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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91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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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먹으려고 참외랑 수박이랑 단호박을 넉넉하게 심었습니다.
지금쯤이면 줄기를 마구 뻗어서 열매들이 달리기 시작해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잡초만 왕성하게 자랐습니다.
주변 밭에서 자라고 있는 수박이나 참외를 보면 속이 많이 상합니다.
이거만 그런게 아닙니다.
오이는 잘 자라다가 줄기가 시들어버렸고, 애호박은 세 개 중 두 개는 상태가 영 아닙니다.
여름에 먹으려고 심어놓았던 것들이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네요.


작년까지만 해도 너무 왕성하게 자라서
여름 동안 원없이 먹으면서도
주위에 나눠주면서 인심도 쓰고 그랬는데...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땅에 있었습니다.
모종이 잘 자라도록 멀칭도 하고, 물도 잘 주고, 어린 순도 정리해주고 하며 식물에만 신경을 썼었는데
정작 그 식물들이 뿌리를 내려서 영양분을 빨아들여야 할 땅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겁니다.
몇 년 동안 수확이 아주 좋았던 것만 믿고 땅에 대해서 등한시해버렸던 거지요.
기본이 되는 걸 생각하지 않고 결실에만 집착한 결과입니다.


에고에고, 올 여름에는 어쩔 수 없으니 빈곤한 여름을 보내야겠군요.
그나마 고추랑 토마토는 비교적 잘 열린 편이니 이나마 소중한 마음으로 먹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가을에는 땅에 거름도 많이 주고, 몇 해 동안 쉬지 못한 땅에는 휴식도 줘야겠습니다.
내 욕심만 채우지말고 땅의 상태도 살피면서 같이 건강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2


요즘 뉴스를 보면 이 나라가 조금 낮설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랑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피 튀기고 있는 높은 분들 소식도 그렇지만
폭염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무더운 날씨라는 뉴스가 무색하게 제주의 날씨는 선선하기만 하니
요즘 뉴스는 외국 소식을 전해주는 것임에 분명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잔득하고 더위를 기다리고 있는데
뉴스만 요란하게 더위에 대해 떠들어댈뿐
막상 날씨는 초가을처럼 선선하니
긴장감을 풀지도 못하고 날씨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형국입니다.


저녁에 사랑이와 함께 선선한 기운을 만끽하며 산책을 마치고나서
따뜻한 차를 한 잔 들고 마당 의자에 앉아
구름이 듬성듬성 있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집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곧 다가올 폭염 속에도 이 편안함이 유지됐으면...”하고 바래보다가
“일산에 살고 있는 막내는 더위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니
“더위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로 이래저래 심란한데도 도와줄 방법이 없네...”하는 마음에 순간 싸해지다가
“이 세상에 힘든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는 하지...”라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나의 고통과 절박함에 침묵했던 세상사람들의 고통과 절박함을 생각하자고? 성인군자야?”라며 반발심이 생기다가
“너의 소원이 사람과 사랑하며 살아가는 거라며? 네 마음 속이 그렇게 차가운데 뜨거운 게 들어갈 수 있겠어?”하고 따끔한 질책이 이어지고
“그래도 어쩌겠냐, 외톨이한테는 찾아오는 이도 관심을 가져주는 이도 없는걸”이라며 방어들 하면
“몇년 전의 너를 버리지 마. 바로 지금 그렇게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곳곳에 널려있다는 걸 잘 알잖아”라고 가슴 한복판에 못을 박아버립니다.


그러면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하늘만 바라봅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차갑게 굳어버렸던 마음이 서서히 녹는 게 느껴집니다.
그러면 마음 속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지금의 이 행복을 참회합니다.”

 

3


“이 여신은 차문다라고 합니다. 차문다는 묘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발치엔 새한테 쪼아 먹히거나 자칼한테 잡아먹힌 인간의 시체가 있는 거지요.
그녀의 젖가슴은 이미 노파처럼 쭈글쭈글합니다. 하지만 그 쭈그러든 젖가슴에서 젖을 내어, 줄지어 있는 아이들한테 나눠 줍니다. 그녀의 오른발이 문둥병으로 짖물러 있는 걸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배도 허기 때문에 움푹 꺼질 대로 꺼졌고, 게다가 그걸 전갈이 물어뜯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런 병고와 아픔을 견디면서도, 쭈그리든 젖가슴으로 인간에게 젖을 주고 있습니다.”

 


엔도 쇼사쿠라는 작가의 소설 ‘깊은 강’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일본 관광객들이 인도를 여행하다가 어느 사원에 있는 여신상을 바라보며 들었던 설명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뭐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을 휘젓더군요.
음... 이 글을 소개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엄청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얘기를 꺼낼라치면 어느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알게된 노래가 하나있습니다.
Mercedes Sosa가 부른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이라는 노래입니다.
우리 말로 하면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랍니다.
‘내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라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1976년 아르헨티나에 쿠데타가 일어난 후 수만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연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로 아무도 그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연행된 이들은 고문 속에 죽어갔고 그들의 시체는 군용기에 실려서 대서양 바다 속에 버려졌습니다.
심지어 연행당시 임신 중이었던 여성들은 출산 이후 아이를 빼앗겼고, 그 아이는 그들을 죽인 장교들의 가정에 입양되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이 미친 듯이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세상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자식을 찾기 위해 맨몸으로 무시무시한 군사정권과 싸워야했던 어머니들은 끝임없이 도와줄 사람을 찾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인들을 찾아갔으나 군사정권에 밀착돼있던 그들도 어머니들의 호소에 귀를 닫아버렸지요.


이 노래는 그런 어머니들의 노래입니다.
모든 것을 잃었고 신부님들마저 등을 돌려버렸지만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


음......


인도의 여신은 고통 속에 인간들을 거두고 있고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은 그런 신에게 마음을 의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Quien dijo que todo esta perdido
누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던가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
Tanta sangre quese llevo el rio
강으로 흘러보낸 그 많은 피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


No sera tan facil, ya se que pasa
이미 보았듯이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No sera tan util como pensaba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을 거예요
Como abrir el pecho, y sacar el alma
가슴을 여는 것처럼 그리고 혼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Una cuchillada de amor
사랑으로 찌르는 것입니다


Luna de los pobres siempre abierta
가난한 이들의 달빛은 항상 빛납니다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
Como un documento inalterable
변함없는 진리처럼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


Y unire las puntas de un mismo lazo
같은 매듭은 그 끝이 만날 겁니다
Y  me ire tranquilo, me ire despacio
그리고 나는 조용히 갈 거예요, 천천히 갈 겁니다
Y te dare todo, y me daras algo
그리고 당신께 모든 것을 줄 거에요. 당신을 나에게 무엇을
Algo que me alivie un poco mas
그 무엇은 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겁니다.


Cuando no haya nadie cerca o lejos
가까이나 멀리에 비록 아무 것도 없을 때라도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
Cuando los satelites no alcancen
주변의 것들이 도달하지 못할 때라도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


Y hablo de paises y de esperanzas
그리고 국가에 대해, 희망에 대해 말합니다
Y hablo por la vida, hablo por la nada
생명을 말합니다. 사라져버린 그 생명에 대해 말합니다
Y hablo de cambiar esta nuestra casa
우리들의 보금자리가 더 이상 변할 것 없이 변해버린
De cambiarla por cambiar nomas
그 변화에 대해 말합니다


Quien dijo que todo esta perdido
누가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말했던가요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내 마음을 당신께 바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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