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간지러워서..-,-

from 다시 2007/04/23 15:03

샤♡님의 [2007/04/22] 에 관련된 글.

 

트랙백까지 보낼 건 없었는데,, 가벼운 제 손이 문제죠. 갑자기 '중독'과 '방종하는 이미지'에 필받아서 ^^;

모르는 이야기를 그냥 모르고 넘어가기만 하고, 아는 이야기가 나오면 신나서 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그것 자체가 강박인 것 같아요.

 

 

한 때, 방종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꽤 동경하고 있었는데 그 때 생각한 것이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누구와 같은 필도 안나고 재미가 없을까.. 나는 방종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더 방종해야하나, 방종하기도 참 어렵다' 하는 생각이었죠.

지금 생각하니 감독이 제가 아닐 뿐 슬랩스틱코메디에 가까운데 이런 점은 아마 아직도 남아있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젼에서 재미없는 외국 드라마를 보던 중 약간의 충격과 시시함을 동시에 느낀 장면을 볼 수 있었어요. 내용인 즉, 드라마 안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프로그램(주인공들과 관계없는 사람이 나오는) 이었는데 '청소를 못하는 병'에 걸린 청소년이 나오죠. 청소를 못하는 병에 걸린 청소년은 너무 괴로워하고 그 어머니도 나와서 처음에는 병이 아닌 줄 알았으며 지금은 더 이상 못 봐줄 정도이고 아이가 너무 안쓰럽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고 둘다 엉엉 울죠. 당시 (최근 7년은 확실히 아님) 저는 픽 웃으면서 '너무 썰렁해..저게 뭐야' 정도의 반응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후에도 왠지 그 기억이 두어번 났었던 것 같은데, 샤♡님 글을 보면서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어요.

청소를 안 하는 사람은 '청소를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일까? 건강한데 그저 안 하는 것일까.

병에 걸린 척 한다면? 척한다고 생각한다면?

청소를 누군가가 해 준다면?

청소를 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나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

 

'중독은 통제가능할 때 매력있는 것 같아,'라는 말은 중독된 그 지점(뇌의 한 부분?)이 아닌 타자의 시점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저는 중독이라는 것이 '소통불능에 대한 육체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들도 그들에게 살의를 느낄 때,'에 그는 중독과 생존에 대한 선택에서 엄청나게 고생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하지만 실제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는 것 아닐까요. 중독은 표현이고 중독이고, 생존은 또 다른 층위의 고민이지 않을까 싶어요. 독에 중독되어 0.0001초만에 죽더라도 0.0001초 동안은 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0.0001초간의 생에 대한 사회적 적응과 선택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중독에 대해 사회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비교적 정확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점에서 '통제가능할 때 매력이 있다'라는 말은 너무 쓸쓸한 말인 것 같아요. 저는 중독이라는 것이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 없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왜'라는 것에 대한 대화와 해결이 가능할 때, 한 중독자의 중독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무조건 (스스로도) '아니야, 끊어야 돼, 이래서 끊어야 되고, 저래서 끊어야 되고..'라는 식으로 되면 실제로 끊기도 힘들고, 그러다가 좌절하기 쉽죠.

 

 

어흣 ..글이 감당하기 힘들어지네요. 죄송.. 지나가는 긴 댓글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ㅜㅠ

 

샤♡님의 글을 보면서 '변화는 섬세한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결론?!? -ㅁ- 마사루 식? ///OT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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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3 15:03 2007/04/23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