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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22회

 

 

 

1

 

 

한여름의 열기 속에 읽는 라디오 문을 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들풀입니다.

 

 

밤낮없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밀려드는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방전돼 버렸습니다.

아직 해야 될 일이 조금 남기는 했지만

여기서 더 밀어붙이면 망가져버릴 것 같아서

‘잠시 멈춤’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간단히 짐을 챙기고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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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북적이지 않는 조용한 시골에서 며칠 지내고 싶어서

나름 아담하고 저렴한 민박을 구해서 찾아왔는데

민박집의 모습이 이랬습니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소일거리 삼아 하는 민박집인데

집이 낡은 거야 상관이 없지만

뒤쪽 텃밭은 방치된지 오래돼서 잡초가 무성한 것이

스산한 기분마저 들게 했습니다.

외부 모습과 달리 내부는 비교적 깔끔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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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다가 그립기는 했지만 좀 멀어서 포기하고

버스 타고 조금만 가면 조용하고 작은 계곡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계곡은 정말 조용하고 작더군요.

물은 말라버려서 발을 담그기가 민망하고

사람들도 전혀 없어서 적막만이 물 대신 흐르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마침 스마트폰으로는 ‘폭염에 주의하라’는 재난문자가 도착하더군요.

 

 

구석진 곳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로 가서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심호흡을 한 번 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열어 노래를 들었습니다.

 

 

 

(슈퍼밴드2 중에서 빈센트팀의 ‘난 괜찮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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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계곡을 나와서 조금 걸었더니

‘싱글길’이라는 표지가 보였습니다.

단지 그 표지가 재미있어서

그곳으로 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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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표지판과 달리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어우러진 길은 그리 깔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적한 숲길을 혼자서 걷는 기분이 괜찮았는데

한쪽에 키 작은 대나무들이 살포시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키가 작아도 덩치 큰 나무들에 기죽지 않겠다는 듯이

꼿꼿하게 서서 이파리들을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모습이

제 마음을 시원하게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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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갔더니

개구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더군요.

개구리가 놀랄까봐서 조심스럽게 사진만 찍고

살며시 뒷걸음질 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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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길을 나와서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밭 한쪽 귀퉁이에 빨간 모종들이 놓여있었습니다.

무슨 모종인가 궁금해서 근처에 있는 할머니에게 물어봤더니

비트모종이라고 합니다.

겨울에 수확하는 비트는 더위가 한창 절정인 요즘에 심는다고 하는데

‘이 더위 속에 어떻게 심을까’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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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때문에 걷는 것도 힘들 때쯤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눈에 띄었습니다.

나무 아래에는 정자처럼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있어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쉴 수 있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살살 불어오는 바람결을 느끼고 있으려니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노래가 흥얼거려졌습니다.

 

 

 

 

(전진희의 ‘여름밤에 우리’ feat. wave to earth)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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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워진 기분 때문에 발걸음도 가벼워져서

버스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갔습니다.

30분쯤 달렸더니 차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더군요.

너무 더워서 그냥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것에 만족했지만

마음은 시원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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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 숲길에 바다까지 나름 구색을 맞춘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

하늘이 황홀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은 처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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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그렇게 아름답던 하늘이 환영이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안개가 몰려왔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안개가 끼는 모습은 신비로우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안겨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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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몽환의 끝에 갑자기 눈보라가 날리는데

그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극적인 변화에 당황할 사이도 없이

내 몸과 마음이 붕 떠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반팔 옷에 샌들을 신은 채

눈길을 걸었습니다.

 

 

 

 

(영업이 끝난 후 - 김두수의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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