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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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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밤에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도로를 가고 있는데 한 남성이 접근해서는 치근덕거린다. 그 남자를 애써 무시해보지만 그럴수록 치근덕거림의 수위는 높아지고 참다못한 여성이 자전거에서 내려 남성에서 쏘아붙인다. 그러자 남성은 능글맞게 받아치며 더 노골적으로 여성에게 접근하자 여성이 그를 때려눕힌다.

그 여자는 근무 중인 경찰이었고 남자는 졸지에 날벼락을 당한 꼴이었는데, 이어지는 상황은 여성경찰이 곤란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성질을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곤란함의 이유였다. 남성시민이 아무리 맞을 짓을 했더라도 여성경찰이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와 비슷한 상황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몇 차례 더 나온다.

음주측정을 거부하며 성희롱을 일삼는 해군간부를 대하는 과정에서

여성화장실에서 마약을 즐기던 권력층 자녀를 대하는 과정에서

상대 남성들은 그가 여자라는 이유로 노골적인 성희롱을 일삼으며 험악한 상황으로까지 이어가는데

참다 참다 못해서 그들을 물리력으로 진압한 그는 다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걸 지켜보다보니 그의 불같은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여성이라는 점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를 둘러싼 상황은 직장에서만 답답하거나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혼자 사는 그를 위해준다는 이웃은 사생활을 간섭하며 훈계하려 들고

나이든 어머니는 가족을 생각하라면서 그를 옭아매려만 하고

오래된 남자친구는 자신의 무능을 애써 가리면서 남자로서의 권위를 찾으려고 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제로인 직장 동료나 후배들은 경찰로서의 권위만 찾으려고 한다.

가부장적 질서로 똘똘 뭉친 그 사회에서 ‘능력 있는 여성경찰 간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가끔 끔찍한 성폭력사건으로 국제뉴스에 이름이 등장하는 인도사회의 속살은 이런 가부장적 질서가 굳건하기에 그런 범죄가 가능했으리라는 걸 짐작하게 된다.

유감스럽지만 인도는 세계에서 민주주의 제도가 비교적 잘 갖춰진 나라이고 경제력 수준도 비교적 높은 나라지만 여성들은 숨 막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잠시 좌천을 당해 내려간 경찰 112신고 접수대에서 한 남성의 사소한 민원 전화가 걸려왔고, 그를 응대하는 과정에서 남성은 여성경찰을 향해 성희롱 발언을 이어가지만 여성경찰은 웃으면서 전화를 끊어버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어의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10~20년 전에 이곳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생각이 나서 괜히 마음이 뜨끔해졌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상당히 발전하고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이 나라에서 우리의 삶과 의식은 인도보다 훨씬 나아졌을까?

쩍벌남 대통령과 젊은 마초 여당대표가 신권력으로 등장한 나라에서 이 영화가 인도의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

 

감독은 인도에서 여성으로 살아가야하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현실을 감정이입하지 않고 차분하게 보여줬다.

감독이 나서서 이렇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들이 그 현실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들었다.

힘들고 고민스러운 과정들을 무수히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간 결과 그들은 그 사회의 숨 막히는 현실에 작지만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의 행동이 너무 작아 보였지만 그 작은 행동이 나오기까지의 한숨과 고민들을 지켜봤기에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그래, 숨죽여 움츠러들지 말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나도 그렇게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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