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블루 재스민, 그를 응원할 수는 없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디 앨런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성추행 문제까지 불거져 있어서 그의 영화를 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도 ‘블루 재스민’을 봤다.

깔끔한 연출과 쩌는 연기로 워낙 유명해서 호기심에 봤다.

 

 

뉴욕에서 최상류층의 삶을 살던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동생에게 얹혀살게 된다.

동생은 평소 소원했던 배다른 자매였고 사는 형편도 궁색했지만

몸 기댈 곳 없는 그를 기꺼이 받아들여줬다.

동생에게 얹혀살면서도 기죽지 않는 건 물론이고

상류층의 오만과 가식을 버리지 못한 그는

자존심만으로 힘든 상황을 버텨보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자존심을 마음껏 비웃어주고 있었다.

 

 

동생의 남자친구가 소개해준 남자는 평소라면 말을 섞을 일도 없었던 하층계급이었고

어쩔 수 없이 취직한 병원에서는 원장이 치근거리지만 그 정도 중산층은 성에 차지 않고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된 남자는 원하던 상류층 삶으로 돌아갈 동아줄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속이다가 들통나버렸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 없는 현실 속에서 오만한 자존심으로 버텨보지만 그 자존심 때문에 그는 주위에서 점점 고립되어갈 뿐이었다.

그런 현실에서 그가 의지하는 것은 술과 약과 혼잣말하기였다.

현실은 점점 나빠져가고 있었지만 그는 그런 식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세상의 모든 계절’이라는 영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산층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떻게든 그들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하층계급 여성의 모습을 비춰준 그 영화에서는

온화한 미소를 띠우면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려는 하층민을 살며시 밀어내는 모습을 차갑게 보여줬었다.

‘블루 재스민’에서 하층민들도 신분상승을 꿈꾸기는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는 이내 포기하고

신분추락으로 불쌍한 처지가 된 재스민을 도와준다.

물론 그들의 도움 속에는 질투와 멸시의 감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밀쳐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계급 간 갈등이나 화해 같은 걸 얘기하는 건 전혀 아니었고

신분추락 속에 맞이하는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며 삶을 성찰하는 것도 아니었고

힘겨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재스민이라는 인물을 살아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관찰할 뿐이었다.

가식과 허영에 물든 이가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 때 보여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었다.

 

 

깔끔한 연출에 쩌는 연기가 더해진 잘 만든 영화인 것은 분명했지만

투쟁도 성찰도 도피도 없는 냉소 가득한 차가운 관찰만 남는 영화였다.

하지만 그 차가운 시선에 내 눈도 하나가 돼서

대책 없는 재스민을 멀뚱히 바라보게 됐다.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밴치에 앉아 혼자서 궁시렁궁시렁 거리는 재스민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생각과 함께 헛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죽지 않고 그렇게라도 버티는 모습이 다행이다 싶었다.

노신의 소설 ‘아큐정전’에서 세상 온갖 사람들에게 치이고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아큐도

그렇게 혼자서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그 험한 세상을 버텨냈던 것처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