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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10회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열 번째 문을 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지난 주에 ‘이해인의 말’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었는데요

이해인 수녀님이 살아오신 70여 년의 삶과 50여 년의 수도생활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삶과 사람과 사랑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수녀님 성품처럼 낮은 목소리로 조근 조근 얘기하시는데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제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수녀님이 하신 얘기들이

제 가슴 속에 살포시 씨를 뿌려서

요즘 열심히 물을 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씨들이 싹을 띄우고 자라면

예쁜 꽃이 필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오늘 방송은 ‘이해인의 말’에서 수녀님의 얘기를 몇 마디를 옮겨와서

여러분과 함께 음미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에도 사랑의 씨가 뿌려지길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사실 책을 낸 뒤 1980년대 초에 유명세에 시달리면서 기자들이 수녀원에 들이닥칠 때,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아 울어도 봤어요. 여러 명이 묵상할 때, 복받쳐서 서럽게 우는데 동정은커녕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길만 느껴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내 슬픔에 빠져서 울고불고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구나. 어려운 일이 다가올수록 나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객관적인 태도를 갖지 않으면 이 수도생활을 헤쳐 갈 수 없겠구나.

 

 

 

 

우리도 외롭거나 힘들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합니다.

그래서 sns에 이런저런 푸념들을 써넣으면서 사람들이 나의 고통을 알아주길 바라죠.

내가 그럭저럭 괜찮을 때는 사람들이 그런 나를 위해 등도 두드려주고 위로의 말도 전해줍니다.

하지만 내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는 사람들이 냉담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내가 그런 상황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알더라도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있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멈칫거리거나

자신도 만만치 않게 힘들어서 남을 도와줄 여유가 없을 겁니다.

그럴 때 울고불고 하면서 세상을 향해 욕을 퍼부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자신만 더 힘들어질 뿐이죠.

수녀님은 그럴수록 나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냉정한 세상이 객관적으로 보일수록 나의 고통은 더 커 보이기 때문이죠.

 

 

 

 

그 지원자가 그 수녀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면서 변화할 수 있지만, 첫 마음과 첫 노력

또한 중요하다는 의미지요. 수도 생활은 이성적인 똑똑함보다 신심에 따라 좌우되는 것 같아요. 수도원을 쉽게 떠나는 이들의 성향을 보면 안 갖춘 게 없이 똑똑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해석하는 방향이 신앙 안에서 풀기보다 옳고 그른 것을 가리면서 스스로 못 견디고 떠납니다. 지식의 문제가 아니죠.

‘맹자’에 나오는 항심恒心, 바로 그 견디는 마음이 무기이겠다 싶어요. 성경에도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구절이 있거든요. 견딘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수도자로 25년, 30년을 살아도 나 자신이 이것밖에 안 되나?’ ‘나 자신이 너무도 실망스럽다. 차라리 그만두자’ 이런 결론을 내리기보다 ‘이토록 부족하지만, 이런 나를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아~ 수녀님은 견뎌야한다고 하시네요.

그 고통들을 견디면서 겸손해지라네요.

음~ 견디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는데

그 속에서 겸손을 받아들이는 건 좀...

 

 

 

 

제가 시인 구상 선생님한테 배운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사람들까지 다 품어주고, 기꺼이 주례도 서셨어요. 환속한 사제들 주례를 자꾸 서니까 추기경님이 불편하게 보신다는 말이 들려서, 하루는 제가 “그러니까 왜 자꾸 그러세요?”라고 했죠. 구상 선생님이 명답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우정을 틀 때 장점부터 트지만, 나는 단점부터 틉니다. 좋은 점만 보면 누구인들 친구를 못하겠어요. 손가락질 받는 이라 해도 친구가 있어야 살죠. 내가 그 역할을 할 겁니다.”

 

 

 

 

비정한 세상을 욕하면서 살다보면

세상 사람들이 점점 추해 보입니다.

그럴수록 나는 세상에서 더 고립될 뿐이죠.

그렇게 혼자만의 공간에 틀어박히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좁은 공간에서 자기 자신과 투닥거리면서 지내다보면 알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단점투성이의 인간인지...

그런 내가 싫어서 현실을 외면해보려고 하지만

나를 받아주는 이는 단점투성이인 내 자신 밖에 없습니다.

 

 

‘손가락질 받는 이라 해도 친구가 있어야 살죠’라는 구상 시인의 말이 가슴 한복판을 찔렀고

그제서야 수녀님이 얘기하신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3

 

 

요새 저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내게 마지막 순간이 올 때도 기쁘게 눈감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갑니다.

 

 

 

 

수녀님의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영화 아저씨의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너희들은 내일을 보고 살지? 나는 오늘만 보고 산다. 그게 얼마나 끔찍한지 보여줄게.”

후후, 비슷한 얘기인데 느낌은 완전히 다르죠?

사랑이든 분노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그 힘은 대단할 겁니다.

제 마지막 순간이 올 때 기쁘게 눈감을 수 있는 자신은 없지만

내일이 없는 것처럼 이 순간에 집중할 자신도 없지만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가야겠습니다.

 

 

 

 

수도 생활을 50년 하고 난 제 심정이 어떠냐 물으면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느낀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치우치지 않는, 차별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수녀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가장 뭉클했던 부분입니다.

‘담백한 물빛’이란 어떤 것일까요?

잔잔한 호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담백해야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느끼겠죠?

 

 

 

 

저는 ‘연습’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정말 우리 인생이 연습인 것 같아요. 연극배우들이 연습하잖아요. 그렇게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가꾸는 연습을 해야 사랑의 표현도 내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수녀님이 이 방송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얘기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을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얘기

그렇게 평생을 사랑연습을 하며 살다보면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느끼게 되겠죠.

 

 

오늘로 사랑연습이 열 번째입니다.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힘들다고 투덜대지 말고

인내하면서 겸손을 배우고 사랑을 연습하며

즐겁게 해나가다 보면

‘담백한 물빛’에 다다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얘기 들려주신 이해인 수녀님께 감사인사 드리면서

노래 선물 하나 전해봅니다.

양하영의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들으면서 열 번째 사랑연습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같이 시간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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