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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23회 – 대인배와 소인배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스물세 번째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오늘은 제 얘기보다 주변에서 들려온 얘기들을 함께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첫 번째는 어느 60대 노동자의 얘기입니다.

 

 

꿈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에서 정년을 다 채우고 무사히 퇴직한 분이 있었습니다.

퇴직 후에는 편안한 노후를 대비하며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아직 학업을 마치기 못한 자식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직장을 알아봐야했습니다.

 

 

평생 사무직으로만 일해 왔던 나이 많은 그를 원하는 직장은 거의 없었고

아는 분의 추천으로 조그만 회사에 들어갔지만

아버지뻘 되는 신입과 젊은 상사들은 서로가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그 회사도 곧 나오게 됐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생활정보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버스터미널 배차원, 아파트 경비원, 빌딩 경비원 등을 전전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들이었고

그분들의 고충에 대해서도 여기저기서 들려온 얘기들이 많아서

그분의 경험담이 그렇고 그런 얘기일줄 알았는데

실제 당사자의 입으로 들어보는 얘기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원래 규정된 일보다 보너스로 주어지는 일들이 훨씬 많았고

더럽고 위험한 일들을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빨리 처리해야 했고

상급자만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갑질을 다 받아내야 했고

쥐꼬리만한 최저임금이 쥐꼬리의 털만큼 오르면 무급휴게시간을 늘려서 임금을 줄여버렸고

불만이 있어도 입을 굳게 다문 채 굽실굽실 거리면서 배알 없는 늙은이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많은데 굳이 나이 많은 그들을 쓰는 이유는

그런 모든 조건을 군소리 없이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는 건 노인들이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상급자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면 쌍소리가 날아오기 십상이었고

사람들의 갑질에 자칫 실수를 범하기라도 하면 시말서는 기본이었고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에 뺨을 맞더라도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려야하고

화장실 옆에 있는 지하휴게실에서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이불을 펴고 잠시 쉬는 걸 감지덕지해야 하고

사람이 없어서 개인 경조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그곳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바로 해고였습니다.

그나마 그런 일자리라도 구해보겠다고 관리실 사무실에는 지원자 이력서가 수북이 쌓여있습니다.

 

 

그분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숨이 푹푹 나오다가 나중에 숨이 막히더군요.

내 주변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미안하다가

사소한 불편에 여기저기 넣었던 민원들이

결국 그분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죄스러웠습니다.

 

 

약자들을 착취하며 돌아가는 세상에서

내 발밑의 존재들을 의식하지 못하면

나의 정당한 권리는 그들에게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편안하게 보낸 오늘 하루가 너무 미안하고 죄송했습니다.

 

 

(조정진씨가 쓴 ‘임계장이야기’라는 책에서 그분들의 생생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2

 

 

외출하려고 보니 자동차 조수석쪽 앞뒤문이 죽 긁혀있다. 일주일 동안 차로 움직인 데라곤 집과 10분 거리 작업실밖에 없으니 두 군데 중 하나에서 벌어진 참사다. 외출에서 돌아와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꺼내서 컴퓨터로 꼼꼼하게 살폈다. 3시간쯤 그렇게 몰두하고 있다가 불현듯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모습이 초라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멈췄다. 흰색 페인트 흔적도 있고 집과 사무실 주차장은 CC-TV가 빵빵해서 마음 먹으면 찾아낼 수 있겠지만 가해자 색출 작업에 기를 쓰고 있는 내가 그냥 불편했다.

저 정도 긁어 놨으면 몰랐을 리 없다. 알고도 그냥 갔다면 여러 사정이나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가해차량을 찾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어떤 이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살면서 딴에는 내 마음보호를 앞세우는 이런 식의 일처리를 종종 했다. 큰 문제없이 살았다. 이게 사건의 다였더라면 불필요한 갑론을박과(그렇게 하는 게 옳으냐 그르냐의) 충조평판이(니가 그렇게 부자냐. 그건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이렇게 처리했어야 한다는 따위) 난무할 이슈일 게 뻔해서 거론도 안했을 것이다.

전문점에 차를 맡겨 흠집을 복원한 이틀 후 집 주차장에서 내 차를 긁었다는 전화가 왔다. 내려가보니 이번엔 운전석 범퍼 앞쪽이다. 심하지는 않은데 손보기는 해야 할 정도. 잠에 취한 어린 딸아이를 안은 채 물놀이를 다녀왔다는 젊은 이웃은 서울 거주지 반장이었다. 인사를 나눈 적 없지만 관리실 없는 작은 공동주택에서 그의 기민하고 전방위적인 수고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순간 나이먹은 티를 내고 싶어서 그간 반장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하지 못했으니 이번 접촉사고는 그런 내 고마움으로 퉁치고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그렇게 마무리하고 헤어졌다.

바로 다음날. 집근처 식당에 갔다가 식당 주인이 내 차번호를 호명해서 나갔더니 어떤 이가 후진하다가 내 차를 긁었다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공교롭게도 어제 저녁에 긁힌 바로 그 옆쪽이다. 과실을 인정하고 사고처리를 해주겠다는데 왈가불가 할 필요가 없었다. 다친 사람 없어서 다행이죠. 더운 날씨에 고치러 가는 게 좀 번거로울 뿐 그쪽도 생 돈 들어가니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정도로 마무리하고 전화번호만 받고 헤어졌다. 장년의 그 일행은 내가 험하게 다그치지 않고 나이스하게 처리해줘서 고맙다 여러 번 인사했다. 현장에서도 그랬고 후속 처리 과정에서도 그랬다. 그게 그런 일이었던가.

견적을 뽑으러 지난번 그 자동차 수리점에 다시 갔더니 주인이 실없이 웃는다. 며칠 전에 복원 공사를 하고 간 차량이 또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여차저차 설명 후. 가해차량도 속상할테니 이번에도 내 돈 내고 고치는 것처럼 견적을 내달라. 주인이 웃으며 수긍했다. 어제 저녁에 긁힌 작은 흠집은 서비스로 처리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합리적 견적이었는지 가해차량 차주가 현금으로 처리하겠다며 다시 고맙다고 했다. 다음주에 수리하기로 약속하고 돌아오는데 차를 긁었던 젊은 반장으로부터 카톡 선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 죄송한 마음에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상품권을 보낸다는 인사와 함께. 선물 '거절' 버튼을 눌러 취소한 후(난 이 기능을 자주 이용한다. 그러니 내게 뭐 보내지 마시라. 거절 받으면 당황하게 된단다^^) 내가 그에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지 긴 인사를 보냈다. 직후에 자동차 수리점 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아까 합의했던 금액에서 더 깍아주겠다는 얘기였다. 어쩔. 이미 가해차량 차주는 내 통장으로 돈을 입금했는데.

나온지 3개월밖에 안 된 새 차에 세번의 접촉사고. 이게 지난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사안마다 잘 처리했는지 아닌지 정확하게 알 순 없다. 하지만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을까라거나 운이 안 좋다 생각한 적은 없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끝이 없지만 특별할 게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문제 중 하나였고 이러저러한 대응과 해결 과정이 있었을 뿐이다. 다행히 내겐 시간 여유가 있고 느긋한 나이가 있어서 좀 수월했을 것이다. 남들이 이해하든 못하든 흉보든 말든 내 마음결대로 하는 선택은 언제나 옳다. 그래야 '나'로 길게 갈 수 있다. 오래 걸려 터득한 경험칙이다. 끝!(양궁 오진혁 버전쯤)

 

 

 

 

이 글은 이명수님의 페이스북에서 옮겨왔습니다.

뽑은 지 3개월밖에 안 된 새차를 누군가 긁고 사라졌다면

엄청 화가 나겠죠?

저라면 밤새 블랙박스를 뒤져서라도 범인을 찾아냈을텐데...

이명수님은 그런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보여서 툴툴 털어버렸다네요.

그런데도 두 번이나 더 접촉사고가 일어났으니...

착한 일을 해도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났으니 세상이 불공평한 걸까요?

아니면 연타석 불행에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이익을 본 걸까요?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내가 손해 보는 것은 끔찍이도 싫어하는데

이명수님 사람은 성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성인이라는 것이 별거 아니네요.

툴툴 털어버릴 수 있는 건 털어버리면서 마음 편하게 살아가면 되니까요.

아자! 저도 이제부터 성인처럼 살아볼까요? 하하하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느 날 저희 하우스 뒤쪽에 경운기 적재함이 비스듬히 놓여있었습니다.

이곳은 경사진 지형인데가 하우스쪽이 낮아서 위험해보였습니다.

옆밭에서 잠시 놓아둔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다음날이 돼도 그대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살짝 짜증이 났지만

이런 일로 이웃끼리 서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놓아둘 공간이 없어서 저기 둔 건데, 바퀴에 돌을 받쳐놓아서 괜찮을텐데...”라는 겁니다.

조금 황당했지만 더 이상 밀어붙이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얘기를 해놓았으니 나중에 상황을 보면서 옮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적재함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 문제로 다시 말을 꺼내면 서로 더 불편해질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다시 봤더니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보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비스듬히 서있는 적재함은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하우스 안에서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온통 적재함을 향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적재함이 괜히 굴러 떨어져서 하우스를 작살내기도 하고

갑자기 태풍이 몰아쳐서 적재함과 하우스를 부숴버리기도 하고

적재함을 옮기려다가 내가 다치기도 하고

서로 책임 소재를 따지면서 고발과 소송이 벌어지기도 하고...

적재함은 가만히 있는데 내 마음만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 내 자신이 우스워서

요동치는 마음을 달래려고 노력을 해보지만

하우스 옆에 비스듬히 세워진 적재함을 볼 때마다

애써 달래놓은 제 마음은 다시 맹렬해집니다.

아이고~ 이놈의 적재함이 저를 시험에 들게 하네요.

 

 

 

 

성민씨가 보내온 사연이었습니다.

마음이 착해서 그런 건지,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답답했습니다.

저라면 똑 부러지게 얘기해서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했을 겁니다.

그래야 뒤끝 없이 서로 편하고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앞의 이명수님의 글과 비교해서 읽어보니

세상살이가 똑 부러지는 것만 좋은 건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명수님은 성인처럼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았는데

성민씨는 소심해서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걸까요?

 

 

성민씨를 위해 노래 선물해봅니다.

범능스님이 부른 ‘흔들리며 피는 꽃’ 들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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