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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토막.

전화만 그렇게 안 받았어도...

 

연행된 이주노동자분들은 출국 전에 최종적으로 화성외국인 보호소에 가게 된다. 들판에 있는 보호소에 가는 길은 항상 황량하다. 말이 보호소인 그곳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면회실은 이중 아크릴 판으로 막혀 있고 각 아크릴 판마다 다른 방향으로 구멍이 뚫려 있다. 그래서 대부분 말을 할 때 소리를 질러야 한다. 그래도 뭐라 알아 듣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옆 면회실과 칸만 쳐저 있지 문이 없어 그쪽도 소리를 질러 대니 면회실에 들어 서면 웅웅 소리에 정신이 아련해지면서 모든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곳에서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격하게 진행한다. 얼굴을 봐서 반갑다가 다시 못 볼 것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가 다시 만날 것을 다짐했다가 '한국에서 살았던 삶은 뭔가'란 생각에 이 사회가 싫어진다. 그리고 어떤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단 생각에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그곳에 가지 않으려 했고 한 동안 안 갔다.

 



어제 연행된 지번씨가 전화를 했다. 평소 차분한 성격의 지번씨는 연행된 상황에 보호소에서 전화를 하는 데도 역시나 차분하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어떻해요' 자꾸 그 소리만 나왔다. 보통은 보호소 안에 있으면 답답해지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맘이 많이 약해져서 약한 소리를 하신다.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그러면 난 평소 대로 실 없는 소리를 해가며 웃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지번씨는 그런다. "집에 가는 건데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좀 마음이 안좋은 건 그 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가야해서 그게 좀 그래요." 그 소리를 들으니 더 막막했다. 괜시리 우는 소리를 한다. "어떻해요."

 

전화를 끊고 후회했다. 그렇게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평소 처럼 너스레 떨었어야 했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이 더 막막하지 우째....내가 그랬을까 싶어 더 막막해졌다. 결국 한동안 안가던 보호소에 가야겠다고 맘 먹었다.

 

아침에 모자란 잠을 뒤로 하고 마님님이랑 면회를 갔다.

여전히 담담하다. 반가우신지 약간 얼굴표졍이 밝아지시긴 했는데 별 말도 없이 웃는다. 옆에 있는 다른 분들은 얼굴이 까칠하고 그래서 걱정을 했는데 방에 사람이 많아서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런단다. 그 분은 농성을 하지 않으신 분이다. 지번씨가 그런다. "농성을 안해서 그런다. 농성때는 한 텐트에 35명 정도도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웃는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지번씨는 당신의 이주를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졌다. 평범하게 이주노동자로 살다 농성을 하고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다 결국 불법체류란 이유로 연행된 이곳에서의 삶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그 경험은 어떻게 그녀/그를 강제할까?

그녀/그는 본국에 돌아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가 그분들을 다시 만나야겠다.

삶의 한 토막들이 어떻게 다른 토막을 구성하며 어떻게 그녀/그가 속해 있는 사회를 구성하며 영향 받는 지...알고 싶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의 끝을 밀고 온 사람들의 경험을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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