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싣고 탔는지 음료수를 케리카에 잔뜩 싣고 탄 젊은이가 있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얼마 안 있어 내리는데 보니 문턱에 걸려서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

오른 쪽 문인줄 알고 처음에 거기서 대기하며 짐을 밀고 나가려던 계획이 어긋나고 왼쪽 문 쪽으로 급히 방향을 돌려나가느라 더 당황해서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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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세해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 했을까. 출발이 지연되고 이내 여기에 대해서 방송을 하며 지연을 알리는 멘트가 전동차 안에 울렸다. 

오늘 이 사람 곤욕을 치룬 이 기억을 아마 두고두고 못잊을 거다. 음료수와 과자 박스를 잔득 실은 저 젊은이 땀을 비옷듯이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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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5 17:55 2013/07/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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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아줌마 약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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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아줌마 약한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펼쳐보았다. 제목으로 봐서 분명 아줌마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아줌마들의 이야기긴 한데 어떤 직업, 어떤 계층 혹은 어떤 유형의 아줌마들을 말하는 것인지는 책을 읽어야 알게 될 것이다. 먼저 지은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지은이 김현미 씨는 현재 제 19대 국회의원이다. 지역구는 일산서구다. 18대 때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그래서 17대를 거치고 난 후 이글은 주로 낙선 기간을 보내면서 지역민들, 그 중에서도 직업을 가진 주부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담았다. 한 번 더 부언하자면 전직의원으로서 절치부심하며 숙성의 시간을 가다듬으며 느낀 생활이야기다.

19대 국회의원을 검색하면서 보니 어쩜 그렇게 고양시 선거구 네 곳에서는 국회의원들을 전부 여성의원들을 뽑았나 싶을 정도로 전부 여성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고양시 덕양(갑, 을) 고양시 일산(동구, 서구) 모두 세련된 유권자들인가 보다. 멋진 결과다. 남녀 가리지 않고 인물 됨됨이를 보고 소신껏 투표로서 결정한 결과다. 잘만 하면 이렇게 당당하게 여성들도 투표로서 당선 먹는구나 싶었다. 이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책 내용도, 방금 지은 미소처럼 웃음이 흐르고, 박수치고 싶고, 엔도르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내용이길 기대한다. 저자는 어느 날 일산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한 봉제공장에 들린다. 마침 일하는 시간이었으므로 방문하려면 점심 때 와달라는 말을 듣고 이튿날 제육볶음에 쌈 채소를 챙기고 오이지를 무쳐서 도시락 싸들고 찾아가서 그들을 대면한다.

그곳은 미싱 경력 30년이 넘은 아줌마들 넷이 함께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작은 업체였다. 일감을 재하청 받아다가 일하는 곳인데 아침 9시에서 밤 10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5시까지 일을 했다. 일주일의 노동시간을 계산하면 73시간이나 된다. 전기세니 수도요금 같은 제세공과금을 다 제하고 들어오는 수입을 넷이 나눠 갖는데 그 액수가 한 달 평균 100만 원 정도 손에 쥔다.

김현미 씨는 이런 식으로 식당종업원, 요양보호사, 마트 판매원, 급식 조리원, 보육교사들을 만나게 된다. 저자의 시각을 빌리자면 아줌마들은 고단한 세상을 온몸으로 살며 무심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용감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주장한다. 자신에게는 정치인으로서 드높은 자부심이 있었다고. 민주주의와 민족의 평화는 물론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의정활동을 해왔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남다르다고 했다.

대학시절부터 학생운동과 공장생활, 야당 당직자 생활에 청와대를 거쳐 국회의원이 되어서까지 일관되게 서민과 저소득층을 위해 변함없는 길을 걸어온 이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 같은 자부심을 뒷받침하는 것은 중소기업과 서민경제를 지키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담보가 없어서 금융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해서 무담보 무보증으로 소액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재원을 만들고 법을 개정한 일이다. 은행들이 매년 이유 없이 가져가는 수백억 원의 휴먼예금을 시민들을 위한 신용지원 재원으로 만든 장본이다.

이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의 사회적 기여에서 힌트를 얻어 발의시켜 통과한 법이다. ‘휴먼예금 관리재단에 관한 법률’이 재정된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1년을 유예시키는 바람에 이 법안은 이명박 정부에 와서야 실행됐다. ‘휴먼예금 관리재단’을 ‘미소금융 중앙재단’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자신의 업적인양 생색을 잔뜩 낸 사실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이 서민을 위해 한 유일한 일이 기껏 다른 사람이 해놓은 것을 생색내는 정도라니.

김현미 의원은 정치를 하면서 지역민들과 오래도록 대화를 나눈 것으로 착각을 했지만 정작 그들의 일자리나 임금, 4대 보험과 육아, 대출이자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아는 체 하면서도 건성인 부분이 있었다면서 참회하고 후회한다고 했다. 낙선자로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시점에서 어려운 아줌마들을 만나는 시간은 자신이 열심히 뛰어야만 하는 영감을 새롭게 얻은 귀한 기회였다고 한다.

4.50대 주부노동자 들은 용감하고도 억척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중한 보배였다. 어찌 보면 아줌마들의 싼 임금 덕택에 굴러가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관부인도, 교장선생님 사모님도 계급장 떼고 돈 벌려고 나오면 한 달 노임 100만원 벌기가 그리도 힘든 나라다. 그래도 자나 깨나 이들은 100만원 이나마 짤릴 일 없이 안심하고 다녔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는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고 어김없이 일터로 나가는 열악한 형편에 놓인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실직이나 사업실패 아니면 사기를 당하고 빈손이 돼버린 채 실의에 빠진 남편을 대신하여 꽃집 점원으로 나온 아줌마가 있고, 멋모르고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가 대책 없이 이자만 물고 있는데 집은 팔리지 않아 졸지에 ‘하우스 푸어’가 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또 이자라도 벌어보려고 마트 캐셔로 야간근무를 자청한다.

한때는 주부들의 직업으로서 보험아줌마들이 참 많았다. 보험회사에서는 신입 교육생들을 받아들이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보험의 주 고객이 되는 효과가 있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늘 교육생들이 새로 가입하는 보험료로 경비를 뽑는 구조였다. 하나 더 좀 더 특별하게 와 닿는 직업은 전자제품을 전문적으로 수거를 해서 파는 아줌마의 이야기였다. 제품의 특성상 무거운 것을 실어 날라야 하니 용달차라도 화물차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다.

또 다른 유형은 다문화가정의 주부들 이야기다. 멀리 필리핀에서 시집을 온 아줌마는 선인장농장을 하는 시댁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서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튿날부터 같은 일을 시작한 5년 차 주부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임금을 터무니없이 적게 주는 사실을 알고 제대로 된 월급을 달라는 요구를 했고, 3살 4살 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선인장 접붙이는 일을 재택근무로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권리 찾기를 끊임없이 시도한 사실이다.

그 후 여유를 찾고 주말이면 이주 여성들이 마련한 ‘작은 도서관’에 나와서 아이들과 함께 한글도 배우고 한국 풍습과 예절도 익히며 같은 처지에 놓인 이웃과 교류하며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이 모두가 육아와 가사와 아이들의 교육까지 담당해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국적에 상관없이 어디선들 애 안 낳고 취사와 가사 일이 없는 곳이 있는가 말이다. 여성들의 삶은 어디서나 자칫 고달프기 쉽고 경제적인 제약과 불평등에 시달리기 쉽다.

김현미 의원은 곳곳에서 만난 아줌마들을 보면서 여성이면 누구나 국적 불문하고 이 땅에 살기만 하면 수많은 엄마들의 엄마, 맹모들의 맹모가 되는 것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말한다. 힘이 있는 한 그들의 나침판이 되고 그들의 슬픔과 애환을 기억하는 당찬 여성이 될 것이라고 한다. 김현미는 “아줌마들은 나의 ‘빽’이자 가족이고 희망이다. 하여 나 김현미는 오늘도 좌절금지다”라는 말을 끝말로 남긴다.

이 땅의 아줌마들은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려 아등바등 이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강한 모습으로 노동의 현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왜 나날이 죽는 소리만 할까?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위정자들은 대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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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4 10:15 2013/07/1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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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현재 민주당 성북 갑 지역위원장이자 제 19대 국회의원인 유승희 씨가 지은 두번 째 책이다. 이분의 이력을 보면 여성을 위해서 활동한 부분이 상당하다. 우선 이책의 내용부터 이야기하고나서 지은이에 대한 소개를 좀 더 자세히 하기로 한다.

사실 이책의 주제나 콘셉트는 아주 단순하고 쉽다. 내용면에서도 어려운 게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짧은 시간 동안에 부담없이 가볍게 단 걸음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서 어떤 부분에서든 저자의 의견이나 평을 심도있게 덧붙였다든지 하는 면 또한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여 리뷰를 쓰는 입장에서는 비교적 쉬운 책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부분 책에 등장하는 여성 지도자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글을 채운다.

'딸에게 들려주는 여성 리더십 이야기'는 총 1. 2권으로 되어 있다. 1권은 해외 여성을, 2권은 국내 여성들을 위주로 풀어 냈다. 1권에 등장하는 인물은 미첼 바첼렛 칠레 대통령, 뤼수렌 대만 부총통, 응웬 티 빈 베트남 전 국가 부주석, 그리고 구슈렌 중국 전 국민인민대표회의 부위원장, 사라 카루 핀란드 국회의원과 엘렌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 등 여성 리더 6인의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했다.

그럼 '딸에게 들려주는 여성 리더십 2'에 나오는 여성 지도자들을 보자.  제일 먼저 등장한 사람은 이희호여사이다. 다음이 여성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박영숙 씨 그리고 한명숙 의원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여사, 정대철민주당고문의 어머니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여사사가 나온다. 이어서 역시 여성운동가인 이우정 여사와 외국인 두 사람을 합해서 총 8명의 여성지도자가 담겨 있다

이들 여성 지도자는 우리나라의 여성운동 뿐 아니라 민주화 과정에서 야당의 콜을 받고 정당 생활을 시작하여 이후 국회의원이 되어 여권신장을 담보하는 법률에 제정에 앞장섰고 독재에 맞서서 민주화운동에 공을 세운다. 정부 관료로서 입각하여 국정을 위해 힘쓴 사람도 있다. 여기서 이희호여사와 이소선 여사는 변호사나 국회의원 혹은 장관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역사 전반에 걸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분들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성으로서 각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이야기들을 엮은 이 책은 먼저 저자인 유승희씨를 경향신문의 선임기자인 유인경 씨가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서두를 열었다. 그럼 이에 근거하여 유승희 씨에 대해서 잠시 조명해 보자. 유승희씨가 정치활동에서 구현하고 싶은 목표는 궁극적으로 성평등이라고 한다. 2011년 민주당 전국여성위원을 지내며 지역구 여성공천 30% 할당과 여성 대의원 50% 할당과 공천시 여성 후보가 가산점 20%를 부여받도록 양성평등을 위한 개혁 과제를 이뤄낸 점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가부장적인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여성은 소외 받는 약자의 모습이었다. 이런 정치 사회적인 불평등과 관습 속에서 인구의 절반을 이루는 여성의 권리를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당내 민주화와 개혁이 우선이었고 이를 이뤄낸 점이다.

이밖에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여당의원이면서도 한미 FTA 반대 시위와 이라크파병 서명운동을 벌인 사실이다. 여당의원일지라도 소신을 지키고 원칙을 지키는 관점에서 내린 결단이고 실천이었다. 18대 국회원 때는 원외지역위원장이었지만 6.2 지자체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성북구에서 7명의 후보 중에서 5명을 여성으로 공천하였다. 비례대표 공천도 여성을 1번에 추천하였다. 말로만 여성 존중이 아니라 비난과 불이익이 쏟아지는 현실의 벽을 뚫고 평소 주장하고 말하던 지론을 뒷받침한 실례다.

다시 여성 리더십문제로 돌아간다. 먼저 이희호여사에 대해서다. 한국 역사상 아마 이희호여사처럼 그 위치가 각별한 분은 없을 것이다. 그 자신 서울의 전형적인 중산 층에서 태어난 지식인이며 시민운동가였다. 아무리 진보적인 의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고 해도 당시의 시대상으로 봐서 이희호여사의 학력은 남성도 지니기 힘든 이력임이 분명하다. 이화여대 전신인 이화여전을 나온 것 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로서는 차고 넘치는 학벌로 여길만한데 말이다. 

그러나 이희호 여사는 서울대를 거쳐서 미국 유학 길에 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같은  과정으로까지 학업이 이어졌다는 것은 드믄 일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이같이 이희호 여사는 남 부러울 것 없는 배움의 기회를 누렸다. 여성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실력도 충분히 갖췄다. 이런 분이, 부인을 사별하고 아이까지 둘 딸린 무일푼의 정치 지망생인 김대중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한 것이다. 이여사에게 기다리는 것은 부와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핍박 받는 야당인사로서 험난한 역경과 옥바라지와 망명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어코  이겨냈다. 한국은 물론 세계 정치사에도 두번 다시 만나기 힘든, 이희호 여사만이 갖게 된 특별한 위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길은 험난했고, 고달펐으며, 기약도 없는 망명과 가택연금과 생사의 기로에서 불안과 초조로서 지새운 나날이었다. 이희호 여사의 일생에서는 신앙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믿는 신께 의지하며 그 모든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옥중에 있는 남편의 버팀목이 된다. 더구나 사형선고를 받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시점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희호여사처럼, 정치인 중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극단적인 위험 속에서 살아간  사람이 그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러나 이희호 여서는 그 모든 것을 이루었다. 끈기와 인내와 지혜로움과 들꽃처럼 만발하는 평화의 메세지로 상징되었다. 온누리에 민주와 애국의 아이콘이 됐다. 역사의 승자가 된 분이다.

다음은 이소선 여사다. 아들 전태일이 청계천 피복 노동자로서 온 몸데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 자살을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전태일 열사는 죽어가면서 이소선 여사에게 다짐을 한다. 노동자들을 잊지 말고 자신이 하려던 일을 잊지 말고 중단없이 노동문제에 앞장서달라고, 여사는 이런 아들의 유언에 따라서 40여 년 동안을 노동계를 잊지 않고 노동자들을 위해서 헌신한다. 

이어서 박영숙과 한명숙 이태영 이우정 씨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박영숙 씨의 지론은 히스토리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여성은 늘 후자였고 뒷받침하는 존재였다. 모든 일을 남성이 주도하도록 맡겨놓을 게 아니라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그것도 황소처럼 우직하게 신념을 바탕으로 밀고 나가는 뚝심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지론을 펴는 박영숙씨였기에 여든이 넘은 나아까지 현역으로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박영숙 씨의 멘토로는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개척자인 박에스터 YWCA 고문과 남편인 안병무 교수, 김대중 대통령, 오가타 시다코 유엔인권고등판무관 등이 귀한 역할을 해줬다. 결정적 선택의 시기마다 옳은 선택을 하도록 인도해줬다고 한다. 하여 나이의 한계나 환경적인 한계에 상관 없이 언제나 '현역운동가'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한명숙씨는 신혼 6개월 만에 남편이 시국사건에 연루 된다. 그 바람에 이후 13년 반을 헤어져 지내게 되며 그 사이 본인도 크리스천 아카데미사건으로 2년 동안 구속생활을 겪게 된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에 들어가 정치계에 발을 들여 놓고 초대 여성부장관과 환경부장에 이어 이후 노무현 정권시절에는 국무총리직을 수행한다. 전문성과 평범한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성적인 가치로서 맡은 직책을 대과 없이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인 고 이태영 여사를 살펴보자. 고 정일형 박사를 남편으로 현 민주당의 정대철 고문을 아들로 둔 분이다. 더불어서 서울시 중구의 현역 국회의원인 정호준씨가 이분의 손자다. 여기서 여사의 남편인 고 정일형 박사의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정일형 박사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물로 제2공화국 첫번째 외무장관과 국회의원 8선을 지낸 한국 야당 정치사의 거목이다. 정 박사의 부인인  고 이태영 박사는 이런 남편의 외조와 이해에 힘 입어 인권 및 여성운동가로 지내며 첫 여성 법조인 생활을 한 인물이다.

일제 시대에는 생계를 위해서 누비이불을 만들어 파는 억척스런 생활인이었다. 6.25가 끝난 후는 잠시 접었던 고시공부에 매진하여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1962년에 가정법원 설치를 제안하고 호주제 폐지, 이혼 시 재산분할청구권과 부모친권 동성동본불혼제 등을 사회 이슈화시키며 가족법을 제정하였다. 이어서 한국 여성운동의 산실인 여성백인회관을 설힙하여 '여성법률상담소'를 여는 등 국제변호사와 국제법률봉사상 등을 수상하며 여성법조계에 뛰어난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이우정씨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한신대 교수로서 시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0여년간 재직하던 학교를 교내분쟁사태로 사직하고 여성노동운동에 헌신하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부천서 성고문사건'을 파헤치고 사회 이슈화 시켜 전두환 군부독재의 부도덕함을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1992년도 나이 70세로 민주당 국회의원이 돼 제도권 정치에 한 획을 그었다.

이상은 국내 여성 리더들의 면모이고, 이 책을 엮어 지은이인 유승희 의원의 면조는 다음과 같다. 구로공단 산돌노동문화원 총무를 시작으로 광명시 시의원, 새천년민주당의 여성국 국장 등을 거쳐 19대 성북 갑 국회의원 당선으로 이어진다. 유승희 씨가 한결 같이 천착하고 있는 분야는 법과 제도로 보장하는 남녀평등 바로 그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부분을 몸소 실천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정치인이 유승희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공천자 7명 중에서 5명을 여성으로 비례대표 1순위 또한 여성위원으로 추천한 사람이 유승희씨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 우리나라 어째서 수많은 권력을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을까? 실천하는 정치인들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미래상을 보여주는 정치인은 누군인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본다.

 

탱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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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3 12:05 2013/07/1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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