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현대중공업 어용집행부의 준동과 해고자들의 처절한 투쟁

현대중공업 어용집행부의 준동과 해고자들의 처절한 투쟁

02년 7월 중순  현대중공업 13대 집행부 사무국장 비리 사건 발생
02년 7월 하순  13대 집행부 총사퇴
02년 9월 13일  14대 최윤석 집행부 당선
02년 11월 7일  현대중공업 최윤석 집행부 해고자 문제 잠정합의
02년 11월 8일  해고자 문제 조합원 찬반투표 통과(임단협안과 분리처리, 임단협안 부결)
02년 11월 중순  제조직 및 단체 등에서 규탄 성명서 발표
02년 11월 19일  현중 해복투 천막농성 돌입, 김진국 의장 단식농성 돌입 (경찰과 현중경비들의
물리력 행사 속에 휘발유를 끼얹으며 천막설치투쟁)
02년 11월 하순  현중해복투와 공대위, 출투와 토요집회 진행
02년 12월 13일  김진국, 정영빈 복직투쟁 중단 선언 -> 조돈희, 설남종, 김대환, 이갑용이 끝까지
복직투쟁 결의
02년 12월 중순  전해투 연서명 성명서 3차에 걸쳐 발표
02년 12월 31일  현중노조, 경비를 동원하여 농성천막 강제 철거
03년 1월 7일  천막 재설치
03년 1월 9일  전하문에 컨테이너 설치
03년 1월 9일  현중 노래패 거리 공연 시작 (매주 2회 실시)
03년 1월 16일 농성장 철거요구 진정서, 동구청과 울산지방경찰청에 접수
03년 2월 5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동구청 항의방문


노동조합 임원의 비리로 무너진 현중 민주노조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이자 상징으로 자리잡혀왔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90년대 초반부터
사측의 신경영전략에 의해 현장이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도 노동조합은 민주노조의 깃발을 움켜져
왔었다. 그러면서 현대중공업 활동가들은 한편으로는 무기력하고 관성화 된 현장활동을 극복하지
못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현장조직력 극복을 위한 몸부림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무기력한 현장활동과 노동조합 중심의 활동이라는 한계는 결국 2002년 7월 노동조합 임원의
비리사건으로 결정적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보수언론들이 보도하는 표현처럼 “16년 노동조합 역사 속에서 노동쟁의로
인해서가 아닌 자체 비리로 인해 내려오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면서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결국 13대 집행부의 사퇴 이후 치루어진 보궐선거에서는 민주노조와 활동가들에 대한
대중적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노동조합마저 어용세력들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기습적으로 해고자 문제를 정리해버린 최윤석 집행부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최윤석 집행부는 당선 이후 마무리되지 못한 2002년 임단협 협상에
돌입하였다. 14대 집행부는 급기야 11월 6일 저녁부터 철야협상에 돌입하여 11월 7일 새벽 3시경에
임단협, 해고자문제를 회사와 잠정합의하고, 7일 10시 대의원 간담회, 8일 조합원총회를
추진함으로써 해고자문제를 정리하는데 초점을 맞춰 그들의 의도대로 해고자문제를 총회에서
정리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최윤석 집행부는 당사자인 해고자들과 어떠한 논의도 없이
해고자 정리에 합의하였으며, 철야협상을 통해 도출한 잠정합의를 신속하게 조합원 총회에 붙여
버렸다. 이에 조합원들은 정확한 사실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잠정합의안을 접하였고, 그
결과는 임단협 합의안과 분리하여 실시된 찬반투표에서 해고자 문제는 통과되고 임단협 합의안은
부결되는 결과를 낳았다.
해고자 문제가 조합원 총회에서 가결된데에는 그동안 현대중공업 현장활동의 극심한 무기력과 침체,
해복투 일상활동의 부재라는 주체적 요인과 최윤석 집행부의 기습 처리를 통해 조합원들이
해고자들과 논의된 합의안으로 오인했다는 점 등이 동시에 작용한다. 결국 해고자 문제가 정리되는
과정 속에서도 현대중공업 어용집행부의 기만적 처리라는 문제만이 아니라 그동안 현중 현장활동의
무기력이라는 문제 역시 반성되어야 한다.

뒤늦게 투쟁에 돌입한 현중 해복투

해고자 문제가 조합원 총회에서 통과된 이후 현중 해복투와 현장 활동가들은 즉각적인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11월 11일에야 현중 해복투에서 사태의 진상을 알리며 제 민주세력들에게
입장을 발표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11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여러 노동조합, 현장조직, 단체
등에서 규탄 성명서가 이어졌고, 현대중공업 해고자투쟁이 주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노사합의안에 대한 입장정리를 통해 투쟁을 결의한 동지들을 중심으로 투쟁방향의 가닥을 잡은 현중
해복투는 11월 19일 현중 경비들과 경찰의 물리력 행사 속에서 휘발유를 끼얹는 처절한 투쟁을 통해
정문 앞 천막설치에 성공하였다. 현중 해복투의 천막농성과 출퇴투, 김진국 해복투 의장의
단식투쟁으로 투쟁 국면으로 들어선 현중 해고자 투쟁은 지역 활동가들의 지지방문과 지역집회
등으로 주요한 지역연대투쟁 사안으로 떠올랐다.

확산되지 않는 연대투쟁과 남은 해고자들의 처절한 투쟁

11월말부터 해고자들의 천막농성과 김진국 의장의 단식투쟁이 시작되면서 현중 해고자투쟁은 지역의
주요한 연대투쟁사안으로 떠올랐지만, 투쟁은 확산되지 못하였다. 상급단체인 금속산업연맹 중앙과
금속산업연맹 울산지역본부가 현중 해고자 투쟁에 대한 입장을 제출하지 못하는 가운데,
선거국면으로 접어든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역시 지역연대투쟁을 조직하지 못하였다. 또한 현중
활동가들 역시 공대위를 구성하여 해고자 투쟁에 결합하였지만, 농성장 사수 이상의 적극적인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면서 해고자 투쟁은 해고자들의 투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 12월 13일 김진국 동지와 정영빈 동지가 남아 있는 동지들의 복직을 절실히 호소하면서
복직투쟁 중단을 선언하여 현중 해고자투쟁은 조돈희, 설남종, 김대환, 이갑용 4명의 해고자
투쟁으로 남게 되었다.

어용집행부의 도발과 제2 거점 확보로 굳건한 투쟁의지 확인

연말로 접어들면서 지역연대투쟁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대의원선거에서 참패 한 현중 내의
현장동력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런 속에 한해가 마무리되는 12월 31일
아침 최윤석 집행부는 회사 경비를 동원하여 해고자들의 농성텐트를 침탈하는 작태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현중 활동가들의 대응은 노동조합 항의방문과 농성물품의 일부반환,
그리고 유인물 배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지역연대투쟁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해고자들은 새해 연휴를 차량노숙투쟁을 벌이면서 보낸데 이어 1월 7일
정문 앞에 농성천막을 재설치 하였다. 그러나 재설치 된 천막에 대해 현중 경비들이 호시탐탐 침탈
위협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해고자들은 안정적인 농성거점을 마련하기 위하여 1월 9일 새벽 전하문
앞에 콘테이너를 설치하였다.

동구청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최윤석 집행부

콘테이너 농성장을 중심으로 해고자들의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윤석 집행부는 해고자 투쟁의 한
당사자인 이갑용 구청장이 있는 동구청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동구 전하동
주민 3천여 명이 생활불편 등을 이유로 농성장 철거를 요구하는 진정서'가 1월 16일 동구청과
울산지방경찰청에 제출된 데 이어, 2월 5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동구청에 대한 항의방문을
벌이는 등 노골적인 실력행사를 벌였다. 또한 해복투 명의의 유인물이 현장에 배포되자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유인물을 통해 해고자 문제는 정당한 규약에 의거하여 처리된 것이라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공세가 강화되는 가운데 해고자들의 투쟁은 완강히 진행되었고, 현중
노래패는 1월부터 매주 2회에 걸쳐 각 정문을 순회하면서 ‘해고자 원직복직과 민주노조 재건을
위한 거리공연’을 벌이면서 해고자 투쟁의 정당성을 알려내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현중 해고자투쟁은 총체적인 민주노조 무력화 공세에 맞선 투쟁이다

2001년 화섬3사를 중심으로 한 투쟁 패배 이후 울산지역은 자본의 민주노조 말살 공세가 매우
노골적이며 공세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태광에서부터 시작해서 효성과 고합이 무너졌으며, 이
여파는 효문지역 사업장으로까지 확산되어 민주노총을 탈퇴하거나 아래로부터 무력화되는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남구와 효문 등 중소사업장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민주노조 무력화 공격은 급기야
울산지역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한 축인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을 무너트리면서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결국 현재 울산지역 민주노조운동진영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제외하고는
민주노조가 어용노조화 하거나 완전히 무력화되어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자본은 매우 공세적으로 이런 흐름을 확산시키고 있으며, 이는 노동운동의 주요한 교두보인
울산지역을 무력화시킴으로서 노동운동 자체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려는 공세의 일환이다. 그 정점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현대중공업 해고자 투쟁이 있는 것이다. 현중 해고자 투쟁을 중심으로 해서
지역차원의 민주노조 무력화 공세를 막아내고, 민주노조 재건과 현장동력 복원으로 이어가야 하는
과제가 현중 및 울산지역 활동가들에게 주어져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