으며.. 국악은 무쟈게 어려운 시기를 보냅니다. 어른들 말씀에 음악좋아하면 집안 망한다는 얘기가 나온게 이때즈음이 아닌가합니다. 먹고살기도 어려웠고.. 무당 푸닥거리나 기생들 음악 내지는 심하게 말해 없애버려야할 악습정도로 치부되며 근근히 이어옵니다.
국악대중화의 효시로는 70년대말 TV문학관이란 프로에 삽입된 김영동의 '삼포가는 길' 이란 대금협주곡을 꼽습니다. (70년대 민중가요를 한 곡 꼽으라면 저는 '아침이슬'을 꼽습니다.) 이 분은 실제 연극을 할 수 있게 MR이 들어있는 '공장의 불빛이'란 불법테입의 국악담당이기도 하셨슴다. ^^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초원, 사랑가, 한네의 승천, 조각배, 애사당, 어디로 갈꺼나.. 등등 김영동님의 주옥같은 곡들이 90년대이후 까지 계속해서 쏟아지며 바야흐로 "대금"의 시대가 열립니다. 대금은 거친듯 시원한 바람소리 같은 묘한 소리를 쏟아내는 악기입니다.
그러다 80년후반~90년 중반엔 갑자기 황병기 선생님의 가야금 소리가 뚱뚱 울려퍼졌는데요. 왜 갑자기 가야금이 유행하게 되었나는 모르겠어요. 아마 세계경제의 호황기라서 덩달아 전보다 살기 여유로워져 이런 낭낭한 음색의 악기 소리를 사람들이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시대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바로 사물놀이의 등장입니다. 사물놀이는 엄밀히 따져 우리것은 좋은것이여 할때 그 우리 것이 아니예요 ^^ 풍물 굿이라고 가끔 전주무슨 놀이 할때 포수도 나오고 소고, 날라리 걍 춤추는 분들이 나오는 그런 재현된 굿을 하죠? 함께 어우러지던 굿판에서 4가지 악기만 추려서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남(자)사당패 김덕수 선생님께서 맨드셨죠. 어쨌든 80년대엔 사물놀이가 마구마구 퍼졌습니다. 청주시내의 경우 87년도에 대부분의 고등핵교에 사물놀이 써클이 있었고, 놀이마당 울림터, 열림터 같은 곳도 왕성히 활동하였습니다. 지금은 상상이 안가겠지만.. 91년도 당시 청주시내 한 대학교에 풍물패 갯수는 30여개가 넘었고 다끌어모으면 쇠만 4열로 20여줄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크게 원을 찌글트려 갠신히 맨들면 소리가 안맞아 징대신 깃발로 악을 맞추고 했었슴다. 이시기의 한곡을 꼽으라면 황병기 선생님의 이어진 가야금 협주곡집을 꼽습니다. 이 시기의 민중가요 한 곡은 "광야에서" 를 꼽을 수 있겠고요. 슬기둥이란 실내악도 이시기즘 활동하며 신뱃노래 같은 노랠 남깁니다.
그러다 누구나 쉽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인터넷이 확산되며.. 딴지일보라는 것도 나도다.. 97년 IMF란 말이 돌면서.. 드뎌 "해금"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해금의 음색은 카랑카랑하면서 거칠고.. 때론 무쟈게 장난스럽고 때론 눈물 쏙빼게 구슬프고 하죠. IMF이후 심들어져가는 생활에 이런 음색의 해금소리에 위안을 느끼기 시작한 듯 합니다. 2000년들어 슬기둥서 활동하셨던 정수년님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란 해금곡으로 음악계가 술렁거리기 시작하다.. 영화 "꽃잎"에 삽입된 해금곡들로 인해 '해금'시대가 선포됩니다. 또 다른 해금 대중화의 사건이라면.. 강은일 선생의 적념연주 동영상과 선재마을 국악콘서트 김유나 학생의 깊은울림 연주 동영상일 겁니다. 2000년 후반부터 제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꽃별"이란 연주자가 마구마구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 사람들에겐 드라마 '추노'에 삽입된 비익련리 라는 해금곡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 같고요. 이시기에 대중적인 민중가요 또 한 곡을 꼽으라면.. 딱이 이 노래다 라고 머뭇거려집니다. "바위처럼" 이나 "비정규직철폐연대가" 정도가 될듯함다.
그렇다면.. 2020년이후 즈음엔 어떤 음색의 국악기 시대가 도래할까요? 거문고일까요? 아쟁일까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냐를 예상하면 걍 답나옵니다. 암울한 얘기지만 지금 같아선 빈부격차는 무쟈게 벌어지고 사람들 대부분 죽을 똥을 싸며 근근히 입에 풀칠정도 뽕빠지게 갠신히 먹고사는 시대로 예상됩니다. 그러면 유행할 국악기는... 아주아주 구슬픈 소리를 내는 관현악 핵심이 되는... "피리" 라는 악기입니다.
"...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이 말이 어디 적혀있는 글인지 아세요? 별많다 아저씨가 어려서부터 가고 있는 주성이발관 머리 깜켜주는데 바로 위에 액자에 걸린 글이예요.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명희아저씨는 회색 조리개를 바가지로 쓰고 계시고.. 여전히 세수할때엔 조용히 주먼지에 수건을 찔러 넣어 주시고 있어요.
난생처음 이발소라는 곳을 가본게 국민학교 4학년 때인가 명절 즈음으로 기억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는 중핵교 가면서 주성이발소라는 곳을 줄 ㅣ곧 갔어요. 별많다 아저씨 머리는 주로 누나가 깍아줬었어요. 보자기를 빨래집게로 망또같이 둘러쓰고 의자에 앉으면.. 누나가 싹둑싹둑 잘라주었죠. 그러면 동그랗게 되는거예요. 깍아줘놓고 놀리는건 뭔지.. 아무튼 한 30여년전 또랑이 흐르는 주성국민한교 구석에 주성이발관이 처음 생겨났죠.
명희형님은 우리동네 골목에 살던형인데.. 난생 첨으로 이발소라는델 갔더니 머리를 깜겨주고 계신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명희형님의 머리는 스포스머리라고 짤게 자른 머리 항상 똑같은데요. 지금은 짧은 머리가 듬성듬성 하얗게 변해있어요. 아직 장가를 못가시고 이발소에 혼자 사시는 것 같아요. 명희형님은 위로 형이 한 분 계시고.. 여동생이 한 명 있어요. 같은 골목에 살았었거든요. 다운 증후군이라고 하나요? 무슨 장애가 있으신것 같은데.. 동네 언니들과 몰려다니다가 명희형님을 보면 바보같다고 막 놀리고는 했어요. 그럴때마다 명희형님은 수줍은 듯 웃기만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도 같이 놀아주지 않았는데.. 어찌되었건 누군가 말을 걸어준다는게 좋으셨던 것 같기도 해요.
왜.. 갑자기 오래된 이발소 얘기냐고요? 평소엔 몰랐는데 30여년 이상 함께 살아오다보니 별많다 아저씨에게 전혀 다른 의미의 장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예요. 누가 알았겠어요? 제가 지금 동네 이발소 얘길 기를 쓰고 쓰게될줄을요. 그 무엇이 되었건간에 지나온 세월만큼 소중해지는 것도 같아요.
주성이발관은 첨에 주성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즈음에 있었는데요. 거기엔 커다란 은행나무가 두그로 서있었고요. 겨울이면 난로에 물을 덥히느라고 연탄냄새가 나고는 했었죠. 첨엔 이발소라고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발관이라 불렀죠. 명절 때나 되어 가서 커다란 의자에 앉을때는 키높이 나무를 의자에 깔고 앉았죠. 바리깡에 뒷머리가 따꼼거리기도 했는데.. 이발소도 왔겠다 꾹 참았죠.
주성이발관에 들어서면 이발하는 커다란 거울 위로 항상 500원짜리 지폐가 많이 붙ㄴ어있었어요. 그 위로는 까맣게 생긴 돌멩이들이 잔뜩 진열되있었죠. 전보다는 많지 않지만 지금도 지폐와 돌멩이들이 진열되어 있어요. 그리고는 빼놓을 수 없는게.. 라디오예요. ^^ 항상 구수한 메들리들이 흘러나오는 오래된 라디오예요. 얼마전 이발관소 근처인 한국관이란 중년 나이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명희 형님이 지나가시는거예요. 이발소를 안간지 10여년이 넘었는데 저를 보더니 금새 알아보시며 어쩔줄을 몰라하셨습니다.
".... 어? 으유.. 지금 워디에 있어유"
"아이구.. 워티기 알어보시네유"
"그람~ 알지... 지금 워디있는겨? 왜 안왔어?"
"복대동으로 이사 갔어유. 청주서 회사 대니고 있어유"
"아유.. 그려.. 저기 사장님.. 몇년전 돌아가셨어."
"왜유?"
"머리 때메 쓰려졌어. 머리가 다쳤댜"
"나이도 얼마 안되셨을거 같은데.."
"그럼 젊지.. 명함하나줘."
"명함 없는... 아! 여기.. 있어요"
"응~ 노래 테이프 사야하는데 잘됐네.. 좋은 메들리 테프 하나 사야되는데"
"찾아보고 말씀드릴께요.. 어디 가시는길예요?"
"응.. 먹을거 사러 중앙슈퍼가는겨"
"담에 뵈유"
"그려.. 담에 꼭 보자구"
지난 세월만큼인지.. 한쪽 눈이 반쯤 감겨 안경을 쓰신 명희형님은 부지런히 슈퍼로 발길을 돌리셨습니다.
며칠이 지나 운명처럼 주성이발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야.. 너 몰라볼뻔했다. 지금 어디있어?"
"예.. 청주서 회사대녀요. 복대동으루 이사갔어유. 알어보시네유"
"그럼.. 보믄 몰러?"
"근데 한 십년전과 그대루이신거 같네유"
"그려? ㅋㅋ 요즘 이쪽 머리가 하도 아퍼 귀를 뚫벘어. 귀 뚫는게 치매예방도 되고 참 좋와"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근데 연세가 워티기 되시는데유?"
"올해 67"
"예.. 전엔 머리깩을라면 저기 의자에 두줄로 기대리고 있다 깍곤 했는데.. 그래두 공고학생들 많이 오지 않나유? "
"그지? ㅋㅋㅋ 그랬지.. ^^ 요즘은 다들 미장원가서 그르치는 않어. 청주 있음 자주 와라.. 반갑네."
"예.. 기억 못허실줄 알었는데.. 다 격하시네유 ^^"
"앞면도는 안할껴?"
"예.."
중핵교때 머리 움직거린다고 깍다가 뒈지게 혼났었던 이발사님이십니다. 정말로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ㅋㅋ 언제듯 친구처럼 반겨주시던 '명희'형님은 일하시는 중이라 묵묵히 말씀을 애끼시며 늘 그래왔듯이 아무일 없었다는 듯 바보처럼 머리를 감겨주셨슴다. 흰머리가 늘은 만큼.. 전에 머리알이 아릴정도로 박박 문질러주시던게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그러나 누르시는 힘은 예전만 같으십니다. 잘못해서 코를 세면대에 박을뻔 했죠 ^^ 조그만 푸라스틱 조리게로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세수물을 떠주셨고요.. 찬물도 괜찮은데.. 오랫만에 찾은 까닭인지.. 난로위 빠께스에 뜨신물이 있다고 몇번이고 알려주셨습니다. 물론 세수하는 중에 주머니에 쑥~ 수건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넣어주셨고요.
"명희야.. 커피 한 잔 뽑아드려라."
"예.. 고맙습니다. 이르키 기억해주시니까유. "
"몰러볼뻔 했다니까.. 그람 또와"
"예.. 그람유. 여긴.. 맘에 고향같은 곳이니까유. 안녕히계세유."
"..."
명희형님은 저를 알고계시고 하고싶은 많은 얘기를 속에 담아두셨지만 바보스럽게 일하시는 역할에 충실하셔서 별얘길 않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올때 꾸벅 인사드리니 따라나오셨습니다.
"워디있는겨? 명함하나줘"
"명함은 웂는데.. 요기 마트대녀유. 노래테입 괜찮은거 찾아볼께유. 지금 여기서 주무시는거여유?"
"사장님 돌아가시고.. 여기 혼자서 먹고자고 하는겨."
"여동생도 있지않으셨어유?"
"결혼해서 애낳고 잘살어.. 청주서 살어. 얼매전에도 애덜 봤어"
"근데.. 형님 이름이 워티기 되세유?"
"김ㅇㅇ여.. 호적이름은 못배꾼댜. 내 이름은 김ㅇㅇ여."
"예.. 안녕히계세요. ^^"
"그랴.. "
예전 일본집이 있던 골목을 지나.. 잠업협동조합 자리를 지나.. 우신쌀가게 자리 앞을 지나.. 평화약국 자리를 지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차를 탔는데도 눈물은 한없이계속해서 쏟아지다.. 통곡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울며울며 무심천 옆 용하사 앞에 서서야 엉엉 울고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습니다. 굵어져버린 왕벗나무옆 뚝방길을 서성거리다 부은 눈을 가라앉히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복대동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새 또 머리가 길었습니다. 늘 그렇게.. 바보처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40여년 가까이 머리를 감겨주시는 '명희'형님을 만나러 주성이발관에 가겠습니다. 명희형님도 뵙고.. 나도 명희형님처럼 살고 싶은 바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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