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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농민의 죽음,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한 농민의 죽음,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제주 감귤농민 목매 자살, 농가부채 1억원 때문에
2003-02-20 오후 4:52:20  



  사상 최악의 감귤대란으로 부채에 시달리던 감귤 재배 농민이 “내리 4년째 내리막길 감귤농업과 양배추 파동으로 완전 망했다”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노동자 고 배달호씨 분신에 이은 농민의 자살이다. 노무현 새 정부에게 던지는 노동자, 농민의 연이은 절규이자 시대의 무거운 짐이다.
  
  “잘 살자고 일했는데 그 대가가 너무 기가 막혀”
  
  제주 지역신문인 제민일보와 제주일보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11시30분경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납읍리 속칭 ‘버드낭케’ 동쪽 소나무 밭에서 이 동네에 살고 있는 농민 김모씨(40)가 소나무에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김씨의 여동생(28)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99년부터 고향에 돌아와 감귤농사를 시작했던 김씨는 4년 동안 감귤을 출하했으나 농협 대출금도 제대로 갚지 못했고 지난해 말 사상 최악의 감귤 값 폭락사태가 일어나 그간 쌓여왔던 1억여원의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이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유서에서 "내리 4년째 내리막길 감귤농업과 양배추 파동으로 완전 망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모두가 잘 살자고 일했는데 그 대가가 너무도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제주일보

  몇 년간 감귤 농사가 잘 되지 않자 김씨는 차선책으로 양배추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배추 값도 폭락해 좌절한 김씨는 그동안 부인에게도 동반자살을 권유하는 등 심한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유족들은 진술했다.
  
  김씨는 유서에서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모두가 잘 살자고 일했는데 그 대가가 너무도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김씨 부인은 19일 “휴식년제가 끝난 지난해 감귤 수확을 앞두고 새 컨테이너를 사 놓으며 잔뜩 기대를 걸었는데 막상 수확하고 나니 출하조차 하기 힘들었다”며 한라병원 장례식장에서 울먹였다고 제주일보가 보도했다. 그는 이어 “남편은 눈 뜨면 과수원과 밭에 가고 해가 진 후에야 돌아올 정도로 자신에게 철저했던 사람”이라며 “4년째 살아보려고 애썼지만 더 찌들게 했다”고 말한 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장례식장에서 유족들도 “행정 당국은 이제서야 ㎏당 2백원을 주며 감귤을 수매하겠다는 등 늑장 대응을 하고 있다”며 “숨진 김씨처럼 안타까운 희생이 앞으로는 없도록 감귤 농민의 피끓는 심정을 알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농민 김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제주도에 밀집된 감귤 재배 농민들과 농민단체들은 농림부와 제주도가 감귤 생산량 조사에서부터 수매대책 수립에 이르기까지 부실 조사와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는 등 감귤 정책의 총체적 난맥상이 결국 농민의 비관자살까지 불러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15kg 한 상자에 7~8천원은 해야 기본 생산비를 거둘 수 있는 감귤 가격은 4년 연속 폭락해 현재는 평균 5천원에서 최하 2~3천원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3천원 가량의 물류비를 제하면 많아야 2천원 정도가 농민들에게 돌아가고 이 돈은 투자한 생산비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폐원한 감귤원…무너진 農心. 수년째 계속된 감귤값 폭락으로 제주지역 농심(農心)이 주저앉고 있다. 폐원한 감귤원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심에 잠겨있는 농민 ⓒ제주일보

  제주도는 수매량과 수매가 결정을 위한 수확 전 생산예상량 조사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2002년의 경우 제주도는 실제 노지 감귤 생산량보다 14%(농민단체 추정 22~31%) 적은 생산량을 예상했다. 이러한 부실 조사는 결국 감귤 시장 조절을 어렵게 해 가격 폭락을 야기하는 것이다.
  
  제주도와 농림부는 수매하지 못하고 남은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 못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는 더욱이 설 전에 남은 물량에 대한 대책을 세웠던 과거의 관례를 무시한 채 설이 지나고 나서야 대책을 마련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의 강옥순씨는 20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남은 감귤이 지금 창고에서 다 썩어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서울서 내려온 실사단 1시간 반 둘러보고 올라가
  
  농림부는 2002년산 저장감귤 수매를 위해 32억5천만원을 투입하고 전문농업경영자금 1백50억원을 추가로 농가에 지원하는 등 감귤농가 경영안정지원계획을 뒤늦게 확정, 19일 제주도에 통보했다. 농림부의 감귤농가 지원조치는 지난 12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제주지역토론회에서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감귤 잔여물량 수매 사업비 1백억원 중 80억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같은 당국의 결정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강옥순씨는 “32억 5천만원 투입 결정 직후 서울에서 긴급 조사단이 내려왔는데 겨우 1시간 반 둘러보고 가더라”며 “제주도나 도내 4개 시군 지자체, 농협에서 더 많은 기금을 마련할 수 있고 오렌지 수입 보상 기금도 있어 최소한 2백억은 마련할 수 있는데 겨우 32억을 지원금이라고 내놨다”고 관계당국을 비난했다.
  
  더욱이 감귤 수매단가와 물량에 대한 제주도와 농협, 농민단체 간의 이견으로 국비 지원에 따른 수매 세부계획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사태 해결은 여전히 난망한 실정이다. 제주도는 ‘kg당 1백50원에 신청량 전량 수매’와 ‘kg당 2백원에 5만톤 한정수매’라는 두 가지 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전농 제주도연맹을 비롯한 농민들은 ‘kg당 2백원에 희망물량 전량 수매’를 주장하고 있다.
  
  김동태 농림부 장관은 19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재고상황과 출하상황을 계속 파악해 추가 지원이 필요한지를 제주도와 협의해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고추파동, 마늘파동, 감귤파동 등등 ‘부실 정책-가격 파동-농민 자살’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나 끊을 수 있을지 농민들의 한숨만 깊어가고 있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은 커녕 농민들의 목소리는 조금도 듣지 않은 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까지 강행하려는 정부의 농업 살리기 대책은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김씨와 같이 좌절속에 자살하는 제2의 농민이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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