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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90회

 

1


지난 월요일애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데
차 한 대가 멈춰서더니 제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운전하시는 분이 제게 말을 걸더군요.


“어디가세요?”
“왜 그러시죠?”
“저 위로 가시는 길이면 태워드리려고요.”
“아, 고맙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걸어가려면 힘들잖아요.”


사실 그렇게 무더운 날은 아니었고
걸어가더라도 5~6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그 분의 성의가 고마워서 차를 탔습니다.
차를 타고 오며 별다른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저를 태워주느라고 살짝 돌아가는 듯 했고
집에 도착해서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데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하더군요.


그분과의 인연은 이렇게 짧게 끝났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분도 아닌 것 같기에 앞으로 또 마주칠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 저를 아주 즐겁게 해주었죠.
뜻하지 않은 선물에 기분이 좋았는데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깝더군요.
그래서 즐거운 기분을 주위에 나눠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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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를 위해 뭔가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사랑이였습니다.
그래서 사랑이가 제일 좋아하는 참치캔을 하나 줬습니다.
사랑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었지만
제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고
일부러 연락해서 함께 나눌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또 사랑이가 눈에 들어오길래 정성스럽게 쓰다듬어줬습니다.


부모님이 밭에 오셔서 이런저런 일들을 도와주셨는데
제가 딱히 드릴게 없어서 고추랑 가지를 따서 드렸습니다.


가족모임이 있어서 모인 자리에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먹거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동생이 그럴 필요없다고 해서 그만두고
후식으로 먹을 아이스크림을 샀습니다.
조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려했는데 보고싶은 영화가 없다고 해서
방학하면 선물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났더니
특별히 한 일은 없었지만
제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지는 걸 느끼겠더라고요.
누군가의 선행이 저를 일주일 동안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3


작년에 과일주를 몇병 담갔습니다.
레몬과 매실이 풍성해서 여유롭게 담가놨습니다.
레몬은 석달 만에 먹을 수 있었고, 매실은 일년이 걸려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과일주를 담가놨더니 좋은 점이 아주 많았습니다.
먼저, 달달하고 새콤한 그 맛이 아주 그만이었습니다.
일이 고된 날 저녁에 마시는 한 잔의 술은 피로를 풀기에 그만이었고요.
술을 사러가려면 왕복 20분을 걸어가야 하는데 그런 불편함도 없어졌습니다.
그리 자주 술을 먹는 건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도 술을 담가 먹는 것이 이익이었습니다.
마음을 표해야할 일이 생겼을 때 담금주 한 병을 건네면 서로가 즐거워집니다.
술을 먹고나면 생기는 병들을 정리해서 버려야하는 귀찮음도 사라졌지요.
가끔 술 생각이 날 때 망설임없이 한 잔 마실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런 모든 장점들 속에서 단 하나의 단점이 있었습니다.
자꾸 술에 손이 간다는 점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술을 찾는 편이었는데
담금주를 먹다보니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술을 찾고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폭음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꾸 술에 의존하는 모습이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남아있는 술들을 주변에 나눠줘버렸습니다.
마지막에 반 병 정도 남았길래 눈 딱 감고 모두 버려버렸습니다.


1년 동안 가까이에서 즐겁게 애용하던 술을 없애버렸더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지더군요.
장마가 시작되서 습하고 더운 날씨에 밤이 힘들어질 때면
술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매실주 대신 매실차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지면서 잠이 살살 다가오곤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데 여유롭게 이번 여름을 맞아봐야겠습니다.

 


(Joanne Shenandoah의 ‘Peace &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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