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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울다. - 이젠 씩씩해진다.

오늘로 임신 14주가 되었다.

어제 오늘 몸이 안좋더니 조금씩 갈색혈이 나온다.

 

임신 6주 정도쯤에 그런 일이 있었다.

의사는 그저 조심하라고 될 수 있으면 누워 있으라고 했다.

위험한 시기이니 긴장되고 걱정되고 우선 하던 일들을 대폭 줄이고

한달 정도는 집에 들어 앉았다.

무섭고 어렵더라...그래도 그래야 한다니 그렇게 했다.

맨날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고

그 시간에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경험이 있었던 일이 아니니

어렵더라. 그래도 그럭 저럭 한달을 보내고 나니

어느정도 적응이 된 듯 싶었다.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했다.

그런데 그만 갈색혈이 또 나왔다.

겁도 나고 해서 병원에 갔다.

 

 



병원은 갈 때 마다 놀랍다.

처음에는 임신을 알게 돼서 놀랬고

그 다음에는 아기 심장 소리를 들어서 놀랬고

그 다음에는 아기가 2주 새 3배가 커서 놀랬고

(그 전 주에는 0.7cm,  이주 후에는 2.2cm) 

그 다음에는 아기가 사람 모양을 해서 놀랬다.

(그 전까지는 아메바 모양이었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아기가 막 움직인다. 이리 저리...

그래서 놀랬다.

 

그런데 갈색혈이 좀 보인다는 말에 의사는

"조심하셔야겠네요. 될 수 있으면 누워계시는 시간을 늘리세요." 한다.

 

아기가 막 움직인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점심을 먹고

다음 일정을 위해 가는 데 자꾸 의사의 말이 생각 나면서 막 서러워지는 거다.

'얼마나 더 조심해야 하나?' 한 숨이 나온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임신 12주만 지나면 안정기에 들어가니 그때까지만 조심하자 맘을 먹었는데

그리고 나면 일을 조금씩 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아직도 조심하란 소릴 듣는다.

속상하다.

 

다음 일정은 촬영이었다.

임신 때문에 지체되고 있는

이주여성 다큐의 인트로로 쓸까해서 촬영을 하기로 했다.

이래 저래 걱정이 되고

도대체 얼만큼 움직여야 괜찮은지 몰라

후배에게 촬영을 맞겼다.

후배도 급히 맞겨진 촬영에 불편한가 보다.

열심히 이렇게 저렇게 촬영하지만 익숙하지도 않은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하는 게 영 불편해 보인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역시나 속상하다.

 

집에 돌아와서는 한동안 멍 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하고 뭘 할 수 있을까

머리속으로 수백번을 대차 대조표를 만들고 지우고 한다.

 

그러다 눈물이 터졌다.

일이 많아서 몸이 너무 힘들어도 차라리 힘든 걸 택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몸이 힘들면 힘든 만큼 쾌감도 있었던 것 같다.

가끔 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넘는다는 생각에 기뻤던 기억도 있다.

잘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열심히 하는 것 만큼은 그런 대로 잘해서

내가 조금씩 확장된다는 생각에 기뻐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못한다니...

막 목이 메인다.

 

눈물이 난다.

소리 없이 나오던 눈물이 어느새 엉엉 소리를 낸다.

에라모르겠다. 울자.

앞에서 해줄 것이 없어 같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같이 사시는 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울자.  

 

골이 아플 때까지 울고 나니

이젠 뱃속에 있는 애기에게도 미안해진다.

그래...

이젠 씩씩해지고 싶어졌다.

그래 씩씩해지자.

 

도대체 그 많은 여자들이 어떻게 아기를 낳고 기르고

자기 일을 하는지...난 도대체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이제는 좀 알아봐야겠다.

 

그래 씩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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