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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그러고 싶겠지..

* 이 글은 시와님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에 관련된 글입니다.

* 이 글은 탈주선님의 [빗나간 느긋함] 에 관련된 글입니다.

 

스크린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그저 영화관은 신나게 즐길수 있는 곳으로만 생각했는데, <계속된다>가 몇몇 상업영화관에서 상영된 이후로는 그 느낌이 달라졌다. 저 스크린에 내가 만든 다큐가 상영된다면 그런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그 스크린의 크기에 놀랍다. 다큐는 주로 VHS로 보게 되니까. 그런데 정말 커다란 화면으로 보면 달라진다. 밀도랄까...화면의 밀도가 높아져야 한다. TV화면으로 볼 때는 몰랐던 티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끔은 여러번 편집한 나만 아는 것을 큰 화면으로 보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본다. 그래서 당혹스럽고 그래서 반갑고 풍부하다.

 

<이웃집 토토로>가 불법복제판으로 돌때 몇번이고 몇번이고 기회가 날 때마다 난 봤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때 그 시절에는 그렇게 많은 영화들을 봤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영화메니아가 아닌데도 <이웃집 토토로>를 볼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다 일본영화가 개방이 되고 <이웃집 토토로>도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맛이란...몇번을 보면서도 가끔은 잊어 먹고 혹은 놓쳐서 못 본 장면들이 하나 하나 살아서 눈에 박힐 때는 그 감격이란....큰 화면에 대한 감동 보다 오히려 그 동안의 감동이 한꺼번에 밀려와 뻑 갔던 기억이 있다.

 

 



다큐를 만들고 나니 이 사람 저 사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만들기 전에는 아무도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에게 다가가라 저렇게 다가가라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아마 그때는 나의 존재에 대해 알 필요가 없어서 그랬나, 아니 어쩌면 사는 게 다 그런건지도 모른다. 먼저 내지르지 않으면 아무도 다른 존재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게 사는 건지도 모른다. 여하튼...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대부분이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내지르지 말라고 그냥 같이 가게 하라고. 뭐 다른 의미들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략 좋은 의미로 아니...내가 알아 들을 수 혹은 내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간추려 본다면 대략 그렇다. 보는 사람이 같이 가게 하라고. 사람들을 내몰지 말고 같이 가게 하라고 같이 느끼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가라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게 하고 느끼게 하라고..리듬과 호흡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촬영 조명 워크샵을 했다. 워크샵에서 가장 많이 한 것이 영화 보며 분석하는 것이었다. 재미난 수업이었다. 한번도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많이 안다고 해서 다큐를 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닌것 같다. 다큐는 극영화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그 수업을 듣고 나서는 뭐랄까 눈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이야기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이 이야기는 어떻고 저 이야기는 어떻고...

 

서론이 길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대한 이야기였던가? ^^ 한마디로 말하라면 그림 죽인다. 그 큰 스크린이 하나도 안 남더라. 밀도. 밀도가 있더라. 다큐를 찍으면 그런 밀도를 갖기란 힘들다. 다큐를 촬영할 때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러니 밀도 있는 화면을 갖긴 쉽지 않다. 카메라 감독을 따로 두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니 촬영에 도가 트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역시 미야자끼 할배다(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왜 죄다 할배일까? 혹은 할매? 존 버거도 할배고...) 꽉찬 화면은 충만함이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환타지가 완벽하다. 그 속이 영화란 생각을 못하고 빨려 들어 간다. 실제가 아니지만 실제가 되버린 상황. 그게 정말 영화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그런데 한가지 부족하다. 아니 한가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뭔가 불편하다. 자꾸 밀어낸다. 다른 것은 별로 없는데 환상적인 비행신, 누구나 친구가 되고 누구나 가족이 되는 관계, 누가 완벽히 나쁘지도 않고 누가 완벽히 좋지도 않고 그저 관계가 만들어 지고 서로 있어주는 관계들, 그리고 한번쯤은 생각해 봤음 직한 감히 입밖으로 내놓지 못한 많은 상상들.....감개무량....그런데 모자란다. 질러 놓고 빠지고 질러 놓고 빠지고 뭔가 부족하다. 무엇인가가 그를 뭔가가 부족한 상태로 만들었을까? 뭔가 부족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나이듦, 그건 아닐텐데, 명성, 아니면 잠시 쉰 흔적,

 

순간 그런 생각이 든다. "자기 만족", 우린 알고 보면 자기 만족에 산다. 누가 뭐래도 자신이 족하면 그만이다. 이만큼이라고 느낄 때 이만큼 할 수 있는 자아도 훌륭한 거다. 그럼 그도 스스로 만족했을까? 그 할배가 그렇다고 말하면 난 더 할 말이 없다. 두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그에게 그 순간 맞을 거 같기 때문이다. 그래야 미래가 있지. 그래야 더 나아갈 수 있지. 거장이란 말은 감옥이다. 욕망이 자기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 아닐까? 거장이라고 불리는 순간이란. 남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우리는 매번 흔들린다. 가끔은 나의 욕망에 순할때가 행복이고 혹은 남의 욕망에 순할때 행복이다. 그래서 흔들린다. 매번 대답은 다른 곳에 있으니. 매번 흔들린다. 그래서 가끔은 욕망을 객관화시킨다. 그럴때 다양한 욕망들과 만나고 그래서 소통이 되고 그래서 행복을 나눈다. 대략 그런 사람들이 거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가능할까? 그렇다면 정말 재미 없다. 그렇다면 정말 심심하다. 그리고 재수 없다. 인간은 가끔 자신의 욕망으로 빠져 우수워질때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있지. 그래야 재미가 있지. 난 여전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미야자끼 할배의 끝이 아니란 생각에 다음이 기다려진다. '할배, 부족해요. 그러니 담엔 부탁해요.~' 갑자기 그가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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