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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혹은 배려

어제는 아침부터 험난했다.

 

유난히 추운 날씨 덕에 중무장을 하고는 전철역보다는 조금 가차이 있는 버스 정거장에 가서 버스를 탔다. 임신을 하고 나서는 될 수 있으면 전철을 탄다. 훨씬 덜 흔들리기 때문에 안그래도 나온 배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는 데 그런 몸을 릴렉스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전철역까지는 길이 경사진데다가 눈으로 미끄럽고 바람도 많이 부는 바람골이어서 험난하다. 그래서 어제는 그냥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그놈의 버스가 오늘따라 왜 이리 사람도 많고 흔들리고 자리도 안나던지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이 원망스럽고 서운했다.

 

그렇게 힘들게 갔는데 오전 회의는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시작했다. 회의는 나름대로 재미나게 했다. 3월에 하는 다큐멘터리 강좌 기획회의 였는데 정말 해보고 싶은 강좌여서 32주 정도 되는 임신시기에 해도 괜찮을까 걱정도 했지만 결국 하기로 결정했다. 기획자들도 걱정을 했는데 '걱정하는 마음에 임신한 사람을 격리시켜서는 안된다. 그녀가 결정할 수 있게 하자' 고 결정했다며 내게 바톤을 넘겼다. 그렇게 까지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고마웠다. 임신 이후에는 회의 가는 것도 약간 꺼려졌던 일이 있다. 특히나 흡연자가 많은 회의에 가면 괜시리 눈치가 보인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한 것은 아닌가 반가워하지도 않을 텐데 내가 가도 되나 등등....그런 생각이 들면 외롭다. 그런데 오히려 나를 배려하고 기회까지 주다니 그때는 제대로 말을 못했지만 임신한 나를 제대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그저 임신한 사람도 아닌 그저 감독인 나도 아닌 임신한 감독으로 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세상엔 그렇게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회의는 즐거웠지만 배가 고팠다. 엇저녁 싸놓았던 도시락도 그만 냉장고에 넣고 그냥 나왔다. 배는 슬슬 고프고 인터뷰 약속을 해 놓은 곳으로 발길을 돌기며 허기진 배를 이것 저것으로 채우면서 갔다. 배고프면 왜 그리 서러운지....날은 또 왜 이리 추운지....날이 추워서 감기에 걸리는 경우는 드문데 이상하게 목이 메캐한 것이 아프기 시작했다.

 

같이 인터뷰 장소로 가기로 한 사람이 또 한시간 늦었다.

오늘은 정말 기다리는 날인가 보다. 맘을 먹고 투덜투덜 모드 돌입...

이주언니와 인터뷰 약속을 했는데 어찌 하여 내가 그 언니에게는 선생님이 되는데

그만 다른 한글교실 선생님도 초대가 되었다. 인터뷰 일정과 집들이가 섞이고 말았다.

이주언니는 맛난 음식으로 우리를 맞았고 그 마음이 너무 좋아서 난 배고픈 배를 달랬다. 언니의 시어머니의 대략 몰상식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했다. 근데 도저히 못듣겠다.

 

임신을 하면 왜 갈비뼈가 그렇게 아픈 것일까? 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어떻게 임신한 그 많은 사람들은 이런 아픔을 견디며 지낼 수 있을까? 무기력해진다. 아기집이 커지면서 점점 갈비뼈를 누르고 올라온다. 어제는 길까지 미끄러워서 임산부에게는 매우 위험한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온 몸에 힘을 이빠이 주고 안 넘어지려고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다녔더니 그놈의 갈비뼈는 더더더 아팠다. 그리고 아까 부터 슬슬 올라오던 감기기운도 본격적으로 진행되려고 하고  결국 난 이야기를 듣다 말고 쓰러져 잤다. 속으로는 계속 '인터뷰 해야 하는 데' 하면서......

 

그리고는 그제 밤에 임산부 운동 강좌 시간이 어정쩡해서 촬영 일정이 안나온다며 투덜 되는 내게 "운동에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차라리 촬영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아"라고 말한 같이 사는 사람을 원망했다. 괜시리 운동하지 말라고 해서 괜시리 나의 작업욕망을 자극해서(안그래도 강박적인데) 오늘 나오는 바람에 몸이 안좋아지고 아파지면 이번주 남은 날을 날릴 수도 있는데...원망 원망스러웠다. -.- 

 

시간은 휘리릭 지나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촬영을 해주러 온 조연출은 다음 약속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눈치를 주고..ㅠ.ㅠ

과연 오늘 인터뷰를 하는 것이 맞나? 빨리 조연출도 회의에 가게 하고 나도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이 되긴 했지만....한번 촬영 기회를 놓치면 다시 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뼈져린 경험을 몇번 했기에 그냥 밀고 나가는 것이 좋을 듯 했다. (촬영 한번 하는 것이 이렇게 비장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려나? ^^;;)

'다음에 할까?'하는 나의 질문에 다행히 조연출도 그냥 하자고 하고 이주언니도 별 불편해 하지 않았다. 고마운 일이지.

그렇게 인터뷰를 했다. 여자를 인터뷰 하면 참 좋다. 하고 나면 힘을 얻는다고 해야 하나?

살아가는 것이 다 똑같고 다 그만큼 힘들고 다들 힘내서 산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이 난다. 어제도 그랬다. 그래서 너무나 다행이다라고 마음을 쓸어 내렸다.

그냥 인터뷰를 접고 갔으면 마음에 준비를 한 언니에게고 미안했을 것이고

촬영을 하러 온 조연출에게도 미안했을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을 진행하지 못한 스스로가 넘 괴로웠을 것이다.

 

지쳤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지하철을 탔다.

노약자 좌석이 비었다. 망설일 수 없다. 오늘은...

 

저번에 임신한 이주언니와 함께 노약자 석에 앉은 적이 있었다.

이전에는 한번도 앉은 적이 없어서 너무 눈치가 보이고 불편해서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오히려 아기에게 안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찰라에...

어느 노신사가 오더니 위압적인 태도로 노약자석표시를 가르키며 '이거 안보여. 이거' 한다. 후우...올것이 왔구나. '임산부인데요'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이야기를 하는데, 옆에서 이주언니가 '임신 너무 힘들어요' 하고 크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 노신사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임신했나 보구만, 힘들겠네'한다. 결국 그 노신사는 물러갔다. 그 이후에도 맘 편안하게 가지는 못했지만, 옆에 있는 이주언니가 넘 든든했다.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 언니가 너무 멋지고 든든해서 마구 그냥 좋았다. 그리고 어딘지 당당하지 못하고 움추려 드는 내가 부끄럽고 반성됐다.

 

그런데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내 옆에 앉았던 남자분이 어느새 내 옆에 서 계셨던 할아버지를 가르키며 '노인이 서 있으면 젊은 사람이 일어서야지'하는 것이 아닌가? 휴우~~ 앞에 서 있는 조연출이 아저씨를 째려봤다. 다른 때 같으면 억을해하면서도 한마디 못하고 그냥 앉아 있거나 내리거나 했는데....당당했던 이주 언니도 생각 나고 든든한 조연출도 있어서 "아저씨, 임산부거든요.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무작정 그렇게 이야기하시면 안돼죠"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 암말 없다. 휴우~~

 

대부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저씨들이다. 위압적인 그 분위기가 너무 싫다.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면 안되나? 가끔은 젊은 남자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앉아 있으면 너무 밉다. 푸후후....그래도 속으로 생각한다. '뭔가 힘든 일이 있을꺼야.' 하고 미움을 달래본다. 임신하면서 정말 세상의 배려에 대해 밀도 있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격리에 대해서도 밀도 있게 생각하게 된다.

세상은 젊은 남자들 중심으로 배치되고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쫄지 말자. 

스스로 쫄고 스스로 고립시키지 말지어다.

좀더 당당하고 좀더 소통하고 싶다. 그래야 서로를 잘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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