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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에게 그는 늘 이런 존재였다. 1996년 ‘노브레인’을 결성하며 이 땅에 조선 펑크(punk)의 뿌리를 내리사, ‘청년폭도맹진가’를 부르짖으며 성난 청춘들의 뜨거운 분출구가 되었던 풍운아 ‘차승우’. 이후 노브레인을 탈퇴한 그가 두 번째 밴드 ‘더 문샤이너스’를 통해 1960년대 록을 순결하게, 혹은 사정없이 토해냈을 때 차차키즈(차승우에게 영향을 받아 뮤지션의 길을 걷는 이들)는 다시금 로큰롤의 축복을 받았고, 팬들은 슬램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2012년, 음악적 매너리즘을 이유로 더 문샤이너스는 공식적인 해체를, 차승우는 홀연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14년 초 한 가지 소식이 SNS를 달구기 시작한다. 그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 2014년 2월 22일 클럽 FF. 신인 밴드 ‘더 모노톤즈(The Monotones)’의 데뷔 무대에 몰린 사람들로 순식간에 마비되다
- 하지만 삐삐밴드의 박현준(베이스)이 차승우와 의기투합한 것은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그 시기는 2012년 말
- 이후 서교그룹사운드의 ‘최욱노(드럼)’이 가세하며 본격적으로 합주를 시작한다
- 최욱노와 같은 팀이자, 차차키즈였던 김세영의 합류로 더 모노톤즈의 밑그림이 완성되었다
- 2014년 4월 5일 라일롹에서 5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그들.
그러나 김세영이 건강상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팀을 나가게 된다
- 결국 1년의 휴지기가 생겼고 총 11명의 보컬이 더 모노톤즈를 거쳐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선발된 이는 영국에서 온 ‘훈 조’이다
- 순조로워 보이는 듯했던 앨범 작업 중 창단 멤버인 박현준의 탈퇴로 마지막 위기가 찾아온다
- 2015년 11월 19일, 실의를 딛고 1집「Into The Night」발매
더 모노톤즈의 데뷔작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만큼이나 각색의 트랙들로 채워져 있다. 로커빌리와 펑크(punk)로 청자의 몸이 달아오를 무렵엔 은은한 선율로 마음을 두드리고, 호방한 기색을 드러냈다가 감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것은 에너지로 가득했던 밴드 결성 초기에서(곡 ‘A’), 불투명했던 시기를 지나(곡 ‘Popo’), 칩거에 들어가야 했던(곡 ‘Into The Night’) 차승우의 심경 변화와, 밴드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또한 “장르적으로 어쩌고저쩌고하는 분류에서 벗어난 음악을 추구한다.로큰롤 안에서만큼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게 더 모노톤즈는 한층 세련된 사운드와 일종의 여유, 그리고 낭만을 지니게 되었다. 비틀즈를 보며 꿈을 키웠던 소년들이 록스타로 변신할 때, 음악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다.실제로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가장 큰 영감을 준 뮤지션으로 비틀즈를 꼽았던 차승우는 과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그 멘트를 마지막으로 더 모노톤즈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다.
“난 처음부터 록 스타가 되고 싶었다. 아니면 의미가 없지.
비틀즈한테 고무가 됐었는데, 그렇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지.
내가 그랬거든. 로큰롤을 처음 들었을 때
너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출연진 : 차승우(기타), 훈 조(보컬/기타), 최욱노(드럼) [객원] 하선형(베이스)
프로그램 : A, Into The Night, Zero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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