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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88회

 

1


광주항쟁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80년 5월 어느날 무시무시한 광풍이 광주를 덮쳤을 때
그 광풍의 한복판에서 도망가지 않고 그 현장을 지킨 가족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가족 중 일부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는 게 싫다면서 기록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40년 가까운 세월히 흘렀지만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건 그런 고통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일을 굳이 하게 된 이유는 아직도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려는 세력들이 준동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개 쳐들고 다니는 전두환을 비롯해서 지만원, 김진태 같은 분들이 오히려 광주항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어주신 꼴이네요.
이런 분들에게 감사해야하는 건지...


역사 속의 생생한 기록을 접할 때마다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휘젓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헌신적일 수 있는지도 확인합니다.
역사의 진실을 올바로 밝히고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을 때 어떻게 역사가 뒷걸음질 치는지도 확인하게 됩니다.
격렬하게 싸우고 처참하게 짖밝힌 후에 숨죽여 통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진실과 생존을 위해 싸워나가야 하는 고난의 길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확인했습니다.
극한의 상황이 오면 지식인들은 제일 먼저 뒤로 숨어버리고 밑바닥 민중들이 남아서 싸운다는 것, 다시 세월이 흘러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면 밑바닥 민중들은 뒤로 빠지고 지식인들이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역시 새삼스럽게 확인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휘젓고 난 뒤에 제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니가 그날 그곳에 있었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했겠어?”
이 질문 앞에서 멈칫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히 엄청 무서웠을테고 싸워야할 이유보다 도망가야할 이유가 먼저 떠올랐을게 사실이니까요.
그때마다 저를 달래는 목소리가 제 안에서 들려오곤 합니다.
“지도부를 보지 말고 대중을 봐라. 뒤를 돌아봐서는 절대로 안되고, 무리하게 앞을 보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옆을 봐라. 니 옆에 함께 있는 사람들.”


제 주위를 살펴봤습니다.
가족들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음...


책을 다 읽고나서 잠시 뒤를 돌아봤습니다.
20대로 보이는 한 청년이 총을 들고 서 있는데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하더군요.
“저도 그랬어요. 세상에서 버림받은 무지랭이 외톨이였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5.18을 떠올릴 때마다 4.3이 자꾸 떠오릅니다.
기나긴 억압의 세월 끝에 잠시 피어오른 자유의 꿈이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짖밟혀 버리는 현실에서
채념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운 역사의 기억이죠.


그런데 5.18과 4.3을 기억하는 방식은 아주 다릅니다.
공식명칭면 봐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인 것처럼 천양지차입니다.
둘 다 항쟁을 항쟁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절름발이 신세이기는 하지만
5.18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지만 4.3은 그냥 사건일 뿐입니다.
그래서 5.18의 주체들은 유공자라 불리지만 4.3의 주체들은 희생자로 불립니다.
더군다나 광주항쟁의 지도부였던 이들은 끝임없이 조명되면서 기억되고 있지만
4.3항쟁의 지도부였던 이들은 희생자 대상에서도 제외된 채 잊혀지고 있습니다.
결국 5.18은 불의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역사의 동력이지만
4.3은 국가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당한 역사의 퇴행일 뿐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광주사람들을 험담하는 이들은 많아도 우습게 보는 이들은 별로 없지만
제주사람들을 험담하는 이들은 별로 없어도 우습게 보는 이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게 그냥 교과서에 실린 문구만은 아닙니다.

 



(‘전범선과 양반들’의 ‘아래로부터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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